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25)
1224화 성녀의 겁(劫) (1)
머릿속이 엉망으로 엉켜 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동황태일. 우리도 따지면 옛 친구 아니오? 정도 사람들에게 꺼지라고 했지 당신더러 가라고 하지는 않았소이다. 구경이 다 끝났으면 회포도 좀 푸는 게 어떻겠소?”
동황태일은 움찔하더니 검은 안개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놀라서 땅에 떨어질 뻔했다.
느린 동작으로 유유하게 허공을 밟고 내려오는 자는 초휴였다. 동황태일의 시선에는 꺼리는 마음이 삼할, 경계심이 삼할, 어리둥절한 기분이 삼할, 그리고 뭘 하려는 걸까 싶은 생각이 일할 섞여 있었다.
강호에 명성이 드높은, 정확히 말하자면 악명을 휘날리는 분 아니던가. 그런 자가 자기를 찾아오면 누구나 지금의 동황태일 같은 얼굴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와 초휴 간에 무슨 교분이 있단 말인가? 동황태일 본인도 모르는 교분?
어쨌거나 복잡한 마음을 감춘 동황태일은 정중하게 공수를 올렸다.
“초 교주의 위엄이 대단하십니다. 정도 놈들은 풀이 죽어 떠나갔고, 저 역시 돌아가 교주께 보고를 올려야지요.”
동황태일은 말하다 말고 아차 싶었다.
초휴는 곤륜마교 교주, 야소남은 배월교 교주다. 게다가 배월교는 명마가 아닌가. 배월교까지 포함해서 이제 강호에 교주는 자신 하나뿐이라고 하면 어쩌나?
그러나 동황태일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초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눈치채지 못했다.
“말씀 잘하셨소. 내가 야소남 교주를 만나 뵙고 싶어서 말이오. 내 짐작이 맞다면 야 교주는 무선에 오르셨겠지요?”
동황태일은 심장이 철렁했다. 그러나 워낙 자제력이 대단한지라 눈빛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초휴의 실력으로는 그의 몸에서 전해지는 파동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동황태일은 부인하려 했지만 초휴의 확신에 찬 눈을 보고서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긍정했다.
“초 교주는 그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초휴는 웃어 보였다.
“강호에서 무선에 들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은 당연히 야 교주 아니겠소. 연지 같은 자도 제 것이 아닌 힘을 빌려 무선에 올랐는데 야 교주가 그에 뒤질 리가 없지요. 야 교주가 마종을 소화한 지도 오래되었고 말이오. 설령 마종이 없었더라도 야 교주는 무선에 들 수 있었을 테니까. 긴장하지 마시오. 지금 강호에는 이미 명마와 은마의 구분 같은 건 없소. 다 같은 마도 사람이지. 야 교주가 추구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은 충돌하지 않소. 그러니 우리는 적이 아니오.”
말은 긴장하지 말라지만 어떻게 긴장이 안 되겠는가? 동황태일은 여전히 초휴의 목적이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초휴가 청한 이상 그를 배월교로 데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 * *
배월교에 들어서자 퍽 노쇠한 배월교 대제사와 다른 신무제 여럿이 직접 나와 초휴를 맞았다.
초휴는 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그 성녀는 어디 가셨소?”
동황태일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겁(劫)을 겪고 있습니다.”
초휴는 일순 어리둥절했다. 겁? 성녀가 무슨 겁을 겪는단 말인가?
그러나 동황태일은 부연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배월교 대제사를 바라보았다. 그걸 말해도 되겠냐는 의미였다. 대제사가 코웃음을 쳤다.
“이미 오래된 일이고, 마도 일맥에서는 어렴풋이 짐작하는 이들도 있을 거요. 초 교주에게 굳이 감출 필요야 있겠소?”
동황태일은 한숨을 쉬었다.
“겁을 겪는다는 것은 고독(蠱毒)을 전승받는 일을 말합니다. 그건 우리 배월교의 옛일과 관련되어 있지요. 자랑할 일이 못 될뿐더러 되려 죄업이기도 합니다. 우리 배월교에는 줄곧 성녀가 있었죠. 그건 초 교주도 아실 겁니다. 고술 역시 최초에는 성녀가 다루던 비술이었습니다. 배월교 제자가 쓰는 고술은 모두 초대 성녀로부터 전승된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 배월교의 초창기에는 교주나 대제사, 구대 신무제조차 없었지요. 성녀 혼자 만사를 관장했습니다. 그때의 배월교는 약소 세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 성녀는 독충을 연구해서 그게 대대로 전승되도록 하고 그 이름을 장생고(長生蠱)라 지었습니다. 성녀가 죽어도 장생고는 죽지 않습니다. 다음 대의 성녀는 자신의 심혈로 장생고에게 제를 바치고 그것을 계승합니다. 전승을 받으면 실력이 폭발적으로 강해져 단숨에 경지를 여러 번 뛰어넘기도 하지요.”
초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정말 장생고의 효과가 그토록 강력하다면 배월교는 진작에 천하제일의 대문파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동황태일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전승이 오래 내려오는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생고는 진정으로 영생불사하는 벌레가 아니었던 거죠. 그것의 장생은 단지 성녀의 심혈과 수명을 집어삼킨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배월교의 역대 성녀는 모두 단명했습니다. 경지가 어디까지 이르건, 장생고를 이어받을 때 수명의 대부분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승을 치를 때마다 장생고에 성녀의 표지가 남겨집니다. 배월교는 이미 몇천 년을 이어져 왔으니 장생고에도 수백 명 성녀의 표지가 있지요. 그 표지가 너무 많이 쌓이는 바람에 계승할 때 타격을 주어 크게 위험해지기도 합니다. 최근의 세 성녀만 해도 한 사람은 계승하던 중에 원신이 찢겨 죽었고, 한 사람은 중상을 입었고, 평온하게 겁을 넘긴 사람은 하나뿐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장생고는 고충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고독입니다! 남과 자신을 동시에 해치는 고독!”
초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배월교가 장생고의 해악을 알면서도 굳이 계속 쓰는 이유는 묻지 않았다. 초기 배월교의 수장이었던 초대 성녀가 남긴 힘이라면 얼마나 강하겠는가.
게다가 역대 성녀는 모두 용호방에 이름을 올릴 정도의 준걸이었다. 진단경 돌파는 아무것도 아니고, 진화련신도 시간문제였다. 그러니 장생고에 담긴 힘은 아마 곧장 천지통현까지 오를 수준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런 위험을 무릅쓸 의미가 없었다.
하계에서는 천지통현 강자면 어디에 내놔도 지존 급의 인물이다. 배월교가 어찌 그런 힘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누가 억지로 협박하지 않아도 자진해서 자기의 심혈로 장생고를 키우겠다고 할 것이다.
이제 배월교는 강성해졌고, 성녀 한 사람쯤 없어도 큰일이 날 일은 없었다.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일임은 분명했다.
초휴도 더는 묻지 않았다.
“야 교주를 뵈러 갑시다.”
동황태일은 초휴를 뒷산까지만 데려다주고 떠났다. 검은 옷을 입은 맨발의 야소남이 산꼭대기에 서 있었다.
“야 교주, 오랜만에 뵙소이다. 무선에 오르신 것을 축하합니다.”
야소남이 초휴를 돌아보았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무선이 분명했다. 그것도 진짜배기 무선이어서 연지처럼 남의 힘을 빌려 억지로 오른 무선과는 달랐다.
한마디로 그는 법칙의 힘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단단하고도 묵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제 막 일중천에 오른 정도가 아니고 초휴와 같은 이중천이었다.
야소남은 이미 경지를 돌파한 지 오래인 게 분명했다. 그러나 줄곧 그 힘을 드러내지 않고 안정시키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휴를 보는 야소남의 눈이 반짝이며 빛났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초휴는 여러 차례 야소남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옛날 정도 연맹의 협공 때도 그렇고, 마종 쟁탈전에서도 야소남이 이렇게 뚜렷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본 기억은 없었다.
“당신도 여기까지 왔군!”
야소남은 힘의 극한을 추구해 왔다. 본래는 천지통현을 넘어서면 하늘과 사람의 간극을 무너뜨리고 정상에 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이 그 경지에 올라서 옛날 군무신이나 종신수가 뿜던 기세와 비교해 보니 알 수 있었다. 아직 정상까지는 한참이나 멀었다는 것을 말이다.
초휴와 마주한 그가 느낀 것은 옛 친구와 재회한 반가움 같은 게 아니었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는, 자신이 외톨이가 아니었다는 흥분이었다.
야소남은 손을 뻗었다. 그는 인사 한마디 없이 곧장 초휴를 둘러싼 공간을 움켜잡고 찢었다. 삽시간에 폭풍이 일어났다.
야소남의 느닷없는 출수에는 전혀 살기가 없었다. 그는 경지를 돌파한 후 무선과 겨뤄보지 못했고, 지금 진정한 법칙의 힘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초휴가 힘주어 발을 구르자 몸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터져 나왔다. 자세히 보면 그 기운은 칼끝처럼 몸 주위의 폭풍을 찢어 가르고 있었다. 법칙의 힘을 법칙의 힘으로 상쇄하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찢겨나간 공간이 아물기 시작하더니 초휴를 그대로 가둬 버리려 했다. 야소남의 보천심경은 무선이 다루는 법칙의 힘과 융합한 뒤로 더욱 천변만화하는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초휴는 손날을 세웠다. 법칙의 힘이 손에서 비틀리며 실낱처럼 긴 가닥으로 변하더니, 매우 날카로운 칼끝이 되어 내리 떨어졌다. 찰나에 천지를 가르는 힘이었다.
야소남은 단 이 초로 실력을 초휴의 시험해 봤을 뿐, 더는 출수하지 않았다.
야소남이 초휴를 응시했다.
“놀랍군. 이 경지까지 오른 것도 그렇지만, 힘과 저력 역시 나보다 못하지 않으니.”
초휴는 담담했다.
“세상에 놀라운 일이 어디 한둘입니까? 다만, 다짜고짜 손부터 나가는 습관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군요. 고치셔야겠습니다.”
야소남은 초휴의 비꼬는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손을 휙 저어 자신과 초휴 앞에 돌로 된 의자를 하나씩 띄우더니 거기에 앉았다.
“무슨 일로 왔소?”
초휴도 앉았다.
“배월교와 연합하여 천문을 치고 군무신을 죽일 생각입니다.”
야소남의 눈에 경악이나 의혹의 빛은 전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초휴를 바라보더니 딱 두 글자를 뱉었다.
“이유.”
옛날 그는 초휴의 화살 받이 노릇을 해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오로지 군무신의 출수를 볼 목적으로 말이다. 그때 그가 추구하던 것은 무선의 경지였다.
지금 야소남은 이미 무선에 도달했다. 무선은 절정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힘으로 한 발짝씩 전진했다.
하계같이 열악한 조건에서 자신의 힘 하나만 가지고 하늘과 사람의 간극을 뛰어넘어 무선에 오른 것이다. 연지처럼 남의 힘을 빌려 성공한 ‘가짜 무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야소남은 연지와 달랐다. 그는 자신의 미래와 앞길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굳이 위로 오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더 관찰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배월교의 교주이니 이만한 중대사에서는 당연히 배월교의 상황을 고려해야 했다. 동서 양중천이라는 말처럼 천문은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 아닌가. 그 강대한 세력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초휴는 손가락을 두 개 세웠다.
“이유는 두 가지요. 첫 번째, 야 교주는 상고 대겁난 때 무사들이 어디로 갔는지 들은 바가 있습니까?”
야소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은 알고 있소.”
다른 강호인들에게는 전설이라 할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야소남처럼 강호 최절정에 오른 강자에게는 대단한 비밀이 못 되었다.
초휴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지요. 천문은 상고 시대 무사들이 남긴, 두 세계의 통로를 지키는 곳이오. 천문이란 곧 하늘의 문일지니. 이름 그대로 하늘과 통하는 문이었던 겁니다. 문 너머에는 또 다른 천지가 있습니다. 하계보다 훨씬 원기가 강하고, 하계보다 더욱 하늘과 가까운 세상! 천문을 없애고 진법을 무너뜨리면 그곳의 천지 원기가 하계에 가득 펴지게 될 거요.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야 교주도 잘 아시겠지요.”
거기까지 듣자 야소남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새로운 무도의 성세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