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42)
1242화 옛 친구
초휴가 생각보다 빨리 창남부로 돌아오자 육강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선이 잔뜩 몰려와서 시비를 걸었다며? 다 쥐새끼 같은 놈들이었나? 능소종을 보자마자 꼬리를 말고 튄 건가?”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한 판 붙었다가 나를 어쩌지 못한다는 걸 알고 다 물러갔지. 그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날 죽이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 물고 늘어지려 하겠나. 능소종이 꺼내든 패가 워낙 대단하기도 했지. 무선 구중천의 지존 강자라 해도 무시하지 못할 물건이었어.”
대라천에서 진정한 절정급 문파에는 대개 무선 구중천의 강자가 있었지만 능소종은 예외였다. 그러나 능소무극인의 위력만 보아도 능소종은 쉽게 무너질 리가 없었다.
“대라천은 육 형과 경령에게 맡기지. 나는 하계에 다녀와야겠어.”
육강하는 의아해했다.
“천문은 망했고, 다른 종문도 얌전히들 있는데 하계는 왜?”
초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을 좀 모아오려고 해. 대라천의 골칫거리를 해치워야 할 것 같아서.”
사실 대라신궁 선발전에서 사람을 죽였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필경 적잖은 문제가 터지리라 예측했던 것이다.
대라신궁 선발전에서는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이기 마련이고, 생사를 따지지 않는다. 그러나 선발전이 끝나면 그것을 핑계로 각종 은원을 해결하려는 자들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초휴가 죽인 숫자가 워낙 많기도 했다.
기실 하계에서 천문을 칠 때부터 이미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빨리 일이 닥칠 줄 몰랐을 뿐이다.
육강하와 매경령에게 몇 가지 지시한 초휴는 하계로 돌아와 곧장 서초 배월교로 향했다.
* * *
천문 전투가 끝난 후, 천지 원기가 천문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거의 매일 원기의 폭발적 증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초휴가 배월교에 왔을 때 일을 맡아보던 사람들 대부분은 폐관 수련 중이었다.
야소남은 군무신과의 일전에서 얻은 깨달음을 소화하려고 폐관에 들었고, 구대 신무제 역시 경지 돌파를 위해 폐관 중이었다. 나이도 많고 지금 폐관해 봐야 살아생전 무선에 오를 가망이 없는 대제사 하나만 남아서 초휴를 맞이했다.
배월교 대제사는 초휴에게 공손하게 예를 울렸다.
“초 대인, 우리 배월교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교주께서는 지금 폐관 중이십니다만, 가서 말씀드릴까요?”
풍만루는 천문 전투가 끝나자마자 지존방 순위를 조정했다. 초휴는 삼위로 종신수 다음 자리였다. 독고유아와 영현기는 전설이나 마찬가지고, 종신수는 워낙 신출귀몰한 사람이 아닌가.
결국 초휴가 당금 강호 최고의 지존 강자라는 말이었다. 배월교 대제사로서도 알아모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휴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소. 배월교 성녀를 찾아온 거니까.”
난데없이 성녀를 찾아왔다는 말에 대제사는 좀 의아했다. 지금 초휴의 실력과 지위라면 배월교 성녀 급의 사람과는 얽힐 일이 없을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초휴 본인이 만나겠다고 하니 대제사는 성녀를 불러왔다.
배월교 성녀는 묘강 특유의 화려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댕그랑거리는 온갖 은장식을 달았다. 마교 성녀다운 매혹적이고 요사한 느낌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활기차고 생기 넘치는 정령 같았다.
그녀는 초휴를 보자 웃어 보였다.
“초 교주, 무슨 일로 찾으셨나요? 제 목숨은 초 교주가 살려주신 것이니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따르지요.”
초휴는 눈썹도 까딱 않고 대제사에게 물었다.
“귀교의 성녀를 잠시 모셔 가려 하는데, 야 교주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구려?”
대제사가 답하기도 전에 성녀가 손을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배월교에서 제 지위는 교주 바로 다음인데, 그 정도 권한쯤이야 있지요. 마침 교주는 폐관 중이시니 방해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초휴는 끄덕였다.
“좋소. 그럼 갑시다.”
그는 배월교 성녀를 데리고 곧장 떠났다.
성녀는 뒤를 돌아보며 장난기 어린 얼굴로 대제사한테 손을 흔들더니, 깡충깡충 뛰듯이 초휴를 따라갔다.
대제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기실 성녀가 이렇게 외부인을 따라가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성녀가 어렸을 때부터 쭉 지켜봐 왔고, 그녀와 같은 묘강 출신이기도 한지라 성녀를 딸처럼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성녀가 어떤 사람이던가. 지금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늙은이인 자신보다도 짧을 터였다. 그 생각만 하면 대제사는 마음이 아팠다. 그러니 하고 싶다는 일은 무엇이건 하게 놔두고 싶었다.
그리고 초휴가 행여나 불측한 마음을 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하지 않았다. 초휴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배월교라고 맹탕은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초휴가 정말 배월교에 악의를 품었다면 야소남이 천문에서 중상을 입었을 때 진작 손을 썼을 것이다.
* * *
배월교를 빠져나온 초휴는 성녀에게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모르면서 같이 가겠다고 한 거요?”
성녀는 상관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당신이 살려 준 목숨이잖아요. 설령 죽을 곳으로 데려간다 해도 상관없어요. 당신 덕에 한참을 더 살았으니, 밑져야 본전이죠.”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초 교주는 나를 해치지 않을 거예요. 그렇죠?”
“조금 위험한 일이긴 하지만 당신 능력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거요. 참, 그러고 보니 아직 당신 이름도 모르는군.”
사실 초휴만이 아니라 강호의 그 누구도 배월교 성녀의 이름을 모를 터였다.
강호에 발을 디딘 그 날부터 배월교 성녀가 곧 그녀의 상징이자 이름이고 모든 것이었다. 심지어 같은 배월교 제자나 동황태일 같은 사람들마저 그녀를 성녀라는 두 글자로 불렀다.
그래서 초휴의 그 물음에 성녀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잠시 굳어 있다가 말했다.
“내 이름은 용령아(龍靈兒)예요.”
그 말에 초휴도 흠칫했다. 배월교 성녀의 이름이 용령아라고?
초휴의 표정을 본 용령아는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스러워했다.
“왜요, 이름이 그렇게 이상해요? 용씨는 묘족에서 흔한 성이죠. 태어나면서부터 눈매가 영리하고 예쁘다고 붙은 이름인데, 뭐가 잘못됐어요?”
초휴는 헛기침을 했다.
“아무것도 아니오. 참, 장생고의 효과는 당신도 알 것 같은데······. 자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자기 힘으로 수련해도 천지통현에 오를 수 있었을 텐데, 왜 정혈과 수명을 바쳐 장생고를 키우려 했소?”
용령아는 잠시 멈칫했으나 담담히 말했다.
“세상에는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아주 많죠.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일. 그냥 그런 것 중 하나였을 뿐이에요. 나는 일곱 살에 배월교 제자가 되었어요. 배월교에 들어오기 전, 부모님과 가족들이 산적에게 죽었어요. 복수하고 싶었죠. 그러니 실력과 지위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묘강의 고술은 속성으로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죠. 내가 타고난 자질도 어린 나이에 배월교 전체를 압도할 만한 수준은 못 되니까요. 그 큰 배월교가 나처럼 갓 입문한 하급 제자를 위해 복수를 해 줄 리도 없고요. 그러니까 성녀가 되어 피로 장생고를 먹이는 건 퍽 좋은 선택이었죠. 다행히 나는 성공했어요. 배월교 성녀가 되었고, 실력은 부족해도 구대 신무제와 비견할 만한 지위에 올랐죠. 배월교 제자들에게 나를 위해 복수하라고 명령할 수 있게 된 거죠.”
“지금은 후회하오?”
용령아는 고개를 저었다.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때 나의 마음속은 원한만이 가득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복수하고 난 뒤, 어차피 장생고의 힘으로 단번에 천지통현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죽을힘을 다해 수련했죠. 무도에 집착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렸을 때처럼 무력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나의 운명을 스스로 주재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다만 운명을 선택할 기회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초휴는 좀 의외라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용령아는 아주 생각이 깊었다. 심지어 한참 윗배인 무사보다도 더 깊지 않은가.
사람의 심지와 실력, 나이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오래 살수록 과거로 퇴행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
그는 나직하게 말했다.
“당신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소. 배월교 초대 성녀가 얼마나 강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반보 무선 정도였을 거요. 진정한 무선에는 오르지 못했겠지. 그러니 당신이 무선에 오를 수만 있다면 법칙의 힘으로 육신을 단련하여 장생고의 표지도 완전히 지울 수 있소. 그러면 수명도 일부는 돌아올 거요.”
용령아가 까르르 웃었다.
“덕담 고마워요.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안 믿었겠지만, 초 교주가 하는 말이니 믿어야죠. 참, 그래서 지금 어디를 가는 건가요?”
배월교를 떠난 후 초휴는 줄곧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곤륜산이 아니라 서쪽 사막 방향이었다.
초휴는 담담히 말했다.
“검왕성으로. 오랜 벗을 만나러 가는 길이오.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가서 설명해 주리다.”
* * *
서극 사막의 검왕성 성머리에 방칠소가 앉아 있었다. 그는 검을 한 자루 끌어안고 검왕성의 큰 깃발에 기대어 포도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재미없어! 정말 염병하게 재미없네!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방칠소는 아주 초췌한 몰골이었다. 머리는 봉두난발에 눈 아래가 시커먼 것이 모진 학대라도 당한 모양새였다.
평소 그리 좋아하던, 서역 소국의 부족들이 바친 포도주조차 별맛이 없었다.
“방 형, 또 심 성주에게 벌을 받았나?”
그 목소리에 방칠소는 멍하니 굳었다. 그는 데구루루 굴러 일어나더니 성머리에 올라선 초휴와 용령아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초 형! 초 대인! 초 교주님! 나를 이 고해로부터 구원해 주러 오셨군그래! 얼른 날 데려가 주시게. 초 형이 나서만 주면 성주 앞에서 헛소리는 한마디도 안 하겠다고 맹세하지!”
방칠소는 몹시 감동한 표정이었다. 그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주절거린 뒤에야 초휴 곁에 있는 용령아를 발견했다.
방칠소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스스로는 아주 멋지다고 자부하는 웃음을 씩 지어 보였다.
“언젠가 뵈었던 소저 같군요. 나는 방칠소라 합니다. 소저도 내 이름은 들어보셨겠지요. 혹시······.”
순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령아의 새하얀 어깨에서 머리 셋 달린 뱀이 튀어나와, 혀를 날름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삼두탄금사(三頭呑金蛇)! 배월교 성녀였잖아!”
방칠소는 기겁하고 펄쩍 뛰더니 얼른 다른 편으로 도망갔다.
그는 용령아와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용령아는 늘 새하얀 옷에 얼굴에도 가리개를 드리우고 다녔다. 차림새가 완전히 다르니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초휴가 헛기침을 했다.
“방 형,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방칠소는 한숨을 쉬었다.
“말도 말게. 검왕성 성주 자리를 내게 넘긴다고 난리도 아니라니까.”
“그건 좋은 일 아닌가? 검왕성 성주 방칠소라, 검수 방칠소보다 훨씬 패기가 넘칠 것 같은데?”
그 말에 방칠소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일? 성주가 나더러 실력은 충분하지만 검왕성을 이어받기 전에 문파 장문으로서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지 뭔가. 그래서 그간 줄곧 성주를 따라다니며 장문 노릇을 어떻게 하는지 배워야 했단 말이네. 온갖 서역 소국과 부족 간의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강호 동향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종문 내부의 갖가지 골치 아픈 일 등등. 그걸 다 새겨야 했으니 머리가 다 터질 지경이라고!”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망할 놈아! 그런 건 장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란 말이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성주가 되겠단 거냐!
심천왕이 언성을 높이면서 아래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초휴를 향해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초 교주, 안녕하시오. 오시는 줄 몰라 맞이하지 못했으니 부디 양해해 주시구려.”
심천왕은 감히 초휴에게 털끝만큼이라도 불손히 굴 수 없었다. 아마 강호 전체에서 노천사와 야소남을 제외하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물론 육장류는 대등하게 굴어도 되겠지만, 정작 본인은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