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45)
1245화 함정에 빠지다
사공담은 자기 손으로 신기문을 일으켜 세운 사람이니 어느 정도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초휴도 그를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남역에서 나름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작은 역할에 불과했으나, 그렇게 작은 역할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남역 전체를 제 손바닥처럼 보는 게 가능했다.
자신이 보잘것없으니 그만큼 전심전력으로 강대한 고존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능천검존이나 허천애 같은 사람에 대해서도 초휴보다 훨씬 잘 알았다.
* * *
그때 허천애와 방백도는 자신들이 은거하던 남만 밀림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방백도가 탄식했다.
“허장과 진구룡이 그런 재앙을 당할 줄 알았으면 애초에 대라신궁에 들어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두 사람 다 대라신궁에서 명을 달리했으니, 적합한 전인을 또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허천애도 골치가 아파 이마를 주물렀다.
“자네가 모르는 일이니 나 또한 방법이 없군그래. 모든 게 죽어도 싼 대문파 탓일세. 대라천 무사의 구할을 그물로 훑듯 쓸어가니, 우리 몫으로 남는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가 아닌가.”
방백도가 아래턱을 쓰다듬었다.
“차라리 군소 세력이나 낭인 무사 중에서 적당한 자를 찾으면 어떨까? 혹시 그물에 걸리지 않은 고기가 있을지도 모르잖나.”
그러나 허천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확률이 너무 낮지. 군소 세력이건, 낭인 무사건 마찬가지야. 쓸 만한 자질을 드러내는 순간 차기 가주로 길러지거나 진작 대문파 제자로 영입되니까. 우리가 주워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질 않는단 말이지.”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더니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고존의 전인이 제자를 엄격하게 가려 받는 이유는 단순했다. 대문파처럼 많은 제자 가운데서 후계자를 고르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한 번의 기회밖에 없었다. 가진 힘과 자원을 모두 한 사람에게 쏟아부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다. 아직 노인은 아니라서 기운이야 좀 있다지만, 산지사방을 헤쳐 가면서 그럴 만한 사람을 찾는 게 쉽겠는가?
바로 그때 방백도가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허천애가 의아하여 물었다.
“왜 그러는가?”
“누군가 싸우고 있네. 멸문전이라도 벌어진 모양이군.”
허천애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 방향이면 봉황산일세. 전무신종에서 쫓겨난 제자가 악한들을 모아 산적 떼를 꾸리고 산채까지 만들었지. 기린도인가 하는 이름이었는데, 어쨌거나 오합지졸들이야. 좌우지간 전무신종도 어지간하군그래. 기린도는 인근 민가를 약탈하고 심지어 군소 종문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네.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여대서 원성이 자자하단 말이야. 그런데도 손 놓고 방관하고 있으니, 낯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일세.”
“전무신종은 남역 대문파가 된 후로 점점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고 있잖나. 전에는 그래도 명성을 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지. 가서 대체 누가 나선 건지 한 번 보세나.”
방백도와 허천애는 구경이나 하자는 심산으로 허공을 밟고 걸어 봉황산 상공에 도착했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들의 상상 밖이었다.
멸문지화는 맞았다. 그런데 그 멸문지화를 벌이는 게 두 명의 여인이 아닌가.
하나는 연약하고 고운 생김새였지만 손놀림이 생기발랄하면서도 독한 데가 있었다. 온갖 비술과 마공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와 상대가 방비할 틈을 주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였다. 실력은 조금 떨어져서 진화련신에 불과했지만 호쾌하고 멋스러운 자태에 전투력이 놀라웠다. 핏빛 장창을 아래위로 휘저을 때마다 눈앞의 무사들이 꿰뚫려 날아갔다.
장창을 쓰면서 천군만마와 같은 기세를 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창술의 정수를 깊이 깨달아야 가능한 것이다.
방백도가 말했다.
“저들을 좀 보게. 하나는 마도 일맥의 무공을 익힌 듯한데, 몸놀림이 민첩하고 경쾌한 것이 우리 고월 일맥의 정수에 가깝군. 다른 하나는 동급 무사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뛰어난 창술을 구사하고 있네. 게다가 내가 보기에는 도가 일맥의 연체공법도 수련한 것 같군그래. 진룡신장 일맥의 연체공법도 도가 일맥과 가깝지 않나?”
방백도의 말을 듣자 허천애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여인은 그야말로 그들의 전인이 되기에 딱 알맞지 않은가.
하나는 천지통현이고 하나는 진화련신이니, 이미 범상찮은 저력을 지닌 셈이기도 했다. 잘 가르치기만 하면 죽은 허장과 진구룡을 단시간 내에 따라잡을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방백도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무얼 하는 사람들인지는 알아봐야겠지. 제자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런 사람들이 나타난 것도 공교롭고 말이네.”
허천애는 오히려 눈을 빛냈다.
“공교롭다고? 너무 생각을 복잡하게 하는 것 아닌가? 마침 딱 알맞은 제자 감이 나타났는데 공교롭다며 꺼린대서야 말이 되나. 이건 기연이니 놓치면 후회할 걸세.”
방백도는 다시 권해 보려다가 기린산 저편에 서 있는 사공담을 발견했다.
“아니, 저건 신기문의 뚱보 사공담 아닌가? 여긴 무슨 일이지?”
사공담은 두루두루 사방팔방에 처신을 잘하고 다녔다. 방백도와 허천애는 남역 고존이었으니 당연히 교류가 있었다. 물론 사공담 쪽에서 들러붙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지만.
“남역에 관해서는 저 뚱보가 제일 정통하지. 가서 물어보세.”
사공담은 한껏 태연을 가장하며 서 있었다. 그는 일부러 거기 서서 방백도와 허천애의 눈에 띄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초휴가 시킨 일을 해내기 위해 사공담은 오랫동안 궁리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밀고 당기는 것이었다.
저쪽에서 제자로 거두겠다고 두 팔 걷고 나서게 만들어야 했다. 이쪽에서 제자로 들어가고 싶다는 식이 되면 곤란했다.
그러려면 낙비홍과 용령아 외에 누군가 상황을 설명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 역할에는 사공담이 제일 알맞았다.
아니나 다를까, 방백도와 허천애는 그를 알아보더니 다가왔다.
사공담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갔다.
“고월존자 대인, 진룡신장 대인, 안녕하십니까.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허천애는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고 곧장 산 위를 가리켰다.
“저기 있는 두 여인에 대해 아시는가? 출신이 어떻게 되오?”
사공담은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당연히 알지요. 저 둘에게 기린도를 멸절하기 위한 정보를 판 사람이 저니까요. 사실은 가련한 처지의 여인들입니다. 두 사람은 목마산장의 이십칠 가주 낙비화와 삼십이 가주 용만리의 여식입니다. 목마산장이 기린도에 멸문당한 후 강호를 떠돌아다니다가, 전승이 끊긴 고존의 유적을 우연히 발견해 실력이 크게 늘었죠. 그래서 복수를 위해 돌아왔고, 저한테서 정보를 사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두 소저는 우연히 얻은 전승을 제외하면 재산을 가진 게 전혀 없었습니다. 당연히 정보를 살 돈이 부족했지요. 그래도 제가 또 마음이 약하지 않습니까. 온갖 고생을 겪으며 살아왔다는 이야기에 일단 정보를 주기로 했죠. 보수는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해도 되니 말입니다.”
사공담은 억지로 긴장을 감추고 한참을 구구절절 떠들었다.
허천애와 방백도는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상고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온 고존은 그리 많지 않다. 고존들 중에는 이미 전승이 끊기고 전인을 잃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두 소저가 그런 고존이 남긴 유적을 발견했다는 건 별로 놀랄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공담의 이야기는 근거도 있고 이치에도 맞았다. 그들은 남역 온갖 문파에 들러붙기 바쁜, 그것도 간덩이가 작기로 유명한 사공담 따위가 감히 자기들을 속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용령아와 낙비홍이 살기등등한 태세로 내려오더니 사공담에게 비전함을 하나 건넸다.
“이건 당신 보수요.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겠지.”
사공담은 활짝 웃었다.
“두 소저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무슨 정보나 단약, 병기, 진법 재료 같은 것이 필요하면 언제든 신기문으로 찾아오시구려.”
그때 허천애가 말했다.
“너희 둘 다 제법 훌륭한 자질을 타고났더구나. 그러나 애석하게도 제대로 된 사부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는듯하군. 그렇게 마구잡이로 수련을 계속하면 거기서 더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하늘과 사람의 간극을 깨부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우리 둘은 인재를 아끼는 사람이니 너희를 제자로 받아줄 수 있다. 너희가 우리를 스승으로 모신다면 우리 일맥의 모든 수련 자원과 무공은 모두 너희 것이 된다. 그리고 너희의 자질이라면 이십년 안에 반드시 하늘과의 간극을 뛰어넘게 해 줄 수 있다.”
청산유수같은 말에 낙비홍이 입을 삐죽였다.
“당신이 누군데요? 제자가 되라고 하면 넙죽 되어야 하나요? 우리가 사부를 찾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로 보이나요?”
용령아가 만류하듯 그녀를 잡아당기며 소심한 어조로 말했다.
“두 분 선배님, 너그러이 보아 주십시오. 저희 자매는 강호를 떠돌며 서로만을 의지하고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스승을 모실 생각 같은 건 해본 일도 없습니다.”
그때 사공담이 참으로 딱하다는 투로 떠들었다.
“아니! 여기 두 분이 누군지 모르십니까! 고존이십니다! 이분은 명성이 쟁쟁한 진룡신장 허천애, 저분은 고월존자 방백도라는 말입니다. 강호에 두 분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설 지경이라니까요. 하지만 지금껏 이분들의 눈에 찬 사람들이 없었죠. 그러니 이분들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은 두 소저의 복입니다!”
사공담이 한껏 치켜주자 허천애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고존이란 신분은 강호에서 꽤 고고한 인상으로 통했다.
진정한 대문파 수장에 비할 바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값어치가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특히 낭인 무사 상대로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용령아는 여전히 조심스레 경계하는 태도였다.
“두 분 선배님의 호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사부를 모실 생각이 없습니다.”
사실 용령아와 낙비홍이 기뻐 날뛰며 스승으로 모시겠노라고 말했다면 좀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되레 둘이 거절을 하자, 허천애와 방백도는 그들을 제자로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방백도가 헛기침을 했다.
“두 분 소저의 심정은 이해하네. 어린 나이에 힘든 일을 겪고 강호를 오래 떠돌았으니, 누구에게나 경계심을 품고 조심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우리는 달라. 우리의 신분을 들었잖은가? 이런 말이 듣기에 불편할지 몰라도 우리는 둘 다 무선일세. 만일 우리가 불측한 마음이라도 품었다면, 두 소저는 조금도 반항할 엄두를 못 냈을 거야. 하지만 두 소저가 우리를 스승으로 모시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누군가 흑심을 품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을 걸세. 적어도 어렸을 적에 겪은 그런 일은 앞으로는 두 번 다시 겪지 않게 되겠지.”
그 말에 용령아와 낙비홍도 마음이 흔들리는 표정을 지었다. 사공담도 옆에서 열심히 양념을 쳐 가며 부추겼다. 두 사람은 결국 시선을 교환하더니 방백도와 허천애에게 절을 올렸다.
“사부님께 인사드립니다!”
방백도와 허천애는 마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고개를 숙인 용령아와 낙비홍의 눈에 알 수 없는 웃음이 서린 것은 새까맣게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