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46)
1246화 방칠소, 평소 하던 대로 하다
남역, 천하검종, 통천검봉.
방칠소가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 아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통천검봉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몹시 힘겨워하면서도 그의 입은 연신 쉴 줄을 몰랐다.
“여자만 밝히고 친구는 위할 줄도 모르는 고약한 인간 같으니! 그런 심보로는 평생 마누라 구경하기 어려운 줄 알아라!”
방칠소가 욕하는 고약한 인간이란 물론 초휴였다.
지금 방칠소는 얼굴에 원망이 덕지덕지 붙은 꼴이 척 봐도 여간 심사가 뒤틀린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홀대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낙비홍과 용령아 쪽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는 그도 알고 있었다. 초휴가 사공담에게 부탁해 신분과 내력, 그 모든 걸 세심하게 마련해준 건 물론, 심지어 사공담이 그녀들을 도와주게 시켰다.
그런데 자신은 뭔가? 초휴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두어 마디 던진 게 전부였다.
“일부러 힘줄 게 뭐 있나. 눈치껏 자네가 평소 하던 대로만 하게.”
천하검종은 제자를 거두는 데 있어 꽤 엄하고 깐깐했다. 낙비홍과 용령아처럼 초휴가 사공담에게 부탁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사공담의 알량한 실력으로는 천하검종에 접근부터가 불가능한 것이다.
해서 초휴는 방칠소에게 그냥 정면 돌파를 하라고 했다.
즉, 몸소 통천검봉으로 뛰어들어서 실력으로 천하검종 십삼명검봉 봉주 자리를 하나 꿰차라는 것이었다.
천하검종에서 ‘천하’란, 천하의 모든 검도를 포괄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천하검종 십삼명검봉 중 창생검봉(蒼生劍峯)은 천하 검사들을 위해 마련된 조직이었다.
창생검봉의 문호는 십년에 딱 한 번 개방된다. 이때 낭인 무사, 군소 문파 출신, 군소 세가 출신 등을 막론하고 시험에 통과만 하면 창생검봉에 가입하여 천하검종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가 마침 창생검봉이 개방되는 해였다. 그래서 초휴는 방칠소에게 구질구질하게 꼼수를 피느니, 그냥 정정당당히 부딪혀보게 한 것이다.
초휴의 말을 빌리자면.
‘하계에서 검수(劍首)였던 사람이 대라천이라고 해서 검수가 아닐 리가 있겠느냐, 어중이떠중이 낭인 무사들이 어찌 자네같이 출중한 인물과 비교가 되겠냐 하면서, 창생검봉의 주인은 자네가 떼어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으니, 잔머리 굴릴 거 없이 실력으로 승부를 보라’는 것이었다.
당시는 초휴의 말에 별 반감을 못 느꼈다. 오히려 잔뜩 추어주는 바람에 신이 나서 들뜨기까지 했다. 해서 사공담이 만들어준 낭인 신분 하나 받아다가 유람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천하검종에 온 것이다.
그러나 막상 여기에 오자 자신이 단단히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일단 창생검봉에 도달하려면 최고봉인 통천검봉까지 올라야 한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여기서는 그 어떤 내력과 진기의 사용도 허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육신의 힘과 의지력으로 한 발 한 발 기어올라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자체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 아닌가. 주위에도 간간이 봉우리를 오르는 무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기초 실력이 약하거나 의지가 박약한 자들은 줄줄이 중도탈락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정상에 당도하고서야 천하검종 고위 인물들을 볼 수 있었다.
‘검존’ 나산, ‘청려검존’ 모백상, ‘구유검존’ 역귀사, 심지어 ‘능천검존’ 성구연까지도 높은 누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구연은 천하검종과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 오늘은 천하검종에 있어 뜻깊은 날이니만큼 함께 참관하는 한편, 천하검종이 제대로 된 제자를 뽑을 수 있도록 같이 봐주려는 뜻도 있었다.
나산이 모여드는 무사들을 향해 근엄하게 말했다.
“천하의 모든 검도를 포용하는 천하검종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감히 완벽을 자신할 순 없다. 검도는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선대의 검이 반드시 더 강하다는 법이 없듯이, 후대의 검이 선대보다 더 약하라는 법도 없다. 오늘 창생검봉을 개방하여 봉주 일인과 그 외 백팔 명을 선발코자 하니, 여러분이 천지간의 온갖 경이로운 검도를 뽐내서 이 늙은이의 안목을 넓혀주기 바란다! 검 연무대를 펼쳐라!”
나산의 말이 떨어지자 통천검봉 정상에 있는 광장 바닥에서 부문(符文)이 새겨진 장검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하며 검기가 하늘 끝까지 솟구쳤다.
이것이 바로 만여 자루에 달하는 장검들로 이루어진 천하검종의 검 연무대였다.
각 장검의 옛 주인은 하나같이 천하검종 십삼명검봉의 유명 검사들이었다.
현장에 있던 지원자들은 일제히 그 장검들 위에 뛰어올라 혼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창생검봉 선발전이라는 것은 가장 뛰어난 한 명을 선발하기 위한 건 아니라, 천하검종이 원하는 조건에 맞는 검사를 뽑기 위해 마련된 자리인 것이다.
그러니 실력은 정상급은 아닐지라도 천하검종 측이 높이 평가할 만한 검도와 천부적 자질을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방칠소도 수중의 검 ‘경예’를 움켜쥐고 유유히 연무대로 올랐다.
다른 수련자들은 매우 긴장한 표정이었으나, 유독 방칠소 만은 구경이라도 온 양 여유 만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되레 사방으로부터 심한 견제를 불러일으켰다. 지원자 여러 명이 그를 점찍고 일제히 맹공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방칠소가 혀를 끌끌 찼다.
“싸움터도 아니고 기껏 연무대에서 뭘 그렇게 기를 쓰고 아등바등 하나? 무도를 선보이라고 했지, 생사결을 하라는 소리도 아닌데 말이야. 설마 검도를 사람이나 잡아 죽이는 포악한 도로 생각들 하는 건가? 쯧쯧, 천박하기 짝이 없군그래.”
방칠소가 연신 구시렁대자 다들 파리라도 씹어 먹은 표정이 되어 노호성을 내질렀다.
“입 닥쳐라!”
그들의 공세는 한층 더 격렬해졌다. 이 말본새 더러운 놈부터 탈락시켜 버리자고 다들 의기투합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중인들의 눈앞에 극강의 검광 한 줄기가 번쩍하더니 시야를 가렸다.
그렇게까지 화려한 검광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러 줄기의 검기 사이로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라도 한 양 자유자재로 노닐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다른 지원자들의 수중에서 발한 검세가 제어를 잃고 속속 그 검광에 휩쓸려갔다. 마치 자발적으로 그 검광에 가서 부딪히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검세가 방칠소의 검광에 가서 충돌하자 격렬한 검기의 파동이 일었다. 그리고 우연인 듯 아닌 듯, 이를 신호탄으로 주위 다른 무사들의 검세도 잇따라 폭발을 일으키며 파훼 되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지원자들이 사전에 합의라도 한 듯 줄줄이 폭발하더니, 갈수록 검광의 위력이 배가되었다.
결국 방칠소를 공격하던 무리는 그 충격으로 죄다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워낙 그 여파가 컸던지라 주위의 다른 지원자들도 놀라서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놀라움을 표하기도 전에 상석에 앉아 있던 검존 나산이 돌연 소리쳤다.
“멈추어라! 더는 겨룰 필요도 없다! 자네가 바로 이번 창생검봉 봉주네!”
다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그 끝에 방칠소가 있었다!
순간 이번 선발전에 참가했던 지원자들 모두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저 검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 창생검봉 봉주 자리를 꿰찼다고?
애들 장난도 아니고, 사람을 이렇게 기만하고 희롱해도 되는 건가?
다들 불복하는 눈치가 역력했으나, 나산은 본체만체하며 한마디만을 토했다.
“인과 검도로다!”
천하검종은 이미 세상 검도의 거의 전부를 섭렵했으니 당연히 인과 검도에 대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견식이 넓은 그들일지라도 저렇게 젊은 나이에 인과 검도를 저런 경지까지 깨우친 검사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저런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이 방칠소의 검도에는 그만의 독보적인 무언가가 더 있는 듯했으니, 지켜보던 성구연마저 탐을 냈다.
“종주, 저 청년을 나한테 양보해주면 안 되겠소? 천하검종이 우리 능천검종에 약속만 해놓고 못 지킨 바도 있지 않소. 그 바람에 나도 제자를 잃었고 말이오.”
성구연의 간청에 나산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저자는 당신이 가르칠 수 없을 거요. 저자의 검도는 이미 완벽하게 틀이 갖춰져 있어서, 무선에 오르기만 하면 당신네 능총검종 일맥의 검도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을 거요. 한마디로 당신이 저자를 거두면 피차 득보다 실이 더 클 거라는 거지.”
성구연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나산이 방칠소를 불러들여 물었다.
“젊은 친구의 이름과 출신이 어찌 되는가?”
방칠소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답했다.
“남역 검도계의 낭인, 방칠소라고 합니다. 집안은 진작 망해 일가친척 하나 남지 않았고, 사부님도 돌아가셨습니다. 기루 한번 갈 형편도 못 돼서 천하검종에 운이나 시험해보자는 심정으로 왔습지요. 천하검종과 같은 대형 종문 정도면 기루에서 화대를 안 내도 될 정도로 대접은 받겠지요?”
초휴는 그에게 굳이 연기할 생각은 말라고 했다. 그저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면 충분히 통할 거라면서 말이다.
비록 천하검종과 적대하는 입장이라지만, 검도에 대한 그들의 순수한 열정은 인정해주지 않을 방법이 없지 않은가.
방칠소가 자신의 검도 실력을 발휘하면 천하검종은 그를 절대 마다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그의 생뚱맞은 질문에 모든 천하검종 무사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나산도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으며, 한옆의 성구연은 아예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진심으로 그를 제자로 거둘 작정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그를 목 졸라 죽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산이 땅이 꺼지도록 장탄식을 내뱉더니 근엄히 물었다.
“자네의 실력 정도면 벌써 대라천에 본인의 종문을 세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검도에 대한 이해에 있어 체계가 잡혔을 테니 한 가지만 물어보지. 검도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 말에 방칠소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검도가 검도지, 꼭 거창한 무엇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람들은 간단한 걸 왜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산이 멈칫하더니 돌연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자네 말이 옳구먼그래. 검도가 검도지 꼭 뭐일 필요가 있겠나? 정말 쓸 만한 친구로군. 오늘부로 자네를 천하검종 창생검봉의 봉주로 임명하네!”
하지만 그 말에도 방칠소는 딱히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이미 검왕성 성주가 될 몸인 그였다. 천하검종이 아무리 막강한 세력이라도 그렇지, 일개 봉주 자리에 감지덕지할 만큼 대단한 세력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해서 방칠소는 정작 자신이 가장 알고 싶은 것을 재차 물었다.
“이미 드린 질문인데요. 그러니까 봉주가 되면 기루에도 마음대로 갈 수······.”
“안 된다!”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백상이 단호히 끊어버렸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정식으로 천하검종 사람이 되기도 전에 벌써 종문 체면을 깎아 먹을 궁리부터 하는 건가? 천하검종의 규율은 지엄하기 그지없다. 만에 하나, 기루에서 돈도 안 내고 놀았다가는 천하검종의 일흔두 가지 검도 형벌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
그러자 방칠소가 또 한 번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대꾸했다.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초면에 그렇게까지 무섭게 을러댈 건 또 뭡니까? 기루에서 체면도 세워주지 않는 종문이라니,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은 별로 없나 보네요.”
이 말에 천하검종 무사들은 일제히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명색이 대라천 검도계의 최고봉을 자처하는 천하검종의 명성을 한낱 기루에서 공짜로 놀고먹는 데 써먹으려 들다니?
나산이 친히 임명한 창생검봉 봉주만 아니었어도 정신이 번쩍 나게 저놈을 손봐주었을 텐데!
나산이 머리를 긁적이며 모백상에게 그를 떠넘겼다.
“자네가 데려가서 천하검종의 규율에 대해 잘 좀 가르쳐야 할 것 같네.”
모백상에게 뒷덜미를 잡힌 방칠소가 질질 끌려서 사라지자 성구연이 나산에게 꾸벅 인사를 올렸다.
“종주, 아까 내 부탁을 거절해주어 감사하오.”
그 말에 나산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것도 다 운명인 게지.”
* * *
그로부터 수일 후, 남만 창오군에서 초휴 측도 소식을 받았다. 낙비홍과 용령아가 성공리에 두 고존의 제자로 들어간 거야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일단 두 사람 다 실력이면 실력, 능력이면 능력,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데다 사공담의 지원까지 받았으니 일은 사전에 성사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방칠소가 연무대에서 벌인 짓에 대해서는 천하의 초휴도 식은땀을 닦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될 거라고 했던 말을 그가 잘못 이해했던 모양이구나 싶었다.
그저 검도 천재, 검수 방칠소가 가진 본연의 실력만 보여주라고 한 건데,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다니!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천하검종 명패를 들고 가면 공짜로 기루에서 놀 수 있냐는 질문을, 그것도 시험장에서 나산에게 한단 말인가?
워낙 돋보이는 천재적인 검도 자질만 아니었으면 천하검종의 그 콧대 높은 양반들이 그의 목을 날려버렸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