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48)
1248화 의혹 제기
무선이 되기 전의 초휴는 무슨 일을 도모하건 간에 일단 고전 전인의 명패부터 내밀고 봐야 했다. 하지만 무선이 된 지금이야 본인 자체가 고존인지라 행동하는데 제약이 따르지 않았다.
초휴는 매경령 등에게 대라천 쪽 일을 맡긴 후 동해 신선도로 향했다.
고존대회는 고존 및 고존의 전인만 참석할 수 있었다. 어차피 고존이 아닌 사람을 대동하는 건 곤란하니 혼자 갈 수밖에 없었다.
대라천 해외 지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계의 해외에는 수많은 유력 세력들이 있지만, 대라천 동해에는 변변히 내세울 만한 종문이라곤 없었고, 눈에 띄지도 않는 군소 종문들 및 고존 몇 명만이 섬을 점거해서 고된 수련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대라천은 하계보다 훨씬 땅덩어리가 광활했다. 아직 미개척 상태로 남아있는 지역이 허다하건만, 굳이 힘들게 해외까지 나가 생고생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바다 쪽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신선도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해안가에서 벗어나 줄곧 동쪽으로만 가만 해무가 유독 짙게 낀 곳이 나오는데 그곳이 신선도였다.
초휴는 파도를 밟으며 내리 사흘을 걸은 끝에 농무가 자욱한 곳에 이르렀다. 사방팔방 끝이 날 것 같지도 않은 안개 사이로 섬 하나가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섬 위에는 고루, 전각, 누대, 정자 등 셀 수 없이 많은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건물들 사이로 유유히 안개마저 감돌아 선경을 방불케 하니, 세인들이 왜 이곳을 신선도라 부르는지 알만했다.
초휴가 섬에 상륙할 무렵, 이미 다른 고존들도 수두룩하게 도착해 있었다. 그중 도포 차림의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 도사가 다가와 초휴에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생은 원신존의 제자, 임소요(林逍遙)라 합니다. 초대장을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임소요라는 이 도사는 꽤 젊은 모습이었다. 수련한 공법 때문인지는 몰라도 얼핏 약관의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직 진화련신에 불과했지만, 내뿜는 기운만은 천지통현 못지않았다.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초휴가 초대장을 건네자 그는 겉봉의 이름을 보더니 눈에 놀라는 기색을 띠며 반색했다.
“초휴 선배님이셨군요.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이 말에 주위에 있던 다른 고존들도 귀가 솔깃해서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초휴를 쳐다보았다.
사실 은거 중인 고존들은 강호에 나도는 잡설들을 그리 즐겨 듣지 않았다. 어차피 들어봤자 이해도 잘 못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초휴의 경우는 좀 특별했다. 근자에 워낙 강호를 들었다 놨다 했던 인물이 아닌가.
대라신궁 쟁탈전에서만도 고존 전인을 연달아 세 명을 죽인 것도 모자라, 천하검종을 모욕하고 범교 비슈누전 전주를 죽이기까지 했다. 대라신궁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대체 얼마나 많은 강호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가.
한마디로 기고만장이라는 게 어떤 건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초휴에게 당한 적 있는 일맥을 제외한 고존들이야 그를 잘 모르니 적대시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호의적인 것도 아닌, 경계하는 기색이 다분했다.
이윽고 그들도 초휴와 함께 신선도 대전으로 들어섰다. 이미 대전에는 수많은 고존들이 와 있었다. 대부분 자신의 전인을 대동했고, 모두 합치니 서른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의 면면히 제대로 살피기도 전에 갑자기 노기 충만한 음성이 들려왔다.
“초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낯짝을 들이민 게냐?”
초휴가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허천애였다. 방백도도 그 옆에서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초휴의 시선은 그들이 아닌 그 뒤의 낙비홍과 용령아를 향했다.
종전과 비교해 그녀들의 기운이 훨씬 더 장대해진 걸 보니, 아무래도 고존의 전인으로서 교육을 제대로 받는 중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녀들은 이렇게 빨리 초휴와 재회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지라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용령아는 재빨리 표정에 적개심을 잔뜩 돋우며 그를 노려보았다. 낙비홍은 그렇게까지 신속히 표정 관리에 들어가진 못하고 급한 대로 정색해 보이기만 했다.
초휴가 담담히 물었다.
“나도 엄연히 초대장을 받고 온 몸인데? 내가 못 올 곳에 온 것처럼 말하는군그래.”
허천애가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 너의 사부는 지금 어디에 있지? 강호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내내 고존 전인임을 자처해왔으나, 정작 우리 중 그 누구도 네가 어느 일맥의 전인인지 모른다. 슬며시 뒤에서 꼼수나 피우는 작태가 불순하고 수상쩍기 그지없단 말이다! 지금도 그렇지 않으냐. 고존대회에조차 너 혼자 나타났을 뿐, 정작 사부는 그림자도 안 비치니 말이다. 양심에 꿀리는 게 없다면야 무엇 때문에 자신의 신분을 속인단 말인가!”
일전에 모백상과 헤어질 때, 그가 했던 말이 허천애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들이 줄곧 간과해왔던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초휴의 정체였다.
그래서 허천애 등은 인맥을 동원해 두루두루 자료를 찾아보았었다. 하지만 그 많은 자료 가운데 초휴가 어느 일맥의 전인인지를 시사하는 건 전혀 없었다.
물론 상고시대 고존이라고 해서 죄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은거 수련자들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초휴는 그 괴이한 행실부터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고존 전인다운 구석이 전혀 없지 않은가.
그들 사이에 언쟁이 오가자 주위의 다른 고존들도 그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고존들 간에 교류가 빈번하진 않아도 그들 역시 강호에 몸을 두었으니 싸움을 완벽하게 피해갈 순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그들 간에도 종종 분쟁이 일곤 했다. 하지만 초휴가 그랬듯이 남의 제자를 덜컥 죽여 그 일맥이 끝장나게 만들지도 모를 일을 만들어서, 불구대천의 원한을 맺는 경우는 드물었다.
허천애의 공격적인 발언에 초휴도 살벌하게 응수했다.
“같잖은 소릴 잘도 주절대는군. 당신이 대체 뭐라고 내가 누군지를 미주알고주알 다 밝혀야 한다는 말인가? 허천애, 잊지 말아라. 나는 이제 무선 삼중천으로, 이미 정식으로 고존이 되었고 더는 전인이 아니란 말이다. 가사께서 일찌감치 고존 자리를 물려주신 뒤로 나의 일맥은 내가 스스로가 관장하고 있다. 뭐가 문제라는 거냐? 물론 제자가 그 꼴이 되었으니 화도 나겠지. 하지만 지금 그 행태는 도저히 가만히 봐 줄 수가 없군. 사실 대라신궁에서 그놈이 나를 몇 번이나 건드렸어도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 주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천지 분간도 못 하는 놈인걸 내 어찌 알았겠는가? 번번이 봐줘도 정신을 못 차렸으니 죽어도 싸지! 대라신궁에서는 죽여도 죄를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이니, 제자 놈이 멍청한 것도 다 이렇게 멍청한 사부를 둔 때문이었구나 싶군그래. 무슨 진룡신장인지 개나발인지 그놈의 일맥에는 패배에 승복 못 하고 구질구질하게 치근덕대는 것들만 죄다 모여 있나? 그리도 죽는 게 두려우면 강호에는 왜 나왔으며, 대라신궁에는 뭐하러 들어갔단 말인가? 그저 깊은 숲속에 틀어박혀 있었으면 안전하게 천수를 누렸을 게 아닌가 말이다!”
초휴의 말에는 구구절절 조소와 비아냥이 가득했다. 남들 앞에서 허천애를 완전히 깔아뭉개기로 작심한 듯했다.
가뜩이나 성질이 불같은 허천애가 이런 모욕을 어찌 참겠는가. 폭주한 그는 여기가 어딘지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고막도 찢을 것 같은 용의 포효성을 터뜨리며 일권을 내질렀다. 이에 주위 공간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그 극강의 힘에 법칙마저 어그러지고 파훼 되어 갔다.
하지만 초휴는 비웃기라도 하듯 냉소를 한번 날리더니, 성마불멸신을 시전하며 역시 일권을 내질러 대응했다.
양측의 주먹이 정통으로 격돌하자 거대한 파동이 천지사방을 뒤흔들었다. 허천애는 무선 사중천으로, 경지로만 보자면 초휴보다 한 수 위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단순히 힘으로만 승부를 내는 싸움이라면 초휴가 꿀릴 게 없었다.
그는 진화연신을 기반으로 하여 성마불멸신을 대성했으니, 육신의 힘에 있어서만큼은 진정한 최강자라고 자부할 만했다.
초휴의 몸 뒤에서 눈을 찌르는 금빛 불광과 지독히도 짙은 칠흑빛 마기가 융합되더니 머리 세 개에 팔이 여섯 개 달린 마불 법상으로 화했다. 불문 특유의 존엄함에다 흉포한 마도의 힘까지 작열하는 법상이었다.
그 기이한 팔 여섯 개가 허천애에게 덮쳐오자 그의 온몸에서도 용의 노호성과 함께 신룡이 꼬리를 휘저어댔다. 어찌나 위력적인지, 그 꼬리에 한 번 맞으면 태산이 두 쪽 날 듯했다.
하지만 마불법상의 일격에 신룡의 꼬리는 여지없이 격멸되고 말았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팔 여섯 개가 잇따라 일권을 내지르자, 그 가공할 위세에 허천애는 연신 진땀을 흘렸다.
그제야 지난날 음타라가 느꼈을 절망감을 다소 알 듯했다.
당시 그가 초휴한테 맥도 못 추는 걸 보던 허천애는, 그 대단하신 시바전 부전주가 알고 보니 허명뿐인 빛 좋은 개살구였구나 하고 내심 비웃지 않았던가.
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 처지가 되자 초휴가 가하는 공세의 실체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숨도 제대로 못 쉬게 만드는 그 강대한 압박감이란!
법상의 여섯 팔이 잇따라 일권을 내지르는 바람에 허천애의 용신은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한옆에서 지켜보던 방백도가 상황이 여의치 않은 걸 느끼고 즉시 수인을 결했다. 순백의 월망이 대전 한가운데를 비추더니 주위 공간을 가르며 초휴를 덮쳐갔다.
고월존자 일맥의 비술은 과연 신묘했다. 그 비술에 부림을 받는 것처럼 공간의 힘이 초휴의 몸을 덮치며 찢어발기려 들었다.
차원이 다른 성마불멸신의 막강함이 아니었다면 그 힘으로 초휴의 전신이 갈가리 찢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공세에 대처하듯 초휴의 법상이 가진 팔 여섯 개 가운데, 마도의 힘을 품은 팔 두 개가 인법을 결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방백도의 발치에 마영이 한줄기 드리워지는가 싶더니 그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닌가. 그리고 끊임없이 그의 힘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조화천마가 세상천지의 어떤 힘도 녹여버릴 수 있는 본원급의 마공임이 다시 한번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극락마궁에서 이 마공의 전승이 끊긴 뒤로 대라천 무사들은 오랫동안 조화마도의 위력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방백도도 이 괴이한 힘을 어찌 상대할지 몰라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일신의 월망을 증폭시킴으로써 자신의 공간을 지탱할 수 있도록 법칙의 힘에 조작을 가하는 게 전부였다. 이렇게 조화천마의 힘이 더는 자신의 힘을 침식하지 못하게 막아내니, 결국 양측의 힘은 교착국면에 접어들었다.
사중천 무선 두 명과 삼중천 무선 한 명의 대결임에도 팽팽한 접전 양상이 지속되었다. 급기야 이 두 명이 초휴에게 제압당하려는 기미마저 보이자, 초휴의 출수를 처음 접한 주변의 무사들은 경이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저렇듯 가공할 전투력을 그들이 지금까지 보았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어디선가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음성이 들려왔다.
“다들 멈추게. 백년 가까이 못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데 싸움박질부터 해대다니,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명색이 대라천 굴지의 정상급 무선 강자들이, 정작 도량은 밴댕이 소갈딱지만도 못하구나.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 목소리에 깃든 신묘한 운율이 어느덧 천지간 법칙 속에 스며들어서 넓게 퍼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운율이 지나는 족족 성마불멸신이건 조화마도이건 간에 본원 상태의 마기와 불광으로 회귀하여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
그건 허천애와 방백도 쪽도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의 힘도 속속 태초의 형태로 귀원 되니, 세 사람은 공세를 거두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노인 하나가 천체와 구름 문양 도포를 입은 청년과 함께 대전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