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56)
1256화 기생오라비의 실력
노만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일족부터가 역인들과 싸우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데, 내가 적개심을 가져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간 우리 일족은 역인들이 우리의 땅을 빼앗고 우리 동족을 마구잡이로 죽여 온 것에 대해 원한이 컸네. 하지만 영보관에 머무는 동안 깨달은 바가 있었지. 실은 역인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우리 일족도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네. 만 년 전 우리 일족이 어떤 꼴로 살았었는지 자네는 상상도 못 할 게야. 그때 우리는 너무 무지몽매했고 흉수 및 천지와 싸우는 데만 골몰해 있었지. 한마디로 평생 번식과 살생 외에는 모르고 살았던 게야. 흉수를 죽이고, 부락 간에 죽이고. 심지어 재미로 죽이기까지 했지.”
“그러는 과정에서 강자와 약자가 가려지며 힘의 논리가 모든 걸 지배하게 되었네. 급기야 조상과 신령께 제사를 지낼 때마다 산 채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야만적인 짓도 서슴지 않았으니까. 이 얼마나 잔인무도한 짓인가! 당시 역인들이 만족을 짐승 취급했던 것도 이상하지 않다 싶으이. 그로부터 만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일족은 당시와 천양지차의 발전을 이루었네. 이제 우리는 힘을 추구할 뿐, 적어도 함부로 살생을 저지르지는 않게 되었으니까. 또한, 같은 종족이니만큼, 다른 부락끼리도 서로 도와야 한다는 이치를 알게 되었네. 한마디로 역인의 출현은 겁난인 동시에 천도(天道)의 순환인 셈이지. 왕년에 우리 일족이 우매함으로 인해 저질렀던 모든 죄악을 천지가 징벌하는 거라고나 할까. 그러니 이 모든 게 우리 스스로가 짊어져야 할 인과이고 숙명인 셈이지.”
노만왕의 사고방식은 역인들과 상당히 유사해서 혈통만 제외하면 역인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였다. 다만 그가 이것저것 언급한 내용이 특별히 초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만족도 아니고 대라천 출신도 아닌, 철저한 제삼자였으니까. 그래도 노만왕 앞이니 진지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배님, 염려 마십시오. 내가 서역에서 돌아오는 대로 노산부로 사람을 보내서 거래를 진행할 것입니다.”
노만왕이 흡족해하며 답했다.
“그럼 자네를 믿고 그리하도록 하지. 자네들이 올 거라는 걸 알고 노산부 인근의 다른 부족 족장들과 제사장들도 여기 와 있다네. 자네가 실력으로 그들을 승복시킨다면 십만대산 구역에서는 아무도 자네가 가는 길을 막지 못할 걸세. 사실 만족을 굴복시키는 일처럼 간단한 것도 없지. 그들은 생각이 단순해서 무조건 강자를 숭배하니까.”
그러나 노만왕이 한숨을 쉬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속이 이렇게나 빤히 들여다보이는 자들이니 말이지······. 차라리 그 속이 복잡해서 종잡기 어려우면 좋았을 것을.”
말과 함께 그는 손짓으로 각 대부락의 수령들을 모두 성채 중앙에 모이게 했다. 산부 성채의 중앙에는 전형적인 도가의 대진이 구축되어 있었다.
노만왕의 내력을 몰랐으면 이상하게 보였겠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그는 영보관에서 오랜 세월 머문 몸이 아닌가.
영보관이 사람 숫자는 적을지 몰라도 도문 지파 중 보기 드문 대파인 것은 분명했다.
더없이 심후한 전승이 있는 그곳에서 노만왕이 정통 도문 대진을 습득한 거야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노만왕이 높은 누대에 오르자 다른 만족 수령과 제사장들은 일제히 오른 주먹으로 가슴팍을 치며 한쪽 무릎을 꿇으며 절을 올렸다. 그는 유일하게 그들을 심신 양면으로 굴복시킨 절대 강자이기에 진심으로 존경과 경외의 마음을 표하는 것이다.
노만왕은 그들을 내려다보며 만족어로 간단히 몇 마디를 건넸다.
초휴가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대략적인 의미는 짐작이 갔다. 저들에게 그리 복잡한 내용까지 얘기할 리는 없을 테니까.
노만왕이 말을 마치자 초휴를 바라보는 저들의 눈빛에는 싸우고 싶어 안달 난 기색이 가득했다. 만족에게 있어 전투를 치르는 건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싸움을 놀이처럼 여겼고, 전투를 영광으로 알았다. 평소에는 어쩔 수 없이 자기들끼리 싸워댔지만, 간만에 명분도 뚜렷하게 외족과 싸울 기회가 생기지 않았는가. 이기면 명예와 영광을 누리게 될 기회를 그들이 왜 마다하겠는가.
바로 이때 노만왕 곁에 있던 용산이 돌연 소리를 질렀다.
“노만왕! 제가 저자와 싸우고 싶습니다.”
노만왕이 노하여 눈을 부릅떴다.
“함부로 설치지 마라!”
녹비가 줄곧 초휴를 쳐다보고 있자, 용산은 그녀가 초휴에게 마음이 있는 줄 오해한 모양이었다.
“내가 저놈을 깨부순다면 나야말로 진정한 강자임을 녹비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의 허연 낯짝이 하찮기 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 겁니다!”
의외로 용산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초휴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그는 무선에 오른 뒤로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성질이 많이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범인(凡人)과는 차원이 다른 경지에 오르게 되자 시야가 탁 트이면서, 저만치 아래서 버둥대는 미물에 화를 낼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다만 지금의 상황이 좀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그간 강호 활동을 하며 별별 호칭을 다 들어봤다.
그나마 들어줄 만한 것으로는 교주, 대인, 공자 정도였고, 마도 흉수, 대마두, 미친놈, 개자식,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등, 듣기 껄끄러운 소리를 헤아릴 수 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기생오라비가 웬 말인가? 내가?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긴 지금처럼 만족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보니 초휴의 얼굴이 가장 하얀 축에 들긴 했다. 심지어 녹비보다도 더 하얬으니 말이다.
이때 초휴 곁에 서 있던 녹비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호통쳤다.
“무슨 헛소리냐! 나는 흑라부의 제사장이다. 네놈한테 시집가는 일 따위는 죽었다 깨나도 없을 거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초휴를 계속 쳐다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용산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의도에서가 아니었다.
초휴와 노만왕의 대화를 듣다 보니 아무래도 자기와 흑걸이 무언가 일을 잘못 처리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초휴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본의 아니게 용산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노만왕이 화가 나 용산을 꾸짖으려 하자 초휴가 만류했다.
“어차피 누구와 싸워도 싸워야 할 판이니 저 꺽다리도 무방하겠지요. 그런데 저자를 꺾으면 다른 부락의 수령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겁니까?”
“용산은 우리 나산부의 제일 전사네. 여기에 있는 그 어떤 수령보다도 강하지. 그대가 꺾기만 하면 당연히 다른 이들도 그대를 인정하게 될 걸세. 그러나 생각 잘하는 게 좋을 거요.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태어나 실력이 만만치 않으니까. 머리는 우둔하지만 전투력에 있어서만큼은 독보적인 자질을 타고 난 자일세. 웬만한 무선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할 정도지.”
노만왕의 우려에 초휴가 웃음을 터뜨렸다.
“웬만한 무선은 저에게도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이에 노만왕이 손을 휘저어 성채 중앙을 둘러싼 진법을 잠시 해제하더니 용산과 초휴를 그 안에 들여보냈다.
용산이 삼 장 남짓 길이의 거대한 수골추(獸骨錘, 짐승 뼈로 만든 망치 모양의 무기)로 초휴를 가리키며 화통을 삶아 먹은 양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분명 말해두는데, 가장 강한 자만이 흑라부에서 가장 예쁜 진주를 가질 자격이 있는 거다!”
초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경험자가 초짜를 달래는 말투로 빈정댔다.
“자네의 그런 발상은 아주 위험해. 여인의 마음은 마음으로 얻어야지, 주먹으로 얻는 게 아니라고.”
“웃기지 마라! 우리 엄마가 말해주었다. 옛날 우리 일족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몽둥이로 후려쳐 기절시켜 집에 데려왔다고 말이지. 그렇게 해서 색시로 삼았다고 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여자를 얻는 게 아주 성가시게 된 거지! 그게 다 너 같은 기생오라비들이 많아진 때문이다!”
용산은 말을 맺기가 무섭게 수중의 수골추에 태산의 무게를 실어 내리쳤다. 순간 발생한 위력이 허공에 전율을 일으키더니 그 여파로 성채 전체가 뒤흔들렸고 급기야 주위의 진법까지 가동되었다.
웬만한 무선은 그의 상대가 못 된다고 했던 노만왕의 말은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충분히 알 듯했다. 물론 용산은 무선은커녕, 일개 만족 전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짓 한 번이 가하는 일격에 힘의 법칙이 궁극의 수준까지 발현되었으니, 그의 몸이 힘의 법칙 중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설령 전무신종 무선이라 해도 힘의 법칙을 쥐락펴락 운용하는 데 있어 눈앞의 용산보다 숙련되지는 못할 터였다.
어느샌가 초휴의 손에는 파진자가 들려 있었다.
힘의 법칙마저 견인해내는 경천동지할 수골추의 일격에 맞서 초휴도 일도를 내리쳤다. 이로써 힘의 극치를 선보였으니, 그것은 바로 탄천이었다.
짙은 도망이 미친 듯이 모든 힘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석 자 길이의 장도와 삼 장 길이의 추가 격돌해서 터져 나온 힘의 충격 뒤로 사방의 모든 게 가려졌다. 사람들이 진법 안의 상황을 똑똑히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였다.
노만왕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칠대한의 일부인 탄천을 알아본 것이다. 그는 대라천 에 안 가본 곳이 없었고, 사역 굴지의 유력 종문에서 수련했다.
안목도 경험도 웬만한 대라천 무사들보다 깊고 넓으니, 칠대한을 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놀라움이 더 컸다. 설마 저렇듯 불길한 도법을 정말로 익힌 자가 있을 줄이야.
열 호흡 남짓이나 지났을까. 힘의 폭풍이 완전히 가시자 사람들의 눈에 진법 내의 상황이 똑똑이 들어왔다. 초휴는 낯빛 하나 안 변한 채 도를 쥐고 서 있는 반면, 용산은 구석에 나가떨어져 있었다.
곁으로는 부상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으나, 수중의 수골추는 이미 잿빛의 잿가루로 변한 상태였다. 자신의 수골추가 그 지경이 된 것을 본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초휴에게 삿대질을 하며 일갈했다.
“불공평해! 저자의 칼이 나의 추보다 훨씬 더 예리하단 말이다!”
노만왕이 정색하며 그를 훈계하려 했다. 병기 또한 실력 일부이니, 좋은 병기를 얻을 실력과 기연이 없는 본인을 탓해야지, 남의 병기가 더 좋다고 원망할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자 초휴가 손목을 홱 돌려 파진자를 비전함에 집어넣더니 맨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좋다. 그럼 병기 없이 싸워보자.”
용산이 한바탕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한 마리 성난 용처럼 돌진해왔다. 그의 두 발이 박차고 뛰어오른 지면은 지진이라도 난 양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접근해오기도 전에 초휴는 양손을 결인하고 있었다. 손목의 육도윤회탁에서 광망이 크게 일더니 육도사바중묘화륜이 시전되며 육도윤회의 힘이 용산의 전신을 뒤덮었다.
용산은 천인도에서 위압적인 힘에 짓눌리더니, 아귀도의 힘은 그의 육신을 갉아먹어 갔고, 인간도에서는 그의 모든 힘이 소모되어 갔다. 그 과정은 쉼 없이 반복되었다.
거대한 회전판이 용산의 주위를 돌며 끊임없이 그를 가격했다. 동시에 원신마저 호되게 후려치니, 그는 견딜 수가 없어 비명을 질러댔다.
노만왕의 낯빛이 또 한 번 변했다. 저 공법은 그가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 초휴가 직접 창안한 것이거나 그의 일맥에서 전승된 것이리라. 일견 불종 계통에서 비롯된 공법인 것 같으면서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 신통의 위력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초휴가 지금 우위를 점하고 있긴 했어도 용산을 어찌하진 못했다. 상대의 천부적 자질이 워낙 뛰어난 데다, 용의 피를 뒤집어쓴 육신의 강도가 흉수와 비슷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육도윤회의 힘으로 그의 힘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차라리 육도윤회탁의 원신 공격이 더 유용했다.
다만 워낙 소 힘줄처럼 질기고 독한 인물이니, 육도윤회의 굴레 속에서도 그의 심경은 멀쩡했다.
단순히 원신에 공격을 가하는 것만으로는 극도로 강인한 그의 원신을 훼멸시킬 수 없었다.
하여 둘의 싸움은 한동안 밀고 당기기가 반복되기만 할 뿐, 별 진전이 없었다. 마침내 용산은 머리통을 감싸 쥐고 비명 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이런 해괴한 수작 말고 당당히 실력으로 덤벼라. 그래야 사내대장부다!”
이에 초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좋아. 그럼 이 정도로 봐주지.”
말과 함께 초휴가 육도사바중묘화륜을 거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