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57)
1257화 범교의 대응
연이어 두 번이나 패한 용산은 체면이 말이 아닌지라 눈가에 분노가 극도로 차오르더니 급기야 벌겋게 핏발이 서기까지 했다.
곧이어 두 눈동자가 뱀의 눈처럼 곧추선 모양새가 되더니 기운이 한층 더 증폭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가 출수하기도 전에 초휴가 먼저 몸을 날렸다.
법천상지의 시전과 함께 백 장, 천 장까지 불어난 몸이 진법을 뚫고 솟구쳤다. 거인과도 같던 용산의 몸집이 법천상지 앞에서는 토끼처럼 작아 보였다.
초휴가 일권을 내지르자 용산도 노호성을 내지르며 같이 일권으로 응수했다. 순간 강대한 힘의 폭풍이 터져 나왔으나, 용산은 용케도 초휴의 일권을 막아냈다.
두 번째 일권에 용산은 몇 걸음을 뒤로 밀려났으나, 그래도 안간힘을 써서 버텨냈다.
그러나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정신없이 연타가 터져져 나오자 힘의 폭풍에 휩쓸린 현장은 급기야 ‘쾅’하는 굉음과 함께 진법이 파괴되고 말았다.
노만왕이 벌떡 일어나더니 양손을 휘저어 사방으로 영보하광을 쏘아냈다.
그러자 미친 듯이 휘몰아치던 힘의 폭풍이 잦아들더니 법칙의 힘도 평정을 되찾아갔다. 드디어 폭풍이 완전히 다 가라앉자 중인들의 눈에 현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법천상지의 힘을 거둬들인 초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자리에 서 있는 반면, 용산의 모습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초휴가 오권(五拳)을 잇달아 내갈긴 끝에 용산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자 흑걸과 녹비는 혼비백산해서 심장이 멎을 뻔했다.
초휴가 용산을 완전히 박살 내 가루로 만들어버린 줄 알았던 것이다.
용산은 나산부의 제일 전사다.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똥고집에다 지능이 좀 떨어지긴 해도, 노만왕한테 절대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주요 심복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 인물을 초휴가 죽였다면 오늘 그들은 여기서 살아나가기 힘들 게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두 사람의 기우에 불과했다. 초휴도 일의 경중을 가릴 줄은 알았으니까.
지면 위로 한바탕 파동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야 용산이 버둥대며 푹 파인 구덩이에서 기어 나왔다.
얼굴에 온통 흙먼지를 덮어썼지만, 그 외에는 특별히 탈이 난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초휴가 그를 내려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좀 더 해보겠나?”
이에 용산이 시무룩하여 말했다.
“용산은 항복하겠다.”
그는 말로만이 아니고 진심으로 항복한 것이었다. 병기를 쓴 대결에서는 자신의 병기가 부실해 손해를 보았노라 생각했고, 초휴가 원신비법을 썼을 때는 그게 떳떳한 승부가 아니라며 불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용산 본인이 가장 자신해왔던 힘으로 상대해서 철저히 패했으니, 그야말로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초휴가 이번에는 노만왕에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선배님,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노만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연히 되고말고. 자네가 용산을 이겼으니, 인근의 부락 족장들 가운데 그 누구도 감히 자네를 막아서지 못할 걸세. 자네가 무선이긴 해도 나이로 봐서는 강호에서는 젊은 세대에 속할 테지. 강산에 대를 이어 인재가 배출되는군그래. 역인들은 세대마다 자네와 같은 절세의 기재들이 존재하건만, 우리 만족은 그런 인물이 유사 아래로 몇 명 안되는군.”
노만왕은 다른 부락 족장들에게 몇 마디 건넨 후 다시 초휴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 사람들도 십만대산을 지날 수 있게 되었네. 다만 흑라부 사람들을 길잡이로 앞세워야 할 것이야. 역인들끼리만 오면 자네의 대오인 줄 저들이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초휴가 공수의 예를 올렸다.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지라 노만왕과 작별한 초휴는 즉시 자신의 대오를 데리러 갔다. 이번 남만행의 전개가 애당초 예상했던 바와는 차이가 좀 났지만, 결과는 원하던 대로 되었다.
이리하여 초휴의 대오가 평탄히 남만 땅을 통과하고 있을 때, 서역 전체는 폭발 직전의 거대한 화약고처럼 변해 있었다.
천라보찰이 모든 각원의 무승들을 집결시켜서 본격적으로 자신들을 향해 진격해오자 범교는 적잖이 당황한 상태였다.
* * *
서역 서부 중심부의 범교 대전.
온통 칠흑빛 일색인 대전 한가운데에는 각양각색의 기이한 범문들이 새겨져 있었다. 대전에는 단 한 개의 창문도 없는 탓에 분위기가 퍽 음산했다. 그 지독한 어둠을 뚫고 내부에서 혼미한 운무와 광채가 흘러나왔다.
대전의 정북향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하나 서 있었다. 머리가 세 개에 팔은 여덟 개고, 발은 대지를 밟고 섰으며 머리로는 천공을 받친 모습이었다.
조각상 한가운데에는 혼탁한 연무가 짙게 깔려 있어 얼굴 형상은 자세히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속세의 무상함과 이계의 신비감이 묘하게 섞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사실 범교가 처음부터 하나의 완전체였던 건 아니었다. 삼신(三神)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살생과 쟁탈이 끊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던 것이 후대에 이르러 절세의 기재가 배출되면서 삼신의 통합을 이룬 덕에 사분오열되었던 범교가 하나로 통합되었던 것이다. 그제야 천라보찰과 당당히 맞설 만한 불종 대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 조각상은 범교의 삼신에는 전혀 해당하지 않았다. 삼신이 합일을 이룬 후 범교 제자들이 섬기기 시작한 지고무상한 존재로, 이름은 없고 그저 ‘창세(創世)의 신’으로만 불리었다.
그리고 지금 이 거대한 조각상 발치에는 수십 명이 운집해 있었다. 하나같이 범교 삼대 신전 및 각 주요 신궁의 수장들이었다.
그들의 한가운데에는 백발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은색 장포를 입었으며 은색 광택이 감도는 백발의 머리는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게 빗어 올린 모습이었다.
그는 바로 당대 범천전의 전주 루나가(樓那伽)로, 무선 팔중천의 지존급 강자였다. 그의 곁에는 체구가 왜소하고 깡마른 검은 옷차림의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의 눈동자는 동공이 없는지라 상당히 괴이했다. 한쪽은 칠흑빛 일색인 데다 마기로 가득 찬 듯한 모양새였고, 다른 한 눈은 핏물에 담갔다 꺼낸 것처럼 새빨갰다.
이 노인이 바로 시바전의 전주 염마(閻摩) 이마천으로, 그 역시 무선 팔중천의 실력자였다.
범교 교주가 떠난 후 지금의 범교는 사실상 삼대 신전의 전주들이 통솔하는 상태였다. 세 명의 전주 중 비슈누전 전주는 이미 죽고 없으니, 현재 범교의 중대사는 이 두 전주가 주관하는 셈이었다.
천라보찰이 힘을 결집해서 몰려오고 있다는 것은, 범교와 한바탕 일전을 불사할 작정임을 만천하에 천명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범교 측으로서도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범교는 아직 천라보찰만큼 강하지 못한 게 사실이니까.
이 밖에도 각 신궁의 궁주들이 자리해서 서로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각 신궁의 소속이 세 개 신전으로 나뉘어 있는 데다 워낙 긴장감이 가중된 상황인지라, 다들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여차하면 몸싸움도 불사할 기세였다.
“다들 입 다무시오!”
루나가가 나직이 일갈하자 좌중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우리끼리 이렇게 싸워대면 천라보찰이 시끄럽다고 귀를 막으며 물러나 주기라도 한다던가? 오늘 여기에 모이라 한 것은 다 함께 천라보찰에 대항할 방도를 찾자는 것이지, 머리 터지게 싸워대자는 게 아니란 말이오!”
그러자 염마가 쉬어 터진 목소리로 받아쳤다.
“방도는 무슨 얼어 죽을 방도? 상황껏 대처하면 될 일이지. 저 망할 중놈들이 비열하게도 우리 범교의 약세를 틈타서 쳐들어오려 하니, 우리야 놈들이 오는 족족 죽여 버리면 그만이야!”
염마의 말에는 극도로 짙은 살기가 서려 있어서 마치 망망 혈해 속을 한바탕 휘젓고 오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러자 루나가가 달래듯 말했다.
“말은 그리해도 천라보찰 놈들이 전혀 예상 밖으로 갑자기 쳐들어오니 현실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렵잖소. 다들 알다시피 상계와 하계의 진법이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요. 진법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기상황이란 말이오. 그때가 되면 대라천은 또 한 번 지독한 혼란에 휩싸이게 되겠지. 그런데도 저들이 하필 이런 때 우리를 공격해온다는 게 말도 안 되지 않소? 우리와 싸우느라 저들도 원기가 크게 상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닥쳐올 난세에 자연히 도태될지도 모르는데, 참 이상도 하지······.”
오랜 세월 팽팽히 대치 국면을 이어온 이 두 세력은 나름 지켜온 묵계가 있었다. 그저 대치만 할 뿐, 그 어느 쪽도 먼저 공격하는 첫발을 내딛지는 않는다는 것!
하지만 결과적으로 천라보찰 측이 먼저 이 묵계를 깬 셈이 되었다. 그것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말이다.
염마가 냉소를 터뜨렸다.
“범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를 가는 놈들인데 무슨 짓인들 못 할까? 그러나 상관없소. 저들이 정녕 싸우길 원한다면 이판사판 너 죽고 나 죽고 같이 죽으면 될 일이지!”
그 말에 루나가가 심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곁눈질로 쏘아보았다.
여하튼 시바전 족속들은 늘 저런 식이 아닌가.
저 더러운 성질머리는 영원히 고치지 못할 듯했다. 대국적 견지에서 신중히 고민할 생각은 안 하고 그저 죽이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니, 저들에게 무슨 해답을 기대한단 말인가. 물론 지금으로서는 염마의 말처럼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긴 하지만.
루나가가 근엄히 말했다.
“염마, 시바전의 전력이 최강이니 이번 싸움에서도 시바전이 응당 선봉에 서야 할 거요.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이라도 있소?”
염마가 괴이쩍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뭘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하고 그러는가? 염려 말게. 우리 시바전은 죽음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싸우다 죽은 전사만이 위대한 시바신을 뵐 자격도 있는 법이지.”
루나가의 눈썹이 크게 꿈틀댔다. 마치 자기네만 용감하고 이쪽은 겁쟁이들만 모여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가벼운 코웃음으로 욱하는 마음을 달랬다. 이런 때 염마와 대립각을 세우는 게 현명한 일은 못 되니까. 그는 계속해서 각 신궁의 소임을 분배한 다음 마지막으로 지시했다.
“비슈누전에는 전주가 없으니 이번 싸움에서 그대들은 후방을 맡는다. 비슈누전에는 아직 연구를 끝내지 못한 온갖 비법과 진기한 보물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으니, 그것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할 것이다.”
루나가의 말에 염마도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라고 해서 별다른 의견이 있을 리 없었다.
어쨌거나 비슈누전은 전투력이 가장 약한 신전이니,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들이 출수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그 외 모든 제반 사항에 대한 지시를 마친 후 루나가의 시선이 돌연 음타라에게로 향했다.
“음타라, 이번 일전에 그대는 나설 필요 없네. 후방에 남아 비슈누전을 지키게.”
음타라가 순간 멈칫하더니 불만을 제기했다.
“왜 저만 후방을 지킵니까? 제 실력이 고작 후방을 지킬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씀이시오?”
시바전 사람들은 대부분 호전적이었다. 특히 음타라처럼 광기가 다분한 자는 더욱 그러했다. 세상을 놀라게 하고도 남을 이 역사적인 전투에 겨우 후방이나 지키고 있으라니 음타라가 순순히 승복할 리 있겠는가.
하지만 루나가는 정색하며 말했다.
“그대의 실력이 강하기 때문에 후방을 지켜달라는 걸세. 음타라, 그대가 무선 칠중천을 죽인 일이 있다고 해서 정말로 무선 칠중천과 동급인 줄 착각하면 곤란하네. 그대의 공법은 특성상 일대일로 습격해 죽이는 데 최적화되어 있지. 멸세지화는 그 어떤 법칙의 힘도 훼멸시킬 수 있으니, 전장에서도 최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이번에 천라보찰은 모든 병력을 전장에 쏟아부었어. 우리 범교도 마찬가지고. 이런 상황에서 떼로 난전이 벌어지면 자네의 그 강점은 위력을 잃기에 십상일세. 심지어 웬만한 무선 오중천보다 못할 수도 있단 말이네. 지금 비슈주전에는 무선은 아나서라(阿那西羅) 그 노인네를 제외하면 한 명도 없지 않은가. 자네라도 보내어 비슈누전을 지키게 하는 것도 대국적 견지에서 조치한 일일세.”
음타라는 못내 승복하기 어려웠다. 도움이라도 청하듯 그의 시선이 염마를 향했다.
염마는 자신의 직속 상관이자 반쪽이나마 사부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아닌가. 음타라가 배운 것의 절반은 그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염마의 머릿속이 오로지 천라보찰 사람들을 죽일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는 건 아니었다. 루나가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그도 잘 알았다.
“루나가 전주의 말대로 하게. 앞으로 자네가 출수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이번에 후방을 지키는 건 최전방에 서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야.”
염마까지 이렇게 말하자, 음타라도 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루나가가 좌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비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일이 이리되었으니 우리도 응전태세를 갖춘다. 속히 각자의 신궁으로 돌아가 무사들을 집결시켜라! 비록 우리가 열세이긴 하나, 천라보찰 중놈들이 그 추악한 민대가리를 한 무더기 남겨놓기 전에는 절대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엄한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역 땅 절반의 패자를 자처하는 범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신궁을 비롯해 범교 측에 선 무사들까지 속속 집결을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