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71)
1271화 갈 때는 네 맘대로 못 간다!
이처럼 곤륜마교 측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 가운데, 좌중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단순히 이잠이라는 진단경 무사 하나 때문에 할 말까지 잊은 게 아니었다.
그보다도, 곤륜마교는 일개 수문지기조차 저런 실력과 살기, 그리고 매섭고도 독한 살초를 거침없이 쓴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잠 한 명은 두려울 게 없으나, 그 이잠이 백 명, 천 명에 달한다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이때 소합나의 눈빛은 더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천신궁 궁주도 무선이다. 남의 귀한 제자를 내달라고 특별히 부탁하여 데려왔건만, 여기서 개죽음을 시켰으니, 돌아가서 궁주의 얼굴을 어찌 본단 말인가. 일이 여간 난감해진 게 아니었다.
그가 자기 일행의 면면을 쓱 한번 둘러보더니 결의에 찬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리지기(利支奇), 다음 일전은 네가 나가라. 절대로 상대를 얕봐선 안 된다!”
호명 받은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비장하게 답했다.
“사부님, 염려 마십시오. 이번엔 꼭 이기겠습니다!”
원래 소합나는 두 번째 대결에 자기 제자를 출전시킬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잠의 실력만 보더라도 곤륜마교의 실력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심오하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제자를 내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소합나의 제자는 진화련신이니 곤륜마교에서도 진화련신 무사를 내보내야 했다.
당아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여러분, 오늘은 아무래도 우리 혈아당에서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구려. 나한테 맡겨 주시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 딱히 토를 달진 않았다.
당아와 안불귀의 실력은 이미 천지통현에 근접했으니, 그 둘 중 하나를 내보내는 게 가장 안전하긴 했다.
그런데 당아가 먼저 말을 꺼냈으니 안불귀는 자연히 물러섰다.
첫 번째 판에서 범교가 패한지라, 리지기는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다. 말로 허장성세를 부리는 대신 일신에서 오색 신광(神光)을 뿜어내니, 일순간 사방이 눈부시도록 찬란히 빛났다.
그러자 당아가 냉소를 날렸다.
“알록달록한 게 꼭 날개 펼친 공작 같구먼······, 여기서 짝짓기라도 할 참인가?”
내내 말을 아끼던 리지기가 노호성을 터뜨렸다.
“닥쳐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색 신광이 당아를 덮쳤다.
다섯 속성의 강기가 한데 엉긴 신광은 상생상극을 이루며 끝없이 힘의 변환을 일으키니, 그 기이함은 상대의 정신을 쏙 빼놓을 만 했다.
그러나 당아는 피식 웃더니 몸을 휘휘 돌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무수한 암기가 그의 온몸 구석구석에서 비 오듯 쏟아졌다.
투골정(透骨釘), 천심전(穿心箭), 용미표(龍尾標), 매화침(梅花針), 쇄골자(碎骨刺) 등등 온갖 살벌한 암기들이 새까맣게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그것을 보는 하객들은 비를 머금을 대로 머금은 지독한 먹구름이 지붕 위를 뒤덮은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사실 암기라는 건 경지가 낮은 무사들이 약한 실력을 보충하려고 쓰는 물건이다. 심지어 경지가 낮은 자 중에도 대파 출신 무사들은 격이 떨어져 보일까 봐서 암기 사용을 꺼렸다.
하지만 저 곤륜마교 제자는 진화련신이면서도 암기를 주무기로 쓰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일신의 공법이 얼마나 허접하면 저러는 걸까?
하지만 그런 의문을 품은 것도 잠시. 좌중의 일부 강자들은 뭔가를 눈치챈 듯 눈썹을 치켜떴다.
당아가 마구 쏘아댄 암기들은 대부분의 암기 사용자가 쏜 것처럼 단순히 강기에 의해 날아가는 수준이 아니었다.
당아는 마치 실타래를 감았다 풀었다 해가며 꼭두각시 인형을 움직이는 것처럼, 그 많은 암기를 실과도 같은 강기 가닥으로 일일이 조종하는 중이었다.
놀랍게도 그 암기들은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수많은 개체가 모여 하나의 완전체를 이룬 상태였다.
이 사실을 깨닫자 좌중의 사람들은 너나없이 표정이 얼어붙었다. 암기의 개수만도 천 개, 만 개, 아니 일일이 세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당아는 그 많은 것들을 전부 장악한 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지 않은가. 대체 강기에 대한 장악력이 얼마나 대단하면 저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하지만 리지기는 아직 이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수중에서 오색 신광이 뻗어 나와 한바탕 허공을 휩쓸고 지나자, 암기 한 무더기가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그깟 장난감들로 장난질이냐? 이 많은 고수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나 보지?”
리지기가 그렇게 비웃고 있는데 뒤에서 소합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조심해라!”
무슨 일인가 싶어 정신이 번쩍 났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무수한 암기가 매서운 파공음과 함께 날아와서 그를 완전히 포위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암기를 조정하던 강기의 가닥들이 갈수록 굵기를 더해가더니 급기야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두툼해졌다.
그 많은 가닥이 죄다 당아의 손과 연결된 걸, 이제 누구라도 똑똑히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아는 수인을 결하며 담담히 한 마디를 토해냈다.
“죽어라!”
일순 그 많은 강기 가닥들이 전부 수축하는가 싶더니, 광장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격렬한 강기의 폭음이 요란히도 울려 퍼졌다.
동시에 살이 사정없이 찢겨나가는 소리도 연신 들려왔다. 선혈이 대거 흘러나와 바닥을 흠뻑 적히자 당아가 손을 휘저어 모든 암기를 거둬들였다.
“한 번 쓰고 버리면 아깝잖아. 내 암기는 일회성이 아니니까.”
당아가 암기를 죄다 회수한 뒤에야 사람들은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 볼 수 있었다. 사실 무슨 상황이랄 것도 없었다. 리지기의 몸뚱이가 다진 고깃덩이가 되어 수북이 쌓여있는 게 다였으니까.
소합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죽어라 참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사실 그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애당초 범교의 의도는 대라천의 규칙을 이용해서 초휴에게 망신을 주려는 것이었다. 적어도 초휴가 종문을 순탄하게 창건하는데 훼방은 놓아야 할 게 아닌가.
하지만 금쪽같은 젊은 제자들 둘씩이나 잃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호인들이 죄다 보고 있는데 대결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니 소합나는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범교 제자들은 그의 입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이제 어쩔 거냐고 재촉하고 있지 않은가. 소합나는 어쩔 수 없이 악다문 잇새로 명을 내렸다.
“도만(圖蠻), 이제 그대가 나서구려!”
도만은 천지통현의 거한으로, 범문이 빽빽이 새겨진 상반신을 훤히 드러낸 모습이었다. 사실 그는 범천전 소속이 아니라, 시바전 수주신궁(獸主神宮)의 궁주였다.
시바전 출신 무사들은 하나같이 차원이 다른 막강함을 뽑내는 전투력을 발휘했다. 적어도 범천전 소속 무사들 가운데 시바전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무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그러나 내내 지켜만 보던 초휴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천지통현이라면 초휴 측이 가장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경지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직 무선에 오르기 전인 상천량도 엄연히 천지통현에 속하는 것이다. 그만이 아니었다. 육강하, 매경령, 저무기, 여봉선 등도 역시 천지통현이니까.
이들 가운데 상대하기 만만한 자는 하나도 없었다. 누굴 출전시키건 간에 상대를 해치우는 건 시간문제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로 양보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결국 상천량이 입을 삐죽거렸다.
“반보 무선도 아니고 겨우 천지통현이라고? 나는 흥미 없으니 젊은 너희들이나 많이 상대해라.”
매경령도 표정에 한껏 혐오감을 내비쳤다.
“너무 못생겼잖아. 저런 얼굴을 상대했다가는 내 기분이 더럽혀질 것 같아서 싫네요. 나는 빠지겠어요.”
육강하는 상대를 힐끔힐끔 보더니 도리질을 해댔다.
“저 육중한 덩치 좀 보라지. 하지만 겉만 그럴듯할 뿐이야. 정작 기혈의 힘은 형편없을 거란 말이야. 그러니 나도 싫다고.”
저무기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위 선배님을 도와서 의식을 치를 준비를 하느라 너무 바빴어. 피곤해 죽겠다고. 싸움질은 기운 넘치는 당신들이나 실컷 하시구려.”
다들 이리 빼고 저리 빼며 싸우고 싶어 하질 않자, 여봉선이 해맑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나가도록 하지요.”
여봉선이 방천화극을 치켜들며 비무대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진작 나와 대기하고 있던 수주신궁 궁주 도만은 저들이 나누는 대화에 열이 뻗칠 대로 뻗쳐 입에서 불을 내뿜기 직전이었다.
자기를 더러운 걸레나, 아무 데도 못 쓸 쓰레기 취급하며 서로 대결을 미뤄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다가 생김새도 단아하니 예쁘장하고 체구도 그리 크지 않은 여봉선이 나서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으르렁댔다.
“이게 웬 기생오라비냐! 후딱 오너라. 아주 아작을 내줄 테니까!”
짐승이 내지를 듯한 호통 소리에 이어, 그의 몸 뒤로 떠오른 허영의 가닥들이 그의 체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용, 전투 코끼리, 포효하는 사자 등 온갖 맹수의 모습이 넘실대는가 싶더니 그의 목구멍 안쪽에서 터져 나온 괴성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그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쿵쿵 비명을 질렀다.
여봉선이 슬쩍 고개를 저어 보인 것도 잠시. 온몸에서 마염이 솟구쳤다. 강대한 마기가 그의 전신을 휘감자 순전히 마기로만 이루어진 전갑 한 벌을 걸친 것과 같았다.
구소연마금신이 위용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방천화극을 치켜든 그의 몸 뒤로 거대한 마신의 허영이 어른거렸다. 그가 일극을 내리치자 태산도 쪼갤 괴력이 터져 나와 허공에 강렬한 폭음을 수놓았다.
‘쾅!’
그 굉음과 함께 도만의 몸뚱이가 구덩이를 만들며 땅에 처박혔다. 그는 울컥 피를 토하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봉선을 올려다보았다.
살짝 한 대만 쳐도 나가떨어질 것 같은 저 기생오라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이대로 승복할 수 없다!’
그가 노호성을 내지르자 전신에서 무수한 맹수의 허영들이 떠오르더니 일거에 여봉선을 덮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봉선은 일극으로 상황을 종료해버렸다. 절대적으로 막강한 힘 앞에서 그 어떤 것도 멀쩡할 수 없었다.
여봉선이 세 번째 일극을 내리치자 도만의 두 팔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파열되었다. 그의 육신이 제아무리 강하면 뭐하겠는가. 여봉선의 힘이 그 육신보다도 더 강한 것을!
여봉선이 재차 일극을 내리치려 하자 소합나가 기함하며 몸을 날려 도만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
솔직히 앞서 죽은 무사들이야 범천전 제자들이니, 그들을 잃었다고 보고해도 루나가 대인이 이해해 줄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도만은 시바전 사람이 아닌가. 자기가 어설프게 일을 벌인 바람에 도만까지 잘못되는는 날엔, 염마 그 미치광이가 자기를 가만둘 리 만무했다.
바로 이때 초휴의 오른손이 살짝 움직이는가 싶더니, 육도윤회탁에서 원신의 진동을 동반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에 원신을 가격당한 소합나는 온몸이 얼어붙기라도 한 양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이 잠시 멈춘 사이, 여봉선이 보란 듯이 네 번째 일극을 내리쳤다. 극한의 수위까지 힘이 장전된 상태에서 거침없이 뻗어 나간 무쌍은 일격으로 도만의 몸을 두 동강 내버렸다.
사방팔방으로 피가 튀며 광장이 한순간에 아비지옥처럼 변해버렸다.
“초휴!”
소합나가 미친 듯이 괴성을 질렀다. 이미 분노와 살기에 잠식당한 눈동자는 청명함을 잃은 지 오래였다.
정말이지 지금 당장 초휴와 끝장을 보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빨리 이성을 되찾아야 했다.
여기는 엄연히 적진의 한가운데, 곤륜마교가 아닌가. 여기서 울분이 극에 달해서 덤벼든다고 한들 초휴를 어찌해볼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에게도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한참 뒤에야 소합나가 냉랭히 입을 열었다.
“좋다, 좋아! 초휴, 아주 잘났구나! 회혼종은 네 것이니 잘 갖고 있거라. 조만간 우리 범교에서 도로 가지러 올 테니까.”
이 말을 끝으로 그가 뒤돌아섰다. 하지만 등 뒤에서 초휴의 살벌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여기 곤륜마교를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동네 사랑방으로 아는가? 그 회혼종인지 나발인지에는 관심도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 어차피 지금 종을 선물하나 나중에 선물하나 매한가지이니, 내친김에 그냥 지금 선물하마. 목숨이나 내놓고 썩 꺼져라!”
말을 마친 초휴가 법천상지를 시전하더니, 냅다 회혼종을 집어 들어 소합나에게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