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73)
1273화 동역을 총공격하라!
방도진이 알아먹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맹성하가 말을 덧붙였다.
“다만, 방금 자네가 했던 말들 가운데 초휴가 군소 세력들을 합병하는 것을 폄하한 대목은 동의하기 어렵네. 초휴의 그 수법이야말로 우리에게는 가장 큰 위협이 될 테니까.”
“그건 어째서입니까?”
방도진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자 맹성하가 또 차분차분 설명에 들어갔다.
“물론 자네 말이 전적으로 틀린 건 아니야. 그자들이 줏대라곤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존재들인 건 맞지. 하지만 현재 초휴의 위세를 보란 말이네. 저들에게 과연 휘둘릴 만한 기회가 주어지기나 할까? 앞으로 그럴 여지가 있을까? 서슬 퍼런 초휴 밑에서 기회주의자 노릇이 가능하겠는가 말일세. 그들은 감히 그러지 못할 게야. 초휴가 버티고 있는 한, 그들은 초휴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 자신의 기운을 고스란히 초휴의 손에 내맡긴 채 말이지. 일만 년 세월은 너무 길었으니 조만간 대겁난이 닥치기는 할 게야. 그러기 전에 촌음이라도 아껴 서둘러야 할 것이네. 미래의 모습이 어떨지는 아무도 알 수 없네만, 적어도 저 명석한 초휴는 바로 지금, 현재를 장악해 버렸으니까!”
방도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그러면 이제 어쩝니까? 초휴가 그렇게나 위협적인 존재라면 우리도 고존대회라도 열어서 고존계의 온갖 규칙을 디밀어가며 그를 저지해야 하지 않습니까?”
맹성하가 손을 휘젓자 눈앞의 그 별빛들이 삽시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그럴 필요 없네. 지금 누구보다도 놈이 죽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 * *
그 무렵, 천하검종 통천검봉.
곤륜마교에서 돌아온 모백상은 나산과 얼굴을 마주하자 이를 갈며 말했다.
“종주, 당장 동역에 총공세를 펼쳐 곤륜마교를 뿌리 뽑아 버려야겠습니다!”
모백상이 이런 결단을 나산에게 촉구한 것은, 이가 갈리도록 초휴가 증오스러워서라기보다는 그만큼 상황이 급박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초휴의 곤륜마교가 위풍당당하게 존재하는 한, 천하검종은 동역에 전혀 발을 못 들이밀 게 뻔해 보였으니까.
그러나 위기의식이 가득한 모백상과는 대조적으로 나산은 침착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도대체 무얼 보고 왔기에 그러는가?”
평소에 말을 아껴왔던 모백상이 이번에는 곤륜마교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그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초휴의 실력이 아직은 천하검종을 위협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당장은 우리 남역이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성장 속도의 빠르기가 대단히 놀랍습니다. 곤륜마교가 남만에 터를 잡았으니, 앞으로 남역 종문은 영영 동역으로 뻗어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기필코 그자를 제거해야 합니다!”
나산이 아연한 눈빛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람도 참, 이렇게나 경계심이 많기도 어렵겠구먼.”
하지만 모백상의 표정은 더욱 진지해졌다.
“초휴는 우리가 경계해야 마땅한 자입니다. 물론 우리 남역 종문들이 동역으로 뻗어갈 생각이 없다면야 초휴가 강하건, 말건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만 말입니다.”
나산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어째서 다들 생각하는 게 똑같은지 원······.”
“다들이라니요? 이런 말을 저 말고 또 누가 했습니까?”
모백상이 의아하여 묻자 나산은 대답 대신 손짓하여 누군가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남색 비단도포 차림의 노인이 대전으로 들어섰다.
“엽 성주!”
모백상은 어찌나 놀랐던지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붙었다. 여기서 엽유공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엽유공이 틀림없지 않은가. 꽤 오랫동안 강호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한강성의 성주, 엽유공이 돌아온 것이다.
초휴가 건립 의식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던 그즈음, 엽유공은 곤륜마교로 향하는 대신 남역 천하검종에 와 있었다.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삼척동자라도 짐작할 수 있을 터였다.
엽유공이 또박또박 말했다.
“모 검존, 이제야 초휴를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요? 애석하게도 너무 늦었구려.”
“어째서 늦었다는 거요? 내 보기엔 딱 시기적절합니다. 그나저나 엽 성주가 여기엔 어쩐 일이시오? 설마 동역을 배신할 마음이라도 먹은 겁니까?”
모백상의 날 선 반응에 엽유공은 미친 듯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는 지독한 분노와 울분이 담겨 있었다.
“동역을 배신해? 살다 살다 별 웃긴 소리를 다 듣겠군, 그래! 동역은 예나 지금이나 능소종의 동역이었고 황천각의 동역이었소. 유독 우리 한강성의 동역이었던 적은 없었지. 여태 한시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무얼 배신하고 자시고 한단 말인가?”
초휴가 대라전 전역을 상대로 초대장을 보낼 때 엽유공은 이미 천하검종에 당도해 있었다. 그는 초휴에게 한 방 세게 먹은 뒤로 한강성 내에서 조신하게 요양에만 힘써왔다.
당시 여간 뱃속이 불편하게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역을 배신하면서까지 남역 무림과 손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초휴였다. 초휴가 자신의 종문을 창건한다는 소식을 듣자 애써 달래 왔던 마음이 이성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분노했고 절대 승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지독히 시기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는 언젠가부터 초휴를 시기하게 된 것이다. 지난날 자신이 한강성을 건립하던 때와 너무도 비교되었다.
당시는 능소종과 황천각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맹성하의 힘을 빌려서야 가까스로 그 두 세력의 힘을 야금야금 빼앗아 한강성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한강성이 치러야만 했던 대가는 실로 혹독했다. 한강성 제자들이 얼마나 많이 죽고 다쳤는지 그 숫자를 셀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초휴는? 그 주제에 종문을 세운다고 나대는 것만도 눈꼴이 실 판에 능소종과 황천각이 그를 막아서기는커녕, 수장들이 몸소 선물까지 싸 들고 와서 축하한다며 굽신거리지 않는가.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냔 말이다! 제까짓 게 뭔데?!’
물론 시대가 달라졌다는 건 엽유공도 인정했다. 한강성이 건립될 당시에는 동역에서의 내분이 치열했다. 기존 세력의 이권을 우격다짐으로 뺏어 와야 했으니까.
이와는 달리, 지금 초휴가 세운 곤륜마교는 기존 세력들이 보기에 남쪽 변경을 대신 지켜주는 방어막 역할을 톡톡히 해낼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종문들이 딱히 배척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다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엄연히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아무리 현실을 인정한들, 이미 뱃속 깊이 파고든 울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동역 것들이 작당하고 한강성을 용납하지 않겠다는데, 그래서 엽유공을 같은 동역 사람으로 쳐주지도 않겠다는데, 그가 미쳤다고 동역을 위해 헌신한단 말인가?
기실 동서남북 사역은, 선대에서 인위적으로 구분 지은 지리적 명칭에 불과했다. 한강성이 어느 지역 편에 서건 간에 한강성이라는 본연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한강성은 어디까지나 한강성일뿐이다.
나산이 무게를 잡으며 끼어들었다.
“엽 성주께서 현명한 선택을 하셨소. 우리 천하검종은 그대를 열렬히 환영하는 바요. 동역은 그대를 저버렸을지 몰라도, 우리 남역, 우리 천하검종은 제대로 대접해드릴 것이외다.”
엽유공이 차갑게 받아쳤다.
“이게 뭐 그리 현명한 선택이겠소? 피치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이리된 게지. 나 종주, 남역이 동역을 공격할 때 우리 한강성은 전력을 다해 도울 것이오. 보상 같은 건 바라지도 않소. 그저 부탁 하나만 합시다.”
“어떤 부탁이오?”
“초휴, 그놈을 반드시 죽여주시오!”
나산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짤막하게 답했다.
“그럽시다.”
사실 천하검종과 초휴 사이에 특별한 원한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엄연히 서로의 입장이 다른 만큼, 이제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끝날 싸움을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이때 내내 듣고만 있던 모백상이 입을 열었다.
“종주, 이번 싸움은 반드시 일격에 끝내야 합니다. 기회가 두 번 주어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다만 능소종이 보유한 능소무극인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그걸 제압할 자신이 있으신지요?”
좀 전까지만 해도 모백상의 태도는 상당히 과격하고 급진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나산이 동역 공격을 결정하자 부쩍 신중해진 모습을 되찾았다.
앞으로 닥칠 일전은 종전의 사소한 싸움들과 같이 치부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천하검종을 위시한 남역 종문 전체가 최후의 일전이라는 각오로 동역에 총공세를 펼쳐야만 하는 만큼, 양측의 존망이 달린 중대한 싸움이리 봐야 했다.
이긴다면 동역을 합병한 남역의 세력은 크게 위세를 떨칠 것이다. 반면, 패한다면 원기가 크게 상한 남역 종문은 장차 닥쳐올 대쟁지세에서 지리멸렬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일전은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만 하는 힘겹고 어려운 싸움이 될 터였다.
나산이 여전히 차분하게 답했다.
“그 점이라면 염려할 것 없네. 능소무극인에 대적할 준비는 다 되었으니까. 이미 통천검(通天劍)과의 융합을 마쳤거든.”
그 대답에 모백상의 낯빛이 화들짝 변했다. 천하검종의 전승 지보인 통천검은 용맥에서 탄생해 정련을 거친 쇠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능소무극인과 태생이 같았다.
하계 시절부터 있던 것을 천하검종이 대라천으로 가져온 후 통천검봉에서 배양해냈다.
원래 천지의 신물은 범속한 인간이 장악할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통천검은 하계 용맥의 산물인지라 대라천의 기운과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한 번씩 운용할 때마다 극심한 반작용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나산이 피식 웃었다.
“뭘 그리 놀라는가? 사실 노부의 한평생은 패배로 점철된 인생이었지. 그래도 나는 천하검도 제일인자의 위상을 백 년 가까이 누렸네. 천하검종도 나 혼자였던 검존이 세 명으로 늘어났고 말이야. 아 참, 지금은 넷이 되었구먼. 역귀사 그 녀석도 검존으로 봉해졌으니까. 천지에 대한 이해력만 따지면 나는 세존과 범교 교주만 못한 건 물론이고, 도존과는 더더욱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네. 심지어 맹성하와 같은 후발 인재들한테도 밀리는 형국이지. 나의 이 구중천 경지는 당시 충만한 예기 덕에 가까스로 돌파한 것이었네. 아주 억지로, 간신히 말일세. 다른 이들은 모두 정상을 향해 내달리는데, 내 눈에는 아직 정상이 어딘지 조차도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
“이제 나는 늙었네. 그나마 아직 예기가 조금이라도 덜 소모되고 남아있는 지금 통천검을 한번 써봐야 하지 않겠나. 더 기력이 쇠해졌다가는 통천검을 휘두를 능력도 없게 될 테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만의 힘으로 출수할 수 없는 건 물론일세. 조력자 몇 사람을 더 불러 모아야겠지. 성 형! 진룡신장과 고월존자, 그 두 고존을 설득하는 일은 그대에게 부탁하리다. 그들에겐 이제 전승을 이어갈 제자가 생겼으니, 아마 복수심이 적잖이 희석되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설득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거요.”
성구연이 내당에서 걸어 나오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합시다. 내게 시간을 좀 주면 그 두 사람을 데려오겠소.”
모백상이 뭐에 홀리기라도 한 양 노종주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자신이 내심 우려했던 일들을 노종주가 빠짐없이 잘 안배하고 있는 것에 좀 놀라면서도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노종주의 말투가 자신의 사후를 부탁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모백상은 공연한 잡념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비장하게 물었다.
“종주, 이제 우린 무얼 합니까?”
나산도 그에 못지않은 비장한 얼굴로 답했다.
“기다려야지. 이미 역귀사를 대천문과 전무신종에 보냈으니 다들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이번에 우리 남역의 삼대 종문 및 고존 세 사람의 힘, 그리고 한강성 엽유공 성주의 내응까지 있음에도 여전히 동역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남역이 가진 기운이 그것밖에 안 되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지.”
* * *
십만대산 깊은 밀림 속.
진룡 및 고월 일맥이 공유한 비경 앞에서 허천애와 방백도가 다소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성구연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갑작스레 여기에 나타난 이유가 짐작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성구연은 사람이 꽤 오만한 편이었다. 지금까지는 두 사람이 뭐라도 좀 빌붙어 볼 꿍꿍이로 그에게 들이댔지, 그가 제 발로 여기까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성 형,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려. 여기까진 어인 일이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앉아서 천천히 얘기 나눕시다. 마침 비경에서 재배해낸 망우초로 빚은 술맛이 기가 막히지 뭐요. 그거 한 잔이면 만 가지 시름이 눈 녹듯이 사라질 거외다.”
방일도는 성구연이 돌연 찾아온 의도가 못내 수상쩍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공손히 그를 상대하려 했다. 하지만 성구연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오늘 나는 함께 술을 마시자고 온 게 아니라, 두 분에게 함께 동역을 치자고 청하러 온 거요.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곤륜마교와 능소종, 황천각까지 일거에 쓸어버립시다! 두 분은 그 김에 목숨을 잃은 제자의 복수도 할 수 있지 않겠소. 남역 종문들이 동역을 점령하면, 두 분이 동역에서 자원을 산더미처럼 가져다가 계속 은거 수련에 매진하건, 아니면 숫제 동역에 본인의 종문을 세우건 간에 두 분 내키는 대로 하셔도 되오.”
그 말에 방백도와 진구룡은 멀뚱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냉큼 성구연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 미적지근한 태도만 봐도 두 사람의 속내는 능히 짐작되었다.
물론 예전 같았으면 득달같이 손을 부여잡으며 당장 그러자고 흔쾌히 응했을 것이다. 내 금쪽같은 제자를 죽인 원수 놈과 어찌 한 하늘 아래 살 수 있겠는가,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새 제자가 생겼다. 생기기도 어여쁜 것이 눈치도 빠르고 세상 물정도 잘 알며 머리까지 뛰어난 제자가 말이다.
천부적인 자질 면에서도 예전 제자들을 훨씬 능가했으니, 장차 큰 인물로 성장할 것 같아서 여간 기대가 큰 게 아니었다. 그런데 간만에 단꿈에 젖어 있는 이때,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전장으로 뛰어들라고?
물론 그런 생각은 핑계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초휴라는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렸다.
그런데 감히 죽기 살기로 그와 싸우자고? 지금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