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살육의 밤
늦은 밤.
극북표설성 무사들로 구성된 오인조 수색대가 조심스럽게 남상망산 숲속을 뒤지고 있었다. 초휴가 외강경을 죽인 사실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안전을 위해 대부분의 무사들이 열 명으로 한 조를 이룬 것과는 달리, 이들은 운이 나빠 고작 다섯 명이었다.
‘그나저나 초휴란 놈이 머리가 모자란 건지 아니면 엄청난 고단수인 건지, 제 발로 북상망산을 벗어난 것도 모자라, 버젓이 통주부 한복판에 나타났었다니.’
초휴는 보란 듯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고 다니다가 급기야 남상망산으로 들어갔다. 남상망산은 북상망산에 비해 면적도 훨씬 좁으니, 그들이 작심하고 계속 뒤지면 결국 그를 잡는 건 시간문제일 터.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임무도 끝나는 것이다.
바로 그때, 오인조는 동시에 앞쪽에서 뭔가 수상쩍은 기척을 느꼈다. 즉시 달려가 보았더니 그들 앞에 나타난 건 뜻밖에도 남색 옷차림의 검을 든 무사였다. 그것도 선천경의 무사였다. 당연히 그자가 초휴일리 만무했다.
극북표설성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 대오의 대장격인 외강경 무사는 괜히 겁을 먹었던 게 약이 올라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어이! 뭐 하는 작자길래 이 야밤에 산속을 쏘다니는 것이냐?”
그러자 상대편도 지지 않고 핏대를 세웠다.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여기가 누구 앞마당인 줄 알고 제멋대로 구는 거냐? 죽고 싶어 환장했어!”
워낙 칠흑같이 어두운 밤인지라 상대 무사의 눈이 생기 없이 멍한 것을 다섯 사람 중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상대의 호통만 듣고 순간적으로 열이 뻗쳤다.
극북표설성이 어떤 존재인가. 북연의 정규군도 감히 손을 못 대고 비위를 맞추는 북방의 패주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런 특권의식에 오랫동안 젖어 있다 보니 각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안하무인격인 조직 문화에 물들어 있는 게 사실이었다.
또 문파 차원에서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으려는 자정의 노력을 보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윗물이고 아랫물이고 간에, 모두가 투견이나 쌈닭 같은 꼴일 수밖에.
상대편 무사의 도발은 사나운 야성을 감추고 있던 그들 다섯을 폭주시켜 버렸다.
선천경 나부랭이 따위가 감히 누구한테 대든단 말인가. 이에 극북표설성 측 대장도 화력의 강도를 높였다.
“네놈이야말로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있구나! 이봐, 강호에서 모가지를 오래 붙이고 다니려면 알아서 길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어르신 공경하는 법도 배우고 말이야. 오늘 이 어르신이 한 수 가르쳐주랴?”
그러자 상대편 무사는 다짜고짜 검을 빼 들었다.
순간 극북표설성 외강경 무사의 눈가에 살짝 경련이 일었다.
‘어럽쇼, 선천경 무사 주제에 맞짱을 떠보겠다고?’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건지, 눈뜬장님이라서 상대가 외강경인 줄 몰라보는 건지 가늠이 안 됐다. 어쨌든 선천경 주제에 칼을 빼 들었으니, 외강경을 모욕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터였다.
사실 외강경 무사는 상대를 가볍게 혼만 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량한 자비심마저 사라져버렸다.
‘일단 저놈의 버르장머리부터 고쳐놓고 보리라.’
그의 손바닥에는 음산하기 그지없는 한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괴이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그가 일장을 내지른 순간, 상대는 이성을 잃고 미친놈처럼 돌변했다. 딱히 검법을 펼칠 생각도 않고, 그렇다고 장법 공격을 막을 생각도 없이 무작정 자신을 향해 검을 찔러오는 게 아닌가. 결국 한빙강기(寒氷罡氣)가 실린 일장은 돌진해오는 상대의 가슴에 정통으로 명중되었다.
그 충격으로 저 멀리 나가떨어진 상대는 가슴팍이 심하게 함몰되어 버렸다. 그 무사는 선혈을 토해내며 제정신을 차린 듯, 무언가 말을 하려 입술을 들썩였다. 하지만 결국 한 글자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공격을 가한 외강경 무사는 자신의 손과 상대의 시신을 번갈아 쳐다보며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아니, 당황함보다도 황당함이 더 컸다.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미쳐도 곱게 미칠 일이지.’
처음부터 막무가내로 도발해 온 것은 그자였다.
그리고 막상 싸움이 붙으려고 하니 피하거나 제대로 공세를 갖추기는커녕, 촛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행동했다. 자살할 생각이었던 게 아니라면, 그자의 기이한 행동은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때 초휴는 열 장도 안 되는 거리의 나무 위에 숨어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호흡을 한껏 가라앉힌 상태였다. 거기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초휴는 속으로 외쳤다.
‘이제 나와라!’
그러자 저 멀리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창란검종의 외강경 무사가 일고여덟 명쯤 되는 수하들을 거느린 채, 앞장서 나타났다.
그들은 초휴가 일부러 남겨둔 흔적을 따라오던 길이었다. 그러다가 저편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뭔 일인가 싶어 황급히 달려온 것이다.
그들은 한순간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발걸음을 멈췄다. 가슴이 함몰된 채 땅바닥에 쓰러져있는 창란검종 무사의 시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사제!”
창란검종의 외강경 무사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극북표설성 무리에게 일갈했다.
“감히 너희 극북표설성 놈들이 우리 구역에서 우리 사람을 죽여? 창란검종이 그리도 만만해 보였더냐?”
극북표설성은 창란검종도 초휴의 추격에 합류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창란검종은 상대를 알아보았다. 초휴를 잡겠다는 양측의 목표는 같을지 몰라도, 그간 두 세력 간에는 아무런 교류도 없었다.
이는 비단 두 세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위군 종문과 북연 종문 간 관계 자체가 좋지 못한 탓에, 딱히 교류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이다. 오랜 세월 지속된 교류의 단절은 결국 오늘의 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자기들이 죽인 게 창란검종의 제자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아차린 극북표설성 무사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양측 모두 칠종팔파의 일원이었지만, 사실 극북표설성은 창란검종을 안중에 두지 않은 지 오래였다.
창란검종을 탈탈 털어봐야 죽을 날이 가까운 류공원 말고 딱히 내세울 만한 실력자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이제 류공원마저 손에 검을 쥘 힘이 남지 않게 되는 날엔 창란검종은 칠종팔파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건 이론상의 이야기고, 지금 여기는 엄연히 창란검종의 본거지인 위군이었다. 자기 종문의 제자가 자기 집 앞마당에서 피살당했다. 이는 창란검종 입장에서는 대놓고 모욕당하고 공격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극북표설성은 무조건 저들의 처분을 달게 받아야 할 처지였다.
입장을 바꿔 극북표설성이 지금 저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아마 그 분노가 저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전의 초휴는 이혼대법으로 한 명에게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시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의 정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열 명도 넘는 사람들 틈에 외강경이 둘이나 섞여 있는 바람에 초휴는 정신력의 소모가 가중되었다. 해서 그는 이혼대법을 사용하는 동시에 양손을 결인하여 쾌만구자결 중 자자결(者字訣)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자자결의 내사자인(內獅子印)!
복원력이 특징으로, 어떤 외력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어느덧 그의 몸속 진기가 끊이지 않고 맴돌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내사자인의 영향 아래 놓인 순간, 끊임없이 내력이 샘솟아 정신력으로 전환된 덕분에 정신력의 소모를 막을 수 있었다.
내사자인은 원래 상처 치료의 효과를 가진다. 격전의 와중에 중상이라도 입으면, 부상의 정도가 심해지지 않도록 내사자인으로 몸을 제어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몸이 아니고 정신력의 복원을 위해 쓴 것인데, 나름의 효과가 있었다.
한편,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극북표설성 무사는 상대를 회유하려 했다.
“여러분, 내 말 좀 들어보시오. 이건 순전히 오해에서 비롯된······.”
“오해는 무슨 얼어 죽을 오해! 우리 제자를 죽인 빚을 네놈 모가지로 갚아라!”
창란검종 무리의 우두머리격인 무사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시종일관 뱃속에서 천불이 치솟는 게 느껴졌다. 원래 매사를 온화하게 처리해온 그들이었다. 그런데 유독 이때만큼은 극북표설성이 해오던 방식 이상으로, 도를 넘게 격분하고 있었다. 마침내 창란검종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검을 겨누며 달려든 것을 신호로, 양 진영은 뒤엉켜서 격렬히 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극북표설성도 지은 죄가 있는지라 방어 위주로 싸웠다. 그런데 상대가 인정사정없이 치명적인 살초만 구사하는 통에 극북표설성도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뜩이나 온화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들이 지금이라고 해서 다를까.
양측은 그야말로 피 튀기는 혼전에 돌입하고 말았다. 워낙 싸움이 격화되어서, 초휴가 이혼대법으로 그들을 갈라놓으려 해도 여의치가 않을 정도였다. 해서 그는 이혼대법을 아예 거두어들였다. 온몸이 식은땀에 절은 건 물론이고 머리도 찌르듯이 아파 왔다.
“너무 과도하게 정신력을 소모했나?”
초휴가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천지교정음양대자비’가 구급 마공이라는 건 과장된 풍문이 아니었다. 이처럼 머리가 아픈 걸 보니, 비급 전체 중 일부지만 그걸 완전히 터득하기엔 아직 그의 실력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원래 완전히 터득하면 환상이나 꿈속에서도 부지불식간에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게 이혼대법이다. 나무 아래의 상황을 내려다본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떴다.
일단 싸움 붙이기 작전은 제대로 성공했다. 자기 발소리에 스스로 놀랄 정적 속에서 이처럼 엄청난 소란이 일었으니, 분명 남상망산에 투입된 수색조 대부분이 이를 감지했을 터였다.
이제는 남은 일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 앞마당을 침범당한 창란검종이 비굴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이상, 취의장과 극북표설성 무사들이 위군에 계속 머물기는 어려워질 게 뻔했다.
이윽고 동틀 무렵, 백금호와 맹원룡은 수풀 사이에 나뒹굴고 있는 수십 구의 시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느끼는 참담함과 막막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멀쩡히 잘 다니던 수색조가 어째서 창란검종과 싸움이 붙었으며, 싸움의 규모는 왜 이리도 컸단 말인가. 싸움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생존자의 입을 통해 이미 들은 상태였다.
물론 극북표설성 쪽이 성급하고 무모했던 건 사실이다. 상대가 선천경인 것을 깔보고 다짜고짜 화약에 불을 붙였으니까. 하지만 창란검종도 과도하게 흥분했던 면이 없지 않았다. 그저 선천경 하나 죽은 걸 갖고 상대의 해명에 귀를 틀어막은 채, 막무가내로 칼을 겨누었다. 그 결과로 양측의 사망자만 수십 명에 달하는 대참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동안 말을 못 잇던 맹원룡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곱게 넘어가기 어렵겠구려.”
“그걸 누가 모르겠소? 하지만 기왕 이리된 걸 어쩌란 말이오. 우리 사람도 적잖이 죽어 나간 판국에.”
백금호가 짜증이 어린 표정으로 받아쳤다.
그때 멀리서 검객 백여 명이 질주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무리의 수장으로 보이는 자는 붉은색과 남색, 이렇게 두 자루의 장검을 등에 멘 모습이었다. 얼핏 육순은 되어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저자는 류원공의 대제자인 ‘염상검(炎霜劍)’ 두광신(竇廣臣)이 아닌가!”
백금호와 맹원룡의 인상은 더욱 일그러졌다.
두광신은 겉모습과는 달리 백 살이 넘은 자로, 창란검종에서 류공원 다음가는 자로서 창란검종의 이인자라 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창란검종이 호의적인 생각으로 저런 거물급을 내세울 리가 없었다. 그들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백금호가 먼저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두 형, 간밤의 일은 실로 오해에서 비롯되었으니, 바라건대······.”
하지만 두광신은 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냉랭히 퇴거령을 내렸다.
“사흘의 말미를 줄 테니, 당장 위군에서 나가라. 그러지 않을 경우, 사존(師尊)께서 직접 출수하실 것이다. 사존께서 지난 십년간 검을 들지 않으셔서, 혹여 그대들이 잊었을까 보아 내 한마디만 덧붙이지. 사존의 검은 강줄기도 끊고 산도 깎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할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