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80)
1280화 먼 곳부터 구원하다 (1)
허천애와 방백도는 시선을 교환했다. 복잡한 표정이 스쳐 갔다.
죽기로 싸울 것인가, 투항할 것인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차마 용령아와 낙비홍을 내쫓을 수 없었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난 제자는 대개 절정급 대문파의 차지가 된다.
여기 두 사람의 자질과 잠재력은 그들이 만나본 후기지수 중에서 제일 대단했다. 원래 가르치던 제자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따라서 의발을 전수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아예 그들 자신, 심지어 역대 조사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물론 용령아와 낙비홍이 초휴 쪽 사람이라는 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들은 원래 초휴의 사람이면서 자신들을 사부로 모신 것이다.
고작 몇 달 만에 두 제자가 ‘어둠을 떨치고 밝은 길로 나오도록’ 이끌 수 있었을까? 그들조차 자신의 매력이 그리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참 침묵한 끝에 방백도가 말했다.
“그대가 엽유공을 죽였고 우리가 여기서 물러난다 한들, 이번 싸움은 동역의 패배다. 천하검종이 노리는 건 곤륜마교가 아니라 동역 전체니까. 지금 능소종과 황천각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아직 모른다. 그쪽에는 무선이 더 많은데 어찌 싸우겠다는 건가? 능소종과 황천각이 멸문당하면 곤륜마교 혼자 버티지는 못할 텐데?”
초휴는 태연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가 간다면 결과는 달라질 거요. 나는 천하검종의 계획을 모조리 알고 있었는데 아무런 준비를 안 했을 것 같소? 더군다나 천하검종도 내가 들이닥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겠지.”
방백도와 허천애의 안색이 일시에 변했다.
본래 천하검종의 계획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초휴의 존재, 곤륜마교의 존재 자체가 최대의 변수인 것이다.
초휴는 힘주어 말했다.
“두 분, 일이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중립을 지킬 여지가 없소이다. 대쟁지세는 이미 시작되었소. 두 분이 산으로 돌아가려 해도 누군가는 산속에서 당신들을 끌어낼 거요. 지금 여기 두 가지 길이 있소. 첫 번째, 내가 당신들의 두 제자를 죽였으니 이제 두 제자를 보내서 갚는 거요. 옛 앙금과 원한을 모두 털어내고 지금부터 손을 잡는 겁니다. 약속하건대 우리 곤륜마교가 있는 한 진룡과 고월 일맥은 영원히 전승될 것이오. 두 번째는, 오늘 이 자리에서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워 끝장을 보는 거요. 두 분이 마음 가는 대로 고르시구려.”
초휴의 말을 듣고 허천애와 방백도는 시선을 교환하더니 침묵에 빠졌다.
한참 지난 뒤 용령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사부님.”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 그 사부님 한 마디는 방백도의 투쟁심을 은근히 완화해준 듯했다. 그는 코웃음을 쳤다.
“정녕 나를 사부로 모실 셈이면 환월륜부터 풀어야 할 게 아니냐?”
용령아는 저도 모르게 초휴를 바라보았다. 초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곧장 환월륜의 금제를 풀고, 공손한 태도로 그것을 방백도에게 바쳤다.
방백도는 콧방귀를 뀌었다.
“되었다. 네가 계속 쓰거라. 나는 한 번 준 것을 다시 받지 않는다.”
방백도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물론 정말로 마음속에 한 가닥 앙금조차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 선택이 그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이었다.
초휴가 크게 웃었다.
“여러분, 지금 이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될 거요.”
허천애가 코웃음을 쳤다.
“옳다고? 일단 눈앞의 위기부터 해결해야 할 게 아닌가. 지금 천하검종과 전무신종은 각각 능소종, 황천각을 포위 공격하고 있소. 엽유공을 죽이느라 중상을 입은 몸으로 어떻게 동역의 형세를 만회할 텐가? 곤륜마교의 실력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 최절정 전력은 몇 명 없지 않소. 천하검종에는 사대 검존이 있단 말이오.”
허천애와 방백도는 이미 패배를 인정했다. 명분상으로야 초휴와 손을 잡고 화해했다지만 실제로는 투항이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원한이 쌓여있는 상태인지라 허천애는 무의식적으로 초휴에게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초휴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방백도에게 말했다.
“방 존자, 고월 일맥에는 비법이 많지요. 비법 중에 이월대법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소이다. 기혈의 힘을 순식간에 움직여 육신에 보탤 수 있다고 말이오?”
방백도는 언짢은 기색으로 용령아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런 정보는 필경 이 깜찍한 배반자가 알려주었을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그녀를 질책해봐야 쓸데없는 일이기는 했다.
방백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소. 하지만 초 교주의 상세가 너무 심한지라, 완전히 몸을 고치려면 무선 강자를 찾아야 하오. 하지만 그리되면 그 무선은 일시적으로 기혈이 부족해져 움직이지 못하게 되겠지. 무선을 회복시키려고 무선 하나를 소모하는 건 좀 밑지는 장사 같은데?”
초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선까지는 필요 없소. 내 휘하에 천지통현 무사가 한 사람 있는데, 기혈의 힘이 너무 넘쳐나서 주체를 못 해 고민일 정도라서 말이오.”
그렇게 말하는 초휴의 눈이 육강하를 향했다.
육강하는 일순 온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 * *
육강하는 초휴가 자신한테 인정머리 없이 군다고 생각했다. 좋은 일은 다 남의 몫으로 주고, 꼭 이럴 때만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다니 말이다. 초휴에게 또 피를 빼앗길 판이 되자 그는 다급해졌다.
“이것 봐, 초 교주님! 나를 아주 죽일 작정이야? 교주의 육신은 진청제보다 더 강할 정도인데 고작 내 기혈 정도로 어떻게 소모된 걸 메꾸겠다는 거냐고!”
육강하가 겁먹은 것을 보고 여봉선이 웃었다.
“나도 보태지. 우리 둘의 힘이면 충분할 겁니다.”
방백도는 여봉선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까지 더한다면 괜찮을 것 같군.”
초휴도 사양하지 않았다.
“여 형, 고마워.”
육강하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내 피를 먼저 뽑으려 했으면서 왜 나한테는 인사가 없어?”
초휴는 그를 무시하고 방백도에게 이월대법을 펼치도록 했다.
고월 일맥의 각종 비술은 정말 신비롭고 기이한 것이 많았다. 지금 초휴 정도의 상세면 단약을 볶은 콩처럼 마구 집어삼켜도 한 달은 넘어야 완치가 될 터였다.
그러나 방백도가 비술을 써서 여봉선과 육강하의 기혈을 뽑아서 옮기자 단숨에 정상적인 몸 상태로 회복되었다. 소모한 힘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가는 동안 회복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어쨌든 세상에 완벽한 존재란 없는 법이다. 고월 일맥의 각종 강한 비술은 놀랍고도 신이했으나 전투력은 좀 낮은 편이었다.
역대로 고월 일맥과 진룡 일맥이 사이좋은 맹우로 지내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으니까.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던 초휴는 상천량 쪽에 손짓했다.
“한강성 잔당부터 정리합시다.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마세요.”
상천량과 사람들은 항복하지 않는 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묻지 않았다. 강호 바닥에서 하루 이틀 굴러먹은 것도 아닌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한강성 무사들이 모두 정리되자 초휴는 손을 저어 무근성화의 진법을 거두었다. 그는 방백도에게 물었다.
“방 존자, 지금 우리를 한강성으로 전송할 수 있겠소?”
방백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낼 수는 있소. 한강성의 좌표를 넣은 진반을 만들어 놓았으니까. 다만 내 힘이 부족하니, 이 많은 사람을 한 번에 보낼 수는 없소. 많아 봐야 백 명 아래요.”
초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위서애에게 물었다.
“위 선배님, 한강성이 황천각에서 가까울까요, 능소종에서 가까울까요?”
위서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능소종이 좀 더 가깝겠군그래. 황천각에 갈 거라면, 여기서 가나 한강성에서 가나 마찬가지겠지.”
방백도는 자신이 초휴 일행을 한강성으로 보내주면 얼른 능소종부터 가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초휴는 느닷없이 말했다.
“총단에는 수비 병력만 조금 남깁시다. 여 형, 육 형, 여기는 두 사람한테 맡기지. 마침 기혈도 거의 다 썼으니 더 싸우기도 어려울 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나와 함께 황천각을 도우러 갑시다.”
방백도는 일순 멍해졌다.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부터 간다고? 어째서 그런 짓을?
하지만 그는 금세 뭔가 떠올린 것처럼 낯빛이 돌변했다. 초휴를 바라보는 표정이 복잡해지더니 급기야 은은한 두려움까지 한 가닥 섞여 있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자신의 실력이 그리 많이 떨어지지 않는데도 초휴처럼 문파를 새로 세울 수 없었는지.
종문을 창건하고 문파를 세우려면 실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시커먼 속셈과 지독한 수단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심혈을 기울여 세운 종문이 두 세대도 못 가서 남의 손에 망하게 될 테니까.
* * *
그때 황천각 무사들은 전무신종 및 대천문 사람들과 사생결단을 보자는 수준으로 싸우고 있었다.
두 문파는 기습해서 협공을 퍼부었다. 진법에 능한 대천문 때문에 황천각의 방어 진법이 모조리 깨져나간 바람에 사람의 목숨으로 메우는 수밖에 없었다.
종추수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쓴 끝에 황천검으로 목신소와 사공가라를 물리쳤으나, 이제는 그 역시 기력이 바닥났다.
도잠명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목 종주, 총공격하시지요. 더 시간 낭비할 것 없이 단숨에 황천각을 멸합시다.”
목신소는 손을 내저었다.
“슬픔에 빠진 군대가 이긴다는 말이야 과장이지만, 그래도 비분강개해서 터뜨리는 힘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법이오. 도 문주, 너무 서두르지 맙시다. 피차 어렵게 키워낸 제자들인데 가급적이면 죽을 길로 몰아넣는 건 피해야지 않겠소? 좀 더 기다렸다가 팽팽히 당겨진 실이 버티지 못하고 끊어질 것 같을 때 칩시다.”
전무신종은 줄곧 강대한 육신의 힘과 근접전 능력으로 대라천에 명성을 떨쳐왔다. 사람들은 전무신종 무사라면 으레 거칠고 단순한 거한을 연상했다.
그러나 지금 목신소의 눈은 음모와 계략으로 번뜩였다. 심지어 도잠명으로서도 못 따라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시진쯤 지나자 이제는 황천각 제자 전원이 몰려나왔다. 목신소는 여전히 출수하지 않고 크게 외쳤다.
“동역은 쇠약해졌고, 황천각은 이미 기울었소. 왜 황천각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려 하는가? 황천각이 없어도 우리 전무신종이 있소! 황천각 제자들은 들으시오. 지금이라도 투항한다면 우리 전무신종의 이름을 걸고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전무신종의 제자로 받아주겠소. 장차 우리 남역이 완전히 동역을 집어삼키면 지금 황천각의 세력 범위는 그대로 여러분의 것이오. 그저 위에 걸린 이름만 바뀌는 것뿐이지. 기회는 단 한 번! 우리 전무신종에 들어와 새로운 대쟁지세를 맞이할 것인가, 황천각과 함께 그대로 죽음의 길로 갈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이 하시오!”
황천각은 제자 전원을 다 내보냈다. 죽기를 결심하고 싸우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누구 할 것 없이 기세가 최고조로 치솟았고 다들 죽음도 불사할 기세였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전무신종이 공격하는 대신 투항을 권유하자, 일부는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숨에 기세를 끌어올렸는데 조금이라도 김이 새어 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법이다.
초휴는 예전 황천각에 있었을 때부터 황천각 내부의 빈틈, 혹은 약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단결력이 부족했다.
전에는 노각주가 있었다. 일 처리가 공평무사했고 황천각을 위해 심혈을 다하는 그를 황천각 사람 모두가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새로 각주가 된 이무상은 자기 심복을 키우는 데만 열중하고 반대 세력은 억눌렀다. 결국은 황천각 무사들 모두 마음이 떠나고 말았다.
대부분은 종추수 편에 서거나 아예 조직의 안위는 외면하고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했다.
종추수가 새로 각주가 되었으나 구성원들 모두의 정신을 바꾸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했다. 그로서도 이런 상황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지금 황천각을 위해 죽기로 싸우려는 자는 종추수의 심복이거나 옛날 노각주에게 발탁된 사람들로 원래 황천각에 충심이 깊은 부류였다. 본래 이무상에게 예속되어 있던 자들, 그리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 관심이 큰 중립 무사들은 마음이 흔들렸다.
무사 하나가 대놓고 무기를 내던지더니 크게 외쳤다.
“투항하겠소! 나는 전무신종에 들어가겠소!”
그 무사의 실력은 그리 약하지 않았다. 천지통현 장로로 황천각의 고위층에 속했다.
그가 물꼬를 트자 연쇄 반응이 일어난 것처럼 다른 황천각 무사들도 분분히 투항하기 시작했다. 단번에 삼 분의 일에 달하는 인원이 투항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