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82)
1282화 능소종의 장렬함
고존으로 살아온 방백도와 허천애는 종문에서 내분과 암투를 일삼아온 노회한 자들에 비해 수단이 모자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순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천하검종의 협박을 받고 온 건지라 본래 전력으로 싸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공공연히 천하검종을 배반하고 초휴에게 의탁했다. 여기서까지 건성으로 싸우면 양쪽에 다 미움을 사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의 방백도와 허천애는 조금도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사공가라가 두 사람 중 어느 쪽과 싸워도 백중지세였다. 허천애의 실력이 좀 더 강했지만, 방백도와 힘을 합치면 너무도 호흡이 잘 맞았다.
무선 칠중천과도 겨룰 수 있을 정도인지라 사공가라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방백도가 나서고 고작 몇 초 만에, 사공가라는 허천애에게 숨이 끊어졌다.
전무신종을 통틀어 무선은 두 명뿐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죽은 것이다. 목신소는 분노와 원한으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성이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초휴와 방백도, 허천애까지 셋을 한꺼번에 상대하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러면 자신은 영원히 이곳에 묶이게 될 터였다.
그래서 목신소는 재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그는 미친 듯이 온몸의 기혈을 불태우더니, 핏빛 유성처럼 공간을 가르며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였다.
그러나 사라지기 전 그는 흉흉한 눈으로 방백도와 허천애를 노려보는 걸 잊지 않았다. 그것은 농후한 살기가 가득한 시선이었다. 원흉이자 수괴인 초휴보다도 배반자 둘이 더 증오스러웠던 것이다.
목신소가 도망치자 초휴도 굳이 쫓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무근성화로 만들어낸 진법 따위가 없으니 무선 육중천이 도망친다면 초휴로서는 따라잡을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만일 상대의 힘이 바닥나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쯤이면 이미 남역까지 다다른 뒤일 것이다. 지금 초휴에게는 전무신종 따위를 잡도리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번 싸움에서 전무신종이 입은 손실은 경악할 정도였다. 우선 전신전 전주 사공가라가 죽었다. 그리고 황천각을 공격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곤륜마교의 공격에 대거 죽어 나가 거의 태반이 숨진 것이다.
이 정도면 전무신종으로서는 원기가 크게 상했다고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도 영영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일지도 몰랐다.
종추수와 육삼금 등 황천각 사람들은 그제야 다치고 피로한 몸을 이끌고 초휴에게 다가와서 대례를 올렸다.
“초 교주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초 교주가 나서주시지 않았다면 대라천에서 황천각의 이름은 영영 사라졌을 겁니다.”
초휴는 종추수를 부축해 일으켰다.
“나도 황천각 출신 아닙니까. 노각주도 내게 후히 대해주셨으니까요. 황천각이 위급하면 당연히 도와야지요. 더군다나 남역 무리가 우리 동역을 노리는 판에 어찌 수수방관하겠습니까? 내가 엽유공처럼 제 잇속만 챙기는 자도 아니고요.”
종추수는 길게 탄식했다.
그는 마음이 너무나 복잡했다. 곤륜마교 창건 때의 위세를 보았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초휴를 대등하게 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대쟁지세는 이미 도래했다. 무선이면 무엇하나? 일만년의 대문파면 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까지의 규칙과 상식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모든 것은 실력에 달렸다. 황천각은 실력이 없으니 황천검이 있어도 별수가 없는 것이다.
종추수는 이제야 절실히 깨달았다. 병기 하나로는 황천각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초휴가 손짓을 해서 황천각을 배반했던 무사들을 모두 데려오게 했다. 격렬하게 반항하는 자들은 죽였고, 나머지는 살려서 잡아 왔다.
초휴는 나직하게 말했다.
“종 각주, 이 배반자들은 각주께 처리를 맡기겠습니다. 어쨌건 황천각 사람이니 그게 합당하겠지요. 나는 능소종을 구하러 가야 하니 여기 오래 있기 어렵군요.”
종추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놓으시구려. 이 배반자들은 내가 처리하지요. 초 교주께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내거시시기를 빕니다.”
그렇게 말한 종추수는 조금 전 서슴지 않고 황천각을 배반했던 무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빛에서 삼엄한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이들의 목숨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적보다 배반자가 더 증오스러운 것은 언제나 진리인 법이니 어찌 이들을 용서하겠는가.
이번에 살려주어 봐야 언젠가 또 배반할 게 아닌가. 배신이란 한 번 하면 두 번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배반자에게 사실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 * *
곤륜마교에서 황천각에 올 때 초휴는 아주 서둘렀다. 그러나 황천각에서 능소종으로 가는 지금은 속도를 늦췄다.
명분은 곤륜마교 무사들이 연달아 큰 싸움을 치러 힘의 소모가 매우 크니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실이 무엇인지 방백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입 밖에 낼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눈보라를 맞고 추위에 떠는 자에게 숯을 갖다 주는 것과 비단길을 걷는 자에게 꽃을 주는 것, 더 환영받는 건 당연히 전자 아니겠는가. 아니, 어쩌면 초휴한테는 상하고 다친 동역이 강대한 동역보다 쓸모가 많은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능소성 전투는 초휴의 생각보다 훨씬 격렬했다. 쌍방이 모두 목숨을 던질 기세로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능소종은 이 전투가 동역 전체의 생사를 가른다는 것을 잘 알았다. 지금 동역 문파의 으뜸은 능소종이다.
황천각이나 곤륜마교는 굴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능소종만은 그럴 수 없었다. 천하검종 역시 그들의 투항을 받아줄 리는 없는 것이다.
천하검종도 이번 싸움을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그러니 승리만이 있을 뿐, 패배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능소무극인이 능소성보다도 큰 산처럼 변하더니 내리 떨어졌다. 거대한 원기의 파도가 몰아치는 위세에 하늘이 기울어질 듯했다.
동시에 나산이 통천검을 쥐었다. 칼끝의 예기가 창공을 찢어발겼다.
그 강대한 힘이 능소무극인과 충돌하자 주변 원기의 법칙이 부서져 나가면서 십여 리에 달하는 거대한 파장이 일었다. 심지어 태양마저 그 강대한 파동에 가려 근방 십여 리가 일순간에 어두워졌다.
방응룡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그는 이미 거의 힘을 다 써 버린 것이다.
전에는 늘 셋이서 힘을 합쳐 능소무극인을 다뤘으나 지금은 혼자였다. 힘의 소모가 곱절로 늘 수밖에 없었다.
영호선산과 진백원은 진법에 의지해 간신히 천하검종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연신 나가떨어지며 밀린 끝에 이미 진법 한가운데까지 몰린 상태였다.
셋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진백원은 더 싸우다가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방응룡은 처연하게 웃었다. 현재의 능소종이 역사상 가장 실력이 강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가장 약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능소종이 자기 대에 멸망하리라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나산을 올려다보더니 미친 듯이 웃었다.
“나산, 천하검종이 동역을 점령하면 불종이나 도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자격과 실력을 갖추리라 믿나? 어리석은 망상일 뿐이다! 우리 능소종이 지키지 못한 동역을 천하검종이 지킬 것 같은가? 늙다리 놈아, 나와 함께 무덤으로 가자!”
방응룡의 말이 끝나자 전신에서 혈무가 확 터져 나왔다. 자폭으로 터져 나온 기혈의 정수가 한 줄기 금빛 원신으로 화하더니 능소무극인에 녹아들었다.
“종주님!”
순간 수많은 능소종 제자들이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방응룡은 스스로 육신을 부순 것이다. 그는 원신과 피와 살을 모조리 능소무극인에 녹여 넣음으로써 마지막 패를 던졌다. 이로써 능소종은 사실상, 이 싸움에서 패한 셈이었다.
그러나 능소종 제자들의 자질은 참으로 비범했다. 황천각의 일부 제자들은 종문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리자 투항을 했다. 그러나 능소종 제자들은 오히려 더 강한 힘을 발휘하며 목숨을 걸고 눈앞의 적을 죽였다. 심지어 동귀어진해서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저승으로 데려가려 했다. 천하검종의 손실은 삽시간에 크게 늘어났다.
방응룡의 육신, 원신과 결합한 능소무극인이 눈을 찌르는 핏빛을 터뜨렸다. 허공을 사정없이 떨리게 하는 힘이었다. 주변 천지 법칙이 깨져 나가더니 급기야 능소무극인을 중심으로 거대한 공동이 생겨났다.
능소무극인과 통천검을 비교하면 강약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방응룡이 나산보다 약한지라 줄곧 열세에 처했던 것이다. 이제 방응룡이 목숨을 바쳐 일격을 날림으로써 쌍방은 같은 층위에 서게 된 셈이었다.
허공의 능소무극인을 바라보던 나산이 탄식했다.
“무엇 하러 저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그 한마디를 뱉는 순간 능소무극인이 폭발하듯 떨어져 내렸다. 나산만이 아니라 거기 있던 모두가 그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천지 용맥 자체에 속한 강대한 힘을!
거대한 인결이 떨어져 내리자 하늘을 무너뜨리고 땅을 꺼뜨릴 듯했다. 그러나 지룡이 용트림하는 것처럼 강력한 힘이 그들을 발아래부터 붙들고 있었다. 무선이라 해도 공중에 떠오르기가 불가능했다.
그 인결은 아래쪽의 모든 무사를 겨누고 있었다. 땅과 충돌하는 순간 능소종 무사건, 천하검종 무사건 모조리 짓눌려 고깃덩이가 될 게 분명했다. 의심의 여지 없는 동귀어진의 수였다.
다음 순간 나산이 손을 휙 젓자 통천검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는 땅바닥에 정좌하더니 인결을 맺었다. 원신이 흘러나와 통천검에 달라붙어 검령을 대신하더니 능소무극인을 베어 들어갔다.
통천검의 힘이 아무리 강한들 병기에 불과하다. 검령은 영성이 있지만 그래 봐야 역시 검령일 뿐이다.
반면 나산은 당금 천하의 검도 제일인이었다. 그의 원신으로 검령을 대신하면 진정한 인검합일의 경지로, 통천검 최강의 힘을 끌어내는 게 가능한 것이다.
극한의 힘과 천지를 꿰뚫을 듯 강대한 검광이 부딪쳤다. 힘, 법칙, 공간, 원기, 모든 것이 그 충돌로 부서져 나갔다.
하늘에 거대한 공동이 생겨나고 보이는 건 인결과 검뿐이었다. 시간과 공간이 그 구역에서 정지해 버린 듯했다.
다음 순간 능소무극인에 한 가닥씩 균열이 가더니 결국은 굉음을 내며 산산이 터져 나가고 말았다.
능소종 무사들의 눈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이제 능소종은 정녕 멸문할 수밖에 없단 말인가?
능소무극인이 통천검만 못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방응룡은 나산만 못했다. 방응룡이 목숨을 던졌으나 천명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통천검은 나산의 손으로 복귀하고 원신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짧은 순간에 나산의 낯빛은 완전히 변해서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원래 나산은 많이 늙었으나 지금은 아예 생명력을 전부 써 버린 듯했다. 얼굴은 주름져서 두 눈이 덮일 지경이었고 눈은 혼탁하기 그지없었다. 온몸에서 썩어가는 기운이 풍겼다.
나산은 몸을 일으켰으나 부들부들 떨더니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옆에 있던 천하검종 무사가 부축하려 했으나 나산은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니다. 능소종부터 해치워라.”
능소종 무사들은 방응룡이 죽자 완전히 절망에 빠진 상태였다.
절망에서 곧장 광기로 빠져든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영호선산이었다. 영호선산은 본래 성격이 냉정한 편이었고 말수도 아주 적었다. 그러나 방응룡은 그의 사형으로 어려서부터 그를 잘 돌봐주었다.
그런 방응룡이 눈앞에서 죽은 것이다. 이제 능소종의 패망은 돌이킬 방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영호선산은 정혈에다 원신까지 불사르기 시작했다. 기세를 극한까지 폭발시킨 그는 진법에서 뛰쳐나가 죽기로 싸우려 들었다. 진백원이 말리려 했으나 미처 잡지 못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양측의 격차는 너무 컸다. 성구연과 모백상, 두 칠중천 무선이 쌍검을 이뤄 덤벼들자 몇 초 만에 영호선산은 죽고 말았다.
능소종의 양대 무선이 그렇게 죽자 선대 노종주인 진백원도 광기에 빠져들었다.
“천하검종! 정녕 우리 능소종을 멸문하려 든다면 나도 너희와 동귀어진하겠다! 오백년 전의 그 존재가 우리 능소종에 봉인되어 있는 건 알 테지. 이제 그자를 풀어주는 수밖에! 다 같이 죽기밖에 더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