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83)
1283화 질 수 없다
진백원이 피를 토하듯 말하자 나산이 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쓸데없는 허장성세는 그만두시오. 오백년 전 싸움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내막은 나도 알고 있으니까. 대라천 전체가 능소성에 그 존재를 가두도록 결정하기는 했소. 그러나 실제로 능소종에서 한 건, 고작 비경을 하나 제공한 것뿐이잖소. 진정으로 그 사람을 봉인한 것은 구중천 최절정의 무선 아홉 명이오. 능소종 혼자서 그걸 풀 수 있을 리 없지. 걱정하지 마시오. 그자의 두려움은 나도 들은 바가 있으니. 능소종을 멸문한 후 우리 천하검종이 잘 지켜서 날뛰지 못하게 할 테니까.”
그 순간 진백원은 완전히 절망에 빠졌다. 머리가 아득하고 어지러웠다.
방응룡이 죽었다. 영호선산도 죽었다. 마지막 비장의 패였던 능소무극인까지 부서졌다. 이제 능소종은 무슨 수로 천하검종을 막는단 말인가?
나산이 막 천하검종에 생사를 따지지 말고 총공격하라고 명하려는데, 누군가 멀리서 말했다.
“동역 일은 동역이 알아서 해결해야지. 그분을 천하검종이 왜 단속한단 말인가!”
목소리를 들은 진백원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나산과 천하검종 무사들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멀리서 곤륜마교 무사들이 벌떼처럼 몰려오더니 즉각 전장에 뛰어들었다. 이미 적잖게 힘을 소모한 천하검종 무사들은 막아낼 힘이 없어 연신 뒤로 물러났다.
모백상의 눈에 노기가 스쳤다.
“엽유공은 뭘 한 건가? 팔중천 무선이 초휴 하나를 해치우지 못했다는 건가! 그를 제외해도 허천애와 방백도 둘이 힘을 합치면 칠중천과도 능히 견줄 만하건만 어쩌다 패한 거지?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초휴 뒤에 선 방백도와 허천애가 모백상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낯빛이 돌변하더니 성구연에게 눈을 돌렸다.
두 사람이 초휴 등 뒤에 서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를 자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 둘은 성구연이 데려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배반하고 초휴에게 붙은 마당에, 성구연이 할 말이 전혀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성구연의 낯빛도 음침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방백도와 허천애한테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오? 제자를 죽인 원한을 따지지 않고 강물에 흘려보내겠다는 거요? 우리를 배반하고 초휴의 사냥개가 되겠다고?”
황천각 싸움 후로 허천애와 방백도는 자신들의 처치를 새삼 뼈저리게 자각했다. 어차피 배반자 꼴이 되어버린 데다가, 이미 초휴 측에 붙기로 선택했다. 그럼 뭘 망설이겠는가?
방백도는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 없이 담담했다.
“성구연, 원래 나서지 않으려 했던 우리를 억지로 끌고 나온 자가 누군가? 당신도 말했지. 대쟁지세는 이미 도래했다고. 고존이라 해도 홀로 평안히 살 수 없으며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한다고. 초 교주는 웅대한 재주와 지략을 지녔고 잠재력이 무한하오. 장차 가장 높은 곳에 오를 게 확실하니, 우리가 초 교주 편에 선 것은 착한 새가 나무를 가려 앉은 것과도 같소, 뭐가 그리 잘못됐단 말인가?”
방백도가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자니 성구연은 일순 화가 솟구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초휴는 진백원 한테 다가가더니 죄스럽다는 표정으로 탄식했다.
“노종주, 내가 너무 늦었습니다.”
진백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능소종의 노종주는 떨면서 말했다.
“아니오. 초 교주가 우리 능소종을 구해 주실 수만 있다면 늦은 게 아니외다. 종주도 영호선산도 죽었소. 이 늙은이는 본래 저들과 동귀어진할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살아날 기회가 생겼으니 어찌 늦은 것이겠소? 오늘 이 늙은이가 초 교주께 청할 것은 하나뿐이오. 천하검종을 멸문해 준다면 오늘부터 우리 능소종은 기꺼이 곤륜마교의 뒤를 따를 것이오!”
초휴는 진백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노종주, 그런 말씀은 거두십시오. 남역에서 우리 동역을 노리고 쳐들어왔으니 당연히 연합하여 맞서는 게 도리지요. 나 초휴는 절대로 남의 위기를 틈타 잇속이나 챙기는 파렴치한 소인처럼 굴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맺은 초휴는 앞으로 나섰다.
“나 종주, 여러분, 다들 살아있는 나를 보게 되어 실망이 크겠소이다.”
나산은 고개를 저었다.
“실망하지 않았네. 다만 이해가 가지 않는군. 나는 알고 있었네. 엽유공은 이미 무선 팔중천에 올랐지. 이치대로라면 질 리가 없을 텐데? 방백도와 허천애도 그렇군. 고존 일맥은 전승을 가장 중시하지. 제자를 죽인 원수와는 불공대천인데, 어떻게 저들이 돌아서도록 한 것인가? 모르겠군. 노부는 도무지 모르겠네.”
초휴는 담담했다.
“모르겠으면 그냥 계속 모르고 계시구려. 나 종주, 이번 싸움은 천하검종의 패배요. 동시에 당신들 남역의 패배이기도 하지.”
나산은 이미 주름으로 가득 찬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마 다시는 통천검을 쥘 수 없을 터였다.
그는 가볍게 웃었다.
“패배? 우리 천하검종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렀는데 그리 쉽게 패배를 입에 담으면 곤란하지. 우린 질 수 없네. 천하검종은 이미 질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단 말이지. 여러분, 지금부터는 곤륜마교도 상대해야겠구려. 다들 아직 검을 들 수 있나? 노부는 이제 안 될 것 같네. 천하검종의 앞날은 여러분에게 맡기도록 하지.”
모백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산에게 돌아온 답은 하늘을 찌를 듯한 검광이었다.
천하검종의 다른 두 검존, ‘구유검존’ 역귀사와 ‘벽해검존’ 명지란도 동시에 나섰다.
성구연 역시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이미 천하검종과 생사를 함께 하는 셈이니 퇴로가 없었다. 오직 싸우는 길뿐이었다.
초휴는 모백상과 맞서고, 방백도와 허천애는 함께 성구연을 상대했다. 둘이 힘을 합하면 칠중천과 비교할 만했으니 성구연을 이기기는 어려워도 잡아두는 것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머지 둘 중 사중천인 명지란은 진청제의 표적이 되었다. 진청제는 진정한 무선이라 할 수 없었으나 그의 전투력은 적어도 삼중천 무선과 비견할 만했다. 명지란을 상대하는 게 쉬울 리는 없었으나, 그래도 열세에 몰리지는 않을 터였다.
위서애는 이미 먼젓번 싸움에서 소모가 컸고, 진백원도 큰 싸움을 치른 직후라 피로가 막심했다. 그러나 고작 삼중천인 역귀사를 두 사람이 함께 상대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일순 전장에서 치고받는 쌍방의 세력은 기묘한 평형을 이루었다.
이것은 최후의 일전인 동시에 동역과 남역의 승부가 달린 일전이었다. 모백상은 이 싸움이 가져올 결과를 잘 알았다.
천하검종은 이미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니 절대로 질 수 없었다.
그 순간 모백상이 전력을 다하자 무수한 검광이 해를 가리듯 덮쳐들었다. 허공이 온통 밝게 빛나는 칼날투성이였다. 정오의 태양보다도 눈부신 찬란한 검광이 초휴를 향해 빽빽하게 날아왔다.
초휴는 일도를 휘둘렀다.
탄천의 일도!
그러자 무수한 검광이 시커먼 공동에 삼켜졌다. 오로지 힘으로 만 가지 법술을 부순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가장 눈에 띄지 않던 검광이 공간을 넘은 것처럼 확 나타났다. 그것은 꽁무니에 기다란 별빛을 단 채, 탄천이 만든 공동을 건너뛰어 초휴의 코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검광 한 줄기는 정말로 눈에 띄지 않았으나 허공을 찢어버릴 듯한 강대한 검의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모백상의 성명절기, 신통 천성소검(穿星小劍)이었다.
그 어떤 공간 법칙이 가로막아도 무시한다. 검을 뽑으면, 반드시 적중한다.
방칠소의 인과 검도와 달리 모백상의 일검은 공간 법칙을 연구한 깨달음에서 온 것이었다. 이 공간 안에 존재하는 한, 천성소검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순간 초휴의 몸이 폭발하듯 불어났다. 법천상지를 펼침과 동시에 성마불멸신까지 덧씌웠다.
초휴의 기세는 순식간에 극한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천성소검이 성마불멸신에 부딪힌 순간, 불광과 마기로 만들어진 갑옷은 단번에 깨져 나갔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한 줄기 검광이 수천 장에 달하는 마신의 몸뚱이를 지닌 초휴를 밀어붙였다. 그는 수백 장을 물러나고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천성소검 역시 초휴의 법천상지를 꿰뚫지는 못했다. 마신의 신체는 힘만이 아니라 방어력 또한 강대했다.
“이제 내 차례다!”
초휴가 주먹을 내찌르자 공간이 진동하며 산하가 기우는 듯했다. 극한에 가까운 법천상지의 힘을 담은 일권이 떨어졌다.
주변 허공이 진동했다.
모백상은 무슨 수를 써도 그 극한의 힘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는 주먹 세 번에 나가떨어져 땅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지금 초휴의 힘은 대단히 독특한 상태였다. 대부분 무선에게 경지란 법칙을 얼마만큼 장악하고 있는지를 의미한다. 지금 초휴의 법칙 장악력은 그의 경지를 뛰어넘는 수준이 못 되었다.
그러나 그가 지닌 온갖 신통과 기술, 그리고 힘의 근원은 그의 전투력을 수직으로 끌어올리다시피 했다. 아예 법칙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경지를 훌쩍 넘은 것이다.
목신소와 교전했을 때, 그는 어느 정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상대가 도망치지 않았으면 죽였을 가능성이 칠 할은 되었다. 최소한 중상은 분명히 입혔을 터였다.
지금 모백상과 싸우면서도 그렇게 큰 부담감은 느끼지 않았다. 적어도 질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어쩌면 이 싸움이 끝난 뒤 무선 사중천 돌파를 시도할 수도 있을 듯했다.
물론 질 것 같지는 않아도 모백상이 녹록한 상대인 건 아니었다. 극한에 달한 법천상지의 힘에 나가떨어져 땅에 처박힌 모백상은 잠시 움직임이 없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하늘로 솟구친 검기가 곧장 뇌정을 끌어내더니, 거대한 번개의 검망을 형성했다.
법천상지는 그 뇌정의 검망에 붙들렸다. 피하거나 숨을 방법조차 없었다. 조금이라도 검망을 건드리면 뇌정의 힘이 섞인 검기가 폭발해서 법상의 힘을 조금씩 부쉈다.
땅을 박찬 모백상이 초휴를 향해 달려들었다. 장검에 맺힌 예기는 거의 실체를 지닌 듯했다. 날카로운 기운이 스치는 곳은 모조리 갈라지고 부서졌다.
초휴는 다시 일권을 내찔렀다. 강대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지며 뇌정의 검망과 부딪쳐 박살을 내 버렸다.
이어서 오른손을 흔들자 육도윤회탁에서 눈부신 금빛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단숨에 극한까지 펼쳐진 육도사바중묘화륜이 모백상을 쉬지 않고 짓누르기 시작했다.
검사는 극한의 예기를 추구한다. 일검으로 만 가지 법술을 부순다고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검사의 수단이란 도가 지나칠 정도로 숫자가 적다는 뜻이기도 했다.
불문과 도문의 무도는 천변만화의 와중에도 대도의 근원에 닿아 있지만, 검도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천하 감종은 불종이나 도문처럼 세대마다 무선 구중천의 강자가 나오지는 않았다. 이번 세대 천하검종만 해도 비교적 강한 축에 속할 뿐이었다.
지금 육도사바중묘화륜이 천변만화하자, 그 신통과 비견할 만한 기술에 걸려든 모백상은 가장 순수한 검기로 윤회를 뚫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공격은 육도윤회의 힘 앞에 점차 사라져 갔다. 게다가 초휴의 육도윤회탁에서 금빛이 거세게 일더니 모백상의 원신을 육도윤회 속으로 끈질기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모백상의 원신과 그의 심지는 지극히 강인한 편이어서 육도윤회탁이 잡아당기는 힘을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당겨지는 원신에서 격렬한 고통이 몰려오는 바람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별안간 모백상이 울컥 선혈을 토했다. 눈빛도 일순간 이성을 되찾았다.
이어서 검세가 미친 듯이 사방을 휩쓸었다. 조금의 변화도 없이 오로지 극한에 달한 검의와 힘, 그리고 투지만이 담긴 공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