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84)
1284화 죄송합니다, 제가 간자라서요.
모백상은 나산이 지명한 천하검종의 후계자인지라 당연히 범속한 무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육도사바중묘화륜처럼 기이한 무공은 처음 접해 보는 것이었지만, 단시간 내에 그것을 깨뜨릴 방법을 찾아냈다.
오로지 극한에 달한 힘으로 윤회를 부수는 게 그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육도가 돌고 돌며 서로를 끊임없이 보완하기 때문에 아무런 허점을 찾아낼 수 없는 것이다.
육도사바중묘화륜이 찢겨나간 순간 모백상의 몸에서 푸른 빛이 번뜩였다. 그는 손에 쥔 청려검과 하나가 되었으니 사람이 검이요, 검이 곧 사람이었다.
한 갈래 푸른 빛이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찢을 것처럼 초휴에게 닥쳐들었다. 그 강대한 기세에 가까운 공간마저 모조리 굳어 버리는 듯했다. 피할 길이 없었다.
검통천지(劍通天地)!
천하검종의 전승 신통 중 하나로, 천하검종 무사라면 대개 익힐 수 있었다. 효과와 특징이 모두 하나뿐이었다. 몸을 검으로 삼아, 검도의 위력을 극한까지 펼치는 것이다.
다음 순간 초휴의 몸은 이미 작렬하는 금빛 불광과 칠흑처럼 어둡고 싸늘한 마기로 뒤덮였다. 그는 성마불멸신을 거의 한계까지 펼침과 동시에 일도를 내리그었다. 멸세지화가 도신에 옮겨붙으며 법칙을 불살랐다.
도와 검이 부딪치는 순간 강대한 파동이 사방으로 퍼졌다. 찰나 검의가 도의에 제압되는 듯했다.
그러나 초휴의 도법은 모백상의 검법만 못했다. 그리고 신통의 위력이 너무나 강맹해서 그냥 휘두른 일도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법칙을 녹이는 멸세지화마저 검의에 밀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도와 검이 부딪히는 중간에서 연둣빛 새싹이 피어올랐다.
조화와 음양, 윤회와 탄생.
도와 검의 충돌이 불러온 파멸의 힘은 모조리 그 새싹에 흡수되었다. 적멸 속에서 태어난 새싹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을 가릴 듯한 거대한 나무로 성장했다.
모백상이 펼친 신통의 힘뿐 아니라 초휴의 도의까지 흡수하여 한계까지 성장하더니, 마지막에는 굉음과 함께 터지면서 재가 되었다.
힘이 흩어지자 초휴와 모백상은 동시에 물러섰다.
“이게 무슨 힘이지?”
모백상의 눈에 망연한 빛이 스쳤다. 이처럼 철저하게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는 힘은 처음 본 것이다.
“조화.”
초휴는 담담하게 두 글자를 뱉었다.
조화의 마도가 아니라 가장 순수한 조화의 힘 자체였다. 조화의 마도를 기초로 하여 음양 본원의 힘을 끌어낸 것이다.
엽유공을 상대할 때 그는 음양 본원의 힘을 끌어내어 천지의 맷돌을 만들었다. 그 결과 근원의 힘에 관한 이해가 한층 깊어졌다.
이제는 그 이해를 바탕으로 마도조차 초월하기에 이른 것이다. 조화의 마도가 아니라 순수한 조화!
한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산의 혼탁한 눈은 완연히 어두워져 있었다. 패배다. 이제 천하검종은 거의 패했다.
성구연은 더 버틸 수 있을 듯했지만 역귀사는 무리였다. 그리고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진청제는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심지어 싸움이 계속될수록 더 용맹해지는 것 같았다. 처음 붙었을 때만 해도 명지란에게 밀렸으나 이제는 오히려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초휴다. 칠중천의 실력인 모백상이 삼중천인 초휴를 압도하지 못했다.
심지어 양측은 아직도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천하검종은 정말 패할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산은 긴 한숨을 쉬었다. 그는 통천검을 휘둘러 쥐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통천검진을 펼쳐라.”
나산 곁에는 천하검종 제자 일부가 남아 있었다. 다들 그 말에 망연자실했다.
“종주님, 검진은 누가 조종합니까?”
“그야 내가 해야지. 달리 누가 하겠느냐?”
그 대답을 들은 제자는 울컥했다.
“종주님! 이미 너무 힘을 많이 쓰셨습니다. 더 출수하시면 안 됩니다! 통천검은 본래 대라천의 것이 아니잖습니까. 지금 억지로 통천검을 쓰시면 분명히 반작용을 맞습니다!”
“검진을 펼쳐라!”
나산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추호의 반박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어조였다.
천하검종에서 그는 퍽 온화한 사람이었다. 천하검종 무사 일부는 모백상은 무서워해도 나산은 친근하게 여길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나산이 딱 잘라 말하자 그 누구도 감히 반박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십여 명 남아 있던 천지통현 무사가 다 함께 나섰다. 자신의 검에 기혈을 흘려 넣어 땅에 꽂은 뒤 인결을 맺었다. 겉보기에는 초라한 것 같아도 검의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는 진법이 금세 형태를 갖췄다.
물론 검진의 형태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통천검진의 관건은 역시 통천검이었다.
나산은 손짓으로 마지막 한 가닥 힘을 응집하여 통천검에 불어넣었다. 그리고 통천검을 진법 중심에 내리꽂자 단번에 검기의 빛이 하늘을 뚫을 것처럼 치솟았다.
“방칠소, 여기서 무선을 제외하면, 검도에 가장 조예가 깊은 사람은 너다. 나는 이미 움직일 수 없으니 네가 통천검을 들거라. 명심해라. 일검을 날릴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단 일검으로 최강의 인과 검도를 펼쳐야 한다! 네가 일검으로 초휴를 죽이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초휴를 맞혀서 중상만 입혀도 우리 천하검종은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을 게다.”
방칠소는 그때까지 전투에 뛰어들지 않고 있었다.
천하검종에서 그의 지위는 퍽 높았다. 지금까지 천하검종의 젊은 세대 중에는 방칠소 같은 천재 제자가 나온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천하검종은 그가 난전 중에 죽을까 우려해 후방에 남겨 둔 것이다.
이제 무선은 모두 싸우러 나섰고 나산은 힘이 다했다. 천하검종에서 통천검을 다룰 능력이 되는 사람은 방칠소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인과 검도를 다루니, 일검을 날리는 데 있어 다른 누구보다도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방칠소는 나산의 출수 명령을 받자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느릿하게 진법 중앙으로 걸어갔으나 도저히 그 칼자루를 쥘 수가 없어 망설였다.
초휴와 모백상이 또 격렬하게 충돌하는 것을 본 나산이 낮게 일갈했다.
“어서 손을 써라! 더 머뭇거릴 때가 아니야. 역귀사와 명지란도 이제 한계까지 몰렸다. 그 검으로 초휴를 베야 한다. 우리 천하검종의 승패가 네 손에 달렸어!”
나산의 재촉에 방칠소의 실없던 표정은 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의 얼굴은 갈등과 번민으로 가득 찼다.
잠시 후 방칠소는 이를 악물더니 통천검을 움켜쥐었다. 일순간 빛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천지를 꿰뚫을 듯했다.
그러나 뽑혀 나온 통천검은 초휴를 베지 않았다. 그는 별안간 칼자루를 돌리더니 통천검의 힘을 모조리 대지로 쏟아낸 것이다.
대지는 단숨에 찢겨나갔다. 지룡이 용트림을 하고 산하가 울부짖는 것과 진배없었다.
진을 치고 있던 무사들은 휘청거리다 일시에 선혈을 토했다. 검진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방칠소 역시 낯빛이 창백했다. 그는 모든 힘을 다 쓰고서야 통천검의 반작용을 억누를 수 있었다.
통천검의 힘은 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지고무상의 신병을 써서 일검을 날린 것만으로도, 그 반작용을 받아내는 데 어마어마한 힘이 들었다.
나산과 다른 무사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방칠소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간자라서요.”
방칠소의 심경은 몹시 복잡했다. 무슨 놈의 간자 노릇을 하겠다고 나선 건지, 몹시 후회되었다.
처음 초휴가 간자로 잠입하라고 했을 때는 퍽 신이 났었다. 오래간만에 재미나는 일이 생겼구나, 드디어 재미없는 검왕성 예비 장문 생활에서 벗어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한동안 그렇게 간자로 살다 보니 자신이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은 초목이 아닌지라 진정으로 무정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는 천하검종에서 나름 긴 시간을 보냈다. 천하검종 사람들도 그에게 잘해주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고비에 치명타를 입혀야 한다고 생각하니 실행에 옮기는 게 쉬울 것 같지 않았다.
싸움이 이 지경까지 왔으니 이제 자신이 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후방에서 일이 끝나는 걸 기다렸다가 간자 생활을 마무리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순간이 되니 양자택일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선택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방칠소와 초휴의 오랜 교분은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어떤 상황이건 그는 초휴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아무래도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간자로 들어온 것인데도 오히려 자신이 배반자가 된 듯한 기분이니 말이다.
방칠소는 평생 자신이 정한 선을 지키며 살아왔다. 물론 돈도 내지 않고 기루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술을 마시고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가 멋대로 입을 열면 검왕성 어른들은 화를 벌컥 내며 그를 찢어놓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방칠소 자신만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자신은 떳떳하고 당당한 대장부로 살아왔다.
그러나 이번 일로 그는 자신의 마음속 선을 넘어버렸으니 마음이 괴로웠다.
방칠소의 일검으로 천하검종 최후의 희망이 꺾인 순간, 전장은 적막에 휩싸였다.
나산이 허망하게 웃었다. 비통함이 가득한 웃음이었다. 그는 울컥 선혈을 토했다.
졌다. 완전히 진 것이다.
모백상은 초휴를 손가락질하며 노호했다.
“초휴! 이 파렴치한 놈아!”
초휴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사돈 남 말도 유분수지. 누가 누구더러 파렴치하다고 하는가? 천하검종도 동역을 치기 위해 같은 방식을 써서 엽유공과 손잡지 않았던가? 당신들 천하검종이 계획하면 책략이고, 내가 하면 파렴치한 행위가 되는가?”
모백상뿐이 아니라 천하검종 무사 모두의 눈에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했으나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본래 천하검종은 가끔 제멋대로 굴기는 했어도 처신이 직선적이었다. 음모나 계책 따위를 꾸밀 줄 몰랐다.
이번에 엽유공이 자기 신분을 이용해 동역을 배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천하검종이 엽유공을 꼬드긴 게 아니라 엽유공이 먼저 천하검종을 찾아온 것이었다.
다른 한편에서 방백도와 허천애는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에 경악과 공포가 비쳤다.
초휴가 간자를 심어둔 대상이 자기들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천하검종에도 하나 잠입시켰을 줄이야.
사실 이 작전의 관건은 간자를 심는 것 자체가 아니고 누구를 간자로 보내는지였다. 용령아와 낙비홍이 두 고존의 제자에 딱 들어맞는 자질을 타고난 것도 그렇지만, 방칠소의 출현은 그야말로 불합리할 정도가 아니었던가.
천하검종에 있을 때 그들 역시 방칠소를 본 적이 있었다. 실없고 미더운 구석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저 청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았다.
장담컨대 무선이 될 새싹이자 장차 구중천 절정에 오를 만한 검도의 천재가 아닌가. 방칠소에 비하면 성구연의 제자였던 우문복은 개똥이라 해도 좋았다. 애초에 비교할 가치조차 없었다.
그러니 사실 그런 수준의 검도 천재는 이미 고존의 문하에 들었거나, 아니면 벌써 천하검종에서 거뒀어야 말이 되는 것이다. 바깥에서 할 일 없이 떠돌고 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러니 방칠소는 아주 특별한 예외였다. 천하검종의 그 누구도 그가 간자일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누가 방칠소 같은 천재 중의 천재를 간자로 보내겠는가? 완전히 낭비 아닌가.
하지만 모든 게 밝혀진 지금 상황은 그들의 상상 밖이었다. 방칠소가 간자였다니. 초휴는 도대체 어디서 이 많은 청년 천재들을 데려온 것일까?
천하검종 무사들은 한발 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통천검진을 펼쳤던 천지통현 무사들은 반작용을 받기는 했으나 그래도 아직 전투력을 잃지는 않았다.
그들은 배신자라고 욕을 퍼부으며 방칠소에게 덤벼들었다.
방칠소는 좀 전 통천검의 반작용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가진 힘을 다 써버렸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