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86)
1286화 범교 교주와 세존, 그리고 맹성하 (2)
그러나 다음 순간 범교 교주의 어조는 휙 바뀌었다.
악상이 다시 말했다.
“참작의 여지? 웃기지도 않는 소리! 저쪽이 강한 것은 강한 것이고, 너희가 약한 것은 약한 것일 뿐이다! 천라보찰의 기세가 흉흉한 것을 보았으면 비슈누전 인원을 범교 총단으로 불러들였어야지. 대체 너희들은 머리통에 뭘 넣고 다니는 것이냐?”
루나가와 염마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피차 곤혹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사실 범교 교주는 원래는 아주 멀쩡했었다. 그러나 대라천 무선들은 일단 구중천에 오르면 구중천 너머의 최절정 경지를 추구하기 마련이었다.
본래는 무선들도 그리 큰 집착은 없었다. 그러나 오백년 전 대라천 전체를 뒤흔들어놓다시피 했던 존재, 그리고 대라신궁에 있던 그 괴팍한 노도사를 만난 뒤에야 알게 된 것이다.
구중천은 절정에서 까마득히 멀었다. 그 위로도 갈 길이 있었다. 더욱더 머나먼 길이!
그 뒤로 대라천의 구중천 무사들은 웬만하면 강호에 나서지 않았다. 너나 할 것 없이 구중천 위의 절정으로 오르는 길을 찾아 헤맸다.
범교 교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다소 빗나간 길을 걷고 말았다.
무엇을 연구했는지는 몰라도, 들입다 파더니 결국 이런 몰골이 된 것이다. 한 몸에 두 개의 얼굴, 심지어 인격까지 둘로 나뉜 것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정신 분열을 일으켜 수하들을 못살게 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실력이 더 강해지기는 했으나 수하들의 고충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한 번 그 상태에 들어선 교주를 혹여라도 거스르면 큰일이었다. 바로 지금 같은 상태 말이다.
두 사람에게 있는 대로 욕을 퍼부은 뒤에야 범교 교주의 선악 양면은 어느 정도 타협을 본 듯했다. 그는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라. 동역에 가서 초휴를 죽여 우리의 체면을 되찾아야겠다.”
루나가는 일순 굳어 버렸다. 막 뭐라 말하려는데 옆에서 염마가 그의 팔을 잡더니 다급히 만류하는 눈짓을 해 보였다.
범교 교주의 모습이 한 갈래 검은 안개로 변해 사라지자 염마가 말했다.
“교주님 상태가 그리 불안정한데, 또 무슨 매를 맞으려고 막으려 들었소?”
루나가는 미간을 찡그렸다.
“교주님은 초휴를 죽이실 수 없을 테니 막아야 할 게 아니오. 걸림돌이 너무 많소. 예컨대······.”
염마는 담담했다.
“예를 들 필요 없소. 천하에 머리 좋은 사람이 당신뿐이겠소? 교주는 서역을 벗어나기도 전에 돌아오실지도 모르오. 하지만 당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셨으니 그 화를 어디다 푸시도록 해야 할 게 아니오. 안 그러면 우리만 죽도록 시달릴 게 뻔하잖소?”
루나가는 잠시 멍해졌다. 그는 지금까지 염마가 사람 죽일 줄밖에 모르는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교주를 보는 눈 하나만은 남보다 훨씬 정확하지 않은가.
* * *
그들이 푸념을 하는 동안 범교 교주는 서역의 대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가 가는 길을 따라 검은 바람이 휘몰아쳐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구중천 강자의 속도는 대단히 빠르다. 하루 만에 벌써 서역과 남만 땅의 경계에 다다른 것이다.
거기에는 한 노승이 서 있었다. 낡고 해져 누더기가 된 승복을 걸친 맨발의 승려였다.
머리에는 경문이 가득 새겨진 금빛 삿갓을 썼는데, 그 삿갓이 얼굴을 반 넘게 가리고 있어 밖에서 보면 아래턱에 마구잡이로 자라난 기다란 수염만 보였다. 나이가 꽤 많은 것 같았다.
그 노승을 본 순간 검은 안개는 일순간에 범교 교주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대머리, 나를 막으러 왔나?”
범교 교주에게 그런 시선을 받을 만한 사람은 서역을 통틀어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바로 천라보찰의 세존!
세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빈도는 막으러 온 게 아니라 기다리고 있었소. 당신도 도존의 말을 들었을 텐데? 상계와 하계가 곧 이어질 모양이니 다들 조용히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기다리자고 말이오.”
“조용히 기다리자고? 위선적인 대머리 같으니! 당신네 천라보찰의 화생각이 무너졌어도 퍽이나 조용히 있었겠군그래?”
세존은 또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만약을 가정하고 할 말은 아니오.”
범교 교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악상 때문에 선상까지 같이 찌그러질 지경이었다.
“늙은 대머리!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시오. 이득은 실컷 얻어 놓고 착한 척까지 하겠다니, 무슨 개수작인가! 비킬 거요, 말 거요?”
삿갓에 덮여 보이지 않는 세존의 두 눈에서 한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두 손을 합장하더니 불호를 읊었다.
“당신이 처음 대머리라고 했을 때, 빈도는 참았소. 두 번째 대머리라고 했을 때, 빈도는 분노를 억누르고 심지를 다스렸소이다. 세 번째로 대머리라는 소리를 들은 이상······.”
다음 순간 세존의 합장한 손을 따라 대지와 천공이 하나로 합쳐지는 듯했다. 태양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대신 하늘을 가득 메울 듯한 대일여래의 법상이 나타났다.
“빈도는 이단을 주살해야겠소!”
남역과 동역이 격돌해서 대판 싸웠고, 서역에서는 구중천 강자 둘이 맞붙었다.
대라천을 통틀어 조용한 곳은 북역뿐이었다. 어쩌면 도존이 있어서 아무도 북역에 덤빌 엄두를 못 내는 건지도 몰랐다.
굳이 누가 죽기를 자초하겠는가.
극북 천주산의 맹성하는 성하무원 제자들을 가르친 후 산꼭대기로 돌아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가 누구와 바둑을 두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자신인지도 모르고, 혹은 이 천지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초휴의 곤륜마교는 동역에서 순조롭게 세력을 불렸지만, 성하무원의 발전은 그보다 더 순조로웠다.
무엇보다 맹성하의 명성이 큰 몫을 했다. 무선 구중천의 절정 강자이자 고존 일맥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 아닌가. 그런 맹성하가 친히 무도를 가르치고 해석해 준다니, 평소 같으면 억만금을 주고도 얻지 못할 엄청난 기연이었다.
그런데 이제 누구나 그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북역의 낭인 무사와 군소 세력들이 어찌 이런 기회를 포기하겠는가?
그래서 성하무원에는 그야말로 오리 떼처럼 무사들이 몰려들었다. 게다가 성하무원은 문파를 가려서 사람을 받지도 않았다. 현천경 같은 대문파 출신 제자들도 강의를 들으러 오곤 했다.
그때 맹성하의 흑돌 하나가 떨어졌다. 돌연 가슴이 철렁 떨리는 듯하더니, 흑돌과 바둑판이 일순간에 가루로 부서졌다.
맹성하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구중천 무선인 자신이 힘을 제어하지 못하다니?
그때 성하무원의 또 다른 고존인 방도진이 다가와서 조심스레 말했다.
“원장님, 강호에 떠도는 소문인데 원장님과 다소 인과가 얽힌 이야기 같습니다.”
맹성하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소문이오?”
방도진은 생각을 거듭하며 말을 골랐으나, 결국 한숨 끝에 할 수 있었던 말은 하나뿐이었다.
“엽유공이 초휴에게 죽었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맹성하의 얼굴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를 코앞에 둔 방도진의 눈에는 공포가 스쳤다.
방도진 일맥의 무공은 아주 독특했다. 힘이 폭증하는 것뿐 아니라 지극히 미세한 변화 하나까지를 추적함으로써 작은 도발로 거대한 결과를 노리는 것이다.
아무리 미약한 파동이라도 그의 감지력을 벗어날 수 없었다. 힘만이 아니라 원신과 심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맹성하의 낯빛은 아무 변화가 없었고 힘이 흘러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방도진의 눈에는 그의 심경에 격랑이 일다 못해 미친 듯이 출렁이는 게 뚜렷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온 세상을 휩쓸어버릴 홍수 같았다.
사실 맹성하의 속은 절대로 평온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표면상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고존대회에서 맹성하는 초휴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자신과 엽유공은 이미 길이 갈렸다. 서로가 상대의 선택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엽유공이 얽힌 원한에 개입할 일은 전혀 없다.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엽유공의 부고를 들은 지금, 이 순간에야 맹성하는 깨달았다. 틀렸다. 그는 절대로 그와의 관계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는 엽유공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백년이 넘는 교분이 아닌가.
게다가 무수한 전장에서 함께 싸웠으며 수족 같은 정을 나누었고 형제처럼 생사를 함께했다. 어떻게 그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돌리겠는가?
맹성하는 고개를 들어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희미하고 어렴풋하게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막 거친 밀림 밖으로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그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호방하고 거침없는 청년이었다. 나를 동역에서 제일가는 대문파의 종주로 만들어 달라, 능소종과 황천각을 모두 짓밟고 우뚝 일어서 보이겠노라고 했다.
한창 피어나는 젊음이요, 만 장을 뻗어 나가는 호기였다. 차분하고 평온한 성품인 맹성하는 엽유공의 그런 성품에 매료되었다. 해서 그와 함께 강호를 누볐고 한강성을 일으켜 세웠으며 동역 강호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훗날 두 사람은 의견이 갈렸다.
청년 시절의 호방한 꿈은 시간에 마모되어 갔다.
엽유공이 쫓던 꿈은 한강성이 동역 절정의 대문파가 되어 더는 능소종과 황천각에 업신여김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해냈다. 그러자 목표는 소멸하고 옛 꿈도 사라졌다.
그러나 맹성하는 달랐다. 그가 쫓는 것은 한강성보다 더욱 크고 훨씬 멀어서, 별이 빛나는 끝없는 하늘 저 너머에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해 헤어졌다. 애초부터 이상을 위해 한데 뭉친 사이였다. 그리고 이상 때문에 갈라섰던 것이다.
한참 후에야 맹성하는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엽 대형······.”
그는 아주 오랫동안 그 호칭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엽유공을 만난 것도 한참 예전이었다.
이미 옛일은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도(大道)는 정이 없어도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일백년의 교분을 없던 것으로 생각하는 게 어찌 쉽겠는가.
맹성하는 손을 저었다. 금빛 불진이 나타나고, 자단목 칼집에 든 도검(道劍)이 등 뒤에 묶였다.
방도진은 기겁을 하고 놀랐다.
“원장님, 왜 그러십니까?”
맹성하는 제 가슴팍을 가리켰다.
“가슴에 맺힌 것이 있어서 말이오. 이것을 풀지 못하면 대도를 이룰 가망이 없을 것 같소. 나의 매듭을 베러 가야 할 듯하오.”
방도진은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맹성하는 이미 한 줄기 별빛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는 속이 탄 나머지 제 다리를 한 대 갈겼다.
맹성하가 어디로 가는지는 안 봐도 훤했다. 다른 때라면 초휴를 죽이는 정도가 아니라 동역 전체를 뒤집어 놓으러 간다 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얼마나 민감한 시기인가. 아주 작은 일만 터져도 계획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르는 것이다.
방도진은 죽어 버린 엽유공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죽었으면 깨끗이 사라질 것이지, 죽어서까지 이렇게 엄청난 폐를 끼치다니.
* * *
초휴는 자기 때문에 대라천의 여러 세력이 엉망진창으로 뒤집힌 건 까맣게 몰랐다. 그는 동역연맹대회 준비에 한창이었다.
지금 동역을 통틀어 진정한 대문파라 할 세력은 셋뿐이었으니 곤륜마교, 능소종, 황천각이었다.
중소 문파의 오할 정도는 곤륜마교로 들어왔고, 삼할은 능소종이나 황천각에 충성하는 예속 세력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이 할은 아직 대문파의 세력 범위 밖에 있었다. 판단이 둔하여 별 야심이 없는 약소 세력이거나, 실력은 그럭저럭 괜찮고 야심도 좀 있지만 남의 밑에 들어가는 게 싫은 중급 세력이었다.
초휴는 그들을 모조리 불러 모을 생각이었다. 다시 말하면 동역 전체를 통합하자는 것이다.
곤륜마교 광장에 동역 무림의 각 세력 수장이 다시 모여들었다. 먼젓번 모였던 뒤로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그들은 곤륜마교의 창건 기념식에도 동역 무림 각 세력의 수장으로서 사람을 보냈었다. 이렇게 빨리 또 모이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람들은 분분히 수군거렸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은은한 불안감과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역의 여러 대문파가 한데 힘을 합쳐 동역을 공격했다. 비바람을 몰고 온 것이다. 지금 초휴가 여기로 모두를 불러 모은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다시 상석으로 눈길을 돌렸다. 종추수와 진백원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둘의 표정이나 눈빛에서는 별다른 것을 읽을 수 없었다.
얼마 전 싸움에서 황천각과 능소종 모두 막심한 피해를 보았다. 특히 능소종은 거의 멸문할 뻔했다.
정예는 모두 스러졌고 너무 늙거나 너무 어린 사람만 남았다. 간신히 전승 한 가닥만 남았을 뿐이라고 해야 할 수준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피해를 봤으니 두 사람 다 남과 말을 섞고 싶어 할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