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93)
1293화 대라천의 강림
초휴의 앞에서 음양 양극의 힘이 서로 얽히며 부딪쳤다. 조화의 근원에 속한 힘까지 끌어내고서야 간신히 상대가 던지는 위압감을 상쇄할 수 있었다.
범교 교주의 눈에 기이해하는 빛이 스쳤다. 그러나 위세를 더 부리기 전에 세존과 도존이 경고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범교 교주는 즉각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았다.
좀 더 기다리자 고존 일맥도 적잖게 모여들었는데 선두에 선 사람은 맹성하였다. 그러나 그는 초휴를 없는 사람인 것처럼 완전히 무시했다.
도존은 하계에 가기 전까지 대라천이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노만왕이 여기 없고 초휴가 코앞에 있지만 맹성하는 출수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조금이라도 손을 쓰면 도존이 막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성하는 헛된 일에 용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초휴는 아래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여기저기 미움을 많이 샀구나 싶었다. 구중천 강자 두 사람과 불공대천의 원수가 되다니, 대라천을 탈탈 털어도 자신 외에는 그런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더 많은 종문과 낭인 무사들이 모였다. 통천열쇠를 만들어낼 만한 세력은 거의 다 모인 셈이었다.
바로 그때 대라신궁의 법칙이 한바탕 뒤틀리더니 누추한 행색의 노도사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노도사가 나타나자 도존의 도온이 흩어지더니 확실한 모습이 드러났다.
도존은 은색 구름무늬 도포를 입은 도사의 모습이었다. 나이가 들기는 했으나 반듯하고 우아한 생김새에 세 갈래의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눈동자에도 도온이 흐르고 일거수일투족이 절묘하게 천지자연과 맞아떨어졌다. 그야말로 생김새만 보아도 선풍도골이 아닌가.
적어도 볼품없는 노도사보다는 훨씬 호감이 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초라한 행색의 노도사를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 초휴의 눈매는 확 찌그러졌다.
영현기!
그의 기억에 영현기는 대라신궁에서 시초 법칙의 힘을 느껴 볼 생각이고 하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는 왜 나타난 걸까?
도존이 영현기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그 한마디에 사람들은 놀라 모골이 송연해졌다.
영현기의 존재와 그의 정체를 아는 건 세존과 범교 교주 등 극소수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도존이야말로 대라천의 제일인이었다. 그런데 저 볼품없는 노도사에게 선배라 부르며 깍듯이 고개를 숙이다니,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자란 말인가?
그 찰나에 다들 느낀 바가 있었다.
대라천에는 숨겨진 게 너무나 많다. 다들 자신들이 대라천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한참 멀었던 것이다.
영현기는 대강 손을 내저었다.
“뭘 와? 이 어르신은 댁으로 돌아가시련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잊은 게냐?”
도존이 웃었다.
“그럴 리 있습니까. 선배님, 안심하시지요. 저희 역시 조상의 땅에서 왔습니다. 선배님이 귀가하시듯 저희 역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일만년 전 대라천에 왔을 때와는 다르지요. 둘은 혈맥이 이어져 있고 무공도 서로 통하지 않습니까.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데 살육 같은 걸 벌일 리가 있겠습니까.”
영현기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현천······ 도인, 자네 도호가 현천이 맞지? 자네 사부보다 훨씬 윗길이군. 그치는 아주 정직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지. 어리바리하게 도만 수련하던 사람이었는데, 자네가 낫단 말이지.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자네들은 하계에 가서 자네들이 원하는 걸 찾게. 나 역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러 가는 거니까. 하나는 동쪽, 하나는 남쪽이니 부딪칠 일도 없지. 자네들이 선을 넘지만 않으면 이 어르신도 괜한 참견 따위는 귀찮아서라도 하지 않을 걸세.”
도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도 잘하십니다. 스승님께는 그분의 도가 있었고 제게는 저의 도가 있는 것이지요. 모든 도는 하늘과 통하는 것이니 낫고 못하고의 구분이 있겠습니까. 하계에서의 규칙은 하계 사람들과 합의하여 정할 것입니다. 만족도 아니고 같은 동족인데, 함부로 죽여댈 리는 없을 겁니다.”
영현기가 나타난 건 초휴의 예상을 다소 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와 대라천 사람들의 관계도 퍽 재미있어 보였다.
이 자리의 구중천 지존 강자 중 그와 대등하게 교류할 수 있는, 심지어 감히 그를 떠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도존뿐인 듯했다.
맹성하의 눈에는 끝없는 별빛이 반짝이고 있어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초휴는 영현기가 나타난 순간, 그가 반 발짝 물러나는 것을 보았다. 세존은 삿갓에 얼굴이 가려져 표정이 보이지 않았으나, 영현기가 나타나자 살짝 고개를 숙였다.
범교 교주의 반응은 더 뚜렷했다. 영현기가 등장하자마자 멈칫 굳어 버렸던 것이다. 눈에도 복잡한 빛이 스쳤다.
영현기와 마주친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리고 영현기는 그에게 인상 깊은 기억을 남긴 것이다. 아마도 별로 좋지 못한 기억이 분명할 터였다.
영현기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초휴도 보았으나 그리 오래 쳐다보지는 않았다.
“이미 말하지 않았나, 이 어르신은 집에 가서 뭘 좀 가져올 뿐이라니까. 자네들이 뭘 하건 너무 지나친 것만 아니면 귀찮아서 참견할 생각도 없단 말이지. 뭘 그리 긴장하고 있나? 이 어르신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는 사이 대라신궁에서 격렬한 진동이 전해졌다. 두 세계의 통로를 봉인하고 있던 진법이 눈사태처럼 무너지기 시작한 게 틀림없었다.
이제 두 세계의 통로가 완전히 열렸다. 바깥에서도 용솟음치는 공간 폭풍이 보일 정도였다.
도존이 길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여러분, 이제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그는 통천열쇠를 쥐고 통로 안으로 발을 디뎠다.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더니 그 뒤를 따라 들어섰다.
* * *
대라천 무사들이 하계로 갈 준비를 할 때, 하계 천문에는 더 많은 무사가 모여 있었다.
대라천에서도 진법의 파열이 감지되었으니 하계에서는 더 뚜렷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초휴는 천문을 모조리 긁어서 털어냈고, 한동안 대라신궁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강대한 원기도 흡수했다. 하지만 균열이 점점 커지면서 원기도 더 많이 흘러나와 나중에는 상하 양계의 원기가 거의 평형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자 천문 근방의 원기도 바깥보다 약간 더 많을 뿐, 그리 큰 가치는 없어졌으므로 초휴는 곤륜마교 무사들을 철수시켰다.
곤륜마교 사람들이 떠난 것을 본 다른 문파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다들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왔다가 진법이 무너지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람들은 초휴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진법 너머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일만년 전 무사들이 떠나갔다는 세계,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때 천문의 봉인 진법 앞에는 이미 적잖은 무사들이 모여 있었다. 강호의 각 대문파는 물론 삼국 황실에서도 사람이 왔다. 개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앞줄에 선 무선들이었다.
지금까지는 다들 천지통현이 절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계의 원기가 가득히 퍼지자 온 세상의 원기가 한 길은 치솟았다.
덕분에 고비에 막혀 있던 무사들 대부분이 난관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특히 전승을 지닌 절정급 대문파는 놀랍도록 빠르게 경지를 돌파했다.
가장 먼저 경지가 상승한 사람은 야소남이었다. 하계의 천지 원기만 가지고도 무선 이중천에 오른 그였다.
초휴로서도 야소남이야말로 진정한 절세의 재능을 타고났다고 인정하지 않았던가. 이제 원기까지 풍족해지니 야소남은 아예 이중천을 뛰어넘어 단숨에 무선 사중천이 되었다.
노천사는 본래 워낙 고령인지라 돌파를 시도하지 않고 있었으나 지금은 강대한 원기의 뒷받침에 힘입어 단번에 무선 삼중천까지 올랐다. 그간 심후하게 쌓아 온 저력 덕분이었다.
야소남과 노천사 외에도 무선이 두 사람 더 있었다. 하나는 영가 노야였다. 그의 나이와 실력은 하계의 천지통현 무사 중 가장 윗길에 속했다. 이번에도 순조롭게 고비를 넘어 무선에 오르더니 매우 빠른 속도로 힘을 안정시켜 이중천이 되었다.
마지막 무선은 대부분의 강호인이 예측하지 못한 인물로, 좌망검려의 심포진이었다.
하계 천지통현경 무사 중 심포진은 나이가 적은 축에 속해서 영가 노야보다 한 세대 아래였다. 그리고 약하지는 않다지만 야소남처럼 경악할만한 재능을 타고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심포진에게는 장점이 있었으니 침착하고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강호에 나타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좌망검려 자체가 강호 일에 잘 끼어들지 않는 문파이기도 했다.
그러나 심포진은 드물게 강호에 나설 때마다 실력이 조금씩 늘어 있었다. 그야말로 한 발짝씩 차근차근 나아가는 폐관수련의 광인이었다.
지금 같은 환경이 되자 심포진 역시 얼마 전, 무선 일중천에 올랐다. 본래 그는 상승한 경지를 안정시키려고 폐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만큼 큰일이 벌어졌으니 폐관은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미지의 상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가 노야가 미간을 찡그렸다.
“초휴는 어디 갔소? 곤륜마교 사람들은? 왜 하나도 안 보이는 거요?”
노천사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구려. 남만 땅에 사람을 보내 물어보았소만 곤륜마교 측에서는 아무 답이 없었소. 서곤륜 쪽은 아예 텅텅 비어서 하급 제자들만 남아서 지키고 있습디다.”
영가 노야는 야소남을 힐끗 보았으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야소남의 성격상 초휴가 어딜 갔느냐고 수소문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초휴는 점점 종잡을 수가 없구려. 이리 큰일이 터졌는데 얼굴도 안 비치다니. 지금 곤륜마교는 강호의 제일가는 대문파인데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닌가 말이오.”
영가 노야의 어조에는 불평의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전 같았으면 감히 이런 말을 할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역시 무선인 것이다.
자신이 초휴와 같은 경지에 올랐다는 생각에 조금 들떴다고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초휴가 별로 대단하게 느껴지거나 두렵지가 않았다.
바로 그때 봉인 진법에서 한바탕 파열음이 들렸다. 진법의 주문이 눈사태처럼 터져 나가고 강대한 기운이 확 몰려오자 사람들은 얼른 물러섰다.
잠시 후, 다들 어떻게 된 건지 가까이 가 보려는데, 갑자기 어마어마한 기운이 하나, 둘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걸어 나온 사람은 도존이었다. 야소남과 하계 무사들을 본 그의 눈빛에는 다소 의외라는 빛이 담겨 있었다.
하계에서도 진법의 이상 상태를 감지하고 탐사하러 왔을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보는 것은 예상외였다.
하계 무사들의 실력이······ 이렇게 약하다니? 정말 저들의 실력이 이 정도란 말인가?
아니면 강자들이 여기 오지 않은 것인가?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독고유아나 영현기 같은 최절정의 강자가 나왔단 말인가?
도존의 뒤를 따라 다른 대라천 무사들도 속속 진법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의 강대한 기운 앞에 수많은 무사, 심지어 야소남조차 경악한 얼굴이 되었다.
그들 역시 대라천 무사들이 얼마나 강할지 상상해 보곤 했다. 도존이 하계가 이리 약할 줄 몰랐던 것처럼, 그들 역시 대라천 무사들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무선에 오른 사람만 수십 명이 넘지 않는가. 특히 도존이나 세존 같은 사람의 기운은 너무나 강대해 두려울 정도였다. 구름을 뚫고 우뚝 솟은 산봉우리처럼 끝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영가 노야가 뭔가 발견하고 화들짝 놀랏다. 그는 경악에 찬 얼굴로 대라천 사람들을 쪽을 가리켰는데 목소리마저 떨렸다.
“초, 초휴 아닌가! 초 교주! 그대가 왜 거기 있는 거요?”
그 말을 듣고서야 다들 시선을 돌렸다. 대라천 사람들 뒤쪽에서 걸어 나오는 자는 분명히 초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