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95)
1295화 종신수의 인과
종신수는 워낙 신출귀몰한 사람인지라 초휴는 그의 출현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사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대라천에 나타났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현기는 종신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퍽 의아해하는 표정이 뭔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종신수의 느닷없는 등장에 대라천 무사들은 모두 미간을 찡그렸다. 그들은 뿌리가 같은 데다 영현기도 있으니 나름 하계 무사들에게 깍듯한 태도를 갖추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겉으로는 그래야 했다.
이제부터 그들이 하계에서 하려는 일이 무엇인가? 문파의 창건이건 제자 모집이건 하나같이 하계 종문의 협조 혹은 합작이 필요했다. 그래서 범교 교주처럼 성격이 글러 먹은 자도 다짜고짜 싸움을 벌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종신수는 나타나자마자 여기는 그들이 올 곳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대라천 무사들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불만은 불만이고, 아무도 뭐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종신수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선 구중천의 최절정인 그들로서도 실력을 가늠할 수가 없으니, 설마 이자도 구중천인가? 하계에도 구중천에 다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말인가?
도존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범교 교주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악상이 우세를 점한 것이다. 그는 종신수에게 사납게 웃어 보였다.
“올 곳이 아니라고? 천상천하에 본좌가 가지 못할 곳은 없소! 우리가 어디로 갈지는 당신이 제멋대로 지시할 수 있는 게 아니오!”
아까 범교 교주는 초휴를 공격하려 했으나 그가 독고유아를 풀어버리겠노라며 위협하는 바람에 참는 수밖에 없었다.
본래 그는 정신 상태가 좀 불안한 사람이었다. 속에 불씨를 묻어 둔 참이었는데 종신수의 말이 거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었다.
도존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범교 교주가 성급히 나서지 못하게 막으면서 눈앞에 등장한 종신수가 어떤 사람인지 떠보려 했다. 하지만 범교 교주는 이미 출수하고 있었다.
“우리를 막고 싶거든 네 주제부터 알아야지!”
말을 맺자마자 범교 교주의 얼굴은 선상과 악상이 극단으로 나뉘더니, 전신의 힘이 두 종류로 갈렸다.
그의 왼손에 싸늘한 멸세지화의 활과 화살이 나타났다. 한 손으로 시위를 당기자 거대한 화살이 폭발하듯 쏘아져 나갔다.
스치는 곳의 모든 게 화살의 힘에 말살되어 버렸다. 법칙, 심지어 공간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그것은 초휴에게 익숙한 멸삼련성전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진정한 멸세지전(滅世之箭)이었다!
범교 교주의 오른손에는 독특하게 생긴 장검이 쥐여있었는데 구불구불 휜 검신에는 기이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 일검이 휘둘러지자 만물이 시초의 힘으로 변하여 근원으로 돌아갔다. 놀랍게도 그것은 조화의 근원에 닿아 있는 힘이었다.
그것을 본 초휴의 눈매가 확 가늘어졌다.
범교 교주는 줄곧 미친 사람처럼 패악질만 부렸고, 별로 정상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출수하자마자 초휴는 그 강력함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범교 교주는 두 가지 본원에 근접한 강대한 힘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고 있지 않은가. 하나는 멸망, 하나는 조화였다. 법칙의 힘에 대한 깨달음이 지극히 정묘하고 심오한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구중천 무선의 진정한 두려움은 그들의 힘이 아니라 법칙에 대한 깨달음이다. 똑같이 하나의 법칙을 장악했을 때 상대방의 깨달음이 이쪽보다 깊다면, 한마디 말로도 이쪽에서 장악한 법칙은 그대로 무너지는 법이다. 그것이야말로 압도적 힘인 것이다.
구중천 절정 강자가 출수하니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위세였다. 그러나 멸세지전을 상대하는 종신수의 행동이란 살며시 손가락을 들어 콕 찍은 것뿐이었다.
그러자 삽시간에 허공에서 잔물결이 일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고요하던 호수의 수면을 슬쩍 건드린 것처럼, 그 물결 아래 멸세지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법칙과 공간을 없애버릴 듯하던 그 힘은 순식간에 헛된 것이 되었다.
물결이 잔잔해지자 멸세지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도존과 맹성하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공간 법칙을 극한까지 응용한 힘이 아닌가.
다음 순간 종신수는 손을 슬쩍 움켜쥐었다. 아무것도 잡지 않은 빈손이었으나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검이었다. 천지를 자기가 쓸 검으로 바꾸어 손에 쥔 것이다.
그 검이 범교 교주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천지를 검으로 삼았으니 검의도 없고 검기도 없었다.
그러나 범교 교주는 신음을 토하더니 허공의 강대한 힘에 베여 나가떨어졌다. 천지검의 어마어마한 위세 앞에는 그 어떤 법칙도 소용없었다.
뒤에 있던 모백상의 얼굴에 경악이 가득했다. 도대체 저게 무슨 검법이란 말인가? 나산이 살아 있을 때도 아무렇게나 손을 쥔 것만으로 천지를 검으로 만드는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하계에 이런 존재가 있었단 말인가? 단순히 검도 실력만 놓고 보아도 대라천 검도 제일인이었던 나산을 능가하지 않는가.
범교 교주는 나가떨어진 뒤에도 출수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인결을 맺더니 머리 셋에 팔 네 개의 몸으로 변했다.
범천의 법상은 조화를 다루고, 시바의 법상은 파멸을 다루며, 비슈누의 법상은 두 힘의 균형을 맞추어 탄생과 멸망을 갈라놓는다.
세 개의 머리, 세 개의 법상이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듯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반경 수백 장에 달하는 공간의 모든 법칙이 세 가지 힘에 억지로 비틀리고 있었다. 그 순간 백 장 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았다. 오로지 범교 교주에게만 속하는 세상이었고 이 공간 내에서의 그는 신과도 같았다.
그러나 범교 교주가 공세를 펼치기도 전에 종신수의 이마에 있는 붉은 표지가 맹렬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붉은 표지가 열리더니 안에서 핏빛처럼 새빨간 세로 눈이 드러났다. 그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거기서 피어오르는 것은 사람을 절망케 하는 죽음 같은 적막뿐이었다.
그 세로 눈을 본 순간, 모두 소름이 오싹 끼쳤다. 마치 끝도 시작도 없는 절망이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지 않은가.
핏빛 눈에서 천지를 관통할 듯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이 스치는 곳마다 모든 것이 갈라지고 찢어졌다.
범교 교주의 별세계조차 그 앞에서는 두부처럼 물러지더니 결국 남김없이 부서져버렸다. 빛은 곧장 범교 교주를 덮쳤다.
범교 교주는 노호성을 지르며 네 팔로 인결을 맺었다. 범교 삼신의 힘이 하나로 합쳐졌으나 붉은빛을 약간 늦췄을 뿐, 제대로 저지할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도존이 홀연히 도인을 맺더니 담담히 한 글자를 뱉었다.
“진(鎭)!”
일순간 천지가 합쳐지듯 웅대한 기운이 맺히더니 도인으로 변하여 붉은빛을 가로막았다. 역시 그것을 없앨 수는 없었으나 잠깐 억누를 수는 있었다.
도존은 불진을 휙 떨쳐 범교 교주를 뒤로 당기더니, 종신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말했다.
“우리는 악의를 품고 온 게 아니오. 여기는 본래 우리 조상의 땅이었고, 봉인이 무너진 지금 조상의 땅으로 돌아온 것뿐인데 무엇이 잘못되었소?”
범교 교주와 도존이 더 출수하려 들지 않자 종신수의 세 번째 눈도 닫혔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조상의 땅은 오래전에 당신들에게 버림받고 무너졌소. 여기는 하범천이지 조상의 땅이 아니오.”
도존은 탄식했다.
“선조들의 선택을 우리 후세인이 평가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여기가 하범천이건, 상범천이건 우리 선조들의 유적이 있고 전승이 있지 않소. 왜 조상의 땅이 아니라는 거요? 우리는 살육을 하려고 돌아온 게 아니오. 무도의 전승을 가져와 다시금 무도의 성세를 이룩할 거요. 삼청전은 하계에 분전을 열 것이고, 달마다 무선 강자가 강단을 세워 도를 논할 거외다. 도불마 삼맥의 어느 무사건, 종문과 낭인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와서 들을 수있게 말이오.”
맹성하도 말했다.
“성하무원 역시 마찬가지요. 하계 무사는 누구나 성하무원에 들어올 수 있고, 언제든 마음대로 떠날 수 있소. 아무도 여러분을 막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말에 하계 무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 일로 그들은 과도한 충격을 받아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본래 다들 대라천 사람들에 대해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도를 강연하고 무선의 무도를 전수해 주겠다니, 비급을 공짜로 주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지금이야 하계의 원기가 풍족해졌고, 천지통현도 절정이 아니고, 무선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하계 무사 대부분은 무선을 마주친 경험조차 없었다. 원기가 폭발하듯 불어나기 전부터 아무런 경험도 없이 무선에 오른 것은 야소남과 노천사 등 극소수의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공짜로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정말로 저들 덕분에 무도의 성세가 열릴 게 아닌가.
그러나 종신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들이 왜 왔는지, 무엇을 가져왔는지 나는 관심이 없소. 그러나 인과에 따르면 당신들은 지금 여기 나타나서는 안 되오.”
도존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어떤 인과가 우리를 하계에 나타날 수 없다고 정했단 말이오? 인과란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이오. 원인은 무엇이고 결과는 또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미 여기에 나타났소. 그런데도 그 인과가 여전히 유효하단 말이오?”
그 일련의 질문에 종신수는 멍하니 굳어 버렸다. 그는 한참 뒤에야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모르오.”
이번에는 도존 일행 쪽이 굳어 버릴 차례였다.
범교 교주가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인 건 모두가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 종신수란 자도 과히 멀쩡하지는 않은 듯했다.
대라천에서 하계에 오는 것은 인과에 어긋난다면서, 그게 무슨 인과인지 본인도 모른다고? 그런데도 남을 가로막겠다고?
이미 무너진 천문 진법을 바라보며 종신수가 말했다.
“진법이 무너진 후로 인과는 이미 변했소. 달라진 거지. 당신들이 어떤 인과를 만들어낼지 나는 알 수 없소. 그러나 대라천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면 인과는 훨씬 더 뒤틀리기 시작할 거요. 운명과 결과가 모두 달라진단 말이지.”
도존은 하늘을 가리켰다.
“무사는 일생을 수련하는바, 누구 하나 하늘과 운명을 다투지 않는 자가 있소? 우리는 인과를 믿으나, 운명은 믿지 않소. 그 어느 것도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정해진 일은 없단 말이외다. 모든 게 운명대로 정해져 있는 거라면, 무엇 하러 힘든 수련을 반복하며 천지와 다툰단 말이오?”
종신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초휴는 그가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지금까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마치 기계로 만든 사람처럼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던 종신수가 감정을 드러내다니!
“알아서 하시구려.”
그 한마디를 남기고, 종신수는 곧장 하늘로 올라 동쪽을 향해 떠났다. 이번에는 방향을 헷갈리지 않은 듯했다.
종신수의 출현은 대라천만이 아니라 하계 무사들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들을 가장 경악케 한 것은 종신수의 실력이었다. 정말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능력이 아닌가.
신출귀몰한 자재천 천주가 이렇게까지 두려운 실력자였다니. 보아하니 대라천의 강자들조차 그를 이길 수 없는 듯했다.
본래 대라천 무사들은 하계를 다소 얕보는 마음이 있었다. 하계 무사 중 무선에 오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니까.
전승으로 따져도 자신들은 일만년 전 상고 시대 무도의 전승을 온전히 물려받은 전인들인 것이다. 반면 하계 무사들이 이어받은 것은 자질구레하게 조각난 공법에 불과했다. 신통조차 없지 않은가.
그러나 종신수를 접한 그들은 전설 속 조상의 땅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상 조상의 땅에 돌아와 보니 자신들이 짜둔 계획의 유용성에 의문이 들었다. 변수가 너무 많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