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96)
1296화 각자의 목적
도존이 나직하게 말했다.
“여러분, 갑시다. 하계 일은 각 종문 내의 사람더러 처리하도록 하시오.”
그러자 여러 종문에서 몇 사람씩 나섰다. 다들 무선 구중천 혹은 팔중천쯤이었다. 혹은 신진 무선이라도 삼청전의 허귀산처럼 잠재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십여 명이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천하검종 모백상은 뭔가 아는 눈치였으나 잠시 망설였다. 그는 도존 일행이 떠나는 걸 보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초휴는 눈썹을 움찔했다. 대라천 지존 강자들 간에 뭔가 약속한 바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저 운을 쟁취한다거나 하계에 문파를 세울 목적으로 온 것만은 아닌 듯했다.
그때 육장류가 다가왔다. 영현기와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조사님이니 얘기를 더 나눠서 손해 볼 건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영현기는 그를 아예 무시해 버리고 초휴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애송아, 네가 천문을 없애 버렸다며? 그럼 천문에 있던 극양의 본원도 네게 있겠군그래?”
이 말에 초휴는 몸이 굳으며 식은땀이 흘렀다.
“긴장할 건 없다. 그걸 빼앗으려는 건 아니니까. 이 어르신에게는 그런 건 필요 없단 말이지. 물론 어르신이 정말 빼앗으려 한대도 너는 얌전히 당하고 있어야지 무얼 어쩌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초휴는 민망한 듯이 웃었다.
“영 선배님이 정말 필요하시다면 당연히 제가 바쳐야지요.”
영현기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잔머리는 잘 돌아가는구나. 내가 정말 빼앗으려 들면 독고유아를 풀어놓을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됐다. 쓸데없는 말은 관두고, 나와 거래를 하자. 나와 함께 동해에 가는 거다. 네 몸에 있는 극양의 본원을 좀 빌려야겠다. 지금 네 실력은 아마 사중천 절정일 테지. 일이 다 끝나면 오중천으로 만들어 주마. 어떠냐?”
초휴는 생각할 것도 없이 답했다.
“선배님의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설령 영현기가 대가를 베풀지 않더라도 그의 실력이 있으니 초휴로서는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영현기쯤 되는 전설의 강자와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왜 뿌리치겠는가.
누구는 제자의 제자쯤 되면서도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하는데 말이다.
예를 들면 육장류라든가···.
초휴가 영현기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까지 하는 걸 바라보는 육장류의 얼굴은 그야말로 서러움 그 자체였다.
‘정말 우리 조사님이 맞으십니까? 게다가 그놈은 조사님이 활약하시던 때로부터 오백년이 지난 지금의 마교 교주란 말입니다! 지긋지긋하게 악랄한 놈이라니까요!’
강호에는 장장 오백년 동안 강호를 지배하려는 마두 독고유아의 야심을 선인 영현기가 쳐부쉈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런데 오백년 뒤의 마교 교주와 죽이 맞아서 즐겁게 담소하고 있다니. 전설 속 위인의 위용이 아주 무너지다 못해 가루가 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영현기는 그런 거야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라 곧장 초휴를 데리고 떠날 기세였다. 초휴는 서둘러 이런저런 일을 분배했다.
위서애를 비롯해 곤륜마교 세력은 대부분 하계에 남겨 두고, 다른 대문파와 충돌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지금은 자신의 기반과 실력을 보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영현기는 그를 끌고 가 버렸다. 이제 대라천 강자들과 초휴까지 모두 떠났다.
덩그러니 남겨진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하나둘 흩어졌다. 이제부터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비해야 했다.
초휴 휘하는 초휴가 돌아오기 전까지 곤륜마교의 이익을 지켜야 할 터였다. 하계 무사들 역시 자신들의 몫을 지키는 동시에 이득을 얻어내야 했다.
예를 들면 무선의 수련 경험 같은 것 말이다. 그 대가로 대라천 무사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 자신만 알 터였다.
영현기는 초휴를 데리고 줄곧 동해 쪽으로 향했다. 초휴는 길을 가면서 물었다.
“참, 선배님, 대라천 사람들은 무엇 하러 간 겁니까? 그리고 저를 왜 동해로 데려가시는지요?”
영현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놈들은 남해로 간 것이지. 장생천의 단서를 찾으러 말이다.”
초휴는 의아했다.
“일만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장생천을 포기하지 않았다고요? 장생천이라는 것이 정말 있다는 말씀입니까?”
천혼이 초휴에게 장생천의 단서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해 준 게 있었다. 세 가지 도의 근원을 모아야만 장생천을 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도존 일행이 아는 장생천의 개방 방식은 독고유아가 아는 것과 좀 다른 듯했다.
영현기가 비웃듯 말했다.
“누가 알겠느냐? 다 상고 시대 기록에 남겨진 이야기일 뿐이니까. 어쨌거나 이 어르신은 그런 허무맹랑한 것을 믿지 않는다.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걸 믿을 뿐이야. 법칙을 극한까지 깨닫고, 법칙을 창조함으로써 세계를 창조해 낸다. 장차 이 어르신은 신이 될지도 모르지. 하나의 세계를 조종하는 신 말이다!”
비할 바 없이 호방하게 들려야 할 말이었다. 그러나 영현기의 입에서 나오니 어째 으스대는 것 같아서 분위기가 깨졌다.
초휴는 화제를 돌렸다.
“그럼 동해에는 무엇을 찾으러 가십니까?”
“하범천이 형성되던 시초의 파편을 찾으러 간다.”
영현기는 굳이 숨기지 않고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지금의 하계는 상범천이 멸망한 후 하범천과 융합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 융합에는 반드시 시발점이 있었을 테지. 양쪽이 융합하여 엉키기 시작했을 때 충격으로 생긴 세계의 파편이 있을 거란 말이다. 바로 그것을 찾으려는 거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려면 그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아야 할 게 아니냐? 내가 헤아린 바에 따르면 그곳의 법칙은 혼란하기 짝이 없을 거다. 대라신궁보다 더하겠지. 그래서 너를 데려가는 게다. 그때가 되면 네가 지닌 극양 본원의 힘으로 혼란한 법칙을 뚫고 들어가야 하니까.”
초휴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만일 순수한 극양 본원의 힘이 필요하다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제게는 마도 본원의 힘도 있습니다. 둘은 이미 합일하여 순환하기 시작한지라 동시에 쓸 수밖에 없으니까요.”
초휴가 천문을 없애 버린 것은 숨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대라천 사람들도 조만간 극양의 본원이 그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터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어차피 그는 지금 독고유아를 내세워 남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쓸 수도 없고 소화할 수도 없는 본원의 힘 때문에 대라천의 최절정 강자들이 모험을 무릅쓰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영현기는 근원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음양 본원에 관해 사실대로 말한 것이다.
영현기는 좀 괴이쩍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애송이 놈이 참 운도 좋군그래. 음양 본원을 다 지녔다니. 별 상관은 없다. 근원의 힘을 이용해 법칙의 혼란을 깨부수면 그만이니 음양이야 무관하지. 둘 다 있으면 더 좋고.”
그때 문득 초휴가 말했다.
“참, 선배님. 기운(氣運)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대라천 세력이 하계에 온 것도 다 기운을 빼앗기 위해서입니까?”
실력이 모자라다 보니 초휴는 최정상 강자들만의 비밀에 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막막한 상황에 부닥칠 때가 많았다. 마침 영현기가 옆에 있는 데다 기분도 퍽 좋아 보이니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물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영현기는 담담히 말했다.
“기운이라,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아니라면 또 아닌 것이지. 그래, 네 곁에 있는 그 여봉선이라는 자가 운이 아주 좋지 않으냐? 타고난 운은 너보다도 대단하겠지. 내가 본 사람 중 타고난 운이 가장 강한 자더군. 그런 사람은 앞날이 아주 순조롭지.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타고난 운일 뿐이다. 이 세계 자체의 거대한 기운을 손에 쥐고 싶으면 진정한 최절정에 서야만 하지. 그러나 막상 최절정에 섰을 때 기운이란 그저 금상첨화에 지나지 않아. 그리 간절한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이지. 대라천 그놈들이 무슨 생각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저들 나름의 계산이 있겠지.”
“그럼 선배님도 하계의 기운을 놓고 다투실 생각입니까?”
영현기가 냉소했다.
“그건 이 어르신이 갖고 놀다 남겨 둔 것이다. 오백년 전 나와 독고유아가 하계의 모든 기운을 양분했지만,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냐? 결국 마지막 한 발짝은 지금까지도 내딛지 못했잖으냐? 결국 운은 한때일 뿐이야. 오백년 전의 운을 내가 손에 넣었다만, 이 시대의 운은 빼앗고 싶어도 내 몫이 없을 거다.”
초휴는 말이 없었다. 영현기가 하는 말은 좋게 말하면 기운의 본질을 꿰뚫은 듯했고, 좀 나쁘게 말하면 허세를 부리는 듯도 했다.
하계의 기운을 양분한 것이 뭐 어쨌단 거냐고? 하계에 단 둘뿐인 지존 강자 중 하나가 되었고, 대라천까지 통틀어도 일 대 일로 맞서면 적수가 없을 지경 아닌가. 그것도 부족하단 식으로 말하다니?
물론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었다. 속으로 투덜거렸을 뿐이다.
동해 해안에 다다른 영현기는 느닷없이 멈춰 섰다. 초휴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영현기가 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영현기가 앞을 가리켰다.
“애송아, 이제 네 차례다.”
초휴는 일순 멍해졌다.
“무엇 말입니까?”
“그야 당연히 세계가 형성된 시초의 위치를 찾아내는 일이지.”
초휴는 의아했다.
“위치를 모르십니까?”
영현기는 당연하다는 투였다.
“육갑으로 점을 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헤아릴 수 있는 건 세계가 융합한 가장 최초의 위치뿐이다. 이 큰 동해의 정확히 어디쯤인지를 어찌 알겠느냐? 너는 하계의 곤륜마교 교주이니, 해외에 아무 세력도 없다고 할 셈은 아니겠지. 옛날 독고유아는 직접 나서지도 않고 마존 하나를 보낸 것만으로 동해 무림 전부를 복속시켰느니라. 그런데 네놈이 바다 바깥에서 누구 하나 복속시키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텐데?”
초휴는 콧등을 문질렀다.
“물론 하기는 했습니다. 마음 놓으시고 그 일은 제게 맡기시지요.”
해외에 자기 세력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지는, 초휴 자신도 잘라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있었다.
옛날 초휴는 동제를 공격하는데 해외의 무림 세력을 이용하려고 직접 나서서 지존도 곽오야 일맥을 없앴다. 그의 자리는 천일수각 각주 백동래, 그리고 경도맹 맹주 관신통 등이 대신 올랐다.
나중에 그들은 새로 동해연맹이라는 세력을 세워서 해외 무림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 같았다. 그들이 정식으로 곤륜마교에 가입한 일이야 없지만, 옛 교분이 있으니 힘을 빌리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 * *
동해 지존도.
백동래와 관신통이 휘하 동해연맹을 이끌고 다른 무사들과 대치 중이었다.
백동래가 싸늘하게 말했다.
“곽영기(霍英奇), 동해연맹에 가입하라고 권할 때는 들은 척 만 척이더니, 이제는 수하들을 데리고 동해연맹의 규칙을 무너뜨려? 오래도록 이어져 온 동해의 평화를 망가뜨릴 셈인가?”
곽영기는 준수하게 생긴 서른 줄의 청년이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동해연맹에 가입하라고? 맹주 자리를 내게 양보한다면 가입하겠소. 백 맹주, 양보할 생각은 있소? 지존도는 본래 우리 곽가의 기반이었소. 동해연맹에서 막무가내로 점거한 지 오래되었으니 되찾고 싶다는 것인데 잘못된 거라도 있소?”
백동래가 노하여 외쳤다.
“웃기는 소리! 네가 무슨 곽가 사람이냐? 곽가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 주제에 인제 와서 곽가를 내세우다니?”
지존도 멸망 때 곽 오야 일맥은 완전히 뿌리가 뽑혔다. 곽영기는 곽가 방계의 사생아에 불과한지라 그때 숙청을 당하지도 않았고 나중에는 일련의 기연을 얻어 실력이 급상승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수완도 쓸 만하여, 곽 오야 일맥의 옛 수하를 긁어모아 동해에서 굴기한 것이다. 근래 이 년 동안은 그의 세력은 동해연맹과 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발전했다.
곽영기가 코웃음을 쳤다.
“사생아면 어떻단 말이오? 나 역시 곽씨인 건 분명한데! 당신들이 외지 사람과 결탁하여 우리 곽가 일맥을 멸문한 원한도 아직 다 갚지 못했잖나? 그러나 동해연맹이 지존도를 내놓으면 예전 일은 더 따지지 않고 없던 걸로 해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