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97)
1297화 영생을 사는 자
“내놓지 않겠다면?”
백동래가 싸늘하게 말했다.
곽영기가 냉소했다.
“못하겠다고? 그럼 동해연맹의 주요 거점은 당장 주인이 바뀌겠지! 당신은 곽오야를 해치우고 곽가 수하들을 잔뜩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개중 내 사람이 얼마나 될지 생각은 안 해 봤소?”
일순 백동래의 안색이 변했다.
동해연맹이 곽가를 뿌리 뽑았다지만 곽가들을 다 죽여서 씨를 말린 건 아니었다. 곽가 적통이 아닌 사람은 다 받아주었다.
곽 오야는 이미 죽었고, 그가 보기에 나머지는 큰 그릇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제 와서 약점이 되다니.
바로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회의라도 하는 중이오?”
초휴와 영현기의 모습이 허공에서 나타나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두 무리 한중간에 내려섰다.
그를 본 순간 백동래는 희색이 만면하여 외쳤다.
“초 교주!”
곽영기는 낯빛이 변했다. 그는 상대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짐작했으나, 나서서 물었다.
“감히 여쭙건대, 대인께서는 뉘신지요?”
초휴는 담담했다.
“당신 표현을 빌자면 백동래가 결탁한 그 ‘외지인’일세.”
어차피 초휴도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아는 것 같은지라 백동래는 얼른 말했다.
“초 교주, 저희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해외에서는 소식이 그리 빠르게 전달되지 않았으나, 초휴가 천문을 멸문했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았다.
지금 초휴는 그야말로 천하제일인의 위명을 떨치고 있지 않은가. 그가 나서서 도와주면 동해연맹의 골칫거리는 순식간에 해결될 것이다.
곽영기 역시 머저리가 아니니 초휴의 이름을 모를 리 있겠는가? 좀 전까지 초휴를 다소 불경하게 표현했으나, 이제는 즉각 대례를 올리며 공손하게 굴었다.
“조금 전엔 소인의 표현이 경솔했습니다. 초 교주께서 너그러이 넘어가 주십시오. 곽행존은 죽어 마땅했기에 초 교주께 처단당한 것입니다. 소인도 곽 씨입니다만 곽행존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저를 모욕했던 곽가 사람들을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었습니다. 저와 동해연맹 간의 일은 강호의 흔한 다툼에 불과하니, 초 교주까지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동해연맹 역시 초 교주 휘하 세력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소인도 초 교주를 우러러본 지 오래입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왔으니 초 교주 휘하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교주를 따르는 사냥개가 되어 곤륜마교를 위해 바다를 지키며 영원히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저를 받아주십시오!”
줄줄 나오는 그의 말에 백동래는 어안이 벙벙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같이 박정하게 몰아붙이던 곽영기가 이리 빨리 태도를 바꿀 줄이야. 안면 뒤집는 속도가 무슨 종잇장 넘기는 것 같지 않은가.
초휴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그를 훑어보았다.
인재로세!
그는 조금 전 곽영기가 했던 말을 똑똑히 들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낯빛을 바꾸고 말을 뒤집더니 최상의 선택을 하고 최대한 자세를 바싹 낮춘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이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 백동래만 해도 잠시 후에야 상황을 파악했으니 말이다.
“초 교주! 저희 역시 곤륜마교에 가입하고 싶습니다!”
초휴는 담담했다.
“이것 참, 우리 성교가 아주 인기 만점이 되었구려. 다들 가입하려고 앞다투어 달려들다니. 그렇게 들어오고 싶었으면서 왜 지금껏 기다린 거요?”
백동래와 곽영기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는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당신들의 일에 끼어들러 온 게 아니오. 어떤 곳을 찾는 중이오.”
그러더니 초휴는 지도를 하나 꺼냈다. 거기에는 영현기가 육갑으로 헤아린 몇 가지 그림, 그리고 상범천이 융합된 지점의 특징이 적혀 있었다.
“우리 성교에 들어오는 거야 어렵지 않소. 두 분은 지존도를 놓고 다투는 것 아니오? 나는 어느 편도 들지 않겠소. 이 지존도는 일단 두 사람이 절반씩 나누는 걸로 하지, 이 그림에 적힌 위치를 먼저 찾아내는 사람이 나머지 절반도 차지해서 지존도의 완전한 주인이 되시오.”
그렇게 말한 초휴는 곧장 법천상지를 펼쳐 일순간에 수천 장은 될 법한 거인으로 변했다.
그는 그 상태로 손날을 세워 일장을 내리쳤다. 어마어마한 힘이 떨어져서 대지에 십여 리의 균열이 생기더니, 지룡이 용틀임하듯 끊임없이 떨렸다.
그렇게 법천상지의 힘이 계속 주입되자 지존도 전체는 두 쪽이 나버렸다. 동강 난 양쪽의 거리가 십여 장이나 벌어졌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휴를 바라보는 눈이 마치 신을 보는 듯했다.
지금 그들의 경지로는 무선 수준의 힘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거대한 지존도를 두 쪽 낸 것은 평범한 무선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초휴가 법천상지 같은 힘 계열의 신통을 다루기에 가능했다.
입을 쩍 벌렸던 둘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즉각 수하를 풀어 초휴가 찾으려는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영현기는 줄곧 기운을 숨긴 채 초휴가 어쩌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 떠나자 입매를 찌그러뜨리며 웃었다.
“정말 잔머리 한번 대단하구나.”
그는 오백년 전에 이미 한 문파의 장문이었다. 게다가 그 오랜 세월을 살았으니 볼꼴, 못 볼 꼴을 수두룩하게 겪었다. 초휴의 소소한 잔꾀로는 그를 속일 수 없었다.
지금 초휴의 실력과 지위라면 둘 중 아무나 선택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내라고 해도 충분했다. 그러나 초휴는 백동래와의 교분도 상관하지 않고, 곽영기의 적극적인 아첨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놓고 강대한 힘을 과시하여 지존도를 갈라 버림으로써 그들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경쟁하게 했다.
하나가 찾는다면 평범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경쟁 관계인 둘더러 찾으라고 하면 죽을힘을 다해 먼저 찾으려 할 게 아닌가.
초휴가 웃었다.
“대놓고 말할 것도 못 되는 잔꾀에 불과합니다만, 효율을 올리는 데에는 괜찮은 방법입니다.”
그 말이 옳았다. 과연 아주 빠르게 결과가 나온 것이다.
양측은 초휴에게 들러붙기 위해 수하 전원을 동해에 가득 풀다시피 했다. 결국 고작 보름 만에 그 지점의 위치를 알아냈다. 심지어 거의 동시에 찾아낸 모양이었다.
그곳은 공간이 중첩된 기괴한 비경으로, 지독한 폭풍이 몰아치는 열풍해 한가운데였다.
거기 들어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전송되어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보니 점점 접근하는 사람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동해 땅은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아 비경과 험지가 수두룩했다. 그래서 다들 그런 곳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별 이득도 없었으므로 그렇게 잊혀진 채 방치되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초휴와 영현기를 거기까지 데려간 후 초휴를 빤히 쳐다보았다. 초휴가 그들에게 답을 줄 차례였다. 그러나 초휴는 손을 대강 젓더니 건성으로 말했다.
“우선 돌아가시오. 지존도 건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소.”
두 사람을 쫓아 보낸 후 초휴는 그제야 앞을 바라보았다.
“영 선배님, 여기가 맞습니까?”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기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암초로 가득한 해역이 펼쳐져 있었다. 언뜻 보면 별다른 것 없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 기이한 바다에는 마치 무수한 거울이 놓인 듯했던 것이다. 수많은 정경 하나하나에 거울상이 있었다. 똑같이 생긴 파도가 동시에 한가운데로 몰아쳤다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영현기는 손가락을 꼽아 가며 헤아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맞을 게다. 애송아, 음양 본원을 끌어내 보아라.”
초휴는 잠시 망설였다.
“선배님, 음양 본원의 힘은 사람이 다룰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쓰면 좀 위험할 수도 있을 듯한데요.”
영현기는 짜증스레 말했다.
“나도 안다. 이 어르신이 있는데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는군그래.”
그 말에 초휴는 이를 악물고 조화의 힘으로 음양 본원을 끌어냈다. 일순간 강대한 힘이 용솟음치며 온몸이 음양의 두 가지 색으로 물들었다.
바로 그때 영현기는 초휴를 세게 후려쳤다. 법칙의 힘이 몸으로 흘러들더니 길을 새로 내듯이 근원의 힘을 밖으로 빼냈다.
기이한 비경은 근원의 힘에 찢겨나갔다. 초휴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더욱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공간이 중첩되어 있었다. 온전한 하나의 세계와 무너진 하나의 세계가 서로 엉킨 것이다.
마치 커다란 공이 다른 하나의 공을 덮은 것 같았다. 그러나 두 공의 무늬는 모두 겹쳐져서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초휴는 맹렬하게 눈을 부릅떴다. 결코 여기 나타날 수 없는 사람을 본 것이다.
흰옷에 맨발, 이마의 붉은 표지, 그는 종신수였다!
영현기가 열어젖힌 이 기이한 곳은 상범천과 하범천의 융합이 시작된 지점이었다. 공간과 시간 법칙은 여기서는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여기에 왔던 사람의 모습도 영상으로 영원히 남은 것이다.
공간 법칙이 뒤틀린 곳에서는 흔히 발생하는 일이었고 일종의 비정상적인 정상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놀라운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종신수의 모습은 비경의 가장 깊은 한가운데에 낙인처럼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상범천과 하범천이 융합하던 일만년 전 그때!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상고 대겁난 후 강자들은 모두 상범천을 떠났다.
그러나 종신수는 이 자리에 남아서 마치 방관자처럼 두 세계의 융합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그는 일만년을 살아왔다는 말이다. 어쩌면 더 오래되었을지도 몰랐다.
종신수는 처음부터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그의 내력도 신분도 수수께끼였으니까.
실력은 아예 아무도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원래 초휴는 막연하게 그가 무선이겠거니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종신수는 구중천 실력자인 범교 교주나 도존과 겨루면서도 밀리지 않았다.
물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가 일만년 전 이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영현기가 오백년을 산 것은 그의 실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종신수가 정말 일만년을 살았다면 전설 속의 영생불사와 무엇이 다른가?
영현기 역시 그 광경을 보고 미간이 깊게 팼다. 이건 그로서도 이해가 안 가는 일인 게 분명했다.
“영 선배님, 오백년 전에 자재천 종신수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영현기는 눈썹을 찌푸렸다.
“자재천은 언뜻 들어보았다. 하지만 종신수를 본 적은 없고, 그 이름도 기억에 없어. 그때 나는 자재천이 해외의 은거 세력인 줄로만 알았다. 실력이 아주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특별한 관심은 없었지. 저번에도 종신수가 출수하기 전까지는 그저 강호에 새로 나타난 지존 강자겠거니 생각했다. 하계에는 이미 독고유아와 이 어르신이 있지 않았느냐? 비슷한 존재가 오백년 동안 하나쯤 더 나왔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것은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보니 생각이 나는구나. 전에 종신수를 본 적이 있어.”
“오백년 전에 말입니까?”
“그럴 리가 있느냐? 오백년 전에 보았으면 잊을 리가 없지. 정확히 말하면 내가 본 것은 그의 조각상이라고 해야겠군. 이 어르신이 아직 젊었을 적의 일이다. 수천년 지난 종문의 유적에서 조각상을 하나 찾았는데, 그게 바로 종신수의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나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그 종문의 선조인가 보다 생각했지. 그래서 그 조각상이 종신수인 줄은 몰랐는데, 이제야 기억이 나는구나.”
초휴는 살짝 눈썹을 움찔했다. 그렇다면 종신수는 몇천년을 그런 존재로 살았단 말인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듯했다. 그는 종신수의 습관을 알고 있었다.
종신수는 툭하면 길을 잃어버렸고, 늘 인과를 입에 달고 살았다.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으려 했다. 고작 길을 물어본 대가로 상대에게 뭔가 이득을 줌으로써 인과를 없앴다.
아마 종신수 입장에선 그가 남에게 주는 이득은, 그저 길을 묻는 말에 대답하는 정도의 가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힘은 그야말로 조화였다. 하늘의 조화! 그러니 누군가 종신수를 기리기 위해 조각상을 만드는 것도 이상할 게 없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