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11)
1311화 반란을 꾀하다
영가는 본래 구대 세가의 우두머리였고 노야가 무선이 된 지라 실력과 명성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진무교는 영현기가 뒤에 있지 않은가.
여호창의 장례에 여륭광의 즉위식까지 있으니 영가 노야가 직접 올 만한 자리였다. 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영가 노야, 그리고 함께 온 영백록은 따로 마련된 대전으로 불려갔다.
두 사람이 의아해하는데 문이 열리자 초휴가 보였다. 초휴는 담담하게 웃고 있었다.
“영 노선배, 영 형, 별래무양하셨습니까?”
“초 교주, 여긴 웬일이오?”
영가 노야의 어조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간 초휴와 관련된 일치고 좋은 일이 없지 않았던가. 그러나 뒤에 있던 여륭광은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필시 중요한 밀담을 나눌 모양새였다.
“동제에 큰일이 벌어졌는데 내가 온 것이 그리 이상합니까?”
초휴는 그렇게 반문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올 만한 이유가 있지요. 동제 무림의 앞날을 위해서입니다! 범교의 착취와 위협을 영 노선배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런 굴욕을 당해 보신 것도 매우 오랜만일 텐데요? 범교는 그야말로 하늘과 사람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동제 무림과 하계의 법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단 말이지요. 영 노선배는 정녕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영가 노야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것이 초 교주와 무슨 상관이오?”
그는 초휴의 목적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휴의 명성이 자자한지라 뭔가 음모가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섣불리 믿기가 꺼려졌다.
초휴는 여륭광 쪽을 가리켰다.
“물론 상관이 있지요. 동제를 위해 나서 달라고 폐하께서 내게 부탁하셨습니다. 심지어 곤륜마교를 동제의 국교로 삼겠다고 하셨는데, 어찌 상관이 없습니까? 영 노선배, 나를 경계하시는 건 압니다. 본래 우리는 정과 마로 처지가 달랐으니 그간 좀 오해가 있었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대라천의 강림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단 말입니다. 옛날의 대립구도와 사고방식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그간 범교의 행각은 익히 아실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맞설 수는 없었겠지요. 영 노선배는 막 무선이 되어 한창 기세가 드높은 시기인데, 상대의 눈에는 여전히 약자인 겁니다. 별로 좋은 기분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영가는 구대 세가의 으뜸입니다. 그런데도 기꺼이 범교의 압박과 착취를 받으며 지내겠다면 내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시지요. 하지만 일평생 강호를 누벼오신 영 선배께서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영 형은 이제 곧 가주 자리를 이어받는다고 들었소만, 그렇게 구차한 가주가 되어도 괜찮을까요?”
영가 노야와 영백록 모두 말이 없었다.
초휴의 말재주가 대단하다는 것은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저 이간계와 궤변에만 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초휴가 한 말은 구구절절 그들의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리고 있었다.
영가 노야와 영백록은 남이 자기를 짓밟는데도 넋 놓고 밟히고 있을 위인들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애초에 막천림이 나마와 허운을 찾아가자고 제안했을 때 동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의 기대가 컸으니 결과에 대한 절망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초휴가 정식으로 출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지난날 적대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초 교주, 얼마만큼 자신이 있소?”
초휴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제 입장에서 보면 나는 어디까지나 제삼자이지요. 나 혼자라면 승률은 오 할밖에 장담 못 합니다. 동제 무림 자체가 반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제삼자 혼자서야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하지만 동제 무림이 확실히 동참해준다면 십할의 승률을 자신할 수 있습니다. 범교 놈들이 감히 우리를 우습게 보고 포악질을 부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 말에 영가 노야는 호쾌하게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좋소! 이번에 노부는 초 교주를 힘껏 돕겠소이다. 부디 이 노부가 실망하는 일은 없게 해주길 바라오.”
“이 초휴와 손잡았던 사람치고 실망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초휴가 여륭광을 향해 눈짓해 보이자 그가 슬며시 나가더니 육장류를 데려왔다. 초휴와 영가 노야가 함께 있는 것을 본 육장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 가주, 초 교주, 두 사람이 여긴 어인 일이요?”
“육 장문, 놀라지 마시구려. 우리는 동제 무림의 미래를 위해 얘기를 나누던 중입니다.”
이 말을 시작으로 해서 초휴는 영가 노야에게 했던 말을 그에게도 그대로 들려주었다. 초휴는 말을 맺으면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육 장문, 진무교는 이번에 범교의 표적이 되지 않았다는 건 나도 잘 압니다. 그러니 육 장문이 이번 일을 모른 척 해도 솔직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요. 그러나 육 장문, 본인의 양심에 대고 한번 물어보십시오. 동제 무림이 이대로 범교에 난도질당해도 정녕 아무렇지 않겠소이까? 더욱이 진무교는 심지어 동제의 국교가 아닙니까. 그러니 범교가 저렇듯 막무가내로 동제를 핍박하려 드는 것은, 진무교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소리와 뭐가 다릅니까. 그런데도 이를 용인하시렵니까?”
그러자 육장류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용인하지 않으면 달리 뭘 어쩌겠소? 범교는 우리 영현기 조사님이 두려워서 우리를 건드리지 않고 있을 뿐이오. 우리를 두려워해서가 결코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진무교가 도우러 나선다 한들,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도 의문 아니오? 그나저나 초 교주, 조사님께서 그대를 데리고 어디로 가셨던 거요? 그리고 우리 진무교를 인정하려 들지 않으시려는 듯하니 그 이유를 당최 모르겠단 말이요.”
초휴가 별소리를 다 듣는다는 것처럼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영 선배님은 당연히 진정한 정상에 이르려고 대도를 좇으러 가셨습니다. 그리고 진무교를 인정하지 않으시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인과가 진무교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되셔서 그런 게지요. 현재 영 선배님의 실력과 그분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니까요. 그분이 추구하는 게 여러분은 손도 댈 수 없는 것이라면 가급적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영현기가 쫓고 있는 그 현묘하고도 현묘한 목표는 초휴 자신조차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설명이 어려웠다.
하지만 의외로 육장류는 그 이치에 대해 알기라도 하는 듯 꽤 몰입하는 자세였다. 초휴의 얘기가 이어졌다.
“어쨌거나 영 선배님이 남기신 후광을 육 장문께서는 톡톡히 누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무교가 보유한 최대의 무기인 셈이지요. 그런 걸 이런 때 쓰지도 않고 가만히 놔두신다면 여간 낭비가 아니지요.”
육장류가 참다못해 물었다.
“그러면 그걸 어찌 쓰면 좋겠소이까?”
초휴가 눈을 가늘게 뜨며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간단합니다. 승부수를 띄워보시는 겁니다. 범교가 감히 진무교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며 온 강호의 공분을 사면서까지 동제 무사들을 건드리지는 못할 거라는 쪽에 과감히 걸어보시란 말입니다! 범교를, 절대 넘어설 수 없는 강적으로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동제의 모든 이가 한데 뭉쳐 저들 앞에 버티고 서는 겁니다. 그리고 죽일 테면 죽여보라며 뻗대도 감히 못 죽일 겁니다!”
“만에 하나 그랬다가 정말로 우리를 잡아 죽이겠다고 달려들면 어쩐단 말이오?”
영가 노야의 우려에 초휴가 자신을 가리키며 답했다.
“그때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하계에 하계만의 규칙이 있듯이, 대라천에도 대라천의 규칙이 있습니다. 하계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도존이 대라천의 모든 세력과 합의해서 규칙을 정했고 다들 그것을 성실히 따랐습니다. 그러니 범교 교주의 명도 없이 저들이 동제에서 독단적으로 날뛸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더욱이 이 초휴가 버티고 있으니 저들이 함부로 날뛸 기회 자체가 주어지기 어려울 겁니다?”
영가 노야와 육장류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초휴한테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이들이 초휴를 믿기로 한 데에는 그를 정말로 신뢰해서가 아니었다. 범교의 행패가 실로 도를 넘어섰기에 더는 참기 힘들어서였다.
예전에야 초휴와 진영을 달리하며 대척점에 서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뭐래도 같은 하계 종문으로서 어느 정도는 같은 편이라는 동질감이 앞섰다.
반면, 범교는 외적이 아닌가. 그것도 포악무도하기 그지없는 침입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처신하는 게 옳은 건지 답은 자명한 셈이었다. 같은 편끼리 뭉치지 않는 이상, 저렇듯 강한 외적을 물리치는 건 불가능했다.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최종 합의를 본 다음, 동제의 다른 군소 세력들에게도 이 합의 내용을 알렸다.
동제 조정, 구대 세가의 영수인 영가, 그리고 영현기의 후광을 입은 진무교, 이렇게 삼자 간의 연합은 모든 동제 무림세력의 결정을 대표하기에 충분했다.
* * *
그로부터 한 달 후, 동제 조정 휘하의 여러 무력 조직과 군부 정예 병력, 그리고 동제를 대표하는 모든 주요 무림세력의 수장 및 정예 무사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범교의 입구 앞에 집결했다.
이들의 수를 다 합치면 십만 명이 훌쩍 넘을 듯했다. 입추의 여지도 없이 빽빽하게 도열한 이들의 대오는 심지어 범교 건물을 겹겹이 에워싸기에 이르렀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온갖 금빛 장식물로 전신을 요란스럽게 치장한 절색의 미인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범교 내에서도 보기 드문 여자 무선으로, 시바전 천녀신궁의 궁주, 파이와(帕爾瓦)였다.
사실 오늘은 동제 조정 및 무림세력들이 범교로 제자들을 들여보내기로 약속이 되어있는 날이니만큼, 염마가 특별히 그녀를 내보낸 것이다. 염마 본인도 자신의 성격이 대단히 괴팍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반면, 파이와는 아무래도 여자인 데다 매우 아리따운 용모인지라 입교하는 제자들의 긴장감을 다소 덜어줄 수 있으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엄연히 무선이 아닌가. 그녀는 하필 이런 자리에 자신의 실력이 아닌 미색을 내세워 새 제자들을 맞이하게 만든 전주의 처사가 못마땅했다.
게다가 문을 나서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규모의 무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모습에 그녀는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고 말았다.
“이게 다 뭐지? 설마 이 많은 사람이 죄다 범교에 입교하겠다고 몰려온 건가요?”
그 질문에 영가 노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아니외다. 천신만고 끝에 키워낸 금쪽같은 제자들을 어찌 범교의 아가리에 고스란히 넣어 줄 수 있겠소?”
순간 파이와의 낯빛이 음침하게 가라앉았다. 그 곱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지더니 살벌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시바전 무사치고 광기에 가까울 만큼 호전적이지 않은 자는 드물다. 파이와가 여자라고 해서 예외일 순 없었다.
그녀의 온몸에서 운율을 띤 파동이 가닥가닥 일어 물결처럼 허공으로 퍼져 나가더니 폭죽이라도 터뜨리듯 원기가 작렬하기 시작했다.
“무엄하다! 이토록 거창하게 진을 치고 무슨 불온한 수작을 하려는 게냐?”
그녀가 촘촘히 늘어선 무사들을 노려보다가 냉소를 터뜨렸다.
“흥! 꼴 같지도 않은 것들이 설마 머릿수만 믿고 우리 범교한테 대들려는 심산인 건 아니겠지? 네깟 놈들이 아무리 새까맣게 몰려들어봤자 우리 눈에는 개미 한 무리에 불과하다. 한번 밟아주면 모조리 끝장이 날 거란 말이다!”
그녀의 협박에 영가 노야는 결연히 받아쳤다.
“범교의 눈에는 우리가 개미 떼처럼 가소롭게 보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개미가 떼로 몰려들면 집채만 한 흉수라고 해서 꼭 온전하다는 법도 없지. 우리를 만만히 보지 말라!”
육장류도 장탄식을 내뱉더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동제 무림이 범교의 적수가 못 된다는 건 우리도 잘 아오. 하지만 한번 짓밟을 테면 짓밟아보시구려. 우리도 순순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
“이것들이 감히······!”
파이와가 일단 노호성을 터뜨리긴 했으나 뒷말을 어찌 이어가야 할지 몰라 난감해졌다. 자기가 독한 말로 을러대긴 했지만, 실제로는 저들을 어찌하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먼 옛날 대라천에 처음으로 넘어갔을 때야 그곳의 만족들을 거침없이 죽여 댈 수 있었다. 같은 종족이 아니기도 했고 미지의 땅에 자리를 잡고 살아남자면 살생은 필연적이었으니까.
그러나 하계로 넘어오기 전에 대라천 강자들은 다음과 같이 중론을 모았다.
하계 조상의 땅에 남은 자들과는 일만 년 가까이 연락이 단절되긴 했으나, 원천적으로 동족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싸움이 벌어지는 건 피하지 못한다 해도, 무분별한 살상은 허용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실리적인 측면에서 봐도 하계 무사들은 하시라도 그들의 제자가 되어줄 인적 자원이 아닌가. 수틀린다고 해서 멋대로 죽여 댔다가는 하계에서의 종문 건립 및 세력 확장에 심대한 차질이 빚어질 게 뻔했다.
더욱이 하계 무사들의 눈에는 대라천 종문들이 아직 생소한 존재였다. 속속들이 아는 게 없으니, 하나가 그러면 도매금으로 전체가 다 똑같이 행동하는 것으로 느껴질 게 아닌가.
다시 말해 일개 종문이 살생을 벌여대는 게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자칫 이것이 ‘대라천 종문은 하나같이 살인귀’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시바전이 제아무리 천라보찰과 연례행사처럼 큰 싸움을 치러왔다지만, 지금 눈앞의 무사들을 상대하는 건 종전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숫자만도 무려 십만 명인 것이다!
물론 저들의 실력이 허접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개미이건 뭐건 간에 결국은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아닌가.
십만 명의 목숨을 통째로 앗았다가 그 엄청난 인과를 어찌 감당하랴. 파이와 개인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범교 전체로 봐도 그것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인과가 아니었다.
게다가 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은, 자신들이 애초부터 건드리지도 않은 진무교마저 저 대오 속에 버젓이 끼어 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