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22)
1322화 진격의 야소남
야소남은 워낙 말수가 적었다. 평소에도 대부분의 말을 행동으로 대신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야소남은 무도를 궁극의 경지까지 수련하면 장생 불멸할 수 있다는 가설을 믿기는 했다. 다만 그는 자신이 직접 수련한 결과로 장생 불멸을 얻고자 했을 뿐, 남이 거저 던져주다시피 하는 장생 불멸 따위는 믿지 않았다.
따라서 뜬금없이 허공에 나타난 저자가 하계의 존재이건, 대라천의 사람이건, 또 그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몸을 내어줄 생각이 없으니 싸우기밖에 더하겠는가.
보천지의 시전으로 마기를 품은 흑무는 깡그리 흩어지고 소멸하였다. 그리고 법칙도 붕괴시켜 적멸케 한 그는 무상천마를 겨냥해 찔러왔다.
야소남이 갓 오중천에 오른 터라 힘이 초휴만은 못해도 무상천마 하나 손봐주는 건 어려울 게 없었다. 무상천마는 상대의 갑작스러운 일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서 또 땅속에 몸이 처박히고 말았다.
곧 원신을 재정비한 무상천마의 표정은 한층 더 험악해져 있었다. 일만년 전에 강호 전체의 공적으로 몰려 봉인되었던 거야 그렇다고 치자.
당시 협공해왔던 자들은 하나같이 지존급 강자들이었으니 딱히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연달아 새카만 두 후배한테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화를 못이긴 그는 그만 폭주하고 말았다.
“어디 본존한테 죽어봐라!”
무상천마가 노호성을 내지르자 마기가 끊임없이 견인되어 천 갈래 만 갈래의 마영으로 화했다. 그리고 더없이 살벌한 기세로 야소남을 덮쳐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야소남은 차분하게 수인을 결했다. 삽시간에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엎어지며 법칙이 통째로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제 보천인(補天印)이 위용을 떨칠 차례가 된 것이다.
그 많던 마영이 죄다 보천인의 강대한 위력에 적멸했다. 무상천마도 그 힘에 짓눌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그는 원신을 절반이나 태우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원신은 이 타오르는 힘을 빌려 보천인의 위력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화살처럼 변해 야소남을 표적으로 날아들었다. 그의 원신에 직격을 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야소남은 미동도 없이 선 채로 원신 화살이 자기 몸을 관통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무상천마도 왕년에는 엄연히 구중천을 찍었던 인물이다.
정신이 좀 맛이 가긴 했어도 전투 경험만은 풍부하니 순간적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아니나 다를까, 화살을 맞은 야소남의 몸이 일곱 빛깔 운무로 쪼개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또 다른 야소남이 등 뒤에 나타난 게 아닌가.
그리고 야소남은 보천심경을 궁극의 경지까지 시전했다. 상대가 법칙의 힘을 전혀 쓸 수 없게 차단하더니, 무력해진 무상천마를 재차 땅속에 기둥 박듯 박아버렸다.
이와 더불어 그 칠색 운무는 또 다른 야소남을 빚어냈다. 이제 둘로 늘어난 야소남이 무상천마를 꽉 누른 채 정신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원공성이 부리나케 배월교에 당도했을 때 눈에 들어온 광경이 바로 이거였다. 이제 원공성은 자기가 사람을 잘못 파낸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풍문에 듣자니 남들이 파낸 상고 강자들의 경우는 하나같이 명실상부한 지존급 강자로, 무소불위의 법력마저 갖췄다고 했다.
다시 강호에 거친 풍파를 일으키는 바람에 고수들이 재차 그자를 봉인하기까지도 했다던데, 그럼 그게 다 헛소문이었단 말인가? 설마 그게 전설의 한 자락에 불과했다고?
정작 자기가 파낸 인물은 풀려나자마자 몸을 구해야 한다며 정신 사납게 굴더니만, 결국 두 차례나 심한 폭행을 당한 끝에 원신의 기운도 가물가물해졌다.
지금 같으면 원공성 자신이 나서도 쉽게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심중에 신화나 전설처럼 자리 잡고 있던 무상천마의 존재감은 순식간에 끝 모르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크게 상심할 필요는 없었다. 궁극적으로 무상천마에게 바랐던 건 그의 실력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의 도움을 받아 좌구량의 곤경을 해결하려는 것이었으니까.
이에 원공성은 아까와는 달리 서둘지 않았다. 심지어 잠시 뜸을 들이기까지 하더니 앞으로 나서며 고함쳤다.
“야 교주, 잠시만 멈춰주시오. 이게 다 오해요, 오해!”
원공성을 발견한 그제야 야소남은 일방적인 폭행을 멈췄다. 하지만 그의 분신은 여전히 무상천마를 쥐어 패는 중이었다.
그 둘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원공성은 무상천마의 참담함과 야소남의 강력함이 극명하게 느껴져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는 다급히 해명했다.
“이분은 일만년 전에 봉인되었다가 막 풀려난 우리 천마궁의 선배님 되시외다. 아직 정신이 흐릿하여 저러는 것이니 야 교주께서 관용을 베풀어주시길 바라오.”
그 말에 야소남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말인즉슨, 저자는 우리 배월교의 적이 아니다?”
원공성이 황망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히 아니오! 절대로 아닙니다!”
이미 그는 배월교의 실력에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어쩐지 초휴가 배월교는 존중하더라니, 그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수련 환경이 척박했던 하계 종문에서 야소남과 같은 수준의 강자가 나왔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닌가. 동시에 이는 대라천 종문 입장에서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야소남이 잠시 원공성을 응시하다가 마침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분신이 칠색 운무로 화하여 그의 체내로 돌아갔다.
이번에야말로 무상천마의 입에서 빙의니, 어쩌니 따위의 말은 쏙 들어갔다. 초장에 흡입했던 그 많은 천마궁 진법사들의 힘이 폭행 두 번 만에 완전히 소진된 것이다.
하지만 원래의 봉인 상태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풀이 팍 죽어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원공성을 따라나섰다.
* * *
돌아가는 길에 무상천마가 불만을 터뜨렸다.
“어째서 너희 천마궁은 대를 이어 갈수록 신통치가 않은 게냐? 그리고, 하계의 마도 무사들은 정녕 본존의 명호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냐?”
이에 원공성은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천마 대인, 벌써 일만년이나 지났습니다. 당금의 강호인들이 대인의 함자를 모르는 게 이상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염려 마십시오. 천마궁이 당면한 난제를 풀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만 하면 반드시 대인께서 만족하실 수 있는 몸을 찾아드리겠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왕년의 그 놀라운 실력을 회복하시도록 말입니다.”
이때 원공성은 어떻게든 무상천마를 어르고 달랠 궁리나 했지, 정작 자기가 그를 파내느라 동제 땅에 묻혀있던 수많은 것들도 덩달아 파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중에 초휴가 줄곧 찾아오던 원신궁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말이다.
상범천과 하범천이 합쳐졌을 때 아귀가 딱 맞아떨어졌던 건 아니었다. 두 세상이 맞물리는 과정에서 어그러지며 위치의 편차가 생긴 것이다.
일례로 천혼은 원신궁의 위치가 중원 어딘가일 거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동해군, 즉 천마궁이 무상천마를 발굴해낸 위치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도 않은 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동제 조정에서 발견한 게 아니라, 동해 연맹의 백동래와 곽가의 곽영기에게 발견되었다. 초휴가 동제 조정뿐만 아니라 자기 휘하의 세력들에게도 원신궁 수색을 지시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수색하는 사람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빨리 발견되지 않겠는가. 백동래와 곽영기는 초휴의 분부를 받자 중원 무림세력과의 경쟁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으로 동해군까지 진입해버렸다.
그리고 천마궁이 여기서 뭔가 굉장한 걸 발굴했다는 소문을 듣고 눈치껏 그곳 일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으로 원신궁을 발견한 것이다.
초휴는 그들에게 전갈을 받자 혼자 급하게 움직이는 대신, 북연과 서초로 가서 용맥의 힘을 빌려 경지 돌파를 마친 상천량과 육강하부터 데려왔다. 그리고 곤륜마교 남만 분전에서도 인원을 대거 데려와 출동 채비를 마쳤다.
천혼은 원신궁을 미치광이들의 집단이라고 했다. 그들이 남긴 유물들이 강대하고 초휴에게도 꽤 유용할 테지만, 동시에 그만큼 위험이 따를 거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니 만일에 대비해 가급적 많은 인원을 데려가는 게 좋을 터였다.
그런데 그간 초휴가 알아낸 사실로는 상고 대겁난 이전의 무사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큰 걱정 없이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다 보니 정상에 올라선 뒤로는 삶이 무료하여 기괴한 짓거리를 많이 시도했다는 점이었다.
일례로 극락마궁의 선조들만 해도 그랬다. 상고 마신을 복원하려다가 정작 자신들의 조화지도(造化之道)가 샛길로 빠지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천마궁이 발굴해낸 무상천마도 장생 비법을 연구하려다가 자기 정신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이 원신궁이 어느 일파에 속하는지는 몰라도 크게 일을 저질렀던 것만은 분명했다. 사람의 힘으로 신을 만들려 한 그들의 발상 자체가 단체로 미친 짓이 아니면 뭐겠는가.
이처럼 상고 대겁난 이전은 무도 성세인 동시에, 천재와 광인이 수두룩하게 배출되었던 시대였다.
인원 집결을 마치자 초휴가 그들에게 상황 설명을 한 다음 함께 동해군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상천량과 육강하에게 전적 한 권을 던져주며 말했다.
“육 형, 상 성주! 이 책에는 무선 일중천부터 삼중천에 걸친 무사들이 법칙의 힘에 적응했던 경험들이 수록되어 있소. 두 분이 최단속도로 지금 단계에서 벗어나 사중천으로 올라설 수 있게 도와줄 거요.”
물론 이 책자는 초휴가 만든 게 아니었다. 그는 일중천부터 삼중천까지의 앞 단계를 번번이 기연을 빌려 돌파했으니 남과 공유할 만한 경험이 없었다.
이건 능소종과 황천각 쪽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 두 개 종문만이 대대로 무선을 배출해낸 경험이 있었다. 따라서 내용이 꽤 자세하고 정확했으며 웬만한 무선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만했다. 그것을 받아든 상천량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이 은혜를 어찌 다 말로 갚겠나. 다 늙어빠진 몸뚱이나마 남은 생애 동안 초 교주를 위해 분골쇄신하리다. 전설 속에서나 접해봤던 경지에 이 늙은이가 오를 날이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군그래.”
물론 육강하는 상천량만큼 말주변이 좋지를 못했다. 되레 눈을 부릅뜨고 초휴에게 얼굴을 바짝 갖다 대며 채근했다.
“이봐 교주님, 몇 중천이건 간에 어쨌거나 내가 무선에 오른 건 사실이잖아? 근데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대체 사대 마존에는 언제 봉해줄 거냐고?!”
초휴가 별소리를 다 듣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이제 육 형 실력은 왕년의 사대 마존보다 더 강해졌구먼, 그깟 명성 따위에 왜 자꾸 연연하는 건가?”
육강하가 단호히 고개를 젓더니 진지하게 답했다.
“교주는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집착하는 게 하나쯤은 다 있잖냐고. 오백년이 지났으니 사람은 옛사람이 아닐지라도 그 밖의 것은 죄다 그대로 아니냐고. 내가 죽어라 수련하는 건 남들에게 무얼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야. 그저 내가 지난날 박탈당했던 마존의 지위를 돌려받기 위함이라고!”
육강하 딴에는 꽤 열정적으로 한 말이었으나 초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잘 알았네, 그럼 계속 열심히 집착해 보게.”
똥 씹은 표정이 된 육강하를 뒤로하고 초휴는 대오에 출발하란 명을 내려 동해군으로 향했다. 이때 동해군 해안가에는 먹구름이 시커멓게 깔리고 풍랑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폭풍이 육지를 덮칠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