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26)
1326화 사람이 만든 신
사실 이제 막 몇 합을 겨룬 데 불과하긴 했다. 천라보찰 측이 완전히 열세에 처했다지만 이대로 항복할 리는 만무했다. 종문의 체면이 뭐가 되라고 그리 쉽게 무릎을 꿇는단 말인가.
이때 공간 속에서는 격렬한 교전 때문에 원신궁과 만불궁에 간간이 붕괴가 일더니 그 안에 묻혀있던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불궁은 상고 대겁난이 오기 수천 년 전, 즉 상범천 서역에서 불문이 가장 번창했던 시기에 남겨진 유적이었다.
당시 서역 전체의 불종 전승이 일만 가지에 달했다고 한다면 과장이겠지만, 불종의 지파가 족히 수백 개는 되었다. 그러니 이 지파들의 전승을 모두 합치면 적어도 팔천 가지는 되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불종은 십년마다 한 번씩 대대적으로 집회를 가졌는데, 당시 그 장소가 바로 만불궁이었다.
하지만 훗날 불종계에 내분과 변고가 일면서 불종 지파의 구 할이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천라보찰은 거대 세력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만불궁은 점차 몰락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리 몰락했어도 만불궁이 왕년의 불종 성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지난날 천라보찰이 상범천을 떠나 대라천으로 가서 새로운 삶의 기회를 모색하기로 했을 때도 여전히 노승들은 만불궁을 지키려 남았다고 한다.
이때 쩍쩍 갈라지고 부서진 궁전들 사이로 여러 불상과 불경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파손된 것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자 밖에서 관전 중이던 제공선사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원신궁 대전에 모셔진 신물들은 하나같이 형상이 기괴했다. 더러는 태곳적 마신의 모습을 닮기도 했고, 신기한 물상들을 이리저리 짜깁기해놓은 것들도 있었다. 심지어 전혀 사람의 형상이라고 볼 수 없는 것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천혼도 원신궁에 대해 상세히 알지는 못했다. 원신궁의 심부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도 확실히 초휴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미치광이들이 허접쓰레기 같은 것들을 연구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믿음, 적어도 그것이 초휴에게는 꽤 유용할 무언가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전부였다.
양측은 끊임없이 교전을 벌이면서도 조금씩 유적 가까이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떤 눈빛이 진작부터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말이다.
이때 유적의 가장 안쪽에는 대전 두 곳이 겹치다 못해 엉망으로 뒤엉켜 있었다. 한쪽은 웅장한 대웅보전이고, 다른 한쪽은 위가 동그랗고 아래는 네모진 기이한 형상의 궁전이었다.
그 기이한 궁전의 안쪽에서 광채가 번뜩였다. 그리고 그 광채의 한가운데에는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한 존재가 둥둥 떠 있었다.
그것은 기이한 생령이었다. 크기가 족히 삼 장은 되고 몸체는 사람의 몸을 닮아서 얼핏 봐서는 아담한 축에 드는 거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팔 길이만 한 꼬리가 달려 있고 피부에서 금망이 번뜩이는지라 사람과는 달랐다. 마치 조각칼로 섬세하게 깎아낸 듯 완전무결한 모습이었다.
팔은 네 개고 얼굴은 빛 덩어리로 뒤덮여 있어 이목구비가 모호했다. 그래도 한쪽은 검은색, 다른 한쪽은 흰색인, 눈동자가 없는 두 눈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 머리에는 초승달 모양의 굽은 뿔이 두 개 나 있었는데, 이것 역시 하나는 까맣고 하나는 하얬다.
하지만 그의 팔 네 개와 두 다리는 청동 사슬에 묶인 상태였다. 표면에 범문이 가득 새겨진 사슬은 생령의 힘을 억제하고 있었다.
“쯧쯧, 옛날에 원신궁 놈들이 완벽한 생령을 만들었다더니 그게 너였군그래. 몸의 모든 부위가 하나같이 천지의 힘에 완벽히 들어맞게끔 만들어졌다지? 원신궁이 널 만든 걸 보면, 실제로 신령도 만들어내는 게 가능했을 것 같군.”
우람한 덩치의 화상이 그 기이한 생령 앞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붉은 광망이 감도는 두 눈과는 대조적으로 낯빛이 더없이 창백했다.
얼굴은 군데군데 일그러졌으며, 몸은 한번 쪼개졌던 것을 뼈가시로 다시 이어붙여 놓은 모양새였다.
한마디로 일전에 초휴가 용맥에서 보았던 오백년 전 괴인들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 화상은 그 괴인들에 비해 자의식이 상당히 뚜렷했다. 말 한마디 하는 데만도 온 얼굴 근육을 죄다 동원해야 했던 그자들에 비하면 자유자재로 말하는 게 가능하여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완벽하다고? 하다못해 하늘의 도에도 허점이 있는데 세상에 완벽한 존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 나도 완벽할 리 없지. 하물며 원신궁 사람들은 신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신을 창조해 낼 수 있었겠나? 그들은 신도 아니고, 신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어. 사람은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존재는 만들어낼 수가 없단 말이지. 그게 사실이다.”
기이한 생령의 음성은 남녀 분간이 안 되었고 그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화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물론 사람은 신을 창조할 수 없지. 하지만 너 자신이 신이 될 수는 있지 않나? 지난 일만년 동안 너는 원신궁 내 모든 전적을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들여다보고도 남았을 텐데?. 그런데도 네가 신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면 여기서 나가기 싫다는 소리밖에 더 되겠는가? 너처럼 완벽한 생령은 이 세상에 유일무이하다. 수련 속도도 하루에 천 리 길을 내달리는 빠르기라고 들었다. 너에게 기회만 주어진다면 너는 자신을 완벽하게 갈고 닦아 진정한 신이 될 수 있을 거다!”
기이한 생령이 흑백의 눈으로 그 화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원신궁 전적을 통해 많은 걸 배우긴 했지. 이를테면 상대에게 무얼 얻고 싶으면 자기가 먼저 내놓아야 한다, 이런 이치도 책에 쓰여 있더군. 나도 나름대로 생각해 둔 바가 있었던 게 사실이야. 하지만 당신이 나를 풀어주는 대가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겠군. 아무래도 당신이 차지할 이득이 내가 얻게 될 것보다 훨씬 많을 듯한데? 당신이 손해 볼 짓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
이에 화상이 땅이 꺼질세라 탄식했다.
“너는 사람도 아니면서 굳이 그런 것들까지 꿰뚫어 보는가? 사람의 마음은 흉악하기 그지없다. 그런 걸 읽어봤자 완전무결한 네 마음만 오염될 뿐이야. 백해무익하니, 앞으로 그런 건 멀리하도록 해라.”
“사람도 아니라니······, 그 말은 나를 욕하는 것으로 들리는데?”
생령의 대꾸에 화상의 흉측한 면상이 부쩍 경직되었다. 하지만 그는 차분히 대화를 풀어나갔다.
“네가 사람의 방식대로 일을 풀어나가겠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대화가 수월해질 테니 말이야. 나는 우리 주인을 대신해서 왔다. 내게는 너를 풀어줄 능력이 있단 말이지. 그 대가로 두 가지를 요구하겠다. 하나는, 우리 주인이 이 세상으로 귀환하실 때 네가 그분의 편에 서서 온갖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대신 치워주는 거다. 다른 하나는 바로 너의 눈이다. 그 제삼의 눈!”
생령의 미간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틈이 한 줄 생겼다. 거기서 곧추선 눈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눈에도 역시나 눈동자가 없었다. 태초의 혼돈 상태처럼 흑백이 뒤섞여 있는지라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생령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첫 번째 요구는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두 번째는 곤란하군. 한 눈으로는 하늘 맨 위 구중천까지 올려다봐야 하고, 다른 한 눈으로는 땅 밑 저승까지 들여다봐야 하니까. 유일하게 이 제삼의 눈만이 음·양 두 힘 간의 균형을 잡아줄 수 있지. 한마디로 눈이 세 개여야 완벽한 상태라는 말이다. 아까 당신이 말하길, 내가 신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제삼의 눈을 당신에게 주면 나는 완벽함을 잃고 영원히 신이 될 수 없게 된다.”
화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그를 구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곤란하지. 내 말 좀 들어봐. 내 추측이 옳다면 너는 지금까지도 제삼의 눈을 융합하지 못했다. 그 옛날 원신궁에서는 완벽한 제삼의 눈을 만들어 너와 융합시키려고 했지. 하지만 원신궁이 망할 때까지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어. 저들이 만들어준 제삼의 눈을 네가 융합할 수 있었다면 어째서 거기 미간에 숨겨만 둔 채 일만년이 지나도록 융합을 마무리 짓지 못했겠나? 저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완벽함은 진정한 완벽함이 아니기 때문이지. 완벽한 너에게 완벽하지 않은 눈을 안겼으니 실패할 수밖에 더 있었겠나.”
“어차피 네가 갖고 있어 봐야 별 소용이 없는 눈이란 말이다. 너는 원신궁이 만들어주는 눈이 아닌, 너 스스로가 음양 본원의 힘을 깨우쳐 만들어낸 눈을 원했잖아? 그러니 저들이 만들어준 눈이 없어도 너는 네게 딱 맞는 완벽한 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다. 너는 곧 신이 될 테니까 가능한 일이지. 이렇게 묶여 있는데 어떻게 신이 될 수 있냐고? 그것을 내게 주면 나는 네게 자유를 주겠다. 주인의 명을 받들어라. 주인이 돌아오시는 날, 너는 진정으로 완벽한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네가 신이 될 수 있도록 그분이 도와주실 테니까. 그러니 어차피 필요도 없어질 그깟 눈은 내게 줘 버려도 상관없지 않나?”
생령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당신이 분명히 말했지 않은가. 사람은 신을 만들 수 없다고 말이야.”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에 한한 얘기지. 우리 주인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초월해 세상을 장악하신 분이다. 한마디로 신과 부처도 능가하는 존재라는 말이다.”
화상의 두 눈에서 붉은 광망이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그건 살기가 아니라, 광적이리만치 열렬한 숭배와 존경심 때문이었다.
이때 밖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곤륜마교와 천라보찰 무사들이 어느새 여기까지 접근한 것이다. 이에 화상이 다급히 재촉했다.
“어서! 시간이 없다! 지금 네 모습이 어떤지 알고는 있겠지? 원신궁은 너를 신으로 만들려 했을지 몰라도, 바깥사람들 눈에는 괴물일 뿐이야. 저들이 하필 지금 들이닥치다니! 저들 눈에 띄면 너는 영영 풀려날 기회를 잃고 말 거다!”
생령이 잠시 생각 후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나를 풀어다오.”
“아니지, 네 눈부터 줘야 한다!”
이에 생령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감정이라곤 전혀 실리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먼저 나를 풀어달라고 했다.”
화상은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인간도 아닌 것과 소통하자니 참 힘들다고 내심 짜증을 내면서.
화상이 양손을 결인하자 불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사슬 겉면에 가득 새겨져 있던 봉쇄 진법의 문양이 가장 바깥 부분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청동 사슬 전체가 완전히 녹아내리자 생령의 몸체에서 가닥가닥 광채가 터지더니 끊임없이 기세가 상승했다. 그 기세만으로 보자면 무선 육중천이나 칠중천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생령은 풀려난 뒤에도 약속은 지켰다. 그가 수인을 결하자 이마에서 핏줄 같은 혈선 가닥들과 연결된 제삼의 눈이 드러났다.
생령은 손을 뻗어 그 혈선들을 단번에 끊어버렸고, 마지막 혈선까지 다 끊겼을 때 대전이 무너져 내렸다.
한편, 제성은 가뜩이나 육강하에게 밀리고 있는 데다, 그 더러운 입으로 조롱과 욕까지 바가지로 먹은 터라 극도로 열을 받고 말았다.
그래서 정혈까지 태워가며 전력 출수를 한 끝에 그를 이 깊은 안쪽에 있는 대전까지 몰아붙였던 것이다.
이윽고 육강하가 캑캑대며 무너진 대전의 잔해더미에서 기어 나왔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웬 화상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육강하는 순간 얼이 빠졌다가 뒤늦게 귀신을 본 것처럼 비명을 빽 질렀다.
“용도(龍圖) 화상?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소? 분명 무심마존한테 엉망이 되어 죽었을 텐데?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는 거지? 살아있는 사람이야, 아니면 죽은 귀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