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34)
1334화 격퇴하다
천지와 연결된 그 흑수는 온 세상 탁한 기운이 모여 화한 것이었다. 현천제군은 현천경이 나중에 흑수의 힘으로 빚어낸 신령이다. 존재 자체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졌으되 선천적인 위력을 갖고 있었다.
현천제군의 법상이 도인을 결했다. 도인이 전개되자 허공이 끝도 보이지 않는 흑수만의 절대 영역처럼 변하더니 초휴를 덮쳐왔다.
초휴의 미간에서도 제삼의 눈이 음양의 힘을 터뜨렸다. 힘은 점차 강대해져 갔으나. 이번에는 밖으로 발출되는 대신 초휴의 양손에 고스란히 응집되었다.
그가 양손을 포개어 합장하자 두 갈래 본원의 힘이 천지를 견인하기 시작했다. 곧 거대한 마반처럼 화한 그 힘은 천지를 갈아엎으며 지나는 족족 만물이 태초의 혼돈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사실 제삼의 눈으로 시전한 음양 마반의 위력이 예전만큼 강한 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좀 약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치명적이었다.
더욱이 이번에는, 그 강도의 예측이 불가능했던 반작용을 전혀 겪지 않고도 마음껏 시전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흑수의 절대 영역은 이 가공할 마반에 짓눌려서 그대로 분쇄되었다. 급기야 현천제군의 법상도 그대로 반 토막이 나버렸다.
필유진의 눈동자가 아까보다 훨씬 더 격렬히 흔들렸다. 저건 육중천의 실력이 아닌가.
초휴의 실력이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휴가 대라신궁에서 무선이 된 지 몇 년이나 지났다고 그새 육중천에 올랐단 말인가?
종문으로부터 든든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초휴와 같은 무선의 경우, 지금쯤이면 이중천 언저리에서 허덕이며 경지를 공고히 다지는 것만도 버거워야 말이 될 터였다.
하지만 초휴는 단숨에 육중천으로 뛰어오른 것도 모자라, 저렇듯 차원이 다른 전투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팔중천인 필유진 자신조차 심하게 위압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반면 초휴는 그에게 다소 실망한 듯 보였다. 같은 팔중천임에도 필유진의 실력이 시바전 염마에 비해 한 수 아래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염마가 비법까지 동원해 자신의 기량을 최고조로 발휘하더라도 맞설 자신이 있었다. 물론 맞서는 것만이 최선일 것이고,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필유진을 상대로는 자신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때 배월교와 천사부 무사들도 현천경 측과 싸움이 붙은 상태였다. 초휴가 현천경 무사들과 접촉한 적이 없었던 예전에는 그들이 매우 소극적이고 겸허한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보니 소극적인 건 맞되, 겸허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장문이라는 필유진뿐이 아니고 그 외 현천경 무사들도 하나같이 삼청전의 후광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삼청전을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는 자기들이 최고로 잘난 줄 알고 기고만장한 꼴이 기가 막혔다.
물론 북역에서라면 그들이 삼청전 바로 다음가는 세력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건 현천경이 강해서가 아니라, 북역 전체를 통틀어 제대로 실력을 갖춘 경쟁 종문이 없기 때문이라 봐야 했다.
그래서 방금도 그들은 배월교 및 천사부와 같은 하계 무사들을 상대하는 데 경멸감이 가득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식으로 싸움이 붙자 그들은 이내 현실을 직시하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노천사는 이미 삼청전을 방문했던 그때부터 현천경에 당한 수모와 멸시로 인해 단단히 열이 뻗친 상태였다. 쌓이고 쌓인 울화가 일거에 터지자 일신의 뇌법이 한층 더 매섭게 변해 있었다.
고령이 무색할 정도로 질풍노도처럼 몰아치는 기세에 초휴마저 절로 시선이 쏠릴 정도였다. 노천사는 사중천 무선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와 말을 섞기도 전에 이미 그의 몸은 무수한 뇌법으로 뒤덮여 있었다.
구소신뢰, 자소신뢰, 신소주마뢰, 오뢰정법 등등 온갖 뇌법이란 뇌법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사방천지 허공이 본연의 모습을 잃을 정도였다.
상대 무선은 잇따라 쏟아지는 뇌법의 공격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뒤늦게 정신을 다잡고 흑수인을 결하여 흑수의 절대 영역으로 방어진을 치려했다.
하지만 노천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법칙의 힘으로 뇌함천서까지 엮어내는 게 아닌가. 이에 족히 만 갈래는 되고도 남을 뇌광이 상대의 몸 위로 정신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선대 천사가 장악했던 극강의 비법으로, 노천사는 서초 용맥에서 선대 천사가 시전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자세히 연구했던 것이다. 그 위세만 보고도 구할 이상은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었다.
뇌함천서의 맹공에 상대 무사의 흑수 영역은 단번에 파훼 되었다. 그리고 그가 방어를 취할 틈도 없이 노천사가 양손을 일제히 결인하여 용과 호랑이를 빚어냈다. 용은 양기운의 뇌정을, 호랑이는 음기운의 뇌정을 띠고 있었다.
음양이 결합하며 합쳐진 용과 호랑이가 상대 무사를 물어뜯으려 달려들었다. 야수의 포효를 동반한 뇌정의 폭풍이 휩쓸자, 벼락에 연타 당한 세상은 종말이라도 맞은 듯했다.
비록 노천사가 상대보다 일중천이 낮았지만, 심후한 내력에 힘입은 오백년의 경험치가 전투력을 경이로울 만큼 극대화해 상대를 제압했다.
상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두들겨 맞았을 뿐, 변변한 반격 한번 하지 못했다.
야소남 쪽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오중천과 삼중천 무사를 상대로 일 대 이의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야소남의 수중에서 칠색의 운무가 휘돌더니 또 하나의 야소남으로 화했다. 지존쌍생고가 빚어낸 분신이 삼중천 무선을 상대했다.
야소남의 실력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오직 분신으로 하여금 삼중천 무선을 상대하게 하는 건 다소 비현실적이긴 했다.
하지만 잠시 상대를 붙잡아 놓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물론 야소남 본인은 동급의 무선을 맞아 일방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일지(一指)로 청천을 메우자 보천지의 힘이 미치는 족족 만물이 붕괴하고 해체되었다가 다시 재조합되었다. 그리고 그 재조합은 야소남이 지정한 법칙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상대 무사는 주위 힘의 법칙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걸 감지하자 즉시 허리춤의 흑옥 장검을 빼 들었다.
허공에 검기로 진법 문양을 새겨 넣자 순식간에 검은 광채가 폭발하듯 솟구치면서 무수한 흑수의 격랑으로 화했다. 이것이 삽시간에 아래로 퍼부어 내리니, 물살이 덮치는 족족 그 어떤 힘도 갈라지고 동화되었다.
이에 야소남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도인을 결해 물살을 받아냈다. 어느덧 보천인의 힘과 융합한 흑수의 격랑은 되레 자체의 힘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야소남이 한 손을 휘젓자 허공에 달그림자를 품은 광채가 떠올랐다. 그러자 공간이 찢어지며 달그림자에서 지독한 예기가 한도 끝도 없이 상대 무사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
야소남의 이 초식은 초휴의 청천조영과 흡사했다. 실제로 그는 초휴가 청천조영을 시전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거기에다 병기 월인을 결합하고 보천심경까지 더하여 이 비법을 창안한 것이다.
청천조영만큼 패도적이진 않았으나, 위력만큼은 그에 못지않게 경이로웠다. 삽시간에 지독한 예기를 품은 광망으로 뒤덮어버림으로써 상대가 허둥대며 방어에 급급하게 만들어버렸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현천경의 무선 무사들은 열세에 처한 상황에서도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었다. 정작 문제는, 사상자가 속출하며 낭패를 면치 못하고 있는 무선 이하 무사들이었다. 그건 바로 장승정 때문이었다.
초휴가 장승정을 마지막으로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가 진단경에 오른 뒤로는 내내 천사부에 머물며 폐관 수련에만 정진한 때문이었다.
왕년에 그리도 혁혁하게 이름을 날렸던 전설의 용호방 일인자가, 지금은 강호에서 완전히 존재감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장승정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무사가 아닌 바에야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자가 드물 정도가 된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 초휴는 노천사에게 연합을 청하러 천사부를 방문했을 당시, 장승정의 체내에서 극강의 힘이 배양되고 있음을 감지한 바 있었다.
만약 그 힘이 십분 발현된다면 경천동지할 위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그의 일신에서는 기대 이상의 엄청난 힘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대라천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비약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심지어 시작이 더뎠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용령아와 낙비홍을 추월하여 지금은 반보 무선의 경지에 올라있는 것이다.
이 무렵 장승정은 심지어 체내의 뇌명금단과 완전한 합일까지 이룬 상태였다. 아직 무선은 아닐지라도, 체내의 뇌명금단이 제한적이나마 천지 법칙을 견인해서 무선에 무한히 근접한 위력을 발하게 해주었다.
그의 일신은 이미 무수한 뇌정들로 휩싸여 있었다. 간단한 손짓 한 번에도 뇌정의 법칙이 견인되어 대거 뇌광이 방출되었고, 이것이 끝도 없이 상대의 몸을 두들겨댔다.
물론 진정한 무선의 눈에는 이런 식으로 천지 법칙을 견인하는 방법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천지통현 무사들은 기본적으로 그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에게 죽거나 폐인이 된 자의 숫자가 벌써 열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에 필유진은 언제까지나 초휴에게 메여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만도천궁 내의 보물이 아무리 진귀해도 현천경의 정예 무사들을 죄다 희생시키면서까지 차지할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철수! 전부 퇴각하라!”
필유진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의 주위로 흑수의 진문(陣紋)이 펼쳐졌다. 그는 물결이 겹겹이 자기 앞으로 밀려들어 초휴의 공세를 막아내는 동안, 부랴부랴 현천경 무사들을 대피시켰다.
속이 여간 쓰린 게 아닐 텐데도, 그는 자기들을 묵사발 내버린 적들 앞에서 콧방귀만 한번 날리고 사라졌다. 그가 광오하긴 해도 도문 사람인지라 개차반까지는 아니었다.
엄연히 이길 수 없다는 걸 확인한 이상, 독한 막말로라도 화풀이를 하는 대신, 그 즉시 뒤도 안 돌아보고 물러난 것이다.
야소남이 분신을 거둬들인 후 초휴에게 다가와 물었다.
“추격할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추격한들 저들을 죄다 죽일 수나 있겠습니까?”
상대는 무선만 넷이다. 저 많은 현천경 무사를 죄다 쓰러뜨리기에는 지금의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 인원으로 저들을 쫓아낸 것만으로도 이미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 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야소남의 입에서 불쑥 뜬금없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못 죽이라는 법도 없지.”
초휴는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곧 정신을 수습하곤 그를 차근차근 달랬다.
“죽일 수 있다 쳐도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없소. 우리는 여기에 보물을 찾으러 온 거지, 저들과 끝장을 보러 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저들이 잠시 물러났어도, 만도천궁 유적이 워낙 광대하니 저들이 완전히 손을 떼고 떠났다는 보장이 없단 말입니다. 분명 다른 곳에서 수색을 이어나갈 겁니다. 더는 지체할 겨를이 없으니, 일단 다들 흩어져 수색하기로 합시다. 단, 서로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야 유사시에 서로 도울 수 있으니까요. 나는 도장만 있으면 되니까 나머지는 두 분이 알아서 나누십시오.”
야소남과 노천사 두 사람 모두 이견이 있을 리 없었다. 이미 합의가 다 된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배월교에 도장 같은 게 왜 필요하겠는가. 그저 만도천궁 내 기이한 비술과 진법 등 온갖 자질구레한 것을 차지할 수 있는 것만도 족했다. 희망 사항이 있다면, 가급적 가짓수가 잡다하니 많았으면 좋겠다는 정도랄까.
물론 천사부로서는 도장이 유용할 테지만. 그걸 차지해도 지금 당장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만도천궁의 도장은 노천사가 봐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고차원의 것일 게 뻔했으니까.
더욱이 그걸 초휴에게서 뺏어올 수 있다 쳐도, 천사부의 실력으로 그걸 계속 지켜낼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니 계륵이나 다름없는 그것은 화통하게 초휴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그저 도문의 지파들이 남긴 전적 등이나 가지면 될 터였다.
논의를 마친 후 초휴, 배월교, 천사부, 이렇게 세 무리는 서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한 방향으로 수색을 계속했다.
만도천궁 내 건물들은 이미 구 할 이상이 상고 대겁난 때 파괴되었다. 해서 실제로 들어가 수색할 만한 궁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초휴는 팔괘 진법이 그려진 궁전으로 들어섰다. 대겁난의 충격을 이기고 지금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걸 보니, 극강의 진법으로 보호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다 무너지게 생긴 출입문을 밀고 들어서자 대전 한가운데에도 거대한 팔괘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 중앙에 뼈만 남은 시신 한 구가 정좌해 있었으나, 초휴가 들어서며 생긴 기류로 인해 삽시간에 재로 화해서 사라져버렸다.
시신의 몸에 팔괘 도포가 걸쳐져 있었던 것으로 봐서 이 궁전의 주인인 듯했다. 이미 재가 되어버린 시신 앞에는 거북 껍데기 한 구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쓰인 글자들을 보자 초휴는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마주, 황천, 대겁난, 장생······ 등등, 이런 글자들이 거북 껍데기 표면에 줄줄이 새겨져 있는 게 아닌가!
일순 초휴는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지며 자기도 모르게 본인의 처지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