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35)
1335화 만년 전 점괘
만도천궁은 당시 삼청전과 불화를 겪었던 수많은 도문이 연합해 세운 것이다. 따라서 만도천궁 내에는 온갖 유형의 도문 전승이 골고루도 남아 있을 터였다.
이 궁전의 모양새로 봐서 분명 천기에 정통한 점술 대종사가 세운 종문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점괘 결과도 이 사람이 대겁난을 맞아 죽기 직전, 마지막 남은 힘과 심혈까지 다 짜내어 쳐낸 점괘인 듯했다.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초휴가 문을 연 순간, 상대의 육신이 재로 변해 버렸다.
설령 무도에 능하지 않고 천기를 추산하는 데만 대종사급 실력을 지닌 인물이라도, 이토록 웅대한 궁전을 지은 데다 상고 대겁난을 견딜 정도로 막강한 진법을 구축할 수 있을 정도라면, 최소한 무선 이상은 되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런 존재는 솔직히 따로 육신을 단련하지 않아도 금강 백옥처럼 만고의 세월에도 썩지 않을 강한 육신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만여 년 만에 시신이 재로 변했다는 것은, 죽기 직전 이미 일신의 힘이 죄다 소진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봐야 했다.
초휴는 거북 껍데기를 집어서 거기에 쓰인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대충 휘갈긴 글자였지만 그래도 읽는 건 가능했다.
초휴를 기함케 했던 그 글자들 아래로 더 심하게 갈겨쓴 부분도 보였다. 시간에 쫓기며 쓴 듯도 하고, 망설인 끝에 새긴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 모든 글자를 한데 이으니 이런 문구가 완성되었다.
‘마주’가 나타나다.
‘황천’이 회귀하다.
‘대겁난’이 도래하다.
‘장생’이 개방되다.
각 문구의 첫 글자는 점술 대종사가 점친 것들의 핵심어로, 지금까지 상황이 전개되어온 양상으로 보건대 대부분 현실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그리고 뒤에 이어진 글자들은 각기 맨 앞 핵심어와 주어와 술어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 네 문구를 이어보니 ‘마주가 출현하고, 황천이 회귀하고, 대겁난이 도래하고, 장생천이 개방되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곱씹어보니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시간 순서가 어딘가 맞지 않는 것이다. 후반부의 두 핵심어가 특히 그랬다.
상고 대겁난은 진작 지나갔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대겁난은, 그로부터 또 일만년이 지난 오늘날에 새로 닥칠지 모를 대겁난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대겁난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상고 대겁난이 닥치기 전에는 그럴 징조가 수두룩하게 나타났었다.
그것만 보고도 수많은 점술가가 겁난이 닥쳐올 것을 쉽사리 예측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시대가 신기원의 시작에다 대쟁지세로 꽤 혼란스러운 상태이긴 해도, 도존조차 대겁난의 재림을 예언한 적은 없지 않은가.
장생천의 경우만 해도 그랬다. 독고유아도 그곳을 갈망하고 도존도 찾아내려 애쓰는 중이지만, 지금까지도 하나의 전설에 불과할 뿐 아직 그 실체가 증명된 바는 없었다.
그리고 전반부의 두 글자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주가 나타나고 황천천이 회귀한다고? 아무래도 글자 순서가 뒤바뀐 것 같은데?
이치상 황천천이 먼저 나타난 다음에 황천천에 있던 마주가 회귀하는 게 맞지 않나? 설마 이 상고시대 대종사 양반께서 순서를 잘못 짚은 걸까?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 문구둘을 어떻게 짜 맞춰도 다 이상했다. 이 정도 경지씩이나 이른 점술 대종사의 점괘가 이렇게 엉망진창일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된 것이, 한눈에 이거다 싶을 정도로 확실하게 들어맞는 맛이 전혀 없지 않은가. 초휴가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돌연 북동쪽에서 보천심경의 파동이 전해져왔다.
초휴는 경계의 날을 세웠다. 설마 야소남이 현천경 무사들과 맞닥뜨리기라도 한 걸까? 이것들이 끝까지 매를 벌려고 안간힘을 쓰는구나 싶었다.
곱게 보내줄 때 꺼질 것이지 그새 다시 기어들어 오다니! 그는 일단 거북 껍데기를 품 안에 챙긴 후 파동이 발생한 방향을 향해 급히 몸을 날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금으로부터 일각 전, 북동쪽 깊숙한 곳에 있는 어느 대전.
온갖 부적과 주문들이 대전 전체를 가득 뒤덮고 있어서 대전의 원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파악이 안 될 정도였다. 순간, 대전에 돌연 백골검 한 자루가 떠오르더니 허공을 길게 갈랐다.
그 갈라진 틈에서 화려한 검은 옷차림에 머리에는 흑련 관모(冠帽)를 갖춰 쓴 중년의 무사가 걸어 나왔다.
예전에는 분명 용모가 반듯하고 영준했으련만, 지금은 여기저기가 갈라지고 찢어진 것을 뼈가시로 이어 붙여 놓은 모양이 여간 흉측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그는 백골검을 잡더니 다른 방향을 향해 내리쳐 또 다른 틈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틈은 아까 것보다 좀 더 작았다. 거기서 용도화상이 몸을 뒤틀며 간신히 기어 나왔다.
“화농월(花弄月), 이거 너무 성의가 없는 거 아냐? 문의 크기가 이게 뭐야?”
화농월이라 불린 중년 무사는 코웃음을 쳤다.
“개구멍보다 크면 됐지 무슨 잔말이 많나? 만도천궁은 주인께서 내게 하명하신 임무다. 그런데 당신이 왜 끼어들지? 정작 자기 임무는 망친 주제에 쓸데없는 오지랖은······.”
화농월의 비아냥에 용도화상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망치기는 개뿔! 누가 망쳤다고 그래? 원신을 풀어준 게 바로 이 몸이라는 걸 알아야지! 망쳤다니?!”
“그럼 제삼의 눈은? 담종의 악념은? 하나는 뺏기고 하나는 박살이 나버렸잖나!”
“그래도 절반은 성공했잖아!”
용도화상이 소리를 빽 지르더니 으스스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화농월, 남의 호의를 이렇게 걸레짝 취급해도 되는 거야? 일만년 전의 은밀한 장소들을 우리만 찾고 있는 게 아니야. 초휴도 찾아 나섰단 말이다. 놈이 어떻게 그곳들에 대해 알고 있는지는 내가 굳이 설명할 것도 없겠지? 놈이 찾아내지 못하면야 상관없지. 하지만 만에 하나 우리와 맞닥뜨리면 어쩔 텐가? 이길 자신은 있나? 놈이 누군지 잊지 말라고! 동제, 북연, 서초 삼국의 용맥 쪽 임무는 이미 철저히 실패했으니까. 거기로 파견되었던 자들이 죄다 재로 변해 육신이고 정신이고 완전히 소멸해버렸단 말이다!”
“하긴 어차피 그 셋은 주인께 굴복하길 거부한 놈들이니 까짓것 재로 변하건 말건 내 알 바 아니긴 하지. 그리고 용맥의 힘을 일부나마 빼돌렸으니 그걸로 되기도 했고. 하지만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실패하면 안 될 거야. 절반의 성공 정도로도 절대 안 돼. 완벽한 성공이어야 한단 말이다! 이번 임무를 망치면 그건 우리 둘의 공동 책임이야. 단, 성공하면 그 공로는 고스란히 당신에게 넘기도록 하지. 나는 아무 욕심도 없다고. 알겠나?”
화농월이 슬쩍 눈썹을 치켜떴다. 하지만 이번의 표정은 아까처럼 복잡해 보이지는 않았다.
“좋아. 이번엔 당신이 호의로 거드는 거로 생각해주지. 그런데 여기가 어째 너무 조용하지 않아? 만도천궁 놈들이 무슨 원념(怨念)의 원신인지 뭔지를 남겨두었다는 건 확실한가?”
용도화상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장담은 못 해. 어쨌든 그자들은 일만년 전 삼청전과 심하게 격돌했던 도문 정예들이었어. 하지만 대겁난이 닥치기도 전에 이 지경으로 참담하게 당했단 말이지. 당시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어. 그런데도 이 안에 변변한 거 하나 남겨놓지 않았을 리는 없겠지. 물론 남겨놓은 것들이 죄다 대겁난 와중에 훼손되었을지도 모르긴 하지. 하지만 나는 주인을 믿어. 지금까지 그분의 추산에 착오가 있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바로 이때 밖에서 층층이 힘의 파동이 전해져왔다. 누군가가 바깥에서 힘으로 궁전을 때려 부수고 외부의 부적과 주문(咒文)도 훼손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에 화농월의 안색이 변했다.
“허 참, 말이 씨가 된다더니! 당신 말대로 만도천궁을 찾아낸 자들이 또 있었군그래. 하지만 힘의 세기로 보아하니 초휴는 아니야. 우리 배월교 쪽 사람들이 아닌가 싶군. 이봐, 화상 양반! 나가서 저 떨거지들 좀 막고 있으라고. 나는 들어가서 찾는 것들을 뒤져 볼 테니까.”
이에 용도화상이 냉소를 터뜨렸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건가! 이번에 내가 당신을 도와주기로 했고 공로를 몰아주기로 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힘든 일만 맡기면서 나를 부려먹으려 들면 곤란하지. 당신 말이 맞는다면 바깥 놈들은 당신의 제자와 손제자들일 거 아닌가? 그러면 당신이 가서 해결할 일인 게 맞지. 안 그래?”
이 말을 끝으로 용도화상은 냉큼 궁전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화농월이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쳤으나 결국은 그의 말대로 바깥으로 나갔다.
그 무렵 궁전 밖에서는 무수히 많은 고충 떼가 새카맣게 날아들어 밖에 설치된 부적과 주문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었다. 일부 고충들은 부적과 주문이 파괴되며 일으킨 폭발에 산산이 가루가 나서 죽었으나 금세 또 다른 무리가 날아들어 죽은 벌레들의 빈자리를 채웠다.
배월교의 파진법은 이토록 단순 포악했다. 비록 고충일망정 그것도 생명일진대, 사정없이 생명을 희생시키고 그 자리를 또 다른 생명이 채우는 것이 반복되었다. 이때 배월교 대제사가 찜찜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나 부적과 주문으로 강하게 보호되는 곳이라면, 만도천궁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궁전이 아닐까? 초 교주한테도 알려서 와보라고 해야 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군.”
이에 동황태일이 타박을 놓았다.
“뭐가 그리도 안절부절이야? 기껏 초 교주를 불러왔는데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면 그 망신을 어찌 감당하려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부적과 주문들로 뒤덮여 있던 궁전에 돌연 문이 나타나더니 거기서 화농월이 걸어 나왔다. 주위를 빽빽하게 메운 고충들을 본 그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자 기묘한 선율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 운율 속에 고충들이 속속 공격을 멈추더니 동작을 멈추는 게 아닌가.
“이건 만고진혼곡(萬蠱鎭魂曲)이 아닌가! 넌 대체 누구냐!”
대제사와 동황태일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고함이 터져 나왔다. 만고진혼곡은 배월교 내에서도 이미 실전된 비법으로, 고충을 조종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비법이었다.
무려 일만 종의 고충을 동시에 제어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일만 마리가 아니라 일만 ‘종류’인 것이다.
만고진혼곡의 경우, 무리 중 한 마리만 장악해도 나머지 전체를 조종하는 게 가능했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만고진혼곡을 시전할 수 있으면 천하의 고충 모두를 조종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현재 배월교 내에는 이 비법을 터득한 자가 하나도 없었다. 야소남은 아예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조차 못 느꼈다.
역대 배월교 교주들 가운데 야소남은 단연 가장 뛰어난 교주였다. 그리고 배월교의 상징과도 같은 고충술을 무도 수련에 있어 보조적인 용도로만 치부해온 유일한 교주이기도 했다.
대제사와 동황태일, 심지어 성녀도 배우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배우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타고난 자질 정도로는 반보 무선에 이른다 해도 이처럼 기묘한 비법을 터득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기인이 이 비법을 선보였으니, 그들이 어찌 기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화농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백년이나 지났으니 배월교의 지인들도 죽었든지 떠났든지 둘 중 하나일 테지. 그래도 그렇지, 정녕 나를 알아보는 자가 이 중에서 하나도 없는가? 여하튼 기대 이상으로 장족의 발전을 이루긴 했구나. 이 고충들 가운데 이할 가량은 내가 모르는 종류들이군그래. 이것이 지난 오백년 동안 너희들이 일궈낸 성과겠지? 장하구나. 당금의 배월교는 누가 주재하는가? 내가 죽기 전에 교주 자리를 명수심(明水心)에게 물려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보나 마나 그는 이미 죽은 게로군.”
화농월의 말에 대제사는 돌연 뭔가가 떠올랐는지 몸이 화들짝 반응했다.
“조사님? 아니, 그러니까, 혹시 오백년 전 그 화농월 조사님이십니까?”
화농월이 워낙 창졸간에 나타난 데다, 현재 그의 모습이 심하게 일그러진 탓에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그의 말을 듣고서야 대제사는 정신이 번쩍 났다. 눈앞의 저자가 전적에도 기재되어 있는 배월교 오백년 전 교주인 ‘고신군(蠱神君)’ 화농월과 어딘가 모르게 닮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화농월의 묘는 배월교 내에 버젓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눈앞의 저자가 어떻게 그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