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43)
1343화 현성진인
십여 세쯤 되어 보이는 도동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사부님, 영단으로 기초를 쌓아야 할 사람이 있는 건가요?”
현성진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가촌 촌장의 손자 때문이란다. 워낙 병약한 체질의 아이라, 먼젓번에 보니 석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아서 말이다. 취령단을 하나 먹이면 체질을 환골탈태할 수 있겠지.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는 하늘에 달린 문제겠다만.”
그는 다른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나머지는 별일 없으면 뒤뜰 약초밭을 정리하고, 아니면 도경을 외우도록 해라. 한 달 뒤 시험에서 낙제하는 사람은 회초리를 맞을 게다.”
그때 산 아래서 검은 옷의 무사들이 취선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살기(煞氣)를 띠었고, 앞장선 사람은 흉악하고 살벌한 인상의 외눈 거한이었다. 그는 시뻘건 도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도관에 들이닥쳤다.
“내가 누군지 아나?”
소도사들은 겁에 질렸다. 현성진인이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구려.”
그가 껄껄 웃었다.
“모른다고? 그럼 알려주지! 나는 흑풍령(黑風岭) 혈랑채(血狼寨) 채주, ‘광살혈랑(狂殺血狼)’ 진광(陳廣)이시다. 너희 취선산에 삼원주과라는 나무가 있다지? 여기 도관에는 무사도 없는 듯한데 그런 천재지보는 키워서 무엇하겠느냐? 이 몸이 그 물건을 가지고 싶은데, 궁상맞은 너희 도사 놈들한테 억지로 빼앗기도 귀찮구나. 은자를 일백 냥 줄 테니 삼원주과수를 넘겨라. 은자로 고기라도 사 먹는 게 쓰지도 못할 나무 냄새나 맡는 것보다 낫지 않으냐?”
소도사들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지금 강도질을 하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삼원주과수는 단약의 제조에 쓰이는 영약이다. 애초에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은자 일백 냥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은 강탈과 마찬가지였다.
현성진인이 한숨을 쉬었다.
“삼원주과수가 영약이기는 하나 당신들에게는 별 쓸모가 없소. 삼원주과에 담긴 것은 가장 순수한 원기란 말이외다. 그래서 기초를 쌓는 단약을 만들 때 쓰이지요. 평범한 사람에게 이 영단을 먹이면 환골탈태하여 병의 뿌리를 뽑을 수 있으나, 여러분 같은 무사에게는 하루 동안 진득하게 수련하는 것만 못하오. 더군다나 삼원주과수는 아주 예민한 나무라는 게 문제요. 우리가 정성껏 돌보기 때문에 계속 열매가 맺히는 것이지, 여러분이 뽑아가면 한 달도 못 되어 말라 죽을 거외다.”
그 말에 진광이 냉소하더니 손에 든 귀신도로 현성도인을 가리키며 사납게 말했다.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소용이 있든 말든, 입가심 삼아 먹어치우더라도 삼원주과수는 내가 가져야겠다! 너희 도사 놈들이 내놓지 않겠다면 이 몸의 칼을 받는 수밖에!”
현성진인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그는 옛날 다시는 출수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바 있었다.
그러나 출수하지 않겠다는 것이 남에게 도륙당해도 좋다, 아예 남의 칼을 순순히 맞겠다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지금 이런 소란이 터지면 몇 년쯤 고요하게 보냈던 그의 삶이 다시 바뀔 거라는 게 문제였다.
바로 그때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더니 강대한 힘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순간 진광의 도는 깨져나갔다. 암기에 깨진 것이 아니라 순수한 힘에 깨진 것이다.
허공에서 십여 명의 무사가 천천히 날아내렸는데 하나같이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가장 앞에 선 젊은이는 근방 천지의 힘마저 움직이는 수준이었다. 당아 뒤에서 원길이 앞으로 나서더니 현성도인에게 헤헤 웃으며 공수를 올렸다.
“현성 도형,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현성진인은 또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지금까지의 상황이 나을 듯했다. 설령 뜻밖의 일이 벌어져 취선산을 떠나게 되어도 그편이 나았을 것 같았다.
원길이 당아 일행과 함께 온 것을 보니 갑자기 안 좋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당아도 웃는 얼굴로 다가오더니 현성진인에게 공손한 태도로 공수를 올렸다.
“곤륜마교 휘하 혈아당 당주 당아가 교주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현성진인께서 우리 성교에 한 번 방문해 주시기를 삼가 청합니다.”
그렇게 말한 당아는 진광을 힐끗 쳐다보더니 태연히 말했다.
“현성진인께서는 이자를 살려두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죽이길 원하시는지요? 둘 다 싫으시면 죽느니만 못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성교에는 진인의 화를 풀고 만족시켜 드릴 방법이 수도 없이 많으니까요.”
당아의 말을 듣는 순간 진광은 눈앞이 시커메졌다. 너무 놀라 기절할 지경이었다.
사실 그는 별 볼 일 없는 도적 떼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늘에서 날아내리는 게 어떤 수준의 무사들인지, 곤륜마교가 무엇인지는 알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진광은 즉각 도를 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뻣뻣이 들고 가슴을 내밀고 현성진인과 당아 앞에 나섰다.
수하들은 그가 비분강개하여 이 자리에서 죽을 결심을 했나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진광은 콰당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눈물 콧물 흘려가며 외쳤다.
“착하신 나리, 제발 살려주십시오!”
당아는 웃는 듯 마는 듯 그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착하신 나리가 아니다. 그리고 너를 살려줄지 말지는 현성진인께 달렸다.”
현성진인은 한숨을 쉬더니 손짓했다.
“물러가시오. 앞으로 도적질은 그만두도록 하고. 새로운 시대가 왔고 앞으로는 무도의 성세가 될 터이니 아무 문파나 들어가도 도적 노릇보다는 나을 것이오.”
진광은 마늘 빻듯이 이마를 쾅쾅 땅에 찧으며 감사를 표한 다음 수하들을 이끌고 떠났다.
“진인, 이제 가실 수 있을는지요?”
당아는 현성진인을 바라보았다. 결국 현성진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당 당주의 태도를 보니 거절할 수 없겠구려.”
당아는 진지하게 말했다.
“이름으로 불러 주셔도 됩니다. 당 당주라 부르면 어감이 별로라서요. 그리고 우리 성교는 언제나 덕으로 사람을 복속시켜 왔으니 남에게 억지로 강요해서야 되겠습니까? 그저 우리 교주께서 진인과 옛날 교분이 있으시니, 이번에 만나서 회포를 푸시려는 것뿐입니다. 진인께서는 승낙하시겠지요?”
옆에 있던 원길은 속이 터져 자신의 머리를 팍팍 두드렸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초휴는 당아더러 정중하게 굴라고 했는데, 당아는 정중이라는 말의 뜻을 오해한 것 같으니 말이다.
물론 태도가 정중하기는 했다. 그러나 눈만 웃고, 입은 전혀 안 웃는 호랑이 같은 얼굴로 말하고 있으니 저건 협박이지 정중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초휴가 정중하게 굴라고 한 것이지, 정중한 척을 하라고 한 게 아닌데 말이다.
다행히 현성진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쓰게 웃기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내 운수나 헤아려 볼 것을. 여러분, 잠시 기다려 주시오. 도관 일을 안배한 뒤에 따라가리다.”
그는 제자들에게 몇 마디 분부를 마쳤다. 현성진인이 한 발짝 내디디자 바람과 운무가 발아래 엉기더니 허공을 걷는 걸음을 떠받들었다.
당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현성진인은 무선이었던 것이다.
무선 일중천!
원길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현성진인의 실력이 비범하리라는 것은 그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선일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본 현성진인이 말했다.
“원기가 흘러넘친 덕이오. 도경을 외우다가 홀연 돈오를 얻어 무선에 들었소이다. 너무 놀라실 일이 못 되오. 별 쓸모가 없는 무선이니까. 싸우는 법도 모르니 신통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무도 기술도 아는 게 거의 없소. 엄밀히 말해서 무선이라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지요.”
현성진인은 겸손하게 말했으나 그래도 무선은 무선 아닌가.
당아는 속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자신이 아주 정중하게 굴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이다.
현성진인과 함께 남만 곤륜마교 분전에 도착하자 초휴가 직접 나와 영접했다. 현성진인은 과연 기억 속의 그 사람이 맞았다.
초휴는 웃으며 물었다.
“현성도인 아니, 현성진인. 나를 알아보시겠소? 사실 따지면 현성진인은 내게 어느 정도 스승으로서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옛날 삼화취정과 오기조원에 올랐던 건 진인의 가르침 덕분이었으니까요.”
현성진인은 나직하게 말했다.
“초 교주,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빈도의 강연을 들은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성취를 이룬 사람은 초 교주뿐이니, 이는 빈도의 공이 아니라 초 교주의 자질이 그만큼 출중하기 때문이지요.”
초휴의 기세는 너무나 강대한지라 감히 탐색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현성진인은 속으로 탄식을 금치 못했다.
그는 초휴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까지 줄곧 잊은 적이 없었다.
옛날 동제 백운관 앞에서 대살육을 벌였던 젊은이. 당시 현성진인은 그의 마성이 너무 침중하다고 여겼다. 장차 강호를 크게 어지럽힐 대마두가 될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초휴가 정말로 강호에 화를 불러왔는가? 그것은 잘라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강호에 위명을 떨치는 대마두가 된 것은 확실했다.
당금 강호에서 마기의 불꽃은 가히 하늘을 뒤덮었다. 삼청전 등 극소수 종문을 제외하면 그 누가 마주의 위엄을 무시할 수 있을까.
초휴가 말했다.
“현성진인, 이미 모셔왔으니 나도 쓸데없는 말은 않으리다. 현성진인을 모셔온 것은 갑골 점괘의 해독을 부탁드리려 함입니다. 일만년 전의 점괘지요. 진인이 답례로 무엇을 원하시건, 우리 성교에서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마음대로 골라 가시도록 하겠습니다.”
현성진인은 초휴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강호인 누구와도 얽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세상일이란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초휴가 그를 찾아낸 것은 인연이 아니라 인과였다. 어쩌면 옛날 초휴가 그의 강연을 들었을 때부터 인과는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
현성진인은 초휴를 만나자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초 교주, 점괘 결과를 풀어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점술이란 천기에 닿아 있는 것이고 천기는 끊임없이 변하는 거지요. 이미 일만년이 지났습니다. 거기서 천기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지는 빈도 역시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지만, 빈도는 강호의 다툼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빈도는 도사지 무사가 아니니까요. 그러니 초 교주께서 곤륜마교의 힘으로 저의 행적을 숨겨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는 남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말이지요.”
현성진인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초휴 역시 납득했다.
만일 그에게 달리 바라는 것이나 욕망이 있다면 초휴는 무슨 수단을 쓰든 무선에 오른 점술대사를 붙잡아 두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욕심도 없고, 떠나겠다는 뜻이 확고하니 초휴도 억지로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갑골을 현성진인에게 넘겼다.
“진인이 원하시는대로 해드리겠소. 앞으로 무슨 곤란한 일에 맞닥뜨리거든 우리 성교의 어느 당구라도 찾아가십시오. 성교에서 진인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교주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현성진인은 갑골을 받아들었다. 그 위에 가닥가닥 새겨진 결과와 주문을 보는 순간 그의 미간이 깊게 팼다.
그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더니 팔괘반을 꺼냈다. 그리고 손으로 끊임없이 인결을 맺으며 뭔가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의 팔괘반이 쉬지 않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원길 같은 맹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지한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