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63)
1363화 저지, 총공
상의를 마친 정태일은 서초를 떠나 동제로 향했다.
그가 이런 일에 이골이 난 건 사실이었다. 그는 호감 가는 인상인 데다 성격도 충분히 온화했다.
그래서 강호의 분쟁과 싸움 조정에 삼청전이 나서야 할 일이 생기면 그가 일을 맡곤 했다. 마치 먼젓번 초휴와 천하검종 때처럼 말이다.
그런 일은 너무 일찍 가서도 안 되고, 너무 늦어도 곤란했다. 생사가 갈리는 순간 도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러면 승자는 이미 얻은 것이 있으니 큰 불만이 없고 패자는 저승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셈이니 감격하는 것이다. 그 결과 삼청전은 명성을 챙길 수 있다.
그래서 정태일은 너무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길을 떠났다. 서초 경계 즈음까지 왔을 때 모백상이 부러진 검을 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태일은 의아했다.
“모 종주, 여기는 웬일이오?”
모백상이 나직하게 말했다.
“진인의 대명을 우러른 지 오래이나 줄곧 가르침을 얻을 기회가 없었소이다. 새로운 병기를 손에 넣었기에 몇 수 가르침을 받았으면 해서 말이오.”
정태일은 아직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별 뜻 없이 손을 내저었다.
“그런 일이라면 다음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오늘 빈도는 바쁜 일이 있어 모 종주와 어울리기 어렵겠소이다.”
그러나 모백상은 길에서 비켜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두를 것 없소이다. 그냥 나와 여기서 몇 시진만 지체하면 되니 말이오.”
그제야 정태일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싸늘하게 물었다.
“모 종주, 왜 이러는 거요? 내가 어디로 가려는지 아실 터인데 왜 여기서 나를 가로막소?”
모백상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공수를 올렸다.
“강호에서 사노라면 매사가 내 뜻 같지 않은 법이지요. 부디 양해하시구려.”
그 말에 정태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모백상은 초휴를 위해서 자신의 발목을 붙잡으려는 것이다.
“모백상! 선대 종주 나산이 어찌 죽었는지 잊었소? 예전에 초휴한테서 당신의 목숨과 천하검종 모두를 구한 사람이 누군지 잊었단 말이오? 만일 당신도 악행을 부추기며 초휴를 돕고 있다면 당신의 그 검은 이미 비뚤어진 것이 아니겠소!”
정태일이 욕설을 퍼부었으나 모백상은 고개를 숙일 뿐, 검을 내리지는 않았다. 부끄러워도 결단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정태일의 말은 옳다. 그러나 종문의 전승을 위해 그는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인, 출수하시구려.”
“이런 죽일 놈의 작자 같으니!”
정태일은 노하여 욕을 퍼부으며 도검(道劍)을 꺼내 들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곽궁필과 함께 왔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는 모백상을 붙잡고 다른 하나는 동제로 갔을 텐데.
그러나 이제는 늦었다. 인제 와서 진반으로 곽궁필에게 연락해 소식을 보낸다 한들 여기까지 올 시간이 모자랐다. 그로서는 동제에서 범교와 초휴가 대치하는 시간이 길어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범교 근방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범교가 일부러 비운 것이 아니라, 초휴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세력들이 알아서 물러난 것이었다. 하계에서 초휴의 위세와 명성은 대라천보다 훨씬 대단했다.
곤륜마교 무사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었다. 성화의 깃발이 펄럭이며 뜨거운 기운이 허공에 휘날렸다. 진법을 써서 흉내만 낸 가짜가 아니라 진짜 무근성화로 인한 기운이었다.
조황과 원길은 그간 무근성화를 속속들이 연구했다. 아직도 완전히 이용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처럼 진법을 써서 불꽃 일부분을 깃발로 만드는 것쯤은 가능했다. 그러면 한동안은 형체가 흩어지지 않는 것이다.
검은 옷의 무사들이 한 무리씩 다가와 손에 쥐었던 성화의 깃발을 땅에 꽂았다. 순식간에 무수한 불의 선이 허공으로 녹아들며 맴돌더니, 거대한 진법이 되어 범교 전체를 둘러싸 버렸다.
“성화는 불멸이요, 마도는 영원하다!”
수만명의 마교 제자가 구호를 내지르자 우레 같은 소리가 울리고 마염이 하늘에 충천했다.
“흥!”
범교에서 누군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칠흑처럼 검은 적멸의 힘이 담긴 화살이 폭발하듯 쏘아졌다. 성화진법의 한가운데를 노린 화살이었다.
초휴의 미간에서 세 번째 눈이 열리더니 거대한 음양의 빛줄기가 화살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한 발짝 나선 초휴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온 천지에 울렸다.
“루나가, 내 원시마굴에서 말했을 텐데. 누구도 도망칠 수 없다고! 중은 도망을 칠지 몰라도 절이 달아나진 못하겠지?”
멀리서 천라보찰 승려들이 관전하고 있다가 그 말에 하나같이 낯빛이 시커메졌다. 중은 도망쳐도 절은 못 간다고?
대머리를 손가락질하며 중놈이라고 욕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물론 그들은 초휴와 범교의 개싸움을 구경하러 온 것이니 그런 사소한 일로 초휴한테 따질 생각은 없었다.
“초휴!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나?”
루나가와 염마가 동시에 범교 대전에서 나왔다. 뒤에서 무수한 범교 제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진작부터 진세를 형성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원시마굴에서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우리를 이겼지. 그때는 내가 실수한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바깥이다. 간덩이가 얼마나 부었길래 감히 팔중천 무선 둘을 죽이겠다고 몰려온 것이냐? 무슨 자신감으로 범교를 멸하겠다고? 더군다나 초휴 네놈은 대라천 세력들과 돌아가며 척을 지지 않았나? 정말 네놈이 범교를 멸한다면 그 뒤는 어찌 될까? 다른 세력들에게 갈가리 찢겨 조각이 날거라 그 말이다!”
루나가는 싸우지 말자는 둥 서로 양보하자는 둥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범천전 전주로서, 그리고 오랜 세월 범천전을 맡아온 사람으로서 그는 물러날 때와 강경하게 굴 때를 구분할 줄 알았다.
지금까지는 그들이 늘 초휴를 공격해 왔다. 끝장을 보겠다는 자세로 온갖 수단을 다 썼다. 그래놓고 지금와서 물러나겠다고 하면 우스운 꼴밖에 더 되겠는가.
그래서 그는 초휴의 행위가 부를 결과들을 거론해 그의 생각을 바꾸려 했다. 자신을 죽이겠다는 건 그렇다 쳐도 때를 잘 골라야 할 게 아닌가. 지금 공격한다면 범교도 힘들겠지만 초휴 역시 다리 뻗고 지내지는 못할 터였다.
초휴는 문득 괴이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루나가, 이제 알겠군. 범교가 왜 천라보찰을 이기지 못하는지 말이다. 앞으로는 늑대를 무서워하고 뒤로는 호랑이를 겁내는군그래. 너무 이것저것 많이 따진단 이야기다. 일평생 무도를 수련한 자가 은혜와 복수는 갚으면 그만이라는 말도 모르나? 정말 슬픈 일이 아닌가?”
그는 큰 소리로 일갈했다.
“성화대진을 발동해라!”
초휴는 사람을 죽이러 온 거지 루나가와 이치를 따지러 온 게 아니었다. 모백상이 서초에서 삼청전의 발목을 붙잡고 있을 테니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했다.
무수한 성화의 깃발에서 경악스러운 금빛이 터져 나왔다. 무근성화의 힘이 허공을 불사르며 모든 법칙의 힘을 봉인하고 일순간 범교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원길은 초휴한테 성화대진의 위력에 관해 수많은 허풍을 떨어댔다. 지금 보니 허풍을 떤 게 아니라 상을 달라는 말이었구나 싶었다.
그때 범교에서 일곱 빛깔 연꽃이 한 송이 피어올랐다. 생기, 파멸, 조화 등의 힘이 꽃송이 안에서 자라더니 빛을 흩뿌려 성화대진의 위력에 맞섰다.
꽃잎 위에 열 명의 무사가 앉아 진법을 조종하고 있었다. 한가운데 있는 것은 길신라로 가장한 심마였다. 범교에서 진법 같은 건 모두 비슈누전이 다뤄 왔고 비슈누전이 무너진 후에는 ‘길신라’ 하나만 남았다.
그래서 범교는 그에게 사람을 몇 명 붙여서 다시 비슈누전을 작은 새싹부터 키우도록 했다. ‘길신라’는 아직 비슈누전 전주가 아니었으나, 그들은 전적으로 그의 통제를 따르고 있었다.
양쪽의 진법이 팽팽히 대치하자 범교 전체에서 격렬한 빛이 터지면서 허공을 덮었다. 위서애는 출수하지 않고 사람들의 뒤에 서 있었다. 그는 곤륜마교 제자들을 지휘해 각 방면에서 공격하도록 했다.
초휴는 가장 높은 곳에 서서 법천상지를 펼쳤다. 일권이 내리 떨어지자 산이 울리고 땅이 갈라질 듯했다.
곤륜마교의 공격 방식을 보는 대라천 무사들의 속이 서늘해졌다. 대라천 종문 세력이 하계보다 강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멸문을 목적으로 하는 싸움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절정급 대문파라도 마찬가지였다. 먼젓번 초휴와 천라보찰이 연합하여 범교 비슈누전을 멸망시킨 것도 수천년 만에 최대의 전투였으니까.
지금 곤륜마교는 그들에게 진정한 멸문전이 어떤 건지를 보여주려는 듯했다. 가지런한 진법이 길을 열고, 모든 무사가 함부로 출수하지 않고 위서애의 지휘하에 질서 있게 자신의 힘을 최대로 발휘했다.
위서애는 젊었던 시절에 구천산 정마대전에도 참여했다. 그 후로도 수차례의 정마대전에 모두 참여했으니 이 방면의 경험으로는 초휴를 포함한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그리고 곤륜마교의 최강자로서 지금 초휴가 할 일은 단 하나였다. 그것은 상대방의 최강자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정상으로 정상에 맞서는 것!
대라천에서는 이런 전술이 펼쳐진 적이 드물었다. 그들이 겪어 본 충돌이라는 건 모조리 몰려가 싸우는 것이었다.
초휴처럼 수많은 고수를 섬세하게 제어하고 지휘하면서 군대를 움직이듯 다룰 수는 없었다. 곤륜마교는 대체 멸문전의 경험이 몇 번이나 되기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염마의 몸이 핏빛 고치로 둘러싸이는가 싶더니, 그 고치에서 걸어 나오는 순간 마르고 작은 노인에서 젊고 활기찬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칠흑 같은 멸세지화가 엉겨들어 한 자루 장창으로 변했다. 허공을 태워 버릴 듯 내찌른 장창은 천지를 진동시키더니 극한의 힘이 담긴 초휴의 일권과 충돌했다. 일순간 허공이 울리면서 강대한 힘이 폭발했다.
“초휴! 우리 범교가 만만해 보이더냐? 오늘 여기서 죽어라!”
기실, 이 상황은 염마가 원하던 것이었다. 그는 루나가처럼 이것저것 재고 따지며 일의 앞뒤와 결과를 고려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염마는 그저 한바탕 통쾌하게 싸워보고 싶었다. 초휴 저자를 멸세지화로 불살라 재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루나가는 아직 상세가 다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달려들어 염마와 함께 초휴를 공격하려 했다.
강호인들은 범교 교주 아래 첫째가는 범천전 전주인 루나가를 대범한 사람일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사실 그는 가장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원시마굴에서도 모백상과 원신을 속여 시간을 끌게 한 다음 자신은 그 틈을 이용해서 도망쳤다. 그게 루나가의 참모습이었다.
지금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지만, 남들이 뭐라고 떠들건 그는 전혀 구애받지 않았다. 범교의 존망이 걸린 싸움인데 이 대 일이건, 말건 알 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그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무상천마가 코앞에 와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원신을 본 루나가는 일순 멈칫했다.
“초휴가 너를 살려준 건가?”
루나가가 생각하는 초휴는 상식 밖으로 악랄하고 지독한 자였다. 그가 출수했는데 살아남는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무상천마가 사납게 웃었다.
“죽일 놈의 애송이! 감히 본존을 개 패듯 두들겨 패고 위협까지 했겠다? 오늘 본존께서 경외가 무엇인지를 네 놈에게 가르쳐 주마!”
무상천마의 두 팔이 인결을 맺었다. 그러자 검은빛의 마룡 아홉 마리가 발아래에 엉겨들어 대진을 형성하는가 싶더니 루나가에게 흉포하게 덤벼들었다.
이제 원신의 몸을 다루게 된 무상천마의 실력은 그야말로 급상승했다. 사실 그의 몸에는 팔이 네 개 달려 있었다. 네 팔로 인결을 맺으면 더 빠르겠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무상천마가 출수하는 것을 보고서야 루나가는 정신을 차렸다. 원신은 죽었고 저 몸은 껍데기일 뿐이다. 안에는 무상천마가 들어 있는 것이다.
루나가는 속으로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무상천마 놈을 아예 봉인해 버릴 것을.
게다가 자기뿐 아니고 초휴도 무상천마를 실컷 때리고 협박했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초휴에게 붙은 걸까? 초휴가 더 강해서? 결국, 이자도 강약약강이로구나!
둘은 속으로 서로를 욕하면서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실력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루나가는 미처 몸 상태를 회복하지 못했고, 무상천마는 아직 새 몸에 익숙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몸 상태가 최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