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82)
1382화 대라천의 위기
망아검계가 소멸하고 초휴와 방칠소의 원신도 자신의 육신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무사한 걸 본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초휴가 주변을 둘러보니 황천천 요귀들은 대부분 다 소탕된 상태였다. 그는 천혼에게 물었다.
“다 해치운 건가?”
천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시피 모조리 다 해치웠다.”
하지만 초휴는 못내 기분이 찜찜했다. 딱히 무슨 위험이 감지되어서가 아니었다. 되레 일이 너무 쉽게 마무리된 게 이상하고 불안했다.
이번 일전은 막판에 사대 마존이 고경성과 연합해 그를 죽일 판을 짰던 것 말고는 크게 위험할 게 없는 싸움이었다. 나머지는 너무도 쉽게 소탕된 것이다.
문제는, 지금 그들은 명혼을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고유아의 명혼이 이토록 허술하게 일을 꾸몄다고?
그러나 초휴의 생각이 길게 이어지기도 전에 도존이 말했다.
“여러분, 이제 황천천 강자들과 요귀 놈들은 우리 손에 모조리 처단되었소. 시간 끌 것 없이 속히 가서 황천천 통로를 봉쇄합시다.”
그러자 초휴도 일단 의구심을 거두고 무선 강자들과 함께 통로를 봉쇄하러 남해로 향했다. 그곳에 당도하니 과연 황천천 요귀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가 휑한 가운데 백골 궁전만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통로를 봉쇄하자면 일단 진법부터 해결해야 했다. 여기 온 강자 중 도존과 맹성하만이 그럴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통로를 주시하던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무슨 일입니까? 통로에 무슨 문제라도 있소이까?”
초휴의 질문에 도존이 고개를 저었다.
“통로 자체에는 문제가 없소. 문제는 우리한테 있지. 이 통로는, 지금 우리의 실력으로는 닫지 못하오.”
“그건 어째서입니까? 과거에 대라천과 하계를 단절하는 진법도 구축했으면서 이 통로는 왜 안된다는 겁니까?”
초휴의 질문에 맹성하가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그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오. 대라천과 하계는 원기의 양만 달랐을 뿐, 세계 자체는 똑같았으니까. 그러니 우리의 진법은 대라천과 하계 양쪽 다 똑같은 효과를 낼 수 있었소. 하지만 황천천의 경우 그 힘의 체계와 법칙이 양계와는 달라서, 우리는 그 차이가 뭔지를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란 말이오. 그렇다고 황천천의 힘에 대해 파악할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해도 어려운 건 역시 마찬가지요. 지금 우리의 힘만으로는 저 통로를 완전히 봉쇄하기란 불가능하니까. 과거에 대라천으로 넘어갔을 당시처럼 양쪽 세계 모두에 대진을 구축해야 확실히 단절되는 거요.”
“물론 이 또한 한시적인 방법에 불과하지. 하계 천문이 그랬듯이, 누군가가 책임지고 계속 진법을 유지해야 하오. 그러려면 그 누군가가 황천천에 영원토록 머물면서 그쪽 진법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게 또 한두 사람만으로 될 일이 아니오.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적어도 대대손손 그 소임이 승계되어야 한단 말이오. 하지만 누가 그 일을 맡으려 들겠소? 거기서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들도 자연스럽게 황천천 존재로 동화될지도 모르는데······. 한마디로 이 통로는 열기는 쉬우나 닫기는 어렵소. 아니, 불가능하오!”
좌중은 침묵에 휩싸였다. 맹성하의 말이 사실이었다. 황천천 쪽에 천문과 같은 대진을 구축해야 한다면 과연 누가 가겠다고 나서겠는가.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지만, 아까 그 요귀 군단만 봐도 결코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는 건 누구나 느낄 터였다. 설령 이 세상에 대겁난이 도래하는 걸 막겠다는 대의명분을 안고 가겠다는 지원자가 있을지라도 백년 후, 천년 후는 또 어쩔 것인가? 당사자가 죽으면 도대체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이냔 말이다.
천문만 봐도 그랬다. 초대 천문 문주는 확실히 목숨을 걸고 소임을 완수하겠다는 각오로 하계 쪽 진법을 지켰다. 하지만 수대에 걸쳐 그 뒤를 이어나간 문주들은 심지어 초대 문주와 아무 연관도 없는 자들이었다.
천문의 소임에도 관심이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하계 천문에도 이런 변수가 생겼는데, 하물며 황천천 쪽은 오죽하겠는가.
바로 이때 바다 쪽에서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일었다. 해수면이 수상하게 들끓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상황이 감지된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 움직임을 향했다가 숨이 막힐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 멀리 바다 위로 천 장 높이의 고산(高山)이 떠올라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 고산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한 손으로 고산을 받쳐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
산이 워낙 무겁다 보니, 그 사람이 해수면을 걸으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만 장 크기의 무지막지한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산을 받치고 걷는 존재! 그는 바로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던 종신수였다.
도존 등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먼젓번 있었던 종신수의 단 한 차례 출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강대한 존재인지는 뚜렷이 인지한 상태였다.
그런데 인제 보니 그의 실력은 단순히 강대하다는 말로 표현될 게 아니지 않은가. 자신들과는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자체가 불가능한 실력인 것이다. 저 엄청난 산을 혼자 들어 옮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물론 도존 등이 함께 전력 출수한다면 저 산을 격파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것을 받쳐 드는 건, 격파와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신의 힘을 산 전체에 걸쳐 고루 분산시키는 게 관건이다. 그러자면 더없이 웅혼하고 심후한 힘의 저력과 강대한 장악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안 되는데 어설프게 저걸 들려 했다가는 십중팔구 산에 구멍만 뚫리고 말 터였다. 그런데 이때 초휴의 관심은 이런저런 것들이 아닌, 바로 저 산 자체에 온통 쏠려 있었다.
산이 품고 있는 힘이 어딘가 괴이했던 것이다. 서식하는 식물이나 생령이라곤 하나 없이 죽음과 적멸의 회백색을 띤 민둥산이었다.
거기서 흘러 나는 기운만 봐도 그 산이 결코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종신수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중인들을 힐끗 둘러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비켜주시오.”
도존이 조심스레 물었다.
“감히 묻소만, 귀하께선 뭘 하시려는 건지요?”
종신수가 그를 곁눈질로 보더니 무심한 어조로 답했다.
“당신들이 통로를 뚫어 하계의 인과를 엉망으로 만들어서 생긴 일이요. 도로 봉인할 방법도 없으니, 이 산이라도 가져다가 막는 수밖에.”
도존 등의 표정에 괴로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지 않아도 황천천의 출현이 자기들 탓이라며 자책하던 차에 여간 민망하고 씁쓸하지 않았다.
그들은 군소리 없이 길을 비켜섰다. 그리고 종신수가 통로를 향해 그 거대한 산을 통째로 내던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산 밑에 깔린 백골 궁전들은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통로도 완전히 산으로 가로막혔음은 물론이다.
뒤이어 종신수 미간의 세 번째 눈에서 혼돈의 광채가 발출되어 그 산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것을 그대로 녹여버리기라도 할 기세였다. 종국에 가서는 그 산 전체가 몽롱한 기운을 머금게 되었다.
얼핏 해무를 휘감고 망망대해에 홀로 솟은 외딴섬처럼 보였다. 이로써 더는 황천천에서 전해지는 기운을 느낄 수 없게 되자 다들 안도감에 다리가 풀렸다.
황천천 통로가 봉쇄되었으니 마음 졸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일만년 전 닥쳤던 대겁난에 비하면 이번 겁난은 훨씬 수월하게 지나간 게 아닌가.
하지만 이때 저 멀리서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파도를 밟으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선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약한 실력도 아니었다.
그들을 이끄는 자는 놀랍게도 육삼금이었다. 나머지 인원도 황천각 사람들이 아닌가.
순간 초휴는 서늘함을 느꼈다.
종추수가 만류했기 때문에 육삼금은 아까의 싸움에서도 빠져있었다. 이 싸움이 얼마나 위험할 것인지 다들 예상하고도 남았다.
만에 하나 의외의 변고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황천각의 명맥을 이어갈 씨앗 하나는 남겨놔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숫제 대라천을 떠나지도 못하게 했었건만, 난데없이 여기에 나타난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종추수가 다급히 물었다.
“여긴 어인 일이냐? 황천각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야?”
육삼금 역시 다급히 답했다.
“황천각에만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대라천 전역에 난리가 났습니다! 여러분이 출수하셨을 무렵 대라천에도 공간의 틈이 몇 개나 생기더니, 그곳을 통해 황천천 강자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중 구중천 존재는 없었으나, 팔중천에 필적할 자들이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대라천 강자들이 하계로 가고 없으니 남은 분은 선대 고존 영수이신 원신존, 그리고 하계로 떠나지 않고 대라천을 지키고자 남으셨던 고존 두 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원신존은 너무 연로하셔서 오래 버티지 못하셨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원기를 잃기 시작하셨던 터라, 팔중천 강자 셋이 협공을 퍼붓자 사력을 다해 그중 한 놈을 처치하시면서 동귀어진하셨습니다. 다른 두 고존 분도 삼중천의 실력으로는 저들의 상대가 되지 못하여 금세 절명하셨습니다. 지금 당장 대라천에 남은 무선이라고 해봤자 천마궁 궁주 좌구량이 유일합니다. 천마궁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저들과 대치 중이지만,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떠날 때까지만 해도 싸움에 돌입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언제 최악의 상황이 될지 모르니 불안하기만 합니다.”
다들 낯빛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지금이야 죄다 하계로 넘어와 있다지만, 대라천은 자신들의 진정한 근간이 아닌가.
지금 이토록 죽을힘을 다해 황천천의 침입을 막으려는 것도 순망치한의 이치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황천천의 존재들이 하계를 점령하도록 좌시만 하다가는 다음 차례는 대라천이 될 게 뻔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하계에서부터 저들을 막으려 했건만, 놈들이 이렇듯 비열하게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수법으로 뒤통수를 칠 줄이야.
그들은 일단 양계 강자들의 이목이 죄다 하계의 남해로 쏠리게 만든 다음, 텅 비어버린 대라천에 나머지 전력을 투입하여 장악하려 한 것이다.
다만 도존 등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하계 황천천 통로야 자기들이 실수로 열었다지만, 황천천에서 대라천으로 넘어오는 입구는 어떻게 열렸단 말인가?
초휴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려했던 일이 결국 현실이 된 것이다. 대라천에 이런 일이 닥칠 줄 그가 전혀 몰랐다고 하면 거짓일 터였다.
줄곧 떨쳐버리기 어려웠던 그 찜찜함의 실체가 이제야 확인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에 저들을 물리치기까지의 과정이 이상하리만치 순탄했다.
황천천의 실력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될 리는 없었다. 더욱이 명혼의 전술이 그토록 허술하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싸웠던 사대 마존, 그리고 검성과 검황을 뇌리에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오백년 전은 강호에 고수들이 백출하고 강자들이 운집했던 시대였다.
대라천을 침략한 자들의 실력이 그 강자들과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그리 형편없을 리도 없을 터였다.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 강자들의 면면을 떠올려 보자니 절로 심장이 서늘해졌다.
오백년 전 순양도문 장문과 검왕성 장문 등을 비롯해 곤륜마교 내의 그 수많은 마사와 당주들도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명혼이 진정으로 노린 것은 하계가 아니라 대라천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