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83)
1383화 영현기의 선택
초휴는 대라천의 상황에 위기감을 느꼈다. 이제까지는 자신이 대국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양계 강자들을 규합하여 황천천 무리를 참살하기까지, 국면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은 여전히 명혼이 주도권을 쥐고 있음이 판명 난 것이다.
도존 등은 즉시 대라천을 구하러 돌아가고자 했다. 다행히 침략자들 중에 구중천은 없다니 이제라도 돌아가면 상황을 반전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초휴가 이들의 행보를 제지하더니 육삼금에게 물었다.
“자네가 떠나올 무렵에 황천천 놈들이 무얼 하고 있던가? 단순히 사람들을 죽이기만 하던가?”
육삼금이 고개를 저었다.
“죽인다기보다는 패거리를 나누어 동서남북 사역의 용맥 모두를 점거하였소. 용맥 터에 침입해 거기서 힘을 취하더군. 천마궁이 저들의 공격 목표가 된 것도 그 때문이지. 마침 남역의 용맥이 천마궁 내에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천마궁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좌구량 궁주를 상대로 출수하지도 않았겠지.”
초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천혼을 돌아보았다.
“이미 늦었어. 저들이 용맥의 힘을 충분히 취하면 틀림없이 그가 돌아올 거야.”
천혼도 수긍했다.
“확실히 늦긴 했지. 예전에는 하계로 은밀하게 수하들을 보내서 용맥의 힘을 탈취하려다가 너한테 들켜버렸지만, 이제는 대놓고 대라천을 공격했으니 용맥을 차지한 거나 다름없다. 설상가상으로 대라천 용맥의 힘은 하계보다 훨씬 강하다는 게 문제지. 지금 우리가 돌아간다 해도 별 소용이 없을 거다.”
지금 황천천에 있는 명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예전에는 몰랐다. 하지만 여러 단서를 통해 추론하고 맹성하의 연구까지 더해지자 대충 정답에 다가간 듯했다.
황천천은 음면(陰面)의 세계고 하계와 대라천 등은 양면(陽面)의 세계다. 지난 오백년 동안 명혼은 황천천에 이미 동화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황천천에 들어가는 건 간단했을지 몰라도 다시 나오는 건 쉽지 않을 터였다.
명혼이 양면의 세계에 나타나려면 당연히 양의 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 힘을 얻어야 할 텐데, 양의 힘이 가장 짙은 곳은 용맥인 것이다.
저들은 마지막 남은 패까지 모두 까 보이며 최후의 승부수를 띄운 셈이었다. 그것은 이미 필요한 힘을 취할 만큼 충분히 취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초휴와 천혼의 대화에 세존이 정색하며 끼어들었다.
“지금 두 분은 누구 이야기를 하는 게요? 대관절 누가 돌아온단 말이오? 빈승이 의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진작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더랬소. 황천천 통로를 연 건 우린데, 정작 황천천데 대해 두 분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더란 말이오. 아니 그렇소?”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른 마당에, 초휴나 천혼도 더는 숨길 필요를 못 느꼈다. 게다가 이제 명혼과 맞닥뜨릴 시점도 머지않았다.
어차피 명혼이 나타나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진상을 알게 될 터였다. 이에 천혼이 두어 번 냉소를 터뜨리더니 한마디를 내뱉었다.
“돌아오긴 누가 돌아오겠나! 당연히 독고유아지.”
일순간 좌중은 너나없이 몸도 정신도 얼어붙은 듯했다. 세존이 여전히 의문을 제기했다.
“독고유아는 바로 당신이잖소?”
천혼이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독고유아고, 그 역시 독고유아가 맞다. 엄밀히 말해서 그가 나보다 더 독고유아에 가깝다고 해야겠지만. 이보시게, 화상! 당신들 선조들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아는가? 그는 절대로 죽일 수 없는 존재였어. 그런 존재를 완벽히 봉인하는 게 가능하다고 믿다니, 그들의 단순함에 헛웃음이 나온단 말이다. 거기 도사 양반! 당신네 삼청전이 하계에 남겨 놓은 ‘일기화삼청’이라는 분혼 비법을 아직 기억하는가? 아마 지금의 삼청전에서는 실전된 비법일 테지만. 마주는 불패라고 했지. 그가 이긴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한 것도 아니었단 말이다.”
여기에 있는 구중천 강자들이 바보 둔치들도 아니고, 천혼이 에둘러 말하지도 않았으니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먹을 리 만무했다. 일순간 초휴와 천혼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경계의 기색이 짙게 차올랐다.
다만 노만왕은 무슨 소린지 당최 모르겠다는 표정만 얼굴에 가득했다. 그는 오백년 전 벌어졌던 온갖 풍파에 대해 어깨너머로 듣기만 했을 뿐,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도존이 냉랭히 말했다.
“천혼과 지혼은 늘 밖에 떨어져 있고 오직 명혼만이 본체에 붙어있지. 황천천 그자야말로 가장 독고유아에 가까운 존재라면, 당신들 둘이 각각 천혼과 지혼이겠군.”
이에 천혼이 차분히 답했다.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다. 여기 초휴도 그렇지만 나 역시 더는 그의 일부가 아니니까. 삼청전은 워낙 원신과 혼백에 관한 연구에 정통하니 도사 당신이 한번 답해보면 어떨까? 한 사람의 혼백이 분리된 후, 본체가 분혼 중 하나와 의식을 공유할 수 없다면 말이지. 심지어 그 분혼에게 별개의 의식이 생기기까지 했다면, 그 분혼을 여전히 본체의 일부라고 봐야 하겠나, 아니면 단독으로 존재하는 생령으로 간주해야 할까? 여기 초휴를 한번 보라니까? 독고유아의 기운이 실낱만큼이라도 느껴지는가? 우리 둘 다 황천천 따위는 꼴도 보기 싫어. 다시는 독고유아와 만나고 싶지 않은 것도 당신들과 다를 바 없고 말이야. 당신들이 죽기 싫듯이 우리 또한 절대 죽기 싫단 말이다!”
“그럼, 우리가 뭘 어찌해야 하오?”
잠시 침묵 후 도존이 별안간 던진 질문에 초휴가 답했다.
“무조건 뭉쳐야지요!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소!”
그때 세존이 종신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양손을 합장하며 비장하게 말했다.
“어르신, 이번에 우리를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독고유아가 이제 곧 황천천에서 돌아온다고 하니 말입니다. 아까 사악한 요귀들과 싸워보니 그들이 더는 ‘사람’이 아님을 똑똑히 알겠더군요. 그자는 필시 상계와 하계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겁니다.”
세존의 요청에 종신수가 내놓은 대답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그자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법칙의 인과가 교란되었소. 내가 출수를 해도 그를 이기지는 못할 거요.”
이에 다들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종신수는 누가 봐도 신비 그 자체의 존재 아닌가. 초휴와 도존 등의 눈에도 당연히 그리 비쳤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독고유아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이토록 쉽게 내뱉다니!
세존도 못내 믿기지 않아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독고유아와 만나본 적도 없으시면서 이기지 못한다고 어찌 단정하십니까?”
“만나본 적이 있소.”
초휴가 천혼을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은 종신수와 만난 기억이 없다는 뜻이리라.
종신수의 말이 이어졌다.
“인과를 초탈한 존재는 나도 이길 방법이 없소. 잠시는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불가능하단 말이오.”
말끝에 종신수가 초휴와 천혼을 가리켰다.
“그대들은 인과에서 벗어난 존재들이오. 명혼도 그렇고, 또······ 동해의 도사도 절반은 그런 셈이지.”
“아, 그렇구려! 영현기 선배님이 계셨지!”
세존이 무릎을 탁 치며 초휴에게 물었다.
“초 교주, 저번에 영현기 선배님과 함께 어디론가 다녀오지 않았소? 그분이 지금 어디 계시는지 혹시 모르시오?”
초휴가 고개를 저었다.
“그분과 어디를 좀 다녀오기는 했습니다만, 이번 일에 그분이 도움을 주실지는 나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진작부터 그분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지를 추구하고 계셨으니까요. 심지어 우리가 있는 이 세상의 인과에서 이미 벗어난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영현기도 오백년 전의 독고유아처럼 무도에서의 진정한 초탈을 지향했다. 심지어 스스로가 신이 되어 자기만의 독자적인 세상을 창조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다.
따라서 하계 강호의 은원에 그가 개입하려 들지는 초휴도 단언하기 어려웠다. 설령 그게 진무교와 연관 있는 은원이라 해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지난번 함께 떠났을 때, 그가 양계 융합 당시의 광경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당시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폐관 중일 가능성이 컸다.
하필 그런 중요한 시점에 그를 방해하면 그 걸쭉한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자칫 그를 격노케 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이때 멀찍이 물러나 있던 육장류가 몇 마디를 보탰다.
“초 교주, 밑져야 본전인데 그래도 한번 부딪혀보는 게 어떻겠소? 내 비록 조사님과 접촉해본 경험이 초 교주와는 비교도 안 되게 적지만, 그래도 그분이 남기신 서적들은 많이 봤었소. 그걸 보니 입은 좀 험하시지만, 마음이 차가운 분이 아님을 알겠습디다. 원래 도문이 청정무위를 기조로 삼는지라 웬만하면 나와 무관한 일에 관여치 않는 게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데 팔짱 끼고 구경만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단 말이오. 초 교주는 따로 설득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이 그저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씀만 드리시구려. 선택은 조사님 당신께서 하시게 놔두고 말이오.”
초휴가 잠시 생각 후 말했다.
“좋습니다. 내가 동해에 다녀오도록 하지요.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대라천이 이미 그 지경이 되었지만, 그래도 황천천 놈들을 어떻게든 소탕해야 할 테니까요. 여러분만 믿겠습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잘 버텨주십시오.”
* * *
한시가 급한지라 초휴는 기억을 더듬어 서둘러 동해로 향했다. 시간도 빠듯했지만, 이번에는 힘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음양 본원의 강력한 힘을 동원해 허공을 깨부숴 길을 트며 나아갔다.
동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상범천과 하범천이 겹쳐진 지점에 도달했을 때 그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런데 폐관 중일 줄 알았던 영현기가 뜻밖에도 그곳에 가부좌를 튼 채,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게 아닌가.
초휴가 다가서자 영현기가 정색하며 물었다.
“애송아, 하계에 뭔 일이라도 났느냐?”
“선배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영현기가 냉소를 터뜨리며 하늘을 가리켰다.
“그렇게나 요란하게 난리법석을 떨어대는데 내가 왜 모르겠느냐? 그래도 대라천 놈들이 죄다 하계에 와있으니 별일이야 없으려니 했지. 하지만 네가 날 찾아온 걸 보니 일이 간단치가 않은가 보군. 이치대로라면 그리될 리가 없는데 말이지.”
초휴가 헛기침 소리와 함께 준비해온 말을 꺼냈다.
“맞게 보셨습니다. 사실 일이 좀 어렵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리가 터진 쪽은 하계가 아니라 대라천입니다.”
그는 모든 사실을 하나도 남김없이 영현기에게 들려주었다.
상황 설명을 들은 그의 표정이 이상야릇하게 변했다. 굳게 닫혀 있던 그의 입에서 돌연 욕이 터져 나왔다.
“이런 염병, 우라질! 혼을 나눠? 내가 독고유아 그놈한테 당했군그래!”
영현기와 독고유아는 한평생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반평생은 서로 싸웠던 사이였다. 싸우면서 정든다는 말도 있지만, 정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상대에 대해 바닥까지 다 안다고는 자신할 수 있었다.
영현기는 독고유아가 정말로 강직한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하계 시절에도 일단 한번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대로 행했고, 대라천에서는 강직함이 도를 넘어 유아독존식이 되어버렸다가 강자들의 협공을 맞지 않았던가.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게 다 허상에 불과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인제 보니 독고유아는 그 심계에 있어서도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이토록 심계가 깊고 음흉한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영현기보다도 한 수 위인 것이다.
문득 영현기는 자기가 머리싸움에서도 상대에게 밀렸다는 굴욕감마저 느꼈다.
급기야 초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점차 사나워졌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초휴도 독고유아의 일부분이니 말이다.
마침내 영현기가 냉랭히 콧방귀를 뀌며 따져 물었다.
“그래서 뭘 어쩌자고? 내가 출수해야만 하는 이유를 한 가지만 대봐라. 나와 독고유아가 경쟁 관계를 이어왔으나 적대한 적은 없었다. 인제 와서 독고유아가 돌아와 자기 길을 가겠다고 한다면 나도 그를 막을 이유가 없겠지. 너와 그의 은원도 결국은 너희 둘 사이의 일일 뿐이지 않으냐. 네놈들끼리 지지고 볶는데 내가 왜 참견한단 말이냐?”
그러자 초휴가 정색하며 말했다.
“황천천은 음면의 세계고 우리가 있는 곳은 양면의 세계입니다. 지금 명혼은 하계 일부 및 대라천 용맥의 힘을 황천천으로 대거 빼돌리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음양이 엉망으로 헝클어지고 있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명혼이 이대로 자기 멋대로 하게 놔둔다면 종국에 가서 그자의 길만 남고, 나머지 모든 이들은 갈 길을 잃을 거라는 사실이죠. 선택권은 선배님께 있으니 무리한 부탁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정히 관여하기 싫으시다면 나도 그냥 물러날 밖에요. 대라천으로 가서 명혼과 끝까지 싸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