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84)
1384화 명혼의 귀환
영현기는 초휴에게 이유를 한 가지라도 대보라고 했다. 그러나 초휴는 선택권을 다시 그에게 넘겨버렸다. 영현기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돌연 상범천과 하범천이 융합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나는 황천천을 진작 발견했었다.”
초휴는 일순 멍해졌다.
‘진작 발견했다고?’
“상범천과 하범천이 융합을 일으킨 지점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단 말이다. 많지는 않아도 여러 가지로 수확이 있었다. 황천천으로 연결되는 미세한 틈들도 발견했는데, 그 너머로 황천천 본원의 존재가 감지되더군. 나는 그곳의 상황을 알아보려고 원신을 그 틈으로 들여보낼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정신이 이미 그 본원을 차지했더란 말이지. 그래서 본원이 외부의 존재는 그게 뭐든 가차 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네가 독고유아의 지혼이 맞는다면, 네 정신의 핵심 근원도 독고유아와 같을 거 아니냐.”
“그렇다면 네가 직접 황천천 내부로 들어가서 그 본원 내에 대체 뭐가 있는지 살펴보는 게 어떻겠느냐? 물론 위험이 따를 것이다. 나도 들어가는 데 실패한 곳이니까. 그래서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당시 내가 침입하려 했던 것을 독고유아가 알아챘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으니, 일단 들어가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단 말이지. 물론 들어갈지 말지 선택은 네가 해라. 가겠다면 이 도야도 함께 가줄 테니까. 그 망할 옛 친구 놈의 낯짝이나 한번 봐야겠다.”
초휴가 잠시 생각 후 말했다.
“그러면 수고스러우시더라도, 선배님께서 길 안내를 좀 해주시지요.”
그는 구중천 정점을 찍은 실력에다 기운까지 대거 머금은 몸이라, 여타의 무선들과는 차원이 다른 길을 개척해왔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명혼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더는 실력을 끌어올릴 방법이 없다면, 현재 명혼이 어느 정도나 힘을 장악했는지라도 알아야 할 터였다. 고개를 끄덕인 영현기는 초휴를 데리고 그 혼란한 법칙들을 찢어 가르며 황천천 음기가 흘러나오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바로 여기다. 틈이 워낙 작아서 육신은 들어가지 못한다. 기껏해야 원신만 들여보낼 수 있을 정도지.”
초휴가 두 눈을 감더니 수인을 결했다. 그러자 원신이 이내 그의 몸을 떠나 황천천으로 통하는 그 틈으로 진입했다. 가없는 황천의 음기가 순식간에 그의 원신을 뒤덮었으나 신기하게도 그를 상하게 하지는 못했다.
영현기의 말이 맞았다. 초휴는 마음대로 황천천을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 * *
초휴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눈길이 닿는 족족 황천의 혈해뿐이었다. 그 속에서 무수한 원혼과 악령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진정한 죽음과 적멸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그 어떤 생기도 감지되지 않았다. 죽음의 끝에서 다시 생기가 움튼다는 건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 법칙인 듯했다.
여기서는 죽음의 기운이 극도에 이르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적멸만이 있을 뿐, 희망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사방을 둘러보던 그의 원신이 황천 혈해 속으로 끝없이 잠수했다. 바닥까지 내려가 황천 혈해의 진정한 본원의 힘이 존재하는 곳을 제대로 살펴볼 셈이었다.
기실 이런 행동은 여간 위험천만한 게 아니었다. 만에 하나 이런 곳에서 독고유아에게 발각되면 전혀 도망을 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황천천은 상당히 기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 모종의 느낌이 초휴가 가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끔 연신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막상 혈해 바닥까지 내려가 보니 극도로 끔찍할 거라고 예상했던 거와는 달리, 그곳은 너무도 뜻밖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놀랍게도 일면 거울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다섯 세상이 탄생했을 때부터 존재한 것처럼 여러 세상의 구석구석 모든 걸 투영하고 있었다. 음과 양, 생과 사를 비롯하여 태초의 세상에서 모든 것이 시작될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 거울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다섯 세상 중 대라천은 일만년 전 하계 무사들에게 침략당하면서 태초의 대라천과는 그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장생천은 아직 전설일 뿐이었고 상범천은 진작 멸망하여 하범천과 융합되었다. 생기라곤 전혀 없이 황천의 음기만이 가득한 이 황천천만이 유일하게 태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즉, 창조된 이래로 아무것에도 영향받지 않은 채 온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황천천은 수많은 걸 투영해내는 일면 거울이다. 그것을 통해 초휴는 그간 알지 못했던 것들도 순식간에 깨우칠 수 있었다. 심지어 그 거울 속에서 상당히 익숙한 누군가의 신형마저 볼 수 있었다.
순간, 초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육강하와 여봉선 등이 익히 보아왔던 미소, 그가 누군가를 성공적으로 모해하는데 성공하면 보이곤 했던 바로 그 회심의 미소였다.
알겠다. 이제야 알아냈다!
바로 다음 순간, 황천천 한가운데서 진동이 전해져 왔다. 마치 어떤 눈빛이 황천 혈해를 한바탕 훑고 지나기라도 한 듯했다.
초휴가 번쩍 정신을 차리자 원신에 모종의 변화가 일기라도 한 양, 그 기운이 황천천의 유령 및 악귀들의 것과 거의 흡사해졌다. 그는 조용히 거기서 물러났다.
* * *
그 무렵 바깥세상에서는 영현기가 주먹으로 턱을 괸 채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무 기척이 없는 게 궁금했다.
애송이 녀석이 독고유아에게 먹히기라도 한 것일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건 아니겠거니 싶기도 했다. 원신이 먹혔다면 밖에 있는 그의 몸체에서도 생기가 완전히 사라졌어야 할 게 아닌가.
바로 이때 초휴의 몸이 움찔했다. 원신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모습에서 뭔가 달라진 듯했다. 실력 면에서는 아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일신에 흐르는 기운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모종의 느낌이 더해진 듯하지 않은가. 영현기조차 그게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짚어내지 못할 만큼 기묘했다.
“안에서 뭐라도 발견했느냐?”
초휴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많은 걸 발견했지요. 선배님, 이만 가십시다.”
말과 함께 그는 영현기를 끌고 냅다 대라천으로 통하는 입구를 향해 질주했다.
* * *
그 무렵 대라천 남역 천마궁 밖.
휘황찬란한 웅대함을 자랑하던 천마궁은 가루 수준의 폐허로 변해버렸다. 좌구량은 마지막 남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격전의 와중에 천마궁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충격으로 인해 그와 천마궁 간의 연계가 끊어졌다는 것이다.
마침내 그는 천마궁 안에만 갇혀 있던 처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계에서 돌아온 구중천 강자들은 대라천에 난입한 황천전 강자들을 거뜬히 물리쳤다. 하지만 천마궁에 뚫린 거대한 공간의 틈을 통해 용맥의 힘이 끊임없이 새어나가는 것만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다들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보고 있는데 세존이 종신수에게 물었다.
“어르신, 산 몇 개를 더 가져다가 저 틈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습니까?”
그러나 종신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늦었소. 이제 곧 그가 당도할 거요.”
종신수가 말을 하는 와중에도 천마궁에 뚫린 공간의 틈은 점점 더 벌어져 갔다.
종국에는 문짝 크기만큼 커지더니, 그 너머로 엄청난 위압감까지 느껴지는 게 아닌가.
이에 도존이 맹성하를 보며 비장하게 말했다.
“맹 원장, 잠시 후 성하산인 일맥의 주천성신대진(周天星辰大陣)을 내게 넘겨주시오. 우리 삼청전의 혼원대진(混元大陣)과 융합시켜 내가 한번 운용해보리다.”
맹성하는 주저했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주천성신대진은 성하산인 일맥의 전승 비법으로, 그야말로 마지막 비장의 패였다.
일부 진문이 이미 실전된 지라 손상을 입는 날엔 영구히 복구가 불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건 간에 일단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도존 본인이 진법을 운용하겠노라고 나선 건 좀 의아했다. 물론 맹성하 자신도 무도에 있어 도존만 못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진도(陣道)에 있어서만큼은 나름의 자부심이 컸다.
그러나 맹성하의 의구심이 길어지기도 전에 공간의 틈새로 짙디짙은 황천천 음기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일순간 먹물을 끼얹은 것처럼 하늘이 칠흑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으레 뒤따를 줄 알았던 원귀의 노호성이나 악귀의 포효성 같은 건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세상천지가 숨이 막힐 것 같은 지독한 정적에 휩싸였다.
마치 시간이 멈추고 공간도 정지한 듯했다. 마침내 웬 신형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옷차림과 용모만으로는 천혼과 완전히 판박이였으나, 음산한 황천 혈해를 그대로 옮겨 담은 듯한 눈빛은 더없이 냉혹해 보였다.
그가 대라천 내로 들어서자 그의 발걸음을 따라 황천 혈해가 용솟음치며 백골로 된 길이 쫙 깔렸다. 모든 이의 시선이 그자의 일신에 집중되었다.
이제야 사람들은 천혼과 초휴가 명혼을 언급할 때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며 자신 없어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초휴는 오백년 전의 독고유아가 아니다. 천혼도 비록 첫 등장에서는 대단한 척 위세를 떨었으나, 그 역시 오백년 전 독고유아가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명혼이 등장하자 도존 등은 단번에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의 존재가 수많은 종문의 전적(典籍)마다 예외 없이 등장하곤 했던, 오백년 전에 단신으로 대라천을 뒤엎어 놓다시피 했던 바로 그 인물임을 말이다.
명혼이 그 차가운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도존 등을 지나쳐 천혼에게 꽂혔다.
“나를 막으러 왔는가? 네가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건 잘 알 텐데? 네가 할 줄 아는 건 나도 할 줄 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걸 너도 할 줄 안다는 보장은 없지. 네 꼴을 좀 보아라. 오백년 전 기량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주제에 어떻게 나를 막겠다는 것이냐? 설마 네 주위의 저 같잖은 개미 떼들을 믿고서 나선 거냐?”
이에 천혼이 차갑게 일갈했다.
“내가 너를 상대할 것이다! 바로 내가 말이다!”
천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일신에서 뿜어낸 마기가 먹구름처럼 허공에 응집되었다. 그리고 웅장한 궁전과도 같은 모습을 빚어냈다.
“진(鎭)!”
그가 이 한 글자를 부르짖자 그 거대한 마궁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법칙이 봉쇄되고 마기만 남아 용솟음쳤다.
“진마전(鎭魔殿)인가? 마기로 단독 세상을 만들어 짓누르는 수법이라고 해봤자 영역의 변화를 한 차원 더 높인 것에 불과하지. 내 앞에서는 애들 장난이란 말이다!”
명혼이 허공에 일지를 뻗어 살짝 점 하나를 찍자 그 웅대한 진마전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간 마기가 급속도로 황천의 기운에 동화되어 갔다.
이에 세존이 아미타불을 읊조리며 불멸금신을 시전하자 대일여래 법상이 그의 뒤에 응집되었다. 대일진화가 작열하며 활활 타오르자, 그 모습은 칠흑 같은 밤에 홀로 밝혀진 촛불과도 같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황천의 급물살이 덮쳐와 삽시간에 대일진화를 꺼버렸다. 이어서 선혈로 물든 골창(骨槍) 한 자루가 허공에 떠올랐다.
공간을 뛰어넘고 시간을 정지시키며 날아든 창은 그대로 세존의 가슴을 관통해 그를 땅바닥에 꽂아버렸다.
불종 최강의 연체 신통이라는 불멸금신마저 명혼의 손에 너무도 간단히,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깨진 것이다.
세존의 전신에서 불광이 번뜩였다. 그는 이를 악물며 가슴에서 골창을 뽑아냈다. 그의 생명력이면 심장이 꿰뚫려도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황천의 음기는 이미 가슴의 상처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제 그 깊은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