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89)
1389화 번외편 (1) – 오백년 전
동제 강림군(江臨郡).
강림군은 북연과 동제를 가로지르는 큰 물줄기, 임익강(臨弋江)과 바짝 인접해 있어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임익강 수로는 늘 오가는 상선들로 북적였다.
오늘도 세가와 대파 사람들, 객상들을 실어 나르는 배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 저 멀리 수면 위에서 호방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임익강 줄기는 바다로 흘러들고, 사나이는 태어나 칼과 활을 휘두르지!”
“산에서는 동산(東山) 맹호를 때려잡고, 바다에서는 교룡과 악룡을 무찌르지!”
“서리처럼 흰 칼날과 당겨진 활시위여! 질풍과도 같은 칼의 울림에 구강(九江)이 숨죽이네.”
“감히 묻노니, 천하의 영웅이 누구인가? 오직 나, 구강의 사나이뿐이로세!”
힘찬 노랫소리가 갈수록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칠흑색 거선들이 잇따라 강을 가로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핏빛 도검이 그려진 깃발을 돛에 단 배들이 물결을 가르며 다가오자, 주위의 상선과 객선들은 약속이나 한 듯 물길을 열어주었다.
한 객선에 타고 있던 부잣집 공자님 행색의 젊은이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건 누구의 배입니까? 저렇게나 위세가 당당한 걸 보니 동제 조정의 배인 듯하군요.”
옆에 있던 강호인이 설명했다.
“동제 조정의 배가 아니라, 구강수륙연맹(九江水陸聯盟)의 배라오.”
“구강수륙연맹이요? 제가 강호초출인지라 동제에 그런 무림세력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금시초문이군요.”
젊은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 강호인이 설명을 덧붙였다.
“구강수륙연맹은 무림 종문이 아니오. 까놓고 말하면 수상 도적 떼들이 결성한 조직이외다. 수년 전, 임익강 주류와 아홉 지류의 수적 떼를 모조리 격파하고 규합해 구강수륙연맹을 조직한 자가 있었소. 연맹의 현 총맹주인 육강하가 바로 그 사람이오. 북부 일곱 개 군(郡) 수륙을 통틀어 모든 도적 떼가 그를 우두머리로 떠받들고 있답디다.”
젊은이가 의아하여 물었다.
“얼핏 대단한 것 같긴 하지만, 결국 일개 수적이 아닙니까. 어째서 아무도 저들을 소탕할 생각을 안 하는 거죠? 여러분도 저들을 별로 겁내는 같지는 않고 말이지요.”
강호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그 말처럼 일개 수적이긴 하오만, 임익강은 원래 무법천지나 다름없던 곳이외다. 그런데 그자가 나타난 뒤로 임익강의 크고 작은 수적들의 기강을 잡은 덕에 이나마 질서가 잡힌 거요. 게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정해놓고 원리원칙대로 일을 처리한다오. 평범한 객상들과 백성들의 재물은 털지 않거든. 구강 사나이의 칼과 활은 절대 약자를 겨누지 않는다면서 말이오. 선량한 객상들도 털지 않지. 저들의 말을 빌자면, 남의 재물이라고 해서 무작정 다 쓸어 담아도 되는 건 아니라더군. 가려가며 터는 것도 다 재주다, 부자는 털고 빈자는 도와야 한다, 제 배만 불리고 베풀 줄 모르는 놈들의 재물은 건드려도 된다,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지라 인기가 좋은 편이지.”
“그래서 누굴 털었습니까?”
“주로 자원을 독식하면서 물가를 올려대는 강호 대파들이지.”
젊은 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육 맹주라는 자는 호걸이군요.”
“흥, 누구한테 호걸이라는 건가! 그래 봐야 얼어 죽을 도둑놈인데!”
검은 옷에 검을 든 무사 하나가 그들의 대화의 끼어들더니 말을 이었다.
“육강하는 구강에 재앙을 몰고 온 자요. 뭐 부자를 털어서 빈자를 돕는다고? 하늘을 대신해 정의를 행하기는 개뿔! 죄다 헛소리요. 일개 수적 놈이 하늘을 대신해서 정의를 행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야. 금일 북부 일곱 군의 무림 종문들이 연합하여 그 화근덩어리를 제거하기로 했소!”
그 무렵 검은 이층 배의 망루에서는 육강하가 호피를 깐 의자에 길게 몸을 누인 채, 박하 잎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손바닥에 핏빛이 감도는 보석들을 올려놓고 한 알씩 세는 중이었다.
“한 알, 두 알, 세 알······, 제기랄! 이거 개수가 불길하잖아.”
그는 대단히 값져 보이는 보석 한 알을 냅다 강물에 던져버렸다. 옆에 있던 노인네가 그를 째려보며 따졌다.
“아니 두목! 그게 얼마나 비싼 건지 알고 그럽니까! 한 알이면 대량성에 번듯한 집 한 칸 마련하고도 남을 액순데, 가지기 싫으면 나한테 주면 되지 왜 버린단 말이오?”
그 말에 육강하가 목을 빳빳이 세우며 그를 을러댔다.
“자네가 뭘 안다고 주둥이를 나불거려? 우리처럼 강을 끼고 벌어먹는 사람들은 자나 깨나 용왕님의 은덕에 신경을 쓸 줄 알아야 하는 거다. 그래야 용왕님이 우리를 보호해주신단 말이다!”
이때 저 멀리서 큰 배들이 줄줄이 다가왔다. 배들의 크기는 들쭉날쭉했으나, 선체마다 각 대파의 표지가 새겨져 있었다.
무사들을 가득 태운 배들에서 일제히 구호가 터져 나왔다.
“구강의 수적 놈을 죽이자!”
“구강수륙연맹을 쓸어버리자!”
“육강하를 산 채로 잡아 병신으로 만들어 조리를 돌리자!”
육강하 옆의 노인은 대경실색해서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용왕님은 무슨 보호를 이런 식으로 한답니까?”
‘퉤!’
육강하가 씹고 있던 박하 잎과 함께 말을 독하게 내뱉었다.
“용왕님이 먼바다에 바람이라도 쐬러 가셨나 보지. 어쩌겠냐. 그냥 우리끼리 해결할 수밖에. 형제들, 준비되었나? 모두 나를 따르라!!!”
그러자 맞은편 큰 배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육강하! 근래에 네놈이 구강 수적 떼를 이끌고 저지른 악행이 부지기수다. 오늘에야말로 네놈의 명줄을 끊어줄 테다! 살고 싶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동안 약탈한 물건들을 죄다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강수륙연맹 전원은 여기서 물고기 밥이 될 것이다!”
이에 육강하가 냉소를 터뜨렸다.
“악행이 부지기수라고? 그게 아니고 너희 대파들 이익을 셀 수도 없이 빼앗은 거겠지. 뺏은 물건은 하나도 안 남았다. 모조리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줬단 말이다. 원래 우리 일이라는 게 그렇다고. 수중에 물건이 들어왔으면 웬만해선 하룻밤을 넘기지 않고 처분한단 말이지. 아 참, 그렇지. 용왕님께도 좀 바쳤군그래. 꼭 돌려받고 싶거든 강 속에 뛰어들어 용왕님을 직접 뵙고 아뢔보든가!”
“네 놈이 정녕 죽고 싶어 떼를 쓰는구나! 공격 개시!”
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맹을 결성한 대파들의 배에서 거대한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고 강기가 난무했다.
곧이어 수많은 무사가 개미 떼처럼 새까맣게 수면 위를 가로질러 육강하의 배를 공격했다. 그와 동시에 육강하의 무사들도 우렁찬 노래를 부르며 반격에 나섰다.
“구강의 사나이는 용맹스럽기도 하지. 호랑이도 산 채로 찢어 죽이네.”
“강가에서 나눠 마신 맹약의 피여. 이생의 일월이 내 용기를 비추리라!”
“강호에서 났으면 강호에서 죽는 게지. 의리로 뭉친 동지와 황천으로 돌아가리.”
“이래도 저래도 서로 잊을 수 없으면, 십팔 년 후에나 다시 만나세!”
도검과 권각, 그리고 강기가 뒤섞이고 충돌하며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혼전의 와중에 수면에서 수 장 높이에 달할 강대한 파도가 솟구치더니 육강하가 탄 배를 박살 냈다.
구강수륙연맹 무사들은 하나같이 수전(水戰)에 능했다. 수중 싸움이라면 얼마든지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파 무사들의 수가 워낙 많은지라 결국 수세에 몰리고 말았다.
육강하는 여러 명에게 포위되어 협공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검을 수련한 무사의 장검에 날 선 광망이 감돌더니, 연꽃이 봉오리를 틔우듯 그 끝에서 청색 검강이 터져 나와 육강하를 덮쳤다.
육강하는 장도에서 핏빛 강기를 폭발시켜 이에 맞섰다. 상대의 검격에 실린 힘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본인의 장도도 두 동강이 나버렸다.
이번에는 비단 장포 차림의 중년인이 그에게 일장을 내질렀다. 장력에 건곤의 힘이 더해지며 강대한 기세가 그를 옥죄듯 뒤덮어 왔다. 이에 육강하는 일권으로 강력한 혈기를 터뜨려 상대를 격퇴했다.
이번에는 웬 노인이 가볍게 일지를 찍자, 순식간에 그 역량이 수백 갈래로 진화해 육강하의 전신 대혈 곳곳을 봉쇄해버렸다. 이번에야말로 방법이 없어진 그는 연신 뒷걸음치며 대거 피까지 쏟고 말았다.
이 광경을 뒷짐을 진 채 지켜보던 금포 차림의 중년인이 사형선고라도 내리듯 말했다.
“육강하, 이제 너는 끝이다. 패배를 인정해라. 구강수륙연맹은 이 시간부로 존재하지 않는다.”
육강하가 주위를 둘러보니 수하들은 이미 전멸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자는 없었으나, 모두 겹겹이 포위당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그는 잇새로 피를 뱉으며 치를 떨었다.
“젠장, 나더러 패배를 인정하라고? 개 잡것들아, 꿈 깨라!”
각 대파에서 마지막 일격을 가해 종지부를 찍으려던 순간, 돌연 온 천지에 걸쳐 강대한 압력이 덮쳐왔다. 미친 듯이 출렁이던 수면도 어느샌가 잠잠해졌다.
정신없이 싸워대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공격을 멈추더니 무기를 들었던 팔을 떨구었다. 웬 심상치 않은 인영 하나가 허공을 밟으며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검은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고 검은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얼핏 젊어 보이는 외모였으나 뜻밖에도 깎아지른 곤륜산과 같은 웅대함이 엿보였다. 일신에서는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기질이 느껴졌다.
그는 허공에서 내려와 수면을 밟고 서더니 중인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육강하를 가리키며 냉랭히 말했다.
“나는 독고유아다! 저자는 내가 보호한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온몸에서 기운이 쑥 빠져나갔다. 강호인 중에 누가 그 이름을 모르겠는가?
곤륜마교 교주!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더니, 난립해서 피를 흘리며 싸워대던 마도 종문들을 하루아침에 평정해 통합한 후, 곤륜산 정상에 곤륜마교를 세웠다.
그리고 불과 일 년도 안 걸려서 강호의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전설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그들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금포 중년인이 마른 목구멍 너머로 침을 꿀꺽 삼키더니 경직된 입을 힘들게 열었다.
“독고 교주, 이자는 구강수륙연맹의 맹주로서, 그간 무수한 약탈을 자행했으며······.”
“분명히 말했다. 이자는. 내가. 보호한다.”
사내의 입술이 다시 들썩이려 하자 독고유아가 수면을 박차고 올랐다. 그 순간, 강 전체를 바닥까지 뒤엎을 기세로 백 장도 넘는 크기의 파도가 솟구쳤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 파도는 대파 무사들만 겨냥했을 뿐, 강가로는 단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배가 처참히 부서져 나갔다.
난데없는 물벼락을 맞은 무사들은 묵묵히 입을 다물고 강기슭을 향해 헤엄쳐 달아나기 시작했다.
독고유아가 육강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의 구강수륙연맹은 무너졌다. 네 실력이 저들을 넘어서지 않는 한, 연맹을 재건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와 함께 곤륜으로 가겠다면 너를 강하게 만들어주마.”
육강하가 눈알을 한 번 굴리더니 목에 힘을 주며 물었다.
“당신이 곤륜마교 교주요? 내가 이래봬도 우두머리도 해봤던 거물인데, 곤륜산에 가면 부교주 정도는 시켜줄 거요?”
그 말에 독고유아가 눈썹을 치켜뜨더니 발을 살짝 굴렀다.
육강하는 ‘악’ 소리 지를 새도 없이 그대로 강물에 처박혔다. 아무리 버둥대도 몸은 하염없이 가라앉기만 했다.
배 터지게 물을 실컷 들이키고서야 그의 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숨이 넘어갈세라 헐떡대며 그가 부르짖었다.
“부교주는, 안 해도 됩니다! 헥헥! 하라고 떠밀어도 안 할 거란 말이오! 대신, 곤륜마교에 사대 마존이 있다던데, 다섯 번째 마존이라도 좀 시켜주시면 안 되겠소?”
독고유아가 다시 한 발을 내딛자 육강하는 또 강물에 빠져 물로 배를 채워야 했다. 다시 떠올라 기어 나온 그는, 먹은 물을 연신 토하면서 미친 듯이 고개를 저어댔다.
“캑캑! 마존도 안 하겠소. 그냥 교주님이 시켜주는 것만 하겠소이다. 그냥 뭐든 시켜만 주시구려!”
그제야 독고유아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를 짐짝처럼 집어 들고 떠나려 했다.
이에 육강하가 또 질문을 던졌다.
“교주님, 제 수하들도 곤륜마교에 데려가면 안 될까요?”
“곤륜산을 오를 수만 있다면 적어도 폐물은 아닐 테지.”
그의 대답에 육강하 자기 가슴팍을 팡팡 치며 호기롭게 말했다.
“제 밑에는 진짜 사나이들밖에 없소이다. 폐물 같은 건 한 명도 없다니까요!”
독고유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육강하가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보따리 챙겨라! 수적 노릇은 오늘부로 끝이다! 이제 산으로 올라간다! 곤륜산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