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관서형당 지부
울지는 쫓겨나다시피 서재를 나가면서도 매경령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모님, 감사합니다.”
매경령을 대하는 울지의 태도에서 두려움이 묻어났다. 그는 자신의 사모인 이 여인을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울지가 사라지자 관사우는 매경령의 손을 어루만지며 탄식을 내뱉었다.
“저 아이가 갈수록 사심을 보이니 큰일이오. 내 손으로 키운 제자 녀석마저도 사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니.”
그러자 매경령이 그의 목을 껴안으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사람이란 누구나 욕망이 있는 법이니까요. 아무리 억누르고 싶어도 안 되는 것들이 대인께도 있지 않습니까. 울지는 젊은 탓에 안목이 더 좁은 게지요. 관중형당은 대인의 손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초씨 가문의 후예가 아무리 기를 쓴다 한들, 대인에게는 어림없죠. 설령 당주 자리를 초원승에게 넘겨 주셔도, 그에게는 받을 능력조차 없는걸요. 울지가 쓸데없는 걱정만 앞서서 저러지요.”
그녀는 책상 위에 가득 쌓인 공문 더미를 보더니 다정히 말했다.
“이것들은 내일 처리하시는 게 좋겠어요. 소첩이 대인을 위해 닭국을 고아두었으니, 그걸로 요기하시고 일찍 쉬세요.”
“역시 나를 생각 해주는 건 부인밖에 없구려. 좋소. 까짓것 부인이 내일 하라니 내일 하지, 뭐.”
관사우가 매경령의 손을 어루만지며 활짝 웃었다.
지금 그의 모습을 누가 봤더라면 놀라 까무러쳤을 것이다. 평소 무사들 앞에서는 웃는 낯을 보이는 건 고사하고, 감정 자체를 거의 내비치지 않는 그였다.
게다가 자기관리는 얼마나 철저한지, 매일 수련과 공무 처리 시간을 스스로 정해놓고 엄격히 지켰다. 시간을 초과했으면 했지, 절대로 부족하게 하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 방금처럼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룬다니. 평소 그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튿날 아침, 울지는 일찍부터 서둘러 초휴와 관서로 떠날 채비를 했다.
이때 울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제와 마찬가지로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관중 땅이 워낙 광대하니, 북연의 연동 지역보다도 넓은 듯했다. 관중을 떠나 관서에 당도하기까지 장장 일곱 날이나 걸렸다.
관서형당(關西刑堂)은 구화성(九華城)이라는 성 안에 있었다. 구화성은 규모는 작았으나 번화하기로는 관중 못지않았다. 관서 지역이 서초에 근접해 있는지라, 서초를 오가는 장사치들이 이곳에서 전을 벌이고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화성에 들어서서 받는 첫 느낌은 왁자지껄하니 활기 넘치는 분위기라는 것이었다.
울지가 말했다.
“이곳에는 서초를 오가는 상인들이 워낙 많다오. 해서 타지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서초의 특산물도 많이 접할 수 있지. 초 형도 나중에 시간 나면 한번 둘러보시구려.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미리 관서 장형관이신 위구단 대인께 전갈을 넣어두었소. 아마 지금쯤 관서형당에서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실 게요. 곧장 그곳으로 갑시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구경을 미룬 채, 곧장 관서형당 지부로 향했다.
관서형당은 관중형당을 한 단계 축소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다만 편액이 일반적인 주석 조판으로 이루어졌고, ‘관서형당 지부’라는 여섯 글자가 씌어 있는 게 달랐다. 두 사람이 형당 내로 들어서자 강호 포두 여러 명이 입구에서부터 그들을 맞이했다. 그중 한 명이 인사를 건넸다.
“울지 대인 오셨습니까. 위 대인께서 진작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울지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은 후, 초휴를 데리고 대청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여섯 사람이 있었다. 그중 상석에 좌정해 있는 검은 옷차림의 깡마른 백발 노인네가 유독 눈에 띄었다. 허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상대를 압도하는 예리한 눈빛과 기세가 두드러졌다.
초휴의 눈길은 금색 용 문양이 조각된 철담석(鐵膽石) 두 개를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으로 향했다. 오른손의 손가락이 네 개뿐인 걸 보니, ‘구지추혼(九指追魂)’ 위구단(魏九端)임이 분명했다. 초휴의 직속 상관이자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른 초절정 고수. 다만 그에게서는 천죄 타주와 같은 강한 기세는 풍기지 않았다.
위구단의 아래쪽에는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가 거느리고 있는 순찰사들이었다. 그들 중 더러는 삼화취정의 경지에, 더러는 오기조원의 경지에 이른 듯 보였다. 초휴가 들어선 순간, 여섯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집중되었다.
“위 대인을 뵙습니다.”
울지가 위구단을 향해 예를 올리자, 그는 웃음으로 인사를 받았다.
“울지, 자네가 왔구먼. 자자, 우리 사이에 격식은 무슨. 형당 본부에서 보내온 전갈은 이미 받았다네.”
위구단이 실력으로 보나 지위로 보나 울지보다 한참 위였지만 그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관중형당 전체를 통틀어 울지가 관사우의 애제자인 걸 모르는 이가 어디 있을까. 애제자도 그냥 애제자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몸소 키우고 가르친 아들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물론 관중형당의 차기 당주가 반드시 전임 당주의 직계 제자 중에서 나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울지가 형당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양성해온 인물이니, 나름 유력한 후보군에 속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이래저래 위구단이 그를 정중히 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했다.
울지가 옆의 초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이 초휴입니다. 사부님께서 위 대인 밑의 순찰사로 보내셨습니다. 초원승 대협의 강력한 천거도 있었고요. 초 대협의 먼 친척뻘 되는 사람입니다. 마침 위 대인 휘하의 순찰사 한 명이 절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본부에서 충원하려던 참에 적임자가 나타난 셈이지요.”
이번엔 초휴가 나서 인사를 올렸다.
“소인 초휴가 위 대인을 뵙습니다.”
그 순간 여섯 사람의 시선이 초휴를 향했다.
신참의 능력을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위에서 낙점된 이번 인사에 대해서, 위구단도 별다르게 생각지 않았다. 상부에서 결원을 보충해준다니 잘된 일이라고만 여겼다. 최근 몇 년 사이 관서형당의 실력이 날로 약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순찰사도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사대 형당 가운데 최강 실력을 자랑하는 관동형당이 순찰사 열여섯 명을 보유한 것을 감안했을 때, 사실 이는 초라한 숫자였다.
하지만 간만에 영입한 신참이 고작 외강경이라는 말에 위구단은 불만을 참기 힘들었다. 외강경이 순찰사를 맡은 경우가 대체 몇 년 만의 일인지 까마득했다.
관서형당의 실력이 약하기는 하나, 이 안에서만 외강경 수십 명쯤 골라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위구단의 휘하에는 순찰사가 족히 수십 명은 되는 셈이었다.
다만 초휴가 초원승의 천거를 받은 데다, 초씨 가문의 먼 친척뻘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화가 반 푼이나마 풀리는 듯했다. 그래서 더는 까탈스럽게 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초원승이 관중형당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인지 그가 모를 까닭이 없었다. 지긋한 그의 나이로만 봐도 초광가가 당주로 있던 시절을 본인도 응당 거쳤을 터.
초원승이 사적으로 직접 찾아와 초휴를 휘하의 순찰사로 받아달라는 부탁을 했더라면 그도 약간은 난감했을 터였다. 하지만 당주의 명령까지 떨어진 이상, 그로서는 고민하고 자시고 할 명분도 없었다. 해서 위구단이 초휴에게 말했다.
“좋다. 초 대협이 천거한 자라면 분명 뛰어난 인재일 테지. 옆으로 가서 앉게.”
하지만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한 위구단과는 달리, 나머지 다섯 사람은 여전히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들은 관중형당에서만 잔뼈가 굵어 온 고수들이었다. 일개 하급 포졸부터 시작하여 강호 포두로 승진했고, 부단히 실력과 공적을 쌓은 끝에, 오늘날 행세깨나 하는 순찰사의 위치에까지 올랐다.
그렇다면 초휴는 무슨 명분으로 단번에 순찰사가 되었다는 말인가.
외강경에 불과한 그의 실력은 그들이 지금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강호 포두들 수준과 같다. 감히 강호 포두의 실력으로 자신들과 같은 위치에서 거들먹거리겠다니 대체 뭘 믿는 걸까.
강호에서는 모든 게 실력의 고하에 따라 결정된다. 청룡회에서도 그랬다.
초휴가 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이기 전까진, 다들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물론 관중형당은 청룡회보다 여러 면에서 상황이 훨씬 더 복합적이긴 했다. 따라서 이곳에서만큼은 실력은 물론, 자격요건도 따라줘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초휴는 실력도 자격요건도 미달이었다. 초원승의 천거? 먼 친척? 그야말로 위에서 입김을 실어 내리꽂은 게 아니냔 말이다. 그러니 어느 누가 달가워할까. 하지만 정작 초휴는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찜찜한 부분이 있다면 방금 울지가 했던 말 정도라고나 할까.
울지는 초휴가 초원승과의 사적인 관계에 힘입어 관중형당에 들어온 것을 유난히 강조했다. 남들이 이 사실을 모를까 봐 참고하라고 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었던 걸까. 워낙 속을 알기 어려운 사람이라, 초휴는 그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이윽고 울지가 임명장을 꺼내서 위구단에게 건넸다.
“위 대인, 임명장과 사람을 인계했으니, 제 소임은 끝난 셈입니다. 이만 본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주께서 그 많은 공무를 처리하시려면, 자네가 옆에 있어야 하니 어서 가봐야겠지. 바쁜 자네를 더 붙잡을 수는 없지. 당주 대인께 안부를 전해 주시게나.”
한 차례 인사가 오간 후, 울지가 미소를 지으며 물러갔다.
울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위구단이 초휴에게 근엄히 말했다.
“초휴, 당주께서 그대를 순찰사로 임명하신 걸 보니, 매우 깊은 신뢰를 받는 모양이로군. 앞으로 당주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처신해야 할 것이야. 내 휘하에 있던 순찰사 하나가 예기치 못하게 숨졌네. 죽은 전임자가 맡았던 수하들과 관할 지역을 오늘부로 자네가 인수하도록 하게. 그리고 꼭 명심할 것이 있네. 관중형당에는 관중형당만의 규정이 있어. ‘음으로 양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말일세. 만에 하나 규정을 어기는 날엔, 제아무리 초 대협의 천거로 들어온 사람이라 해도 가차 없이 엄벌할 것이야.”
위구단의 마지막 두어 마디는 하나 마나 한 말이었다. 모두에게 주지된 공식적인 규정을 어기는 자라면 위구단 이전에 관사우부터 엄벌하겠노라고 나설 테니까. 그렇다면 드러나지 않은 암묵적인 규정을 어겼을 때는 누가 처벌에 나설 것인가.
어쨌거나 초휴는 지금 막 들어온 입장이니, 직속 상관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그런 줄 알아야 했다. 해서 아무런 반박 없이, 그저 분부를 받들겠노라고만 대답했다.
초휴가 고분고분하게 나오자, 위구단도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 위구단은 초휴가 초원승이라는 뒷배를 믿고, 자기 본분도 모르고 함부로 굴지 않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가만 보니 주제 파악은 잘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관중형당 내에서 초원승의 위상은 확실히 높았다. 단지 초광가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뭇사람들은 그의 체면을 세워주고 기꺼이 예우해주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관중형당의 실권에 손을 대려 하면 얘기는 달라질 터였다. 특히 위구단과 같이 기득권이 많은 실권자의 처지에서는 절대 좋게 생각할 리가 없었다.
위구단이 나머지 다섯 순찰사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초휴는 그대들의 동료다. 특히 위한산(衛寒山)과 강도연(姜濤然), 두 사람은 관할 구역이 초휴가 맡은 지역과 인접해 있으니 서로 잘 협조하도록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