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텃세
오사평 등은 신임 순찰사인 초휴가 꽤 젊은 것을 보고도, 그저 그러려니 했다. 어기오중(御氣五重)에서 내강경과 외강경을 한 단계로 겪고, 삼화취정(또는 취삼화)과 오기조원(또는 응오기)을 또 한 단계로 겪어낸 다음, 마지막으로 천인합일의 경지를 겪게 된다.
즉, 경지를 크게 나눠 어기오중을 연체삼경(쉬체경·응혈경·선천경)에 이은 또 하나의 단독 경지로 놓고 볼 때, 이는 세 가지의 단계와 다섯 가지의 세부 경지로 이루어진 셈이다.
무사가 삼화취정의 경지에 이르면, 체내 *정기신(精氣神)의 합일이 극치에 달해 수명이 크게 연장된다. 노화도 훨씬 늦춰지면서, 얼굴도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기 마련이다.
예컨대 나이와 경지가 같은 두 사람이 있다고 치자. 외모로 볼 때, 한 사람은 청년이고 다른 이는 중년의 나이로 보인다. 이런 경우는 두 사람이 삼화취정의 경지에 이른 시기가 서로 다른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젊어 보일수록 그만큼 젊은 나이에 삼화취정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초휴를 처음 보고는, 삼화취정에 빨리 이른 덕에 동안을 유지하는 거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말에서 내린 후, 가까이서 기세를 느껴보니 삼화취정은 개뿔, 상대는 삼화취정의 근처에도 못간 자가 아닌가 말이다.
형당 본부에 있다는 오사평의 절친은 신임 순찰사가 고위층의 배경으로 임명됐음을 알려줬다. 실력이 겨우 외강경이라는 결정적인 정보는 쏙 빼놓은 채.
이 사실을 확인한 순간, 오사평은 속이 부글부글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아까 두광중이 지적하길, 아무리 순찰사 자리가 비었어도 외강경인 오사평에게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상부에서 외강경 순찰사를 보내왔다. 형당 내 경험도 전혀 없고, 자격요건에도 못 미치는 자를 ‘관중대협’ 초원승의 천거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오사평은 이를 악물며 속으로 외쳤다.
‘불공평해! 절대로 승복할 수 없어!’
자기를 쳐다보는 네 사람이 충격받은 표정을 짓자, 초휴도 대충 그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여러분, 무슨 문제라도 있소?”
오사평은 애써 뒤틀리는 속마음을 누르며 공손히 아뢰었다.
“문제가 있을 리가요. 대인, 안으로 드시지요.”
초휴가 오사평의 안내를 받으며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는 자연스레 상석을 찾아 앉은 다음, 그들에게 자신의 임명장을 내보이며 말했다.
“나는 초휴라고 하오. 오늘부로 이곳 순찰사로 임명되었소. 이건 당주님과 위 대인이 날인 하신 임명장이니 한번들씩 보시구려.”
“허허, 설마 임명장이 가짜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건 확인할 것도 없습니다. 소인 오사평, 대인께 인사드립니다.”
오사평이 벌떡 일어나 넙죽 인사를 올리자 나머지 세 사람도 다급히 따라서 절을 했다.
“소인 두광중, 유성례, 진방, 대인께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너무 예를 차릴 필요는 없소. 나는 이곳에 방금 도착한 지라 뭘 아는 게 있어야지요. 아무래도 여기 오래 계신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야 할거요.”
생각보다 겸손한 초휴의 언사에 다들 눈짓을 주고받았다.
속단은 이르지만, 이 신임 순찰사가 젊은 혈기로 다짜고짜 아랫사람을 찍어누를 위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일단 운을 떼어 공기를 살핀 후, 초휴가 말을 이었다.
“여기가 처음이라, 이곳 관할 지역에 대한 정보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요. 듣자니 순찰사의 주된 소임이 관할 지역의 일상적인 동태를 살피는 거라던데, 요사이 별다른 조짐은 없었소?”
오사평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대답했다.
“아주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별다른 조짐도 전혀 없었고요.”
“한 달 동안이나 순찰사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그럴 리가 있나? 인근 도시만도 여럿이고, 이곳이 유일한 통상로인 셈인데, 어떻게 아무런 탈도 없을 수가 있지?”
거듭 묻는 초휴의 눈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오사평은 여전히 뺀질거리며 대꾸했다.
“없었으니까 없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요. 그리고 이건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설마 대인께선 우리 관할지에 탈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시는 겝니까?”
두광중 등 세 사람이 화들짝 놀라 오사평을 쳐다봤다.
아까만 해도 신임 순찰사한테 대놓고 텃세는 부리지 말자던 그였다. 그런데 지금 이 수작은 계급장 떼고 순찰사와 맞먹겠다는 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들은 오사평의 속내가 헷갈렸다.
하지만 정작 그의 속내는 단순했다.
신임 순찰사가 삼화취정의 고수라면 당연히 입 닥치고 조용히 있을 생각이었다. 뒤에서 장난질 정도는 칠지 몰라도. 하지만 상대는 고작 외강경의 실력이 아닌가.
오사평은 이 사실에 불만이 부쩍 커졌고, 세게 나가도 괜찮을 거라는 호승심이 일어났다. 오사평의 눈에 비친 초휴는 그저 초원승이라는 배경으로 출세한 풋내기에 불과했다. 때문에 오사평은 조금도 두렵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초원승이 형당 내에서 입지가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그의 위상이 형당의 실무에 관여할 수 없는 허울뿐인 것도 분명했다. 그 반쪽짜리 위상으로 위세를 부리려다 자칫 형당의 규정이라도 건드리는 날엔 그 파장이 적지 않을 터였다. 그 사실을 초원승 본인이라고 모를 리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천거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꽂아는 주되, 그걸로 손 털어버리고 더는 관여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출세시켜 준 자가 형당에서 지내다가 무슨 억울한 일이라도 당하면 초원승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부탁할 것이 아닌가.
인정상 한 번쯤이야 나서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종국에 가서 관중형당이 과연 누구의 것으로 보이겠는가. 초원승? 아니면 관사우?
초원승의 사람됨이 단순하긴 해도, 언제 치고 빠져야 할지 정도는 알았다. 이에 초휴도 초원승의 지속적인 보살핌을 기대할 수는 없을 터였다. 초원승이라는 후광만 벗겨내고 나면, 오사평은 그를 충분히 찍어누를 자신이 있었다.
초휴는 잠시 오사평을 바라보다가 두광중 등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대들도 그간 우리 관할지가 무탈하였다고 생각하오?”
세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넷은 서로의 약점을 쥔 운명 공동체라는 데 동의한 상태였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기로 말이다.
입을 맞춘듯한 이들의 모습에 초휴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처럼 수하들이 대동단결한 모습을 보이는 건, 상급자로서는 반가운 현상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똘똘 뭉쳐서 윗전을 기만하고 아름답지 못한 수작을 부리기 쉽기 때문이다.
지난날 천죄 타주도 초휴와 귀수왕 등이 너무 친해지는 걸 경계했다. 해서 잊을만하면 한 번씩 이상한 말로 이간질을 시도하는 걸, 초휴도 여러 번 겪었다. 물론 타주의 수단이 고명하지 못한 탓에, 번번이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말이다.
명색이 눈치로 먹고사는 살수들인데, 그들이 타주의 뻔한 속내를 간파하지 못할 리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견제가 들어올 때마다, 동료들 사이에 없던 거리감이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세상사란 오묘해서 초휴도 타주와 같은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런데 청룡회에서와는 달리, 이번은 수하들이 여간내기가 아닌 듯 보였다. 뒤에서 일을 꾸미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단합된 모습으로 하극상을 시도한다니 원래 관중형당 강호 포두의 간덩이는 이렇게 컸다는 건가.
초휴는 욱하는 심정을 누르며 태연히 말했다.
“뭐 탈이 없었다면야 당연히 좋은 일이지.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내가 편할 수 있을 테니까. 좋소. 이만들 나가보시게.”
초휴가 순순히 이렇게 나오자 오사평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하긴 이런 결말도 오사평이 예상했던 그림 중 하나이긴 했다.
첫 번째 그림은 초휴가 벌컥 화를 내며 자신들을 꾸짖을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그리되면 자기 위신만 떨어질 터였다. 오사평 등은 공식적으로 갖춰야 할 예는 다 갖췄고, 딱히 트집 잡힐 만한 짓도 하지 않았다. 무슨 명분으로 화를 낸단 말인가. 그들은 그저 묻는 말에 대답했을 뿐인데.
두 번째 그림은 초휴가 계급의 우위를 내세워 그들을 압박할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컸다. 그들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외강경 강호 포두들이다. 초휴가 사적으로라도 함부로 대할 상대가 결코 아닌 셈이다.
적어도 초휴에게는 직접 그리할 권한이 없었다. 규정상 일단 관중형당 본부에 징계를 처할 사안을 보고하고, 그것을 입증할 증거까지 제시한 다음에야 그들에게 손을 댈 수 있었다.
지금처럼 문제 삼을 게 없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설령 그들이 초휴에게 대놓고 쌍욕을 퍼부었다 해도 죽을죄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초휴가 아닌 다른 상관 밑으로 소속만 바뀌는 정도랄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손해날 것도 없었다.
떠날 때도 챙겨갈 만한 물건은 다 챙겨갈 것이고, 새로운 곳에 가서도 강호 포두인 건 변함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정작 욕먹은 당사자인 초휴에게는 수하 관리도 제대로 못 한 무능력자 딱지가 붙고, 위 대인에게도 나쁜 인상을 남기게 될 터였다. 그러니 초휴가 제 무덤을 팔 리는 만무했다.
마지막 세 번째 그림이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점쳐졌던 상황이기도 했다.
순찰사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참고 넘어가는 것.
이윽고 당구 밖으로 나온 후, 두광중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우리 오늘 너무 과했던 것 아니야?”
오사평이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과하긴 뭐가 과해? 우린 그저 젊은 순찰사 양반이 빨리 현실을 직시하게 도와줬을 뿐이야. 여기서 누가 실질적인 두목인지 알려준 것뿐이라고. 내가 보기에는 앞으로도 우릴 난처하게 만들 양반 같지는 않아. 일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고, 그자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 하지, 뭐. 만약 앞뒤 구별 못 하고 나대려는 기미가 보이면, 그때는 쓴맛을 보여주면 되는 거고. 여기는 네놈 따위가 함부로 거들먹거릴 곳이 아니라는 걸 제대로 교육해 주는 거지. 오늘 그자의 태도를 당신들도 봤잖아? 바보 머저리는 아니야. 눈치껏 참을 줄도 알더라고. 그런데 뭐가 걱정이야?”
그의 말에 두광중 등이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초휴를 잘 몰랐다. 물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초휴도 참을 줄 알았다. 하지만 ‘참을 인(忍)’에는 ‘칼 도(刀)’가 들어있다. 그가 한 번씩 참을 때마다 그 칼의 예리함과 위력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지금의 그들이 알 리는 없었다.
그날 밤, 초휴는 아쉬운 대로 순찰사 당구 내에 처소를 마련했다.
물론 외부에 사택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관중형당에서는 장형관과 순찰사들이 반드시 당구 내에서만 묵어야 한다는 제한을 두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당직을 서게 된 응혈경 포졸이 처소로 초휴를 안내했다. 그는 당장 필요한 세간살이들을 갖춰놓은 다음, 서둘러 처소에서 나갈 생각이었다.
다른 때라면 일개 포졸이 신임 순찰사의 부임 첫날에 시중을 든다는 건 윗전에 줄을 댈 좋은 기회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순찰사 당구가 그리 넓은 곳도 아니고, 포졸들도 연신 드나들었다. 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신임 순찰사가 연줄로 내려꽂힌 외강경이고, 관중형당 내에 아무런 이력도 없다는 사실을 열심히 서로에게 알렸다.
심지어 순찰사가 첫날부터 수하들을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본인이 장악하긴커녕, 도리어 오사평을 비롯한 상급 포두들한테 휘어 잡혔다는 말까지 돌았다.
물론 그렇다고 자기들 같은 하급 포졸들까지 순찰사 대인을 막 대해도 되는 건 아니니,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여하튼 기본적인 예를 갖춰서 낭패 볼 일은 없을 터.
당직 포졸은 순찰사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되, 말은 최대한 섞지 않으려 노력했다. 섣불리 아무 말이나 섞었다가 오사평 등에게 책 잡힐 일이라도 생길까 두려워서였다.
하찮은 일개 포졸이 이런 복잡한 권력 구조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단 하나.
어느 쪽 미움도 사지 않고, 어느 쪽에도 빌붙지 않는 것이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라야 말이지.
하지만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가 처소에서 막 나가려는데 등 뒤에서 염라대왕의 사형선고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급하게 나갈 것 없다. 너한테 꼭 물어볼 말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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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신(精氣神)
정(精): 만물 구성상의 물질적 요소.
기(氣): 만물 구성상의 동력적 요소.
신(神): 만물 구성상의 정신적 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