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실력으로 승부하다
초휴의 대응은 빨랐다.
홍수도의 칼날에서 핏빛 혈련신강이 무서운 속도로 피어오르더니, 위한산의 차가운 도강과 사정없이 충돌했다.
두 도강은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허공에서 흩어져버렸다.
엇비슷한 실력으로 비긴 셈이었다.
위한산은 당혹감과 놀라움 때문에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는 지금의 일격에 전력을 다하진 않았다. 어쨌든 상대도 엄연한 순찰사가 아닌가. 초휴를 혼내주는 건 몰라도 다들 보는 앞에서 죽이는 건 곤란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자신의 실력은 엄연히 초휴보다 한 단계 위였다. 한 경지가 아닌 무려 한 단계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짙은 혈기와 살기를 머금은 강기라니.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위력도 엄청나서 단 한 방에 자신의 도강을 무력화시킬 정도라니.
하지만 위한산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에 도세를 바꿔 서슬 퍼런 한기를 자신의 칼날에 응집시켰다.
그 무궁무진한 한기에 힘입어 도강이 수 장이나 되는 거리를 뻗어 나갔다. 위한산은 정기신 합일을 이룬 삼화취정 경지의 고수이니, 무엇이 되었건 초휴를 월등히 앞서는 게 당연했다.
거센 북풍이 몰아치는 듯한 위한산의 도세가 포효하며, 지나는 곳마다 여지없이 살얼음이 응결된 모습이 남았다.
그러자 초휴의 홍수도에 검은 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아비도삼도가 지옥에서 실어낸 극악한 한기가 위한산의 한빙강기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위한신은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
본인의 무공도 한기에 근간을 두었지만, 그런 그조차도 이런 한기는 난생처음이었다.
관중형당의 순찰사로 일하는 오랜 기간, 그는 별의별 마도 흉수들을 겪어 왔다. 따라서 마도 무공에 대해서라면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마공도 방금 초휴의 일도만큼 사악하고······,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그렇다!
그건 공포, 그 자체의 칼날이었다.
아비도삼도는 단칼에 상대의 도강을 소멸시켰다. 게다가 그 지독한 한기는 위한산의 간담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하지만 초휴는 멈추기는커녕 되레 일신의 검은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두 번째 아비도삼도를 발출할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아까 위한산도 말했듯이, 관중형당 안팎을 막론하고 무사 된 자는 실력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대외적으로야 초휴의 직급이 여타의 관서 순찰사들과 동급일진 몰라도, 저들은 그를 격이 같은 존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만약 초휴가 했던 짓을 다른 순찰사가 그대로 했다면 이처럼 쥐잡듯 몰아세우는 게 가능했을까. 그건 대놓고 싸우자는 의미와 같은 소리니, 우회적으로 상대방의 속내를 떠보는 정도로 끝내고 말았을 터였다.
결과적으로 위한산은 초휴를 잘못 건드린 셈이었다.
그러나 정작 야단맞는 초휴는 추호도 상대를 봐줄 의사가 없었다.
말끝마다 실력을 운운했으니, 어디 내 실력을 맛보랄 수밖에!
방심한 채 걸었던 시비에, 역으로 초휴의 칼날에 호되게 당하고 만 위한산은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었다.
위한산은 사실은 그냥 버릇이나 고쳐줄 생각으로 왔다. 그런데 상대가 저리도 강경한 태도를 보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더욱이 실력도 자기가 짐작했던 수준을 훨씬 능가하지 않는가.
고작 외강경이 자신을 상대로 박빙의 승부를 펼치다니. 과연 용호방의 준걸이란 꼬리표가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외강경은 잘나 봐야 외강경일 뿐이다. 외강경과 삼화취정 간의 엄청난 간극은 쉽사리 메워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위한산이 다시금 수중의 장도를 힘껏 쥐자 온몸의 강기가 장도에 응집되었다. 그 음산한 강기가 오묘한 변화를 일으키더니 수정으로 응집되어 장도 주위를 마치 눈꽃처럼 선회하기 시작했다.
지난날 위한산은 저 멀리 극북지방 설산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눈사태를 겪은 후 무도의 진의를 깨달았고, 극북표설성의 무사들과도 일전을 치렀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빙리참(冰離斬)’ 초식을 창안하여 비장의 무기로 숨겨두었는데, 지금 꺼내 든 것이다.
상대가 웬만했으면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빙진기를 한곳에 응집시키면 순간적으로 눈사태를 방불케 할 충격파가 터져 나온다. 위력은 막강할지 몰라도 자신에게 미칠 부정적 파장도 클 터였다.
해서 평소에는 섣불리 쓰지 않던 초식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가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데.
상대가 외강경이라고 얕보며 빙리참을 아껴두었다가는 정말로 큰 낭패를 당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두 무사가 동시에 자신의 모든 걸 실어낸 일격을 토해내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인영 하나가 산들바람과도 같은 강기를 일으켜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완화시켰다.
인영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인주부(麟州府) 순찰사 강도연이었다. 인주부도 상주부와 마찬가지로 건주부와 인접 거리에 있었다.
강도연이 양쪽에 번갈아 공수(拱手, 두 손을 맞잡고 팔을 가슴 위로 올려 경의나 존중을 표하는 인사법)를 취한 후,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두 분, 동료끼리 왜들 이러시오. 말로 해결 못 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관중형당 사람끼리 싸워봤자 외부의 구경꾼들이나 신날 뿐이니. 일단 진정들 하시구려.”
강도연이 끼어든 이상, 초휴와 위한산은 싸움을 강행할 명분이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둘 다 차가운 코웃음과 함께 병기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웃음기를 머금은 강도연의 얼굴을 바라보는 초휴의 눈빛은 여전히 예사롭지 않았다.
인주성과 건주성 간의 거리는 별로 멀지 않다.
이를 감안할 때, 강도연 역시 맘 놓을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지금 온 것도 우연일 리가 없었다. 분명 뭔가를 듣고 왔을 터.
싸움에 끼어든 시점만 봐도 이 얼마나 절묘한가.
더 이르지도 않고 더 늦지도 않은 시간에, 그것도 결정적인 순간을 노려 혜성처럼 나타나서 중재인 노릇을 자처했다. 그도 분명 꼬불쳐 둔 속내가 있는 게 뻔했다.
초휴의 실력이 생각보다 강했으니 망정이지, 실력이 달렸더라면 아마도 그가 중상 입기를 기다렸다가 뒤늦게 구세주처럼 나타날 심산이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싸움이 더 격화되지 않는다면 초휴가 얼마나 고마워하겠는가. 강도연의 속셈은 초휴의 눈에 너무도 뻔히 보였다.
위한산이 초휴를 노려보며 내뱉듯이 말했다.
“초휴! 네놈이 함부로 설쳐대며, 관중형당의 규정을 어긴 건 엄연한 사실이다. 내 결코 이 일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야. 위구단 대인께 보고드리고, 그분께 처결을 맡길 테니 두고 봐라. 네깟 놈이 순찰사 자리에 있으면 분명 관서지부에 해악을 끼칠 것이니!”
위한산은 말을 마치자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
그렇게 위한산이 사라지자, 강도연이 초휴를 향해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초 형, 자네가 이번에 사고를 크게 친 듯하네. 순찰사들 간의 다툼은 웬만하면 장형관 대인한테까지 올라가지 않네만, 이번엔 위한산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군. 위구단 대인께 고해바칠 것 같단 말이지.”
사실 초휴가 강가를 쓸어버린 일로 관중형당과 종문세가들 사이에 틈이 벌어져도, 강도연 자신에게는 별 영향이 없을 터였다. 어쨌거나 순찰사마다 한밑천 챙기는 자기만의 비결은 다 있었다.
융통성이 좋은 강도연은 성격 탓인지, 더욱 은밀한 수완을 발휘했다. 겉으로는 관할 주부 내 무림세력들의 뇌물상납만 챙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암암리에 어느 작은 세가의 뒤를 봐주며 밀거래를 일삼고 있었다. 물론 거기서 벌어들인 수익금은 전부 그의 차지였다. 이처럼 고정수입이 확보되어 있으니, 다른 종문세가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못 느꼈다.
사실 강도연이 여기 나타난 것도, 혼란한 틈을 타 한몫 챙길 심산에서였다. 위한산이 초휴를 쳐낸다면 강도연 역시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될 건주부에 구미가 당겼다.
반대로 초휴가 위한산에게 반격을 가하면, 그걸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할 터였다. 개인적으로 위한산과 사이가 별로인 데다 상주부 일부 지역이 인주부과 접경하고 있는 탓에, 평소 양측이 잦은 마찰을 빚어온 것도 이유가 컸다.
초휴가 말했다.
“장형관 대인께는 내가 다 해명할 거요. 위한산 그자가 화가 났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오. 같은 순찰사끼리 나를 잡아먹기라도 하겠소?”
“그럼 됐소. 나야 자네가 이일을 어찌 처리하는지 구경이나 함세.”
강도연은 묘한 미소를 띠더니,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회의실 밖에 있던 두광중이 시름 깊은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대인, 위한산이 이 일을 장형관 대인께 고하면 우린 어찌합니까. 골치 아프게 될 텐데요.”
순찰사는 어느 한 지역을 순찰하는 권력을 가진 자다. 말 그대로 순찰하는 자일 뿐, 관리하는 자는 따로 있는 셈이다. 따라서 초휴가 상위 관리자인 위구단의 뜻에 반하면서까지 이런 월권행위를 벌인 것에 대해, 불벼락이 안 떨어질 거란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초휴가 물었다.
“강가에서 노획한 물건들의 절반을 떼어놓기로 했던 거 기억하나?”
“물론이죠. 하지만 그건 관중형당에 바치기로 했던 게 아닙니까?”
“아니, 위구단 대인께 바칠 거야. 이 관서 땅에서야 위 대인이 곧 관중형당이니까.”
두광중이 처음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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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한산이 떠나기 전 초휴에게 퍼부었던 말은 괜히 을러 본 소리가 아니었다. 초휴 앞에서 위신이 땅에 떨어졌고, 실력으로 그를 제압하는 데도 실패했다. 그러니 이 사안을 위구단에게 가져가서 앙갚음하는 수밖에.
얼핏 고자질하는 꼴로 보였으나 그래도 이 방법이 제일 효과가 빨랐다. 물론 초휴가 초원승의 천거로 들어왔으나, 순찰사 일을 제대로 못 해낸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따라서 초휴가 처벌을 받더라도, 이는 위구단이 초원승에게 송구할 일은 아닌 셈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 형당 관서지부에서 초휴를 불러들였다. 명목상으로는 의논할 일이 있다고 했으나, 사실은 강가의 일로 문책할 작정인 게 뻔했다.
초휴가 관서지부에 당도하니, 위구단을 비롯해 다섯 명의 순찰사들도 자리해 있었다.
그들 중 위한산이 유난히도 악의가 가득한 얼굴로 초휴를 대했다. 나머지 네 명도 이상야릇한 눈초리로 그를 훑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