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무법천하
일사천리로 내딛는 초휴의 행보에 두광중 등은 숨이 턱에 걸릴 것 같았다.
그러나 청룡회 출신 무사가 사람 죽이는 수완을 방금 본지라, 감히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상관도 청룡회 출신이 아니던가. 이미 피를 보고 난 상황에서, 저런 자들과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울 성싶었다.
관중형당 측 무사들의 실력도 동급 최강이라 자부하지만, 전투력만 따지면 확실히 저들보다 한 수 아래임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특히 가공할만한 일당백의 살상력은 자신들은 상상도 못 할 수준이었다. 방금만 해도 신우종 무사들의 태반을 소수의 청룡회 출신 신참들이 거의 다 처리했다. 두광중은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초휴의 명을 따랐다.
신우종이 성 밖에 있었던 것과는 달리, 흑암당은 이름 그대로 흑암성 내에 있었다. 흑암성의 어원은 현지에서 먹색같이 새카만 석재가 생산된 데서 비롯되었다. 이 석재를 연마하면 거울처럼 매끈매끈해져서, 궁전 등을 짓기에 최적의 건축 자재로 손꼽혔다.
초휴의 무리가 흑암당에 이르렀을 무렵, 두위호는 신우종의 멸문 소식을 이미 접한 뒤였다. 신우종에 그리도 많은 제자가 있었건만, 모두가 죽기를 무릅쓰고 종문을 지킬 용기가 있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초휴가 공격 명령을 내렸을 때, 이미 사태를 파악하고 눈치껏 도망 나온 자들이 있었다. 흑암당이 신우종과 지척에 있다 보니, 자연히 그 소식이 두위호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두위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도망’이라는 두 글자였다.
한 덩치 하는 데다 인상도 우락부락한 두위호는 거칠고 단순해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나가 회동에서도 그는 말끝마다 초휴가 불순한 의도를 품었다는 둥, 본인은 절대 연회에 가지 않을 거라는 둥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날 제일 먼저 참석한 사람은 그였다.
그런 잔머리로 작금의 상황을 판단할 때, 도망가는 것만이 능사이지 싶었다. 하지만 도주를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초휴는 단숨에 이곳까지 치고 왔다. 어느새 흑암당의 출입구는 초휴 무리에게 완벽히 봉쇄되고 말았다.
기왕지사 도망은 글렀으니 두위호는 유화책으로 밀고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해서 억지웃음을 쥐어짜며 초휴를 영접했다.
“아이고, 초 대인 아닙니까. 지난번 제안하신 그 건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확실히 건주부 무림에 큰 득이 되겠더군요. 다른 종문은 어찌 나올지 모르겠으나, 우리 흑암당은 확실히 대인께 협조할 생각입니다. 그것도 성심을 다해서 말이지요, 하하하!”
물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 헛말이 아닌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초휴의 칼날을 피하고 봐야 했다. 요행히 시간을 벌 수 있다면, 건주부의 모든 무림세력을 규합해 초휴에게 단합된 힘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관중형당 본부에도 초휴의 패악질이 전해질 테고, 당연히 그는 좋은 꼴을 보기 힘들 터였다.
그러나 두위호의 연기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초휴의 눈에는 그의 간계가 훤히 보였다. 초휴는 웃을 듯 말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얼핏 보면 두위호를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시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윽고 그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두위호, 지금 내 앞에서 얄팍한 술수가 통할 거 같은가? 처음부터 내가 권한 술을 마셨어야지. 이제 와서 망나니가 주는 술을 마실 게 아니라.”
두위호가 번드레하게 떠든 말들은 결국 아무런 효과도 없었던 셈이다.
초휴는 애당초 그의 말을 들어주러 온 게 아니었다.
신우종에서 시작한 일을 여기서 마무리 짓자는 생각일 뿐.
두위호는 초휴의 반응에 당황한 나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초 대인,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본 연후에······.”
하지만 초휴는 그가 말을 하거나 말거나, 뒤에 있던 안불귀를 돌아보며 말했다.
“잔검! 이번엔 그대가 나서라.”
안불귀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등에 메고 있던 거검을 벗겨내며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발이 살짝 움직이는가 싶은 순간. 그의 몸은 쏜살같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온몸의 강기가 응집된 그의 검신은 안개처럼 몽롱한 색감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한껏 응축된 강기가 사정없이 터져 나올 기세였다. 그리고 그 강기는 엄청난 공기의 파열음과 함께 산이라도 쪼갤 기세로 두위호 바로 앞에서 터져 나왔다.
두위호는 속으로 초휴에게 온갖 쌍욕을 퍼부었다.
보아하니 아주 끝장을 보려고 날을 잡은 모양이다. 태산이 송두리째 머리 위로 떨어지는 듯한 거검의 기세를 두위호가 어찌 막겠는가.
육신의 강맹함 위주로 수련을 해온 그였지만, 맞바로 그 일검을 받는 건 무리였다. 지금은 일검을 피하고 봐야겠기에 도주할 생각으로 양다리에 강기를 터뜨렸다.
하지만 바로 그때, 거검이 머금고 있던 희뿌연 강기가 재차 토해지자, 강기의 속성이 사정없이 진득진득하게 변했다. 그러자 강기에 둘러싸인 두위호의 몸뚱이가 옴짝달싹 못 한 채, 갇히고 말았다.
도망가려던 동작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미줄에 잡힌 파리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그 상태에서, 또 한 차례의 무지막지한 힘이 실린 거검이 두위호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졌다.
검이란 원래 베거나 찌르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안불귀의 거검만큼은 때려 부수는 데 최적화된 검이었다. 검날은 별 의미가 없다고나 할까. 얼핏 쇠망치를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강기에 갇혀 도주가 물 건너간 이상, 두위호는 별수 없이 일검을 받아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는 수중에 병기가 없었다. 대신 불끈 쥔 양 주먹을 가슴팍에 올려놓고 권인(拳印) 자세를 취했다. 원래 그는 육신을 병기 삼아 단련해온지라, 그의 주먹이 곧 최강의 병기나 다름없었다.
이윽고 그의 주먹에서 발출된 옅은 금색 강기가 안불귀의 검신을 때렸다. 하지만 기껏 내지른 강기는 검에 타격을 주기는커녕, 흔적도 없이 검신 속으로 흡수되어버렸다. 이런 결과를 상상도 못 했던 두위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이도 잠시. 안불귀의 일검에 격중된 그의 몸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권인을 취했던 양팔이 끊어져 나간 건 물론, 그의 몸을 보호하던 금색 호체강기도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또 한바탕의 혈화가 꽃봉오리를 터뜨렸다.
이 참극을 지켜본 초휴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불귀 저자는 번번이 출수가 민폐 수준이군. 늘 저렇게 뒤처리를 난감하게 만들어 놓는단 말이지. 보는 사람과 시신을 치우는 사람들 생각도 해주면 좋으련만.’
결국, 이 싸움은 안불귀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났다. 그런데 비록 단 한 번의 출수로 끝나긴 했어도, 두위호가 수련한 횡련금신(橫煉金身)은 확실히 막강 위력의 진수를 보여줬다. 강기의 세기는 차치하고라도 병기에 맞서는 방어력만큼은 초휴의 독고인에 버금갈 정도였다.
아쉽게도 독고인은 진기 소모가 엄청나서, 장시간 유지하기는 곤란하다. 반면, 두위호의 횡련금신은 언제든 장시간 시전이 가능한 데다, 그의 몸뚱이를 보급(寶級) 병기 못지않은 강도로 단련해냈다. 몸 자체가 병기이니, 별도의 병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오늘 안불귀와 맞닥뜨리고 말았다.
안불귀의 거검 역시 보급 병기였다. 다만 중량 강화에 치중한 소재로 만들어져서, 검 본연의 기능이 미진한 편이었다. 검날도 없이, 온전히 힘만으로 사람을 떡메치기 하는 데 사용되어지니 말이다.
이런 힘에 정통으로 맞았으니, 몸이 무쇠로 만들어졌던들 온전할까.
더욱이 그는 아직 횡련금신을 궁극의 경지까지 수련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살가죽이나 단단할 뿐, 그 안의 피와 살은 보통 사람의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임무를 마친 안불귀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거검을 다시 둘러멨다.
그의 공격법은 한결같았다.
검세는 단순함의 극치를 보였으나, 기이한 내력강기에 힘입어 순간적으로 힘의 세기가 극강의 수준까지 치솟는 원리였다.
그 힘 앞에 노출된 상대에게는 예외 없이 두위호와 같은 최후가 기다리기 마련이었다. 이번에도 온전한 시신은 남지 않았다. 다짐육 수준의 살점 더미가 수북이 쌓여있을 뿐.
좀 전에 당아의 출수에서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는데도 불구하고, 현장의 사람들은 여전히 적응이 힘들었다. 그래도 한번 겪은지라, 아까보다는 진정이 빠른 편이었다. 특히 청룡회 출신들은 하나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지난날 안불귀와 집단 임무를 수행하면서 한두 번 본 일이 아니니까.
자신들의 당주가 처참하게 개죽음당한 것을 보자, 흑암당의 잔당들은 아예 저항 의지를 상실했다. 신우종과 마찬가지로 살해당하든지, 도주하든지 둘 중 하나였다.
이로써 건주부 무림에서 또 하나의 종문이 영원히 사라졌다. 이번에도 초휴는 관례대로 흑암당의 수련자원과 재물을 챙길 것을 지시했다. 이때 신중한 두광중이 잔뜩 가라앉은 낯빛을 하고 다가와 문제점을 제기했다.
“대인, 지금 우리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하루 만에 두 종문을 쓸어버렸으니 이 소식은 발 빠르게 퍼져나갈 겁니다. 세 번째 종문을 치는 건, 만만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초휴가 되레 반문했다.
“세 번째 종문을 친다고 누가 그러던가?”
“네? 계속 치지 않으면 건주부 무림세력들이 힘을 합쳐 들고 일어날 텐데요. 그땐 우리도 속수무책입니다. 저들이 뭉칠 시간을 주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두광중이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자, 초휴가 그를 안심시켰다.
“본보기로 두 종문만 손을 본 걸세. 죄다 쓸어버리면 뭐가 남겠나? 그건 우리한테도 이로울 게 없지. 자네는 이곳에 남아 뒷수습을 하게. 나는 몇 명 데리고 나가(羅家)로 가볼 참이니.”
두광중은 일단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 아직도 자기 상관이 대관절 무슨 그림을 그릴 심산인지, 종잡지 못한 상태였다.
건주부 땅덩이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었다. 어느 쪽이건 하루도 안 걸려 두 종문의 멸문 소식이 퍼져나가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이 무렵 나가의 노야도 제자가 가져온 멸문 소식에 넋을 놓고 있었다. 봉명루 연회 당시, 건주부 무림세력은 단체로 초휴의 체면에 생채기를 내버렸다. 단 한 사람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니까.
해서 초휴의 성격상 순순히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건 ‘미쳤다’라는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이 아닌가.
“무법천지로구나! 그야말로 무법천지야!”
노야는 이 말만 반복했다. 그것 이외에 다른 말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관중형당에는 엄연히 순찰사가 지켜야 할 규율이 있다. 그런데 초휴는 그걸 싸그리 밟아 뭉개는 중이었다. 일이 커지면 형당 본부에도 알려지게 될 텐데, 그 미친놈은 본부조차도 안중에 없는 걸까.
일전에 강가의 일을 위구단이 덮어준 사실은 건주부 무림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건주부 무림 전체가 반기를 들고 일어나면 천하의 위구단이라 해도 무마는 불가능할 터였다. 이때 나가의 제자가 황급히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노야! 지금 초휴가 밖에 와있습니다!”
놀란 노야의 두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하지만 연륜의 힘으로 이내 침착을 유지했다.
“무슨 명목으로 왔다더냐? 신우종과 흑암당을 몰살하고도 양에 안 차서, 우리 나가까지 쓸어버리러 왔다더냐? 우리 건주부 무림을 대체 뭐로 보는 게야? 우리가 호락호락 놈의 손에 죽어줄 줄 알고?”
하지만 제자가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노야, 초휴가 우리를 치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작 세 명만 데리고 왔고, 무력을 쓸 의도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지금 회의실에서 노야를 기다리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