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뇌물
처음에는 파는 객상이나 사는 객상 모두, 새로운 거래방식에 적응을 못 해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거래가 거듭될수록 의외로 이 방식의 이점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물건을 파는 객상은 건주부에서 여러 곳 헤맬 것 없이 곧장 해당 세력을 찾아가면 되었다. 그럴 경우, 강호 포두의 수색도 없었고 시간도 절약되어 거래를 신속히 마칠 수 있었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흥정을 해야 했던 종전 방식보다 훨씬 수고가 덜한 셈이었다.
물건을 사는 객상도 다르지 않았다. 거래가 거듭될수록 어느 세력이 어느 물건을 취급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해당 세력을 곧장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시간과 노고를 절약할 수 있으니 거래는 점점 더 활기를 띨 수밖에 없었다.
객상들 입장에서는 건주부의 뒤바뀐 거래방식 때문에, 다른 주부에서 거래할 때보다 비용이 더 드는 건 사실이었다. 팔 때는 싸게 팔고, 살 때는 비싸게 사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과 수고를 아낄 수 있으니, 나름 만족해하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도 제일 좋은 건, 밀거래의 절대적 안전보장이었다.
건주부 해당 독점 세력과 거래할 시에는 절대로 관중형당에서 관여치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비독점 세력과의 거래를 시도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방식이 자리 잡으며, 건주부는 이전보다 더 많은 객상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객상들 사이에서도 이런 사실이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번져갔다. 그 결과 썰렁했던 건주부가 한 달이 못 되어, 다른 주부보다 곱절 가까이 번창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건주부의 괄목상대할 변화가 인근 주부에 알려지지 않을 리 없었다. 강도연 등 다른 순찰사들도 이 방식을 도입하고 싶었지만, 이 수법은 아무 지역, 아무 상황에서나 통하는 게 아니었다.
초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초강수로 건주부 무림을 굴복시켰다. 하지만 초휴보다 실력이 못하지도 않은 다른 순찰사들은, 그들이 상대하는 현지 무림의 실력이 건주부보다 훨씬 막강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일례로 건주부 무림 중에는 오기조원의 고수가 한 명도 없는 것과는 달리, 여타 지역에서는 더러 찾아볼 수가 있었다. 게다가 순찰사라고 해서 모두가 초휴와 같은 짓을 벌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약 오르는 일이지만, 초휴는 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번번이 쉽게 해치우곤 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각 세력으로부터 수익의 이할을 거둘 수확기가 도래했다. 초휴가 각 세력에 꽂아둔 수하들이 보낸 수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찰사 당구의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무림세력들이 한 달 사이에 밀거래로 벌어들인 수익은 확실히 그들의 종전 수익보다 곱절 이상이 많았다. 그러니 이할을 초휴에게 바쳐도, 그들은 전혀 손해날 게 없었다. 이제 원망의 소리는 쑥 들어가고, 초휴가 자기를 내치면 어쩌나 눈치들을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건주부에 열 개 세력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언제든 대타로 나설 준비가 되어있는 군소 세력들이 건재했다.
지금 초휴의 위세로 보자면 누구든 눈 밖에 나면 당장이라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그 자리를 대기 중인 다른 가문으로 채울 소지가 다분했다. 초휴가 밀어준다면, 고작 선천경 하나만 보유한 약체 가문일지라도 건주부에 자리 잡는 건 문제도 아닐 터였으니까.
순찰사 당구 내 대청에서는 초휴가 보는 앞에서, 상자들이 줄지어 놓이고 있었다.
상자를 열 때마다 그 안에는 자금, 단약, 광물 등 언제든 화폐의 기능을 할 수 있는 품목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이게 어디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던가.
좌중의 사람들은 절로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귀수왕 등 청룡회 살수들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청룡회에서 오랜 시간 살수 노릇을 하면서 나름 세상 경험을 많이 해본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진귀한 물건들이 종류별로 바리바리 쌓인 모습에 눈이 번쩍 뜨였다.
지난날 엄청난 세도가 하나를 통째로 털었을 때, 청룡회에 떨어졌던 수익보다도 훨씬 많아 보였다.
“두 포두, 이것의 절반을 남겨서, 그중 이할을 당구 형제들에게 나눠주게. 구체적으로 뭘 나눠줄 건지는 귀수왕과 둘이 의논해서 결정하고, 나머지 절반은 다시 잘 싸게나. 관서지부로 가져가야겠다.”
초휴의 지시에 두광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초휴가 뭘 하려는 건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중 절반이나 뚝 떨어져 나갈 것을 생각하면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 중, 이할이 자신들의 몫으로 확보되는지라 별로 거부감은 없었다.
초휴가 방정원보다 훨씬 손이 크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만으로도 앞날이 부쩍 밝아진 느낌이었다.
뒤에 있던 화노와 랑왕 등도 입가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물론 청룡회에서 고급 임무를 수행하고 나면 수익이 이보다 더 짭짤하긴 했다. 하지만 매번 어려운 임무에 나설 때마다 몸 고생, 마음고생이 극심했었다. 온전히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압박감이 말도 못 했던 것에 비하면, 조금 덜 벌지언정 지금이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사실 이번에 두 세력의 숨통을 끊을 때, 그나마 힘을 썼던 건 당아와 안불귀 두 사람뿐이었다. 다른 이들도 출수하긴 했지만, 워낙 일방적인 싸움이어서 도륙 수준에 불과했다.
맥 빠지게도 신우종이건 흑암당이건 간에 제대로 맞붙어 싸워볼 만한 상대가 전혀 없었던 탓이다. 살수 출신으로서, 도검을 잡을 기분조차 안 나는 상대들이었단 말이다. 싸움은 싱거운 수준에서 끝났지만, 그래도 수월하게 이 많은 수련자원을 획득한 것만으로도 그들은 만족했다.
청룡회에서는 나날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매번 살인 임무를 수행하거나, 또는 무공을 수련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 전투력은 막강하게 다져질지 몰라도, 본인의 수련 속도는 뒤처지게 된다. 하지만 관중형당에 들어온 후로는 시간도 여유로워졌고, 수련자원도 쉽게 확보되었다. 그들 모두가 다음 경지를 뚫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이런저런 지시를 내린 후 초휴는 물건을 바리바리 수레에 싣고 관서지부로 향했다. 초휴가 뵙기를 청한다는 보고를 듣자, 위구단이 곧장 그를 자신의 서재로 불러들였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초휴가 인사를 올리자 위구단이 손에 쥔 용문철담을 만지작대며 지그시 바라보았다.
“자네가 건주부에서 벌인 짓을 나도 들었다. 도대체 네놈의 간덩이가 몸 밖까지 삐져나오지 않은 게 신기하군그래. 일전에 강가의 일이야 밀수 비리를 처결한다는 명목으로 덮었지만, 이번 일은 대체 어찌 수습할 작정인가? 이번에도 내가 무마해줄 줄 알고 무법천지를 만들어 놓은 게야? 어디 그 잘난 해명 한번 지껄여보지그러나.”
위구단의 목소리는 차분하긴 했으나, 보이지 않는 위압감이 실려있었다.
초휴가 머리를 조아렸다.
“물론 해명할 거리가 밖에 당도해 있습니다. 들여올 수 있도록 분부 내려 주십시오.”
위구단의 분부가 떨어지자, 초휴가 가져온 상자들이 줄지어 서재로 옮겨졌다. 일을 마친 자는 즉시 물러가고, 서재에는 다시 둘만 남았다.
초휴가 상자를 하나씩 열 때마다, 찬란히 빛을 발하는 자금과 짙은 약향이 풍기는 단약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를 본 위구단의 얼굴이 흐뭇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초휴를 짓누르던 위압감도, 순식간에 유야무야 사라지고 말았다.
“대인, 이건 첫 달 수익에 불과합니다. 이후로 매달, 이보다 많으면 많았지, 절대 적지는 않을 수익을 바치겠노라고 약속드리지요. 이로써 충분한 해명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위구단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다 더 확실하고 만족스러운 해명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까지는 수하들 가운데 위한산이 돈 끌어오는 재주가 출중했다.
위구단에 대한 공경심이 단연 극진했던 자도 그였다. 하지만 초휴와 비교해볼 때, 위한산의 공경심은 그저 공경심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건수가 많으면 좀 많이 바치고, 건수가 적으면 적게 바쳤다. 한마디로 일관된 안정성이 떨어지는 공경심이었다.
매달 꼬박꼬박, 적어도 이만큼씩을 갖다 바치겠다고 장담하는 초휴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눈앞의 물건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위구단은 본인의 결정에 안도감을 느꼈다.
사실 일전에는 초휴를 밀어주기로 해놓고도, 긴가민가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건 정말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어디서 이처럼 신통방통한 녀석이 튀어나왔을까.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음에 위구단은 뿌듯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쁜 자식일수록 매도 들어가며 키워야 하는 법! 이내 따끔한 훈계가 뒤따랐다.
“초휴, 자네는 워낙 영민한 사람이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는 잘 알겠지? 자네가 건주부에서 벌인 일련의 사건들은 내가 덮도록 해보지. 물론 이 정도선에서 일이 잘 무마될지는 나도 장담 못 하네. 상부에서 조사단이 내려오기라도 하면, 정신 바짝 차리고 잘 대처해야 할 것이야. 내 말 알아들었는가?”
“물론입니다. 제가 어찌 대인의 말씀을 허투루 듣겠습니까.”
초휴가 짐짓 두려워하는 태도를 보이자, 위구단은 더욱 목에 힘이 들어갔다.
“좋다. 이만 돌아가 보게. 눈앞의 소소한 일들 따위야, 내가 알아서 잘 정리해 줄 테니.”
위구단의 서재를 떠나는 초휴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이번엔 실로 막대한 출혈을 감수한 셈이었다.
위구단이 워낙 탐욕스러운 인간이니, 찔끔찔끔 감질나게 먹였다가는 간에 기별도 안 갈 게 뻔했다. 해서 두고두고 시달리느니, 단번에 왕창 쑤셔 넣어주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이번에 위구단은 확실히 초휴가 바친 공물에 흡족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제 버릇 남 못 주고, 한 번 더 겁박하는 걸 잊지 않았다. 공물을 바치고도 욕은 욕대로 먹었으니, 초휴는 기분이 영 언짢았다.
초휴가 처음부터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건주부 무림을 건드렸겠는가.
사실 위구단의 으름장은 초휴가 진작 자기 머리 꼭대기에 앉은 줄도 모르고 꺼낸 헛소리에 불과했다. 이미 건주부 무림의 마음은 초휴에게로 돌아섰다.
초휴와 무림은 이미 운명공동체가 되어 한배를 탄 상태이다. 설령 초휴가 잘못을 저질렀어도 무림이 나서서 덮어주기 급급할 마당에, 누가 고자질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 상부에서 조사를 나오네, 어쩌네 하는 것 자체가 기우(杞憂)였다.
물론 위구단에게 무슨 영양가 있는 소리를 들을 거라 기대하고 온 건 아니었다. 상납금은 충분히 건넸으니, 이로써 당분간 위구단이 바람막이 역할을 해줄 터였다.
초휴는 건주부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이제 안팎으로 바람이 잦아들었으니, 본인의 수련에 신경 쓸 차례였다. 초휴 뿐 아니라, 안불귀와 당아를 위시한 청룡회 살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청룡회 시절에는 툭하면 임무 수행으로 불려 나가는 통에 차분히 수련할 여유가 부족했다. 이제 새로운 터전도 잡았고 여건도 허락된 만큼, 그간 미뤄두었던 수련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청룡회 출신들이 약속이나 한 듯 처박혀서 나올 생각들을 않자, 두광중 등 포두들은 되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영영 나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계속해서 저런 야차 같은 자들과 한데 섞여 경쟁을 벌이게 된다면, 제대로 숨이나 쉬고 일하겠는가 말이다. 신우종과 흑암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저들의 가공할 만한 일면을 똑똑히 보았다.
특히 당아와 안불귀는 둘 중 아무나 골라, 이들 세 포두를 상대케 해도 거뜬히 모두를 때려눕힐 듯 보였다. 이런 생각 자체가 창피하긴 했으나,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쳤던 건주부 무림은 이제는 맑게 개어, 안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해서 초휴는 순찰사 직무를 포두들에게 대행시키고, 마음 편히 폐관 수련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