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귀왕종(鬼王宗)
귀수왕이 선뜻 말을 못 꺼내고 망설인 이유가 있었다. 곤륜마교와 관련된 일이라면 대단히 예민한 사안이었다. 강호에서 마도를 입에 담는 것 정도는 금기 축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곤륜마교는 금기 중에서도 금기였다.
먼 옛날 곤륜마교의 마염(魔焰)이 천하를 송두리째 집어삼켰을 때, 얼마나 많은 종문들이 불안한 세월을 보냈던가. 두 번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날이었다.
당시 진무교 수장이었던 ‘선인(仙人)’ 영현기(寧玄機)가 사력을 다해 저들의 행보를 막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정도 무림은 여전히 그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곤륜마교’ 이 네 글자를 듣는 순간, 초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언젠간 마주칠 일이긴 했으나, 이런 식으로 맞닥뜨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당신 말인즉슨, 이번 일을 곤륜마교의 잔당들이 벌였다는 얘기인가?”
곤륜마교가 붕괴한 지, 어언 수천년이 흘렀다.
하지만 강호에서는 여전히 관련 인물은 물론, 곤륜마교가 남긴 전승물도 더러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존재는 발견되는 즉시, 주요 무림세력에 의해 철저히 궤멸당하고 파괴되는 수순을 밟는 게 일반적이었다.
초휴의 질문에 귀수왕이 고개를 저었다.
“곤륜마교는 아니고 지난날 곤륜마교의 종속세력 중 하나였던 ‘귀왕종(鬼王宗)’의 잔당입니다. 곤륜마교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당시, 정도 종문들은 하나같이 숨죽이며 명맥만 이어갔더랬지요. 반면, 제 세상을 만난 마도 종문들은 앞다투어 곤륜마교 밑에서 수하 노릇을 자청했고요. 그런데 독고유아가 영현기와 일전을 치른 후 실종되면서, 곤륜마교는 지리멸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을 타서 정도 세력들이 연합하여 공세를 몰아갔고, 결국 궤멸시켜버렸지요. 그때 곤륜마교의 종속세력들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개중 끝까지 곤륜마교와 운명을 같이한 세력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배신을 택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배신자들까지 일일이 없애 버리려니, 정도 무림도 피곤했겠지요.”
“그래도 죄질이 극악한 몇몇 마도 종문은 반드시 말살시켜야 했습니다. 귀왕종이 그중 하나였고요. 귀왕종은 나름 눈치가 빨라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걸 눈치채자, 제일 먼저 곤륜마교를 배신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난 과오를 용서받을 수는 없었던 겁니다. 그들은 결국 여러 해를 쫓긴 끝에, 강호에서 영영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귀수왕이 말을 이었다.
“귀왕종의 무공은 극악한 이단에 속하기로 유명합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엽기적인 게 인체로 단약을 만드는 비술이었지요. 저들은 온갖 잔인한 수법을 동원해서 그 짓을 행했습니다. 그걸 통해 사악한 힘을 취하고 음귀(陰鬼, 망령)에 대한 제도의식(濟度儀式, 귀신이나 망자에게 음식을 바치는 등 지옥에서 벗어나 극락왕생할 수 있게 해주는 의식)까지 올렸습니다.”
“듣자니 저들에게 ‘오기조원단(五氣朝元丹)’이라는 수련 보조용 단약이 있었다더군요. 상처 치료용으로도 쓰였는데, 주로 오기조원 경지의 무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어서는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알고 보면 사악하기 그지없는 단약입니다. 우리 체내 다섯 장기의 속성을 볼 것 같으면 심장은 신(神)을, 간은 혼(魂)을, 비장은 의(意)를, 폐는 백(魄)을, 신장은 정(精)을 각기 담고 있습니다. 또한, 심장은 불에, 간은 나무에, 비장은 흙에, 폐는 쇠에, 신장은 물에 속하지요. 오기조원단은 건장한 무사의 다섯 장기에다 불, 나무, 흙, 쇠, 물의 속성을 가진 다섯 약재가 추가되어 제련됩니다.”
“지금 유가 무사들의 몸에서 다섯 장기가 사라졌는데, 저는 귀왕종과의 연관성에 강한 의구심이 듭니다. 게다가 사람의 가죽을 벗기고 뇌액을 뽑아가는 등의 엽기적인 행각을 저들은 과거에도 자행했습니다. 귀왕종은 사악한 힘을 빌려 음귀를 움직이는데, 이게 바로 저들만의 독문비술(獨門秘術)입니다. 음귀는 실체도 그림자도 없이 사람을 죽입니다. 두 포두가 말하길, 시신에 외상도 없고 체내에도 강기가 침입한 흔적이 없다고 했는데, 음귀를 움직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귀수왕이 일사천리로 쏟아내는 엄청난 정보들을 듣느라, 사람들은 딴 데 정신을 팔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초휴만은 진지한 태도로 귀수왕을 바라보았다.
초휴가 물었다.
“귀수왕, 여기는 편한 자리니 굳이 숨기려 들지 마시오. 이런 내용을 당신은 어찌 다 알지? 그냥 길바닥에서 들은 것치곤 대단히 상세한 듯싶은데?.”
‘곤륜마교’라는 이름 넉 자를 입에 올리는 것마저 금기(禁忌)에 속하는데, 귀왕종이라고 해서 예외일 리는 없었다. 따라서 좌중의 사람들은 ‘귀왕종’이라는 명칭조차도 생소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귀수왕은 매우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한 내용이 길바닥에서 주워들은 것이라면, 분명 허위와 과장도 섞여 있을 터.
사람들의 의혹 어린 시선을 느낀 귀수왕은 결국 모든 걸 털어놓았다.
“대인의 짐작이 맞습니다. 사실 저도 왕년에는 귀왕종의 제자였던 셈이죠. 물론 사기당한 제자였습니다만. 소싯적에 저는 강호를 돌아다니며 광대 짓으로 먹고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중상을 입은 마도 무사를 구해준 적이 있었고요. 그자가 귀왕종 사람이었습니다. 놈은 저를 제자로 거두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제 도움을 받으려고 잠시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부상이 낫자마자 제 정혈을 삼키려 들었고, 죽여서 입막음하려고까지 했지요.”
“그자의 본심을 뒤늦게야 알아챈 저는, 몰래 약에다 독을 타서 죽여 버렸습니다. 처음부터 저를 제자로 거둘 생각 같은 건 없었으니까요. 그저 평범한 무공이나 가르쳐줬을 뿐, 귀왕종의 비법이라고는 전수해준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내용은 전부 다 그자의 입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핵심이 빠진 곁다리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초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귀수왕의 말대로라면 그자는 확실히 귀왕종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다만 중상을 입고 빌빌댔다 하니, 실력은 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기조원단이 오기조원의 고수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면, 귀왕종의 잔당 중에 오기조원의 고수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고수가 부상했을 거라는 추정도 가능하다는 게 초휴의 짐작이었다.
그건 이번 도살의 표적이, 내강경 하나뿐인 작은 일족이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었다. 만약 저들에게 압도적인 실력이 있었다면, 나가 등과 같이 삼화취정의 고수를 보유한 무림세력을 건드렸을 터였다. 힘 있는 세력일수록 얻어낼 것도 많을 테니까. 그러기에는 자신이 없었던 셈이다.
사실 초휴는 귀왕종이고 나발이고 간에 별다른 흥미를 못 느꼈다.
그저 당분간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지시를 수하들에게 내렸을 뿐이었다.
며칠 간은 그럭저럭 평안히 지나갔다. 그리고 일주일 째 되는 날, 건주부의 또 다른 세력이 몰살당했다. 이번의 수법도 종전과 똑같았다.
그리고 이틀 후 건주부와 맞닿아있는 위한산의 상주부에서도 같은 사건이 터졌다. 잇달아 동일 수법의 참사가 세 건이나 터진 것이다. 이 일의 파장은 실로 크게 번져갔다.
극악한 흉수 무리가 출현했다는 소식에, 급기야 건주부 무림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건주부를 오가던 객상들까지 적잖이 수가 줄어들었다. 막말로 건주부가 아니더라도 거래할 곳은 많았다. 굳이 이런 흉흉한 곳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왕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초휴는 침울한 표정으로 당구 안을 서성거렸다. 자기 관할 지역에서 이런 대형 참사가 벌어졌는데 해결의 실마리도 못 찾았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귀왕종 잔당의 출현이 건주부 경제에 악영향을 끼쳐서, 무림세력들의 돈벌이도 타격이 심했다. 이는 곧 초휴의 재정적 손실로 이어질 터였다.
“순찰사 당구에 강호 포두가 이리도 많건만, 아직도 단서를 못 찾았단 말인가! 건주부 무림도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질 않소?”
초휴의 질책에 두광중이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단서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상대의 수법이 하도 잔악하니, 당구 형제들이 잔뜩 위축된 상황이라 그렇습니다. 이쪽 인원수가 적을 때는, 단서를 발견했어도 감히 접근조차 못 하는 실정입니다. 지원이 오길 기다리노라면 단서는 금세 사라지고요.”
그러자 귀수왕이 옆에서 실실 웃으며 깐죽거렸다.
“두 포두, 당신 수하들이 그리도 심약하다면, 그냥 우리한테 사건을 넘기는 게 어떻겠소?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오. 우린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박 안 하는 놈들이니까.”
“당신들한테 넘기라고? 흉수는 고사하고 단서의 ‘ㄷ’자 조차 못 찾을 사람들한테 말이오?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참으로 놀랍구려!”
두광중이 콧방귀로 응수했다.
청룡회 출신의 신참들과 관중형당 고참들 사이에 서서히 알력이 발생하는 조짐이 보였다. 신참들이 어느 정도 적응기를 거치자, 본격적으로 양측이 힘겨루기를 시작한 것이다.
건주부 무림을 평정할 때는 신참 측이 각광을 받았다면, 이번 사건에서는 고참 측이 전권을 가지고 조사를 하고, 귀수왕 등은 옆에서 보조하는 데 그치고 있었다. 물론 각자 전공 분야가 있으니, 이런 일을 귀수왕 등이 맡았다가는 단서 끄트머리도 못 잡고 우왕좌왕 헤맬 건 뻔했다.
양측의 신경전이 팽팽해지자, 초휴가 손을 휘저으며 끼어들었다.
“자자, 그쯤들 하시오. 다음번에는 내가 직접 나서겠소. 저들이 아직 건주부 내에 있기만 하다면 설마 끝끝내 못 찾아낼까. 설령 못 찾아내더라도, 건주부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되는 거지.”
초휴의 짐작으로는 귀왕종 잔당들이 처음부터 건주부를 겨냥하고 왔을 것 같진 않았다. 어쩌다 보니 관중 땅으로 들어왔고, 급하게 단약을 만들어 실력을 회복해야 할 필요성이 불거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초휴가 강하게 압박 수사를 벌이니, 저들이 상주부로 작업 무대를 옮겼을 가능성도 컸다.
다음번엔 초휴가 직접 출수하여 저들을 상주부 쪽으로 몰아낼 수만 있다면, 꿩 먹고 알 먹기인 셈이었다. 잔당도 몰아내고 위한산도 엿 먹일 수 있으니, 나쁠 게 없었다.
솔직히 귀왕종 잔당들이 뭔 짓을 벌이건, 초휴 입장에선 알 바 아니었다. 그는 쓸데없이 남의 일에 신경 쓰는 건, 딱 질색이었다.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오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후 건주부 임강성(臨江城).
길거리를 오가는 행인과 무사들만 드문드문 보일 뿐, 지난날 활기로 가득 찼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임강성은 상주부에 바짝 붙어있는 작은 성에 불과했지만, 건주부와 상주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얼마 전만 해도 두 주부를 오가는 사람들, 특히 객상의 행렬이 끊이지 않아 매우 번화한 동네였다. 하지만 최근에 연달아 발생한 참사 때문에, 가장 타격이 극심한 곳이기도 했다. 두 사건은 건주부에서, 한 사건은 상주부에서 터졌고 임강성은 두 주부의 연결고리였다. 그 바람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 수가,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야외 주점에서 무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경장 차림의 무사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제기랄! 이 짓도 못 해 먹겠구먼. 어떤 개새끼가 그따위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당최 알 수가 없으니 말이지. 자그마치 세 가문을 그 꼴로 만들어 놓다니. 나 같아도 여긴 올 마음이 날 수가 없지. 겁나서 어찌 오겠냐고.”
그 무사는 다름 아닌 표사(鏢師)였다.
대단한 표국 소속은 아니어도 현지의 업계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고참으로, 주로 군소 성들 간을 오가며 단거리 호송을 맡아왔다.
인근 성들의 무림세력들에 관한 정보가 워낙 빠삭하니 화물 호송은 물론이고, 길잡이나 중재원 노릇도 톡톡히 해냈다.
덕분에 이곳 사정에 서툰 외지인들도 현지 무림세력과 부딪히는 일이 없이, 안전하게 길을 지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많던 객상의 수가 뚝 떨어졌으니, 그의 사업도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예전이었으면 지금쯤은 한창 일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대낮부터 파리 날리며 술이나 마시는 처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