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검왕성(劍王城)
자기를 향한 시선들이 곱지 않자, 위한산은 당황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초휴! 내 말을 함부로 곡해하지 말게. 그대 관할지에서 벌어진 일을 해결 못 하는 바람에, 다른 순찰사들의 머리까지 아프게 한 걸 모르는 건가! 이건 엄연히 그대의 능력 문제가 아닌가. 위구단 대인께서 오시면 시시비비를 가려 주시겠지만.”
그때 위구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나도 다 들었으니 더는 말을 꺼낼 필요 없다. 본인의 일이나 잘할 것이지, 남의 일에는 뭐하러 신경 써!”
위구단이 등장하자, 위한산은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더는 토를 달지 않고 고분고분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윽고 상석에 앉은 위구단이 좌중을 향해 말했다.
“일전에 건주부와 상주부에서 벌어진 연쇄 멸문 사건은, 그대들도 들어 알 것이다. 이 일은 그대들을 나무랄 것도 못 된다. 워낙 흉수의 내력이 만만치가 않아. 자그마치 왕년의 곤륜마교 종속세력인 귀왕종의 잔당이니까.”
좌중의 순찰사들 가운데 초휴 빼고는 귀왕종이라는 이름마저 생소했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관중형당에 몸담은 이후로 흉악한 마도 무리와 무수히 싸워 왔음은 물론, 적잖이 죽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이 죽였던 마도 흉수의 대부분은 뒷배가 없거나 약소 종문 출신이었다.
이번엔 자그마치 천년 전 악명을 드날렸던 마도 대파가 연관되었으니, 종전과는 다른 차원의 싸움이 될 소지가 다분했다. 물론 귀왕종을 어엿한 하나의 종문이라고 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말이다. 이번에만 봐도, 그저 소탕 중에 살아남아 강호를 떠도는 잔당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위구단이 말을 이어갔다.
“이번 귀왕종 잔당은 검왕성(劍王城) 고수 협객들의 추살에 쫓기다가 관중까지 오게 된 것이다. 마침 검왕성 사람들도 왔으니 서로 안면을 트도록 하게. 앞으로 함께 귀왕종 잔당을 일망타진해야 할 터인즉.”
여기까지 말한 위구단은 제자 양릉으로 하여금 검왕성 사람들을 데려오게 했다.
초휴는 위구단의 말이 의아하게 들렸다.
‘귀왕종이 어쩌다가 검왕성과 원한을 맺고 여기까지 쫓겨 온 걸까.’
검왕성도 풍만루가 지은 강호 노랫말에 등장한다.
거기서 언급된 오대검파의 일원으로, 서쪽 끝 황량한 사막지대에 있다 해서 ‘서막검왕성(西漠劍王城)’이라 불리기도 한다.
검왕성 제자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얼마 안 되는 인원 가운데 강호로 나와 활약할 정도라면 비슷한 집단 중, 군계일학의 실력자로 간주 되었다. 이번 세대에서만도 두 명이나 용호방에 올랐을 정도니, 그 빛나는 실력을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잠시 후 양릉이 열 명 남짓한 검왕성 무사들을 이끌고 왔다.
하나같이 품이 넓은 흰색 도포를 입고, 머리는 흰색 두건으로 싸맨 모습이었다. 서쪽 사막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새였다.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그들의 장검이었다.
등에 메지도 않고 허리에 차지도 않았으며, 공간 비전함에 넣어둔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검을 손에 쥔 채, 잠시도 내려놓지 않았다. 검왕성 무사들은 이렇듯, 수중의 검을 자기 몸의 일부인 양 취급해 왔다. 검과 혼연일체가 되기 위해 먹고 자는 시간조차 손에서 놓지 않았으니, 이쯤 되면 강박증으로 의심받을 정도였다.
대청으로 들어선 그들의 온몸에서 강력한 예기가 느껴졌다.
검이 검집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공간을 꿰뚫는 그 가공할 검의는 엄청난 위압감을 과시했다.
초휴 등은 서로 힐끗 쳐다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불필요한 허장성세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검왕성 제자 열 명의 실력은 선천경에서 오기조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 정도 실력의 무사라면 자신의 기세를 거두어들이는 건 일도 아닐 터. 하지만 그들은 보란 듯이 기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란 말인가.
물론 오대검파 중 검왕성의 실력이 단연 강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현재 그들은 서쪽 사막 지역의 사나운 맹주를 자처하고 있다.
듣자니 검왕성이 그곳에 자리 잡으면서, 원래 자리 잡고 있던 여러 소국을 도륙하다시피 굴복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그쪽의 상황뿐, 이곳은 엄연히 중원의 관중이다. 관중형당의 천하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위구단이 아무런 지적도 안 하는지라, 순찰사들도 입을 열기가 뭣했다. 얼핏 위구단의 표정에서도 언짢음이 읽혔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순찰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다들 인사 나누게. 이분은 검왕성 출신 고수이자 전검당(戰劍堂)의 검술 교관인 ‘염하검(炎河劍) 고강류(顧江流) 선생이시다.”
이들 무리를 이끄는 자는 서른 줄에 들어선 차가운 인상의 소유자로, 손에는 적홍색 장검을 들고 있었다. 소개를 받았음에도 고개만 까닥거렸을 뿐, 간단한 인사말조차 없었다.
그 오만방자한 모습에 좌중에는 불쾌한 기운이 짙어졌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검왕성에는 사대검당이 있는데, 그중 전검당은 검도에 있어 살인 수법만을 연구했다.
그리고 오검당(悟劍堂)은 검도의 참뜻을, 의검당(意劍堂)은 무아 경지의 검의를, 형검당(形劍堂)은 검 초식의 수행방법을 각기 전담해 연구했다.
명칭에서도 짐작되듯 사대검당 가운데 전검당 출신 무사들이 유독 호전적이고, 전투력도 가장 강했다. 게다가 고강류는 강호에 딱히 명성은 없어도 전검당의 검술 교관이니, 검법의 조예가 대단할 것이 뻔했다.
이번에는 외강경의 젊은 무사가 소개되었다.
“이분은 검왕성의 청년 준걸인 ‘풍행운검(風行雲劍)’ 임개운(林開雲)이라고 한다. 듣자니 임 소협은 용호방에도 올라있다더군. 마침 우리 관서지부에도 용호방 인재가 있으니, 오늘의 만남도 인연인 셈이로군.”
임개운은 얼핏 스물을 갓 넘어 보였다. 별호만 들어서는 ‘바람도 잔잔하고 구름도 옅다’라는 따스한 문구가 떠오르고 외양도 준수했지만, 두 눈에서는 시종일관 짙은 예기가 넘쳤고 표정도 차가웠다. 한마디로 섣불리 건드릴 만한 인물은 아닌 듯 보였다.
관서지부에도 용호방 인재가 있다는 말을 듣자, 임개운은 자기도 모르게 눈가에 힘이 들어갔다.
“관중형당에 언제부터 용호방 출신이 있었습니까? 뉘신지요?”
이에 위구단이 초휴를 가리키며 웃어 보였다.
“내 휘하 순찰사인 초휴라고 하오. 형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지.”
초휴라는 이름 두 글자를 듣는 순간 임개운의 눈가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그 눈빛이 곧바로 검의로 변해 상대를 찌를 듯한 기세였다.
“당신이 초휴? 용호방 십팔 위에 올라있는 그 ‘혈마’ 초휴란 말이오?”
“그렇소.”
초휴가 무를 자르듯 간단히 답했다.
임개운은 뭐라 응수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옆에 있던 고강류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해서 하고 싶은 말을 삼킨 그는, 초휴를 향해 이렇게만 말했다.
“언제 시간이 될 때, 한번 겨뤄봅시다.”
그러자 초휴가 눈썹을 찡긋해 보이며 받아쳤다.
“시간이 나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순찰사가 마냥 노는 직분이 아니라서 말이오. 나도 임 소협처럼 한가하면 얼마나 좋겠소.”
신경전은 초휴가 먼저 시작한 게 아니었다.
애당초 임개운이 다들 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초휴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서로 초면이고 초휴가 잘못한 것도 없건만, 상대가 이처럼 대놓고 도발하는 건 용호방에서 경쟁 관계에라는 이유 때문일까. 용호방 내 순위경쟁이 치열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일면식도 없던 상대에게 굳이 그럴 것까진 없었다.
실제로 초휴의 짐작이 맞았다.
임개운이 이처럼 예민하게 구는 건, 확실히 용호방 순위 탓이었다. 원래 임개운은 용호방 이십 위에 올랐으나, 최근에 이십일 위로 밀려났다. 그건 초휴가 단숨에 십팔 위로 뛰어오르는 바람에 자연히 한 순위 뒤로 밀린 것이다.
혹자는 고작 한 순위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호방은 상위 이십 위까지를 한 단계로 취급했다. 해서 이십일 위라는 순위는, 급이 한 단계나 떨어진 듯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었다.
임개운이 용호방 순위에 집착하는 것은 검왕성의 내부사정에서 기인했다. 지금 세대에 이르러 검왕성에서는 여러 인재가 배출되고 있었다. 이들 중 임개운의 명성은 평범한 정도에 불과했다.
세간에서는 검왕성이라고 하면 으레 한 개의 이름만을 상기했다.
다름 아닌 ‘검수(劍首)’ 방칠소(方七少)다.
방칠소라 하면 방가의 일곱째 나리, 즉 칠소야(七少爺)인 줄 착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소(少)’는 말 그대로 ‘적다’라는 의미였다. 해서 헷갈리는 걸 막기 위해 그는 늘 본인을 소개할 때 자기 이름이 ‘적다’라는 의미임을 반드시 밝히곤 했다.
방칠소는 일곱 살 때 검도에 입문하여, 오년 만에 사대검당을 두루 섭렵했다. 사대검당의 검술 교관들도 입을 모아 말하길, 그가 수련경지 면에서는 다소 뒤떨어질지 몰라도, 검도에 대한 이해력은 자기들보다도 뛰어나서 더 가르칠 게 없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그는 열다섯 살에 강호에 발을 내디뎠고, 칠년 만에 무수한 동급 검도 고수들을 물리치며 연전연승의 불패 신화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검 중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의 ‘검수’라는 별호가 부끄럽지 않을 행보인 셈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딱 한 번 패전의 경험이 있었는데, 상대는 용호방 경쟁자인 ‘소천사(小天師)’ 장승정(張承禎)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수련경지가 상대보다 낮았던 탓이 컸다.
그리고 절세의 기재 ‘소천사’와 맞붙어 패했다는 것은 그에게는 명예로 작용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도록 방칠소는 줄곧 용호방 삼 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임개운이 느끼는 상대적 열등감은 만만치가 않았다.
그는 무슨 수를 써도 방칠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거라는 위기감과 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임개운은 방칠소보다 고작 몇 살 어렸고 강호 경험도 적은 편이었다. 시작도 용호방 오십 위에 불과했고, 이후 폐관 수련으로 내강경을 뚫은 끝에, 간신히 이십 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방칠소는 ‘소천사’에게 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될 놈은 뭘 해도 된다고 했던가. 방칠소의 경우가 딱 그랬다.
이에 굴복할 수 없었던 임개운은 다시금 폐관 수련에 들어가 외강경을 뚫고 출관했다. 그러나 동문 사형과 겨뤄보기도 전에 초휴한테 밀려나고 말았으니, 억울할 만도 했다.
해서 초휴를 보는 순간, 수천 냥을 등쳐먹은 사기꾼을 보기라도 한 양,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좌중의 분위기가 예상치 못하게 냉각되자, 위구단이 작위적인 헛기침 소리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자자, 이만하면 되었소. 일과 관련이 없는 얘기는 나중에 합시다. 귀왕종 놈들이 우리 관중형당의 앞마당을 휘젓고 다닌 이상, 절대 좌시하고 있을 수는 없소. 고(顧) 선생과 협력할 만한 수하 몇몇을 내어줄 테니, 서로 잘 도와서 빠르게 사마외도의 무리를 발본색원(拔本塞源, 좋지 않은 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 버려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없도록 함)하기를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