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이판사판
생각지도 못했던 노야의 지시에 나쌍전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아버지, 그랬다가는 검왕성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요.”
이는 그간 나가가 행해 왔던 방식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실력이 약한 것도 아니건만, 더러는 비겁하다는 인상까지 주었던 나가였다. 그런데 초휴와 손잡은 이후로 윗전을 닮아가는 건지, 노야는 극단적으로 달라진 행보를 보였다.
이젠 급기야 검왕성에 맞서기까지 하려 드니, 나쌍전이 우려를 표할 만도 했다. 도대체 초휴에게 어떤 대단한 매력이 있기에, 노야의 간덩이가 나날이 부풀어 오른단 말인가.
나쌍전이 계속 머뭇거리자 노야가 역정을 냈다.
“아니, 하라는 대로 할 일이지 무슨 말이 그리 많아? 이제부터 이것저것 재지 않기로 했다. 관중 땅의 주인은 엄연히 우리야. 여기는 저들이 굴러먹던 서막이 아니란 말이다!”
나쌍전은 여전히 찜찜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성문 폐쇄로 못 들어오고 있던 친족들을 불러들였다. 건주부 내에 고만고만한 성들이 이리도 많은데, 검왕성이 단체로 하나하나 방문할 리 만무했다. 대신 제자들을 흩어져서 각자 성 하나씩을 맡게 한 상태였다.
이때 나성을 담당한 자는 삼화취정 경지의 서진(徐進)으로, 나가의 대담한 조치에 노기등등하여 들이닥쳤다.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하인까지 밀어젖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감히 성문을 열고 아무나 막 들이고 내보내다니!”
이에 노야가 걸어 나와 태연히 응수했다.
“보자 보자 하니 검왕성의 오지랖이 참으로 넓으십니다그려. 내 집안사람을 내가 불러들이는데도 일일이 귀하의 허락을 받아야 하오? 우리 나가는 벌여놓은 사업 챙기기만도 바빠 죽을 지경이라, 검왕성 여러분과 놀아드릴 여유가 없소이다.”
이는 명백한 항명이자 도발이었다.
서진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 말인즉슨, 나가는 앞으로 검왕성의 명령에 불복할 작정이라는 말인가?”
노야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이판사판 밀고 나갔다.
“명령? 이보시오, 젊은 양반. 말이라는 건 함부로 내뱉는 게 아니오. 아니, ‘검왕성의 명령’이란 말 자체가 어폐가 있질 않소. 하나 물읍시다. 대관절 우리가 검왕성과 무슨 관계에 있다고, 당신들 명령을 듣고 말고 해야 하오? 나가는 엄연히 관중 땅에 자리한 무림세력이니, 명령을 들어도 관중형당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거요. 뜬금없이 검왕성이 이래라저래라 하다니,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여기가 서막이라도 되는 줄 아시오?”
노야의 말을 듣는 내내, 서진이 차가운 검날과도 같은 눈빛을 쏘아냈다.
오대검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검왕성은 서막 땅에서는 확실히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둘러온 막강한 존재였다.
서막 군소국(群小國)의 왕이 자칫 검왕성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그 즉시 검왕성의 검날이 징벌에 나섰다. 심기를 어지럽힌 장본인의 수급이 성문 높이 걸리면서, 그날로 국왕이 교체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검왕성 무사들은 하나같이 무례하고 포악한 성정으로 길들어져 왔다. 그러다가 중원에 왔으니 못된 버릇이 어디 가겠는가. 일국의 왕도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마당에, 일개 군소 가문의 항명을 참고 봐줄 리 만무했다.
“죽으려고 환장했나!”
결국, 서진이 검집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차가운 냉기를 머금은 검의가 허공에서 서리처럼 응결되는가 싶더니, 얼음처럼 맑고 푸르스름한 검강이 터져 나왔다. 오싹한 한기가 엄습하는 걸 느끼며 노야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젠장, 초휴의 말대로 해보다가 검왕성 무사가 검까지 빼 들지 않았는가.’
검왕성 무사가 정말로 출수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나가 노야도 삼화취정의 경지인 건 마찬가지였다. 상대의 일검을 피하려 살짝 뒤로 물러나는가 싶더니, 연달아 두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곧이어 온몸의 강기가 손바닥에 응집되어 맞바로 상대를 향해 발출되었다.
그러나 상대의 강력한 한빙검기(寒氷劍氣) 아래 그의 장력은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다.
검기가 자신의 몸을 덮치는 순간, 노야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전력을 다해 간신히 일검을 막아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몸이 한빙검기에 노출되고 난 뒤였다.
이내 시리도록 차가운 검기가 그의 경맥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노야는 진기를 운용하려 들 때마다 얼음 조각이 파고드는 듯한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노야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상대를 동급의 적수라고 여겼던 게 오산이었다.
방금의 일검도 간신히 막아냈으니, 제대로 맞붙는다면 열 초식도 못 되어 상대의 압승으로 끝날 게 뻔했다.
이에 마음이 독해진 노야는 서진이 후속 공격을 퍼부으려는 것을 본 순간, 그길로 자신의 기세를 거두어들였다. 그러고는 죽음도 불사할 비장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일갈했다.
“검왕성이 이렇듯 자기들 세만 믿고 힘없는 백성을 괴롭히기로 작정한 이상, 우리처럼 보잘것없는 촌구석 일족 따위는 감히 반항도 못 할뿐더러, 반항할 힘도 없소. 자, 자, 자, 그럴 능력 있으면 이 늙은이도 죽이고 여기 나가 사람들을 죄다 죽이시오. 검왕성이 얼마나 잔악무도한지, 어디 무림 전체에 똑똑히 보여 주자고.”
“무고한 사람도 마구 죽여대는 검왕성이 과연 정도 종문의 자격이 있는지도 무림에 물어봅시다. 지금 당신이 벌이려는 짓이 당신이 말끝마다 처단을 부르짖는 귀왕종, 그 사마외도와 다를 게 뭐요? 사마외도를 잡으러 왔으면 그 일이나 잘할 일이지, 왜 선량한 백성에게 되레 사마외도와 같은 짓을 저지르려 하는지 어디 설명 좀 해 보란 말이오!”
서진은 출수하려던 손을 멈춘 채, 우두커니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노인네가 어찌나 구구절절 반박하기 힘든 말만 골라서 하는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옛말에 포악한 자의 횡포보다 더 무서운 게 죽기를 각오하고 이판사판 덤비는 사람이라더니, 작금의 상황이 딱 그랬다. 여기가 서막(西漠)이고 누군가가 노야처럼 했더라면 당장 목을 쳐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중원 관중이 아닌가.
자칫 경솔히 대처했다가 관중형당의 분노라도 사는 날엔 검왕성의 명성에 누를 끼치게 되고, 서진 자신도 책임을 면치 못할 터였다.
서진은 그저 평범한 제자였다.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어찌 처신해야 할지 당최 경험이 없었다. 반면 노야는 서진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내심 희열을 느꼈다. 과연 초휴의 조언이 들어맞았음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이른바 정도 종문이라 자처하는 자들은 종문의 명성을 대단히 귀하게 여겼다.
해서 타지세력인 검왕성은 이곳 관중 땅에서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노야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저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우리 검왕성은 협박 따위에 굴하지 않는다. 명성을 들먹여 우리를 옭아매어 보겠다? 흥, 꿈도 야무지시군. 현재 우리는 귀왕종 잔당이 이곳 나성에 있다고 단정 내린 상황이다. 그런데 당신이 성문을 열고 사람들의 출입을 허했다는 것은 고의로 귀왕종 놈들을 내보내 준거나 다름없다. 나가가 감히 귀왕종과 같은 마도 흉수와 결탁했으니, 놈들과 다름없는 처벌을 받아야겠지. 해서 우리 검왕성은 사마외도에게 적용하는 죄로 나가를 처단할 것이다. 이에 멸족인들 못 할까!”
이윽고 고강류가 서릿발 같은 표정을 지으며 밖에서부터 걸어들어왔다.
그는 검왕성 전검당의 검술 교관으로서 제자를 양성하는 일을 책임지는 한편, 종문의 중견세력이기도 했다. 따라서 세상과 담쌓고 고지식하게 틀어박혀 검을 연마하는 부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자의 앞에서 섣불리 잔머리를 굴리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고강류가 수중의 장검을 뽑아 들자, 끓어오르는 용암을 방불케 하는 장검 한 자루가 새빨간 불꽃색 검집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장검 전체에서 펄펄 끓는 듯한 파동이 발산되고, 투명하게 빛나는 검신에서 세찬 열기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이것이 바로 고강류의 패검으로, 염하(炎河)라고 불리었다.
‘염하’는 그의 검 이름이자, 그가 수련한 검도(劍道)이기도 한 셈이다.
“나가는 사악한 무리와 결탁했으니, 죽음으로 죄를 씻어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강류는 펄펄 끓어 넘치는 용암의 열기를 불어넣은 적홍색 강기를 연신 검 끝에서 토해냈다. 아마도 서막 지역에서 거침없이 군소국들을 다스릴 때도, 저런 모습으로 기선을 제압했으리라.
검왕성이 소재하고 군림하는 곳은 머나먼 서쪽 사막 지역일지라도 종문 제자들은 모두 중원 출신이었다. 해서 그들은 현지 군소국을 향해 무력을 쓸 때, 전혀 심적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까짓 개, 돼지만도 못한 이민족들은 사람 취급할 필요도 없다는 일종의 민족적 우월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곳은 중원 관중 땅이니, 본인들이 해 오던 방식으로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가는 정도 무림의 지탄을 면치 못할 테니, 아까 으름장을 놓은 거와는 달리 멸문까지는 곤란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가 노야를 용서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군소 가문 주제에 검왕성의 명성을 들먹이며 협박을 하려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죽어 마땅했다.
고강류의 불타는 일검과 마주한 순간, 노야의 눈이 절망감으로 가득 찼다.
검왕성의 검술 교관직을 부여받았다면 검왕성 사대검당을 통틀어 고수 중의 고수로 인정받았음을 뜻한다. 조금 전 자신과 동급인 일반 무사의 공격도 간신히 막아낸 마당에, 이런 자의 일검을 무슨 수로 막아내겠는가.
바로 그때! 돌연 나타난 새카만 인영이 노야 앞을 가로막는가 싶더니, 강한 진기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지하 저 끝에서부터 절망과 죽음을 실어낸, 지옥의 흑색 도망이 발출되었다.
아비지옥의 문이 벌컥 열리며 악마의 칼날이 피의 살기를 토해낸 순간이었다. 어느샌가 온통 검은 옷차림의 초휴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 피어오르는 마기(魔氣) 어린 흑무(黑霧)로 인해, 검은 머리카락이 연신 흩날리는 모습이었다. 그의 칠흑 같은 두 눈동자에서는 전혀 인간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손에 들린 홍수도도 눈동자와 같이 시커멓게 물들어있었다.
뒤이어 두 번째 아비마도가 격출되었다.
오기조원의 고수와 맞서는 마당에 실력을 엿보는 건 의미가 없을 터. 그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 낼 작정이었다. 검게 물든 공포의 마도(魔刀)가 고강류의 일검과 정면으로 맞부딪히며 마기가 거세게 용솟음치니, 가까스로나마 열하검의 열기를 잠재울 수 있었다.
이번 일검에서 고강류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초휴는 사력을 다해서야 간신히 막아냈다. 오기조원과 외강경 간의 싸움. 두 경지의 격차를 뛰어넘어 정면승부를 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달아 두 차례나 아비마도를 출수한 초휴의 몸이 부작용에 반응하기 시작하자, 그는 즉시 내사자인을 취해 가까스로 이를 억눌렀다. 이윽고 그의 눈동자를 뒤덮었던 흑무가 가라앉고 맑은 기운이 회복되자, 초휴가 고강류에게 냉소를 날리며 말했다.
“검왕성 여러분, 과연 대단한 패악질이오. 그 위풍당당함에 소생은 경탄을 금치 못하겠소! 그대들이 나가가 마도와 결탁했다고 말하면, 무조건 결탁한 것이 되는 거요? 검왕성이 무슨 정도 무림의 수장이라도 되오? 천하의 대광명사와 용호산 천사부도 당신들 검왕성만큼 거침없이 행동할 것 같진 않은데 말이오.”
고강류는 아무런 응수 없이, 초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미처 진정되지 않은 당혹감과 놀라움이 남아 있었다.
그가 출수한 일검은 원래 노야를 겨냥한 것인지라 전력을 실어내지 않았었다. 하찮은 일족 출신의 삼화취정 노인네에게 전력을 다하는 건 남 보기에도 부끄러울 일이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두 경지나 아래인 초휴가 자신의 절기를 막아낸 것에, 그는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고강류는 일전에 임개운이 용호방 순위에서 초휴가 앞선 것에 울분을 토했던 일이 생각났다. 임개운이 슬쩍 귀띔하길, 귀왕종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초휴에게 도전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후에 그를 완전히 깔아뭉개서 아예 용호방 순위권 밖으로 밀어낼 작정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 고강류가 보기에 그건 임개운의 희망사항에 불과한 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