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9)
나씨 집안은 무림세가라는 칭호가 아깝다 싶을 정도로 매우 작은 가문이었다. 가문 전체를 통틀어 무예를 익힌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고, 상단의 호송을 맡은 호위들조차 간단한 타격초식이나 익힌 평범한 하인들에 지나지 않았다. 나씨 상단의 총관이 행렬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서두르자. 상망산만 지나면 통주부에서 쉴 것이다.”
상단이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창 힘겹게 지날 무렵이었다. 풍일도 등이 대마금도를 걸치고 나타나더니 보란 듯이 길을 가로막고 섰다.
예전 같으면 도적과 맞닥뜨리는 순간 냅다 도망치기 바빴을 테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상단 총관이 실실 웃으며 다가와 은자를 건넸다.
“형님들, 안녕하시오? 여기 통행료가 있으니 술이나 한잔 사 드시지요.”
그러나 풍일도는 은자를 받기는커녕, 되레 손을 날려 은자를 쳐내더니 음침한 얼굴로 으름장을 놓았다.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냐? 은자 오십 냥이면 이 어르신 혼자 술 먹을 돈이야 되겠다만, 그럼 내 뒤에 있는 우리 형제들은 쫄쫄 굶으란 소리냐?”
그러자 상단의 총관이 잔뜩 위축되어 설설 기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형님들, 제가 어찌 형님께 장난을 치겠습니까? 통행료는 관례상 화물 값어치의 십 분지 일만큼만 내도록 되어 있잖습니까. 갈 때는 화물이 많았지만 지난번에 이미 연나라에서 선납금을 받았기 때문에 올 때는 화물이 오백 냥 어치밖에 안됩니다요. 양이 많아 보여도 사실 대부분 연나라 현지 특산물이라 값어치 있는 것들도 아닙니다. 믿지 못하시겠거든 직접 확인해보시지요?”
그러자 풍일도가 크게 손을 내저으며 언성을 높였다.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고, 돌아올 때 가져오는 물건이 고작 그 정도라면 미리 내게 알렸어야 할 거 아닌가! 고작 오십 냥 받자고 아침 내내 죽치고 기다린 줄 알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당신 입으로 한번 말해보라고!”
상단 총관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재수도 없지, 이렇게 흉악한 놈들에게 된통 걸렸으니 어쩌면 좋담? 그 모습에 풍일도가 껄껄 웃더니 말을 이었다.
“이 어르신의 처분이 심하다고 원망은 말거라. 이러면 되겠군 그래. 사람은 가고 물건은 남겨둬라. 다음부터는 명심해서 제대로 좀 하고 말이다. 내가 규칙을 어겼다고는 하지 마라. 또 이런 경우가 생길 때는 미리미리 보고를 하란 말이다.”
이에 총관이 항변을 하려하자 풍일도의 낯빛이 일순간 차갑게 변했다.
“왜, 불만이야? 그럼 돈 대신 모가지를 내놓든가. 그럼 물건이야 가져가도 된다.”
풍일도의 협박에 총관은 간담이 쪼그라들어 사람들만 데리고 후다닥 꽁무니를 뺐다. 상단 사람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고 난 후, 초휴와 마활이 숲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풍일도가 말했다.
“초공자, 뭐든지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가져가시오.”
초휴가 화물더미를 뒤적여 보니 과연 비전함이 열 개 넘게 있었다. 그는 비전함을 챙기며 풍일도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풍두령, 수고하셨소. 나머지 물건들은 마음대로 하시구려.”
풍일도는 그가 비전함만 가져가는 걸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예전에 북방 삼십육대도의 세력이 절정에 달했을 시절, 자신도 이런 종류의 비전함들을 제법 손에 넣었었다.
비전함은 운을 시험해 보는 성격이 다분한 물건이었다. 물론 큰 문파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비전함처럼 정상적인 것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 그 안에 제대로 된 물건이 들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 정보를 알고 있는 자들끼리 서로 먼저 뺏고 보자는 식이어서, 애당초 밖에까지 흘러나올 일이 드물었다.
그러니 밖에 나돌아 다니는 것은 비전함의 출처가 분명치 않거나 작은 문파의 유적지에서 파온 것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기본적으로 상등품일 리가 없었다. 비전함을 손에 넣은 초휴는 마활 등과 함께 곧장 하산하여 통주부에서 일단 헤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초휴 밑으로 들어가게 되면 의심을 사기 쉬우니, 몇 무리로 나누어 초씨 댁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었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초휴는 비전함을 하나씩 열어 안에 들은 물건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나씨 집안에서 입수했다는 두 물건은 좋은 것이기는 하겠지만 보물이라고 단정할 정도는 아닐 게 분명하다. 만약 그리도 귀중한 물건이었다면 그 소식이 진작 새어나갔을 테고, 빼앗으려는 싸움이 그저 몇몇 군소 가문들 간의 싸움으로 그쳤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비전함의 뚜껑이 하나씩 열리다가 이윽고 다섯 번째에 이르렀을 때 문득 그 안에 든 앙피지 책자가 눈에 들어왔다. 표지에는 이라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 비급은 저쪽 세상에서도 본 적 있는 삼급의 무공으로 급수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 낮은 편도 아니었다.
책장을 펼쳐보니 혈도경의 핵심은 간단히 두 단어로 요약되었다. 사악함과 잔인함! 칼을 꺼내드는 각도가 얼핏 괴이해 보이지만 매 초식마다 하나같이 치명적인 살수로 직결되니, 이것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마도(魔道)의 무공인지 알만했다. 하지만 초휴는 그 때문에 이 무공이 자신한테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수리청룡을 입문 단계까지 수련한 그는 검을 검집에서 뽑는 것을 이제는 본능처럼 해내었다. 다만 수리청룡은 본디 검을 감추기 위한 기술로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청룡이 바다를 박차 오르듯 필살의 일격을 가하는 그 자체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적과 맞설 때 자신을 보호할 만한 초식이 마땅치 않은 그로서는 수리청룡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순간적인 일격을 가해 상대를 죽이거나 중상을 입히면 다행이지만, 상대가 막거나 피해내면 그 일격은 의미를 상실하고 자신이 위험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혈도경을 수리청룡의 보조무공으로 삼아 자신의 약점을 보완한다면 그의 전투력은 몇 배나 강해질 게 분명했다. 초휴는 혈도경을 잘 챙긴 후 수련에 들어갈 채비를 하였다. 나씨 집안처럼 작은 가문에게 삼급의 무공은 보물이나 마찬가지이니 쟁탈전이 벌어질 만도 했다.
그런데 나머지 비전함도 마저 열자 거기서 뜻밖의 물건이 나왔다. 모양이 똑같은 기괄(쇠뇌의 화살 발사장치) 암기들이었는데, 그것도 천기문의 암기가 아닌가? 상고시대 대재앙이 닥칠 무렵, 무림에서 암기의 최강자로 단연 ‘촉중당문’을 꼽을 수 있었다.
대재앙이 지난 후 촉중당문의 생존자가 새로 문파를 정비해 이름도 ‘당가보’라고 바꾸니, 서초(西楚)와 촉중(蜀中) 일대에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무림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또한 ‘천기문’은 상고시대 대재앙 이전에 촉중당문 다음으로 암기에 조예가 깊은 문파였다.
다만 위의 두 문파는 암기에 대한 이해에서 차이를 보였다. 촉중당문은 암기와 독을 쓰는 법을 위주로 연구하여 사람이 주가 되고 암기는 어디까지나 보조적 역할을 했고, 지금의 당가보도 왕년의 노선을 변함없이 따르고 있었다.
반면, 천기문이 주로 연구하는 것은 기괄 암기로,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아무나 사용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급이 낮은 무사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했다. 다만 애석하게도 천기문은 도중에 전승이 끊겼고, 당가보도 가끔 기괄 암기를 만들기는 해도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 초휴가 들고 있는 이 암기의 이름은 ‘천엽령’이다. 겉으로는 그저 한 개의 원통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전함 안에 들은 설명서에 의하면 기괄을 눌러 작동시키면 원통 안에 있던 매미날개처럼 얇은 수천 개의 쇠 파편이 폭발하듯 발사되어 극강의 위력을 발휘하는 무기였다. 그러나 한 번 작동하고 나면 그걸로 끝인 일회용이라는 게 아쉬운 점이었다.
또한 설명서에 의하면 이론상 이 천엽령의 살상력으로 선천경에 이른 고수도 죽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할 뿐, 일대일로 겨루는 상황에서 선천경 고수는 약간의 준비만으로 이 암기의 공격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처럼 초휴가 폐관수련에 들어가 갓 얻은 혈도경을 수련하고 있을 때, 초상은 상단을 이끌고 통주부로 돌아오고 있었다. 초상에게 있어서 이번 장삿길은 아무 부담감 없이 유람을 다닌 거나 마찬가지였다.
곁에는 임겸 같은 응혈경 고수가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고, 상망산을 지날 때도 규칙에 따라 통행료를 냈더니 도적들이 순순히 상단을 통과시켜주었다. 위험한 상황은 구경조차 못해본 셈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번에 부친께 부탁해 초휴의 상단을 뺏아온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다. 물론 바보 천치가 아닌 이상, 이런 부탁은 아무리 부친의 총애를 받는 자신일지라도 한번만 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에도 한도가 있는 법, 이런 일을 자주 부탁하면 부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초휴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앞쪽에서 족히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도적떼가 나타나더니 통행료를 요구했다.
우두머리는 여전히 풍일도였다. 이 길목이 그의 담당구역인지라 초씨 상단사람들은 모두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초상 밑에 있는 총관 하나가 그들에게 지폐 한 장을 건네며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풍두령님, 이제 길을 비켜주시지요.”
그러나 풍일도는 짐짓 얼굴을 찌푸렸다.
“고작 사백 냥이라고? 뭐가 이렇게 적어? 얘들아, 가서 뒤져라!”
총관이 다급해진 나머지 울상을 지으며 사정했다.
“풍두령님, 저희는 분명 규칙을 지켰습니다. 드려야 할 금액만큼 통행료를 정확히 드렸다고요. 그러니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네놈들이 규칙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는 내가 봐서 결정한다. 무슨 꿍꿍이가 있길래 뒤지지 못하게 하는 거냐?”
뒤에 있던 초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난번 연나라에 갈 때는 이런 모욕은 없었지 않은가? 그가 나서서 따지려는데 옆에 있던 총관이 다급히 제지했다.
“공자님, 충동적으로 굴지 마세요. 상망산은 엄연히 저들의 영역이니, 저들이 뒤진다고 하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셔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것도 아닌데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러자 초상이 코웃음을 한번 치더니 하인들에게 분부했다.
“뒤지게 내버려둬라.”
이에 도적졸개 몇 놈이 수레 행렬로 다가가더니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수레까지 철저히 헤집은 다음, 그들은 풍일도에게 몇 마디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풍일도가 차가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으름장을 놓았다.
“아무런 꿍꿍이도 없다더니 네놈들의 화물 값어치가 육천 냥은 되겠는데? 그러면 통행료가 사백이 아니라 육백을 내놓아야 할 거 아닌가 말이다!”
그 말에 초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곧장 풍일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따졌다.
“이제 보니 일부러 트집을 잡으려는 수작이구나! 도적 따위가 어찌 우리 화물의 값어치를 안단 말이냐? 수레를 통째로 내어줄 테니, 그걸 육천 냥에 팔아올 재간이 있으면 그 화물을 전부 가져도 좋다.”
그러자 초상 옆에 있던 총관은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철딱서니 없는 공자가 어쩌자고 나서서 도적들에게 대들며 말싸움을 한단 말인가? 비록 이번에 처음으로 상단 총관직을 맡긴 했어도, 상황에 따라 굽혀야 할 때는 굽혀야한다는 이치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여기는 도적떼들의 소굴인 상망산이었다. 그러니 웃돈 이백 냥만 얹어주면 끝날 일이 아닌가? 도적떼가 이백 냥만큼 바가지를 씌우기로 작정 했다면, 까짓것 흔쾌히 줘버리고 무사히 지나가면 그만일 것을 굳이 저들에게 맞서려 하다니?
끝
ⓒ 봉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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