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단순’한 초휴
이로써 장내 사대 장형관의 지위 고하가 한눈에 드러난 셈이었다.
종합적인 실력이나 세력을 아울러 단연 최고는 소습이다. 실력이 최강인 데다, 한창 장년의 나이인지라 앞으로도 세를 부릴 날이 창창하니, 함부로 건드릴 인물이 못 되었다.
그다음이 형당 내에서 최장 경력을 자랑하는 은백통이다. 그는 관사우가 당주에 오르기도 전부터 형당 내 고참급에 속했다. 여천호의 기고만장한 태도만 봐도, 평소 그의 사부가 얼마나 위세가 당당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초사마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너무 많은 편도 아니고 경력도 오래되었다. 초광가가 친히 영입한 인물이니, 관사우와 항렬이 같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역 이민족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니, 위의 두 사람보다 밀리는 게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위구단은? 왕년에야 은백통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으나, 지금은 은퇴를 앞둔 노인네에 불과하다. 기혈도 적잖이 쇠퇴했고 자리도 곧 내놓을 판이니, 자연스럽게 최하위로 밀려날 수밖에.
이번 대결에서 여천호는 초효덕을 가뿐히 이겼다. 자신이 처음 장담했던 말처럼, 몇 초식만에 결판이 났다. 초효덕은 수치심으로 죽고만 싶었다. 하지만 의부에게 사죄부터 하고 볼 일인지라, 입가의 피를 닦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의부님, 송구합니다. 제가 의부님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초사마는 희로애락의 표정을 내비치는 대신, 초효덕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무사에게 있어 늘 승패는 뒤따르는 법.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이지. 이번 일로 교훈을 얻었으면 되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거라.”
말을 마친 그는 초효덕을 데리고 자리로 돌아갔다.
이 광경에서 초휴는 초사마의 두려운 면모를 보았다.
여천호는 초효덕이 서역 이민족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엄청난 수치와 모멸을 안겨 주었다. 게다가 초사마에게도 대놓고 맞서서, 그의 실력을 시험해 보려고까지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후배로서 불경을 저지른 것이다.
게다가 여천호의 사부인 은백통은 그 광경을 빤히 지켜만 보았다. 그 태도만 봐도 초사마 부자를 무시하는 속내가 훤히 보였다. 웬만한 사람이 이런 모욕적인 상황을 당했다면 노기충천하여 발작했을 터.
뒤에 웅크리고 있는 초효덕은 비분함을 참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초사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내 평온한 모습이었다. 이처럼 당장의 분함을 삼키고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무서운 법이다.
두 차례의 비무가 끝나고 세 번째 대결에서 소습의 제자인 정주해(程周海)와 초휴가 맞붙게 되었다. 나무늘보처럼 계속 늘어져 있는 사부와는 달리, 그의 제자 정주해는 매우 진지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대결장으로 들어서자 정주해가 먼저 웃는 낯으로 인사를 했다.
“초 형, 안녕하시오. 앞선 비무가 지나치게 격렬한 감이 있었소이다. 하지만 그저 실력을 겨루자는 건데 굳이 우리까지 그럴 필요야 있겠소. 해서 좀 안전한 방식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의향이 어떠신지?”
“안전하다면 어떤 방식을 말씀하시는 건지?”
“무사 간에 우열을 가리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건, 힘이 아니겠소. 이렇게 합시다. 우리 둘이 번갈아 출수하는 거요. 한 명은 전력을 다해 공격하고 한 명은 전력을 다해 방어한 후, 역할을 바꾸는 거지요.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한눈에 고하가 판명 나는 방식이 어딨겠소.”
이에 초휴가 다소 괴이쩍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답했다.
“그럽시다. 정 형이 원한다면 상관없소.”
“그럼 초 형이 먼저 출수하시오.”
“아닙니다. 정 형이 제안한 방식이니, 먼저 손을 쓰시지요.”
정주해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럼 내가 먼저 실례하겠소.”
사실 이번 비무에 너무 심각하게 임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 비무는 단지 신병대회에 관중형당 대표로 나가, 존재감만 피력하고 오면 될 인물을 선발하는 자리이다. 해서 대결의 당사자들이 합의를 본 이상, 어떤 방식을 취하든 관사우는 개의치 않았다. 다만 위구단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자식이 평소에는 영리하게 굴더니만 지금은 왜 저리 멍청한 게야? 상대가 하자는 대로 다 들어주다니? 이런 젠장.’
이때 소습도 전음으로 불난 데 부채질까지 했다.
“이보쇼. 정작 본인은 속에 구렁이 몇 마리를 키우면서, 어째 저리도 단순한 자를 내보낸 거요? 저놈한테 정주해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안 준 모양이네? 내가 친히 골라서 데려왔고 나의 만검류(萬劍流)도 익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 아니냐고.”
위구단이 소습을 째려보았다.
초휴가 무슨 생각에서 저러는지는 몰라도, 그가 단순하다는 소습의 말은 틀렸다. 초휴가 정말로 단순한 자였다면 건주부의 무림세력을 일시에 평정하는 일이 가능했을 리가 없다.
물론 상대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이유가 정말로 단순했을 수도 있다. 자신감이 도를 넘었든지, 혹은 정주해의 믿음직해 보이는 외양에 현혹당했든지 말이다. 좌우간 쌍방이 결정한 이상 위구단이 대결을 막을 명분은 없었다.
선공을 펼칠 정주해가 심호흡을 한번 했다. 수중에 검이 없는 그의 몸 주위로 무수한 검기가 터져 나왔다. 그의 체내로부터 빽빽하게 솟아난 검기는 순식간에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이것은 소습의 성명절기(成名絶技)인 만검류였다. 검도의 성지 격인 좌망검려의 절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그 유명한 만. 검. 류!
이 만검류는 대단히 괴이한 무공이다. 수련 시 무사는 비법을 사용해 자신의 강기를 예리한 검기로 연마시킨 다음, 이를 체내에 품는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 종국에 가서 수련자의 체내 강기는 고갈되고, 그 빈자리를 검기가 채우는 원리였다.
즉, 싸움에 나설 때 중간 과정 없이 곧장 체내 검기를 쏘아내는 것이다. 물론 다른 무공을 수련하려면 일신의 검기를 죄다 폐기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한마디로 매우 극단적인 무공이었다.
하지만 무공이란 극단적일수록 위력도 배가되는 법이다. 현재 정주해는 수백 가닥의 검기를 응집해낼 뿐이지만, 소습은 수만 가닥까지도 가능했다. 이 무공의 수련이 궁극의 경지에 이르면 십만 가닥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심지어 연마 과정에서 검기의 힘에 각양각색의 속성을 부여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아까 소습이 펼쳤던 칠채검기(七彩劍氣)와도 원리가 비슷했다.
정주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검기를 쏟아냈다. 곧이어 발출된 검기들이 서서히 하나로 뭉쳐지니 거대한 검으로 변했다. 무형의 검기들이 허공에서 응집되어 십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검을 형성한 후, 곧장 초휴를 향해 찔러왔다. 원래 만검류를 수련할 때는 강기를 검기로 변환시키지만, 지금은 검기를 강기로 변환시킨 상태였다.
검기와 강기 간의 변환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다만 검기를 하나로 합친 후에는 그 폭발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간 정주해가 발출해낸 만검류의 일격을 제대로 막아낸 상대가 없었다는 점만 봐도 그 위력은 충분히 설명될 터였다.
사실 정주해는 반 농담조로 이런 방식을 제안했다.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볼 의도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초휴가 덥석 제안에 응했다. 기왕에 이리되었으니, 정주해는 상대를 봐줄 의사가 전혀 없었다. 자신의 가공할 절기로 단번에 승부를 결정지을 심산이었다. 그는 이미 이긴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검기 만 가닥이 하나로 합쳐지면 하늘과 땅도 쪼갤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정주해는 수백 가닥의 검기를 하나로 합친 상태였다. 그 가공할 위력에 여천호를 비롯한 젊은 무사들의 낯빛도 일제히 변했다. 자신이 저런 일격을 당한다면, 피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전력을 다해 막아내도 최소한 중상을 입을 게 뻔했다. 초휴에게 머리라는 게 있다면 전반전은 패배를 자인하고 후반전에서 만회를 꿈꾸는 게 현명할 터였다. 억지로 막으려 했다가는 반격할 기회마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초휴는 패배를 선언할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의 온몸에서 순간적으로 강기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양손을 결인하자, 웅혼하고 묵직한 강기가 그의 전신을 감싸며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형성했다.
그 어떤 외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임자결, 독고인! 이는 쾌만구자결 가운데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초식으로, 초휴가 여러 번 사용한 바 있었다. 불가의 횡련금신(橫煉金身)처럼 직접적으로 육신의 강도를 높이는 게 아니라서 수동적인 방어에 그치긴 했다. 하지만 상대의 막강한 공격, 특히 강기의 방어에서는 동급 중 최강의 방어 초식이라 할 수 있었다. 천죄 타주의 열공신조도 독고인으로 막아냈는데, 설마 정주해의 만검류가 그보다 더 강력할까.
이윽고 격렬한 강기의 폭발음과 함께 깨진 돌조각들이 마구 날리면서 연무장 바닥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곳은 관중형당의 연무장이다. 이 말인즉슨 바닥에 최고급 석재를 깔았을 뿐 아니라, 지하에 진법까지 묻어놓아 견고하기 그지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강기 폭발 한 번에 깨진 두부처럼 갈라지고 말았으니, 두 사람의 충돌이 얼마나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는지 알 만했다.
잠시 후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자, 사람들은 또 한 차례 경악했다. 초휴는 아무 다친 곳 없이 멀쩡하게 서 있는 반면, 정주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강기의 반진(反震) 효과로 팔까지 떨고 있었다.
정주해의 일격을 초휴가 저리 쉽사리 막아냈단 말인가. 정주해는 자기가 우둔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애당초 생각이 단순했던 건 초휴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초휴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정 형, 준비되셨소이까? 내가 출수할 차례요.”
정주해가 마지못해 웃는 낯을 지어 보였다.
“초 형께선 손을 쓰시지요.”
지금 정주해의 바람은 딱 한 가지. 그는 초휴가 방어만 능하고 공격은 서툴길 바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이윽고 정주해의 온몸에서 발출된 검기가 방패 형상으로 응집되더니, 그의 몸을 방어했다.
정주해는 소습을 스승으로 모시고 만검류라는 극단적인 무공을 배운 바람에 여타의 무공은 배우질 못했다. 공격 면에서 만검류가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지니는지는 이미 입증되었다. 하지만 방어에도 능할 검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애석하게도 하나같이 공격에만 능한 게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지금 정주해가 동원할 수 있는 방어 수단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냥 검기로 방패막을 응집시켜 몸을 보호하는 수밖에.
초휴는 이번만큼은 아비마도의 살초를 쓰지 않기로 했다. 이미 승부는 가려진 것과 다름없고 정주해와 딱히 원한도 없는데, 굳이 그런 극단적인 무공을 쓸 필요는 없었다.
대금강륜인을 결인하자 금색 강기가 터져 나와 맹렬한 기세로 정주해를 덮쳐갔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번 대금강륜인에 쾌만구자결의 힘만 실린 게 아니라 천탁지돈대혼원공의 힘도 섞였다는 점이다. 혼원의 내력이 뒷받침된 덕분에 대금강륜인의 위력이 배가되면서, 정주해의 검기 방패와 격렬히 맞부딪혔다.
엄청난 폭발음이 터지자, 정주해는 저항할 의지도 상실할 만큼 엄청난 힘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걸 느꼈다. 미친 듯이 체내 검기를 발출시켜 막으려 했지만, 초휴의 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검기가 와해 되었음은 물론, 그의 몸이 바닥 아래로 움푹 꺼져 들어갔다. 뒤이어 발밑에 깨진 돌조각들이 마구잡이로 휘날리는 가운데 몸이 뒤로 밀려나기까지 하니, 그 모양새가 마치 돌조각을 발로 끌며 쟁기질을 하는 듯 보였다.
또 한 차례 강기의 폭발음이 울렸을 때, 결국 정주해의 강기 방패는 파괴되었다. 몸도 십 여장이나 날아간 다음에야 간신히 멈춰 섰을 정도였다. 낯빛도 시뻘건 것으로 보아 대금강륜인에 의한 충격으로 내장이 뒤흔들린 게 확실했다.
한참 동안 안정을 취한 후에야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정주해가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손에 사정을 둔 점 감사드리오. 내가 졌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