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인정사정 두지 않다
초휴가 봐줬다는 걸, 정주해도 확실히 잘 알았다.
초휴가 허리춤에 홍수도를 차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홍수도를 장식 삼아 차고 다닐 리는 없을 것이다. 초휴가 칼을 쓰는 무사라면, 그 도법은 인법보다 훨씬 더 가공할 수준일 터. 하지만 그는 끝내 칼을 뽑지 않았다.
그러니 봐줬다고 볼 수밖에.
좌중의 사람들이 경이로운 눈빛으로 초휴를 바라보았다. 종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눈빛이었다. 그가 관중형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데다가, 초원승의 천거로 들어왔다고는 하나, 그에 대한 이해가 깊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용호방에 이름을 올리기에 충분한 실력임을 입증하며, 당당히 신고식을 치렀다.
소습이 초휴를 힐끗 보더니 정주해에게 말했다.
“이만하면 되었다. 더 해봤자 망신만 당할 테니. 이번엔 네 꾀에 네가 넘어간 줄이나 알아라. 평소 수련에 더 정진토록 하고.”
사부의 꾸짖음에 정주해가 민망한 듯 억지웃음을 지었다.
“초 형의 실력이 너무 고강해서 제대로 맞붙었어도 제가 지는 것은 물론, 몸도 성치 못했을 겁니다. 이 정도 선에서 실력을 떠보길 잘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입만 살았구나. 돌아가서 제대로 혼내줄 테다!”
혼난다는 말에 찔끔하여 정주해가 목을 움츠렸다. 아마도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반면, 위구단은 의기양양하여 파안대소했다. 초휴가 이번에도 한 건 해내었다. 덕분에 위구단의 구겨졌던 체면도 적잖이 회복된 셈이니, 당연히 신이 날 수밖에.
초휴는 절대 단순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번 대결에서 초휴는 확실히 본때를 보여주었다. 해서 좌중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위구단의 체면도 확실히 세워주었다. 최근 그는 실력이 예전만 못한 데다, 은퇴도 얼마 남지 않은 처지였다. 한마디로 관중형당에서의 존재감이 바닥을 친 상태라는 말이었다. 조금 전에도 은백통이 대놓고 그를 모욕을 주지 않았던가.
물론 초휴가 잘난 게, 전적으로 위구단이 잘난 것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위구단은 그의 직속 상관으로서 적잖이 대리만족을 느꼈다.
위구단의 어깨에 부쩍 힘이 들어가자 은백통이 비아냥거렸다.
“뭐가 그리 신났는가? 하긴 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 순간을 실컷 즐기게나. 앞으로 나를 만나면 ‘대인’이라고 깍듯이 부르는 것도 잊지 말고.”
그리고 은백통의 시선은 여천호에게로 향했다.
“다음 대결에서 초휴를 이길 자신이 있느냐?”
“저자의 출수가 매섭고 사납긴 합니다. 힘이나 방어에서도 외강경의 최고봉에 이르렀고요. 그러나 제대로 맞붙는다면 힘과 방어만으로 되겠습니까. 그런 단순무식한 방법으로는 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여천호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은백통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에 살벌한 기운이 차올랐다.
“자신 있으면 되었다. 가서 놈을 제대로 혼내주거라. 위구단, 저 늙다리가 낭패스러워하는 꼬락서니를 감상해야겠다.”
여천호가 섬뜩한 미소로써 그리하겠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자신의 사부와 위구단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갈등의 뿌리가 깊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사부의 사연이 당장 그에게 중요할 건 없었다. 제대로 초휴에게 매운맛을 보여줘서, 자리를 가득 메운 형당 고수들의 인정을 받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제 여섯 명 가운데 세 명만 남았다. 지나친 혼전을 막기 위해, 이번에도 추첨이 이루어졌다. 뽑힌 두 명이 대결하고, 남은 한 명은 부전승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추첨 결과, 종평이 운 좋게도 부전승을 차지하고 초휴와 여천호가 맞붙게 되었다. 여천호가 초휴를 향해 기분 나쁘게 웃어 보이더니, 심지어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초휴도 질세라 그를 째려보았다. 그의 광폭한 성정은 초효덕과 겨룰 때, 감을 잡고도 남았다. 하긴 그런 강호인이 한둘이겠는가. 여천호보다 더한 자들도 얼마든지 있으니, 더러운 성질을 탓하기도 뭣했다. 다만 광폭하고 오만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경외심을 가질 줄은 알아야 한다는 게 초휴의 생각이었다.
대결에 앞서, 여천호가 초휴에게 도발해 왔다.
“어이, 형씨! 듣자니 용호방 이십 위권 안에 들었다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급 무사들 가운데 적수가 없을 거라고는 속단하지 말길 바라네. 혼자만 잘난 줄 알고 설치면 곤란하단 말이지. 이 세상에는 그대보다 잘난 인재들이 널리고 널렸어. 나서고 있지 않을 뿐,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란 말이야.”
“지금 자신이 그런 경우라고 말하는 건가?”
초휴가 흥분하는 대신 담담히 묻자 여천호는 코웃음만 쳤을 뿐, 대꾸도 안 했다. 물론 그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자기가 용호방 인재보다 뛰어나다는 말을 하려니 낯간지러웠다.
입가에 걸려있던 냉랭한 미소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의 만도가 초휴를 정면으로 겨누었다. 그리고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여천호의 몸이 초휴 앞에 나타났다.
찬란하기 그지없는 도망이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쏟아져 내리며 사나운 기염을 토했다. 비록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 여천호 본인도 잘 알았다. 제대로 맞붙으면 초휴를 당해내기 힘들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대금강륜인의 엄청난 위력은 그도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믿는 것은 자신의 빠른 신법과 도법이었다. 하지만 그가 쾌도를 내리친 순간, 초휴는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초휴가 기다렸다는 듯이 한 손으로 내박인을 취하자, 옅은 청색 강기가 발밑에서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신형이 사라졌다. 장거리 이동 시에는 내박인의 내력 소모가 너무 커서 비효율적이지만, 이처럼 근접한 거리에서의 전투에서는 폭발적인 속도가 크게 한몫했다.
여천호는 순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초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등 뒤에서 짙은 살기를 머금은 도강이 덮쳐오는 게 느껴졌다. 어느샌가 등 뒤에 나타난 초휴가 사정없이 홍수도를 내리치니, 혈련신강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거기에 더해 물샐 틈 없이 촘촘한 도세가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빠르게 이어졌다.
여천호는 몸을 틀며 수중의 만도에서 무수한 도영을 터뜨려냈다. 참풍 초식의 가공할 속도는 초휴의 황혼세우 도법을 능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천호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그는 신법과 도법의 속도에나 능할 뿐, 내력의 수련과 강기는 지극히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지금 초휴가 발출한 강기는 무려 혈련신강이다. 이는 지난날 혈하파의 비전 강기로서, 백호당의 백호살신강 및 순양도문의 순양강기와도 맞먹을 강력한 위력을 지녔다.
어느덧 홍수도의 핏빛 도영이 우세를 점하더니, 여천호를 연신 뒷걸음질하게 했다.
그는 제대로 반격할 정신도 없어 보였다. 초휴를 바라보는 중인들의 시선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관사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까 초휴가 정주해를 상대할 당시 보여주었던 힘에 경악했다면, 지금은 그가 펼치는 실력에 경악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낄 정도였다.
사실 초휴의 가공할 힘에 놀랐던 건 사실이지만, 그 놀라움은 얼마 가지 않았다. 장내에는 천인합일의 고수만도 여럿이고, 관사우는 무려 무도진단의 종사급 초절정 고수였다. 설마 그들이 초휴만한 힘을 처음 겪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지금 그가 보이는 엄청난 신법과 도세라면 얘기가 달랐다. 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휴에게 아무런 약점도 찾아낼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무사가 싸울 때, 대개는 자신의 강점으로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초휴와 같이 가공할 힘에 완벽한 방어력을 갖춘 데다, 신법 및 출수의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자를 어찌 당해내겠는가. 누구나 이런 무사와 맞닥뜨리면 절망감과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왜냐고? 도무지 어찌해볼 방법이 없으니 자포자기하는 것이다.
좌중의 사람들은 몰랐지만, 이것이 초휴가 가진 능력의 전부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이혼대법을 수련해서 철옹성과 같은 정신력까지 갖춘 상태였다. 상대가 제아무리 교묘한 정신 공격을 감행해도 초휴를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지금 여천호는 뼈저리게 현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대결을 시작할 때는 그도 나름 구상한 바가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빠른 신법과 도법으로 상대가 반격할 기회를 주지 않고 제압하자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정반대였다.
그래도 일단 칼을 빼 들었으니, 두부라도 썰어야 할 판이었다. 여천호가 신법의 속도를 극한치까지 올리자 물샐 틈 없이 빠르게 이어지는 홍수도의 도세로도 그를 잡아둘 수가 없었다.
초휴의 도세를 쳐내고 그의 앞까지 바짝 다가선 여천호의 만도에서 엄청난 광망이 터져 나왔다. 그 광망들은 하나의 선으로 응집되더니,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을 터뜨리며 초휴를 덮쳐왔다. 이른바 빛의 속도라는 게 어떤 건지를 여실히 보여준 일도(一刀)였다.
순간 초휴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상대의 목석같은 눈빛에 여천호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 섬뜩한 눈가 주위로 검은 흑무까지 피어오르며 죽음과 원한만이 남았다. 곧이어 지옥의 문이 열리면서 오랫동안 굶주렸던 백귀(百鬼)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위구단이 했던 약속이 초휴의 귓전을 맴돌았다.
‘여천호를 불구로 만들면 채경승이 맡은 두 개의 주부를 네게 주마.’
위구단 같이 인색하고 박정한 자가 모처럼 후한 기회를 주었으니, 초휴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힘 조절에 들어간 아비마도(阿鼻魔刀)가 칠흑처럼 검은 도망을 발출해 모든 생명체를 삼킨 순간, 여천호의 도망이 산산이 와해 되었다. 심지어 수중의 보급(寶級) 만도마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여러 조각이 나버렸다!
사실 홍수도가 바짝 들이닥치기 전에, 여천호는 최대 속도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초휴의 도기는 이미 그의 체내로 유입되었다. 그 여파로 여천호는 입에서 피를 토했지만 초휴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내 내박인을 결인하여 빛의 속도로 여천호에게 접근한 그는, 상대의 가슴을 향해 대금강륜인을 내질렀다.
이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초휴는 압도적으로 여천호를 패배시켰고 이번 승부에 이견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공세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난 대결에서 여천호가 그랬던 것처럼,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것일까.
은백통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감히 저놈이 내 눈앞에서 방자하게 굴어? 죽고 싶어 환장했나!’
그는 초휴를 저지하고 혼내주려고 출수를 시도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위구단이 허공에다 용의 발톱 형상으로 강력한 강기를 응집시켜서, 은백통을 향해 후려쳤다.
은백통은 기겁하여 뒤로 물러나 노발대발했다.
“위구단! 당신 미쳤어? 지금 비무 자리에서 사람을 죽이겠다는 거야?”
“당신 제자가 아직 패배를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뭐가 급해서 나서려는가? 아직 대결은 진행 중이란 말이네. 보아하니 당신 제자가 안간힘을 쓰는 꼴이, 끝까지 버텨 볼 모양인데?”
사실 위구단의 이번 일격이 다소 심하긴 했지만, 좌중의 그 누구도 문제 삼지는 않았다. 지난 대결에서 은백통은 여천호가 초효덕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저지하려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당시 은백통 사제의 처신을 모두가 똑똑히 보았으니, 이런 냉정한 반응이 나오는 게 놀랍지 않았다.
관사우도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관망적인 태도였다. 게다가 관중형당은 여타의 무림 대파나 세가와는 달리, 서로 간의 관계가 그리 끈끈하지도 않다. 친선 차원에서 무예를 겨루는 장이기는 하나, 목숨만 빼앗지 않으면 세세한 건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위구단의 말마따나 아직 여천호의 목숨이 붙어있는데, 급하게 굴 일이 무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