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밤길
초휴는 기껏해야 동제와 관중형당의 경계지역에만 가 보았을 뿐이다. 동제 안쪽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제 특유의 번화한 모습은 관중형당의 번화함과는 확연히 달랐다.
관중형당이 번화한 이유는 삼국을 오가는 객상들의 출입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제는 나라 자체가 워낙 땅이 넓고 생산 물자가 풍부하니, 자연스레 그리된 것이었다. 예컨대 규모가 큰 성 하나가 관중 지역에 있는 소규모 성의 몇 배, 심지어 몇 십 배에 달하는 넓이였다. 그러니 그곳에 거주하거나 오가는 상인, 무사들의 수가 얼마나 많겠는가.
신병대회는 두 달 후에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초휴의 속도로는 한 달이면 당도할 거리인지라, 그는 도중에 먹을 것 다 먹고 구경할 것 구경해 가면서 느긋한 여정을 즐겼다. 그는 사치와 향락은 즐기지 않았지만, 먹는 쪽으로는 흥미가 많아서 나름 한눈팔 거리가 많았다. 평소 수련할 때는 대충 끼니를 때우거나 거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여건도 허락되고 타국의 이색적인 산해진미도 지천으로 널렸으니, 한껏 식도락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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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름의 여정 끝에 초휴는 드디어 경호산장으로 통하는 오솔길에 접어들었다. 그때 갑작스레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휴는 검은 쇠 삿갓과 검은 관중형당 무사복 차림으로 밤의 장막과 한 몸이 되어, 비 내리는 밤길을 걸었다. 삿갓은 원래 청룡회의 것이지만, 버리자니 아까워서 용 문양만 지우고 쓰고 다녔다.
삿갓이 낮에는 햇빛을 가려주고, 우천 시에는······, 사실 필요가 없었다.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옅은 강기막이 빗방울을 튕겨내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파리도 낙상하고 빗방울도 스며들 수 없는 일종의 금속을 두른 몸이라고 할까. 이는 강기 활용의 소소한 일례로서, 천인합일의 고수들이라면 예외 없이 가능했다. 다만 천인합일 이하로는 단순히 내력의 축적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력강기를 강력하게 장악할 수 있어야 했다.
초휴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늦은 시각인 데다 비까지 내려 달빛도 없이 컴컴했다. 비 오는 밤길을 무리하게 재촉해야 할 여정은 아니었다. 해서 눈에 보이는, 길가 아무 객잔이나 들어갔다. 이렇게 길가에 세워진 소규모 객잔들은 대부분 뜨내기 행상들을 위한 곳이 많았다. 대개 아래층은 식사, 위층은 투숙을 위한 공간이었다. 평소에는 손님이 많지 않은데, 오늘따라 좁은 공간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이 밤길을 가다가 비를 피하려고 들어온 자들 같았다.
초휴가 들어서자 객잔의 점원이 쪼르르 달려와 말했다.
“저기 안쪽으로 드시지요. 자리를 마련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자리가 만석인 것을 점원도 알고 있었다. 그나마 사인용 탁자 두 개를 여섯 명이 차지하고 있는 걸 발견한 점원은 겸연쩍게 웃으며 양해를 구했다.
“손님들, 객지에 나오면 다들 고생이니, 함께 좀 끼어 앉으면 안 될까요?”
그 여섯 무사는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하고 등에는 도검을 차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일년 내내 강호를 굴러다니는 낭인들이 분명했다.
점원의 말에 그중 유난히 인상이 험상궂은 자가 코웃음을 쳤다.
“끼어 앉긴 뭘 끼어 앉아? 애당초 네놈들이 객잔을 코딱지만 하게 만들어서 이 꼴이잖아! 누구더러 이래라저래라야?”
그 흉악한 기세에 점원은 움찔하여 말문이 막혔다.
그때 그들 중 연장자인 중년 무사가 초휴를 보고 낯빛이 변하더니, 황급히 일행들을 잡아당겨 빈자리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초휴에게 호의적으로 말했다.
“암, 객지에서야 다들 고생인데, 서로 도와야지. 우리는 일행이라 붙어 앉아도 상관없다오. 자자, 여기에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어서 앉으시오.”
그러자 점원을 윽박질렀던 흉악한 인상의 사내가 불만을 터뜨렸다.
“형님, 뭐 하는 짓이오? 우리가 왜 저자한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데?”
그 사내가 보기에 초휴는 특별한 구석이 없어 보였다. 차림새도 평범하고 나이도 젊으니, 강호초출 햇병아리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형님이 절절매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이에 중년 무사가 목소리를 한껏 낮춰 그를 꾸짖었다.
“닥쳐라, 이 멍청한 놈아! 저 사람의 의복과 신발을 보라고. 빗방울이 조금이라도 묻었는가 말이다!”
중년 무사의 지적에 모두가 정신이 번쩍 났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저 젊은이는 우산도 없다. 그런데도 밖에서 방금 들어온 몸이 조금도 젖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명 강기를 발출할 능력이 되는 고수일 터!
고수들 사이에서는 우습게 취급받는 선천경도 막상 강호에서는 흔하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니 외강경의 존재는 추앙과 흠모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터였다.
흉악한 인상의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형님이 상대의 경지를 진작에 파악해서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까불다가 횡액을 당할 뻔했다. 한편으로는 초휴가 재수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외강경이면 당당하게 기세를 드러내고 다닐 것이지, 누구 엿 먹이자고 숨기고 다닌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기세를 제어하지 못하고 드러내는, 선천경 이하 수준의 무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치였다. 특별한 일이 없는 평소에, 굳이 기세를 과시하며 다닐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내 경지가 이러하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것도 아니고. 그건 제발 나를 좀 봐주십사 사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건 정말 자신만만한 고수, 아니면 우매한 관종이나 할 행동이었다.
자리를 두고 대화가 오간 탓에, 다른 탁자 손님들의 시선도 자연히 초휴를 향했다.
하지만 다들 한번 쳐다보고는 말았다. 지금 동제에는 평소에도 오가는 고수들이 적지 않은 데다, 최근 들어 경호산장에서 열릴 신병대회로 인해 서초, 북연 등지에서도 젊은 고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러니 초휴같이 젊은 고수가 여기 나타난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객잔이 위치한 오솔길이 경호산장으로 통하는 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어쨌거나 한시름 놓게 된 점원이 초휴에게 물었다.
“손님, 뭘 드시겠습니까?”
“여기에 뭐가 있소?”
“세 시진이나 걸려 고아낸 특제 당나귀고기가 유명합니다. 그리고 여러 볶음 반찬이 있습죠.”
“그럼 당나귀고기 세 근하고, 맛있는 것들로 여러 가지 주시오. 황주도 한 단지 내오고.”
이윽고 황주가 먼저 나오고, 다른 음식들도 등장했다. 맛을 보니 나귀고기는 먹을 만했고, 다른 음식들은 그저 평범했다. 하지만 이처럼 작은 객잔에 무슨 큰 욕심을 부리겠는가.
초휴는 이만한 것도 다행이라 여기며, 맛나게 먹기 시작했다. 그가 절반 정도 먹었을 때, 객잔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여러 사람이 들이닥쳐 좌중의 눈길을 끌었다.
그중 한 공자와 한 소저가 그들의 중심에 있었다. 공자는 준수한 용모에 화려한 비단 도포 차림이고, 소저는 흰색 궁장(宮裝) 차림의 귀티 나는 미인이었는데, 둘 다 이런 누추한 객잔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 뒤로는 나이 지긋한 네 사람이 따르고 있었는데, 선천경 둘과 내강경 둘이었다. 두 남녀의 호위무사 또는 문객의 신분들로 보였다. 다들 기진맥진한 기색으로 봐서, 아무래도 연일 먼 길을 걸어온 듯했다.
객잔에 빈자리가 없자, 젊은 공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다 초휴 혼자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화색이 돌았다. 해서 뭐라고 말을 건네려는데, 뒤에 있던 내강경 무사가 그를 제지하더니 귓가에 대고 한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초휴에 대한 언질을 준 모양이었다. 그러자 공자의 시선이 그 옆으로 옮겨가더니, 품속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어 초휴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무사들에게 내밀었다.
“여러분, 여인네를 데리고 다니자니 쉽지가 않구려. 송구하오나 자리 좀 양보해 주시오. 그대들의 밥값은 내가 대신 치르겠소이다.”
송구하다는 말과는 달리, 공자의 어조는 고압적이었다. 이에 인상이 흉악한 무사의 표정이 더욱더 흉하게 일그러졌다. 밥 좀 먹을라치면 번번이 자리를 양보하라는 자가 나서니, 짜증이 날 만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중년의 사내가 그의 옷깃을 잡아 제지하더니, 공자에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그리합시다. 여기 앉으시지요.”
그러고는 또 한 번 한껏 목소리를 낮춰 꾸짖었다.
“셋째야, 집을 나섰으면 늘 조심해야지. 척 보면 모르겠느냐? 저자는 명문세가 출신 공자야. 여인과 호위까지 거느린 걸 보면 금방 알아야지. 저런 자를 건드리면 큰일 난다고.”
그들 여섯 명은 다른 탁자에 한두 개씩, 비어있던 자리에 흩어져서 앉았다. 길을 나선 순간, 소속 없는 낭인 무사들은 동질감에 의한 암묵적 단합심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번듯해 보이는 종문이나 세가 출신의 경우는, 이들의 적개심을 유발하기가 더 쉬웠다. 아차 하는 순간에 공동의 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들을 향한 손님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아까 초휴의 경우는 본인의 태도에 문제가 없었다.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했던 것도 본인이 아니라 점원의 요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실력도 별로일 거 같은 공자가 건방지지 않은가.
공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점원에게 명령하다시피 말했다.
“여기서 제일 좋은 것들을 내와라. 서둘러야 할 것이야. 빨리 먹고 또 길을 떠나야 하니까.”
점원이 물러가자 공자가 손수건을 꺼내 젓가락을 깔끔이 닦았다.
그는 그것을 여인에게 건네며 달래듯이 말했다.
“표매(表妹, 사촌 누이동생), 촌구석 객잔은 죄다 이 모양이니 한심해도 어쩔 도리 없지. 좀 있다가 경호산장에 도착하면 모든 게 좋아질 테니 조금만 참아.”
표매라 불린 소저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그런 말씀 마세요. 이렇게 상황이 긴박한데, 제가 어떻게 철없는 생각을 하겠어요.”
그들과 가까이 있던 초휴의 귀에도 이들의 대화가 들렸다.
‘이들도 신병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경호산장으로 가는 길인가? 하지만 공자의 실력은 기껏해야 선천경 초입이다. 대회에 참가해봐야 웃음거리나 될 실력인데?’
바로 그때 밖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판국에 먹을 게 입으로 들어가냐? 장초한(張楚寒)! 경호산장에는 가지 못할 테니, 당장 물건이나 내놓아라. 그러면 우리 방주께서 너희 두 연놈을 경호산장으로 보내주실지도 모르지.”
그 말과 거의 동시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객잔 대문이 부서져 나갔다. 그리고 청색 경장을 하고 흉측한 도검을 든 무사들 십여 명이 우당탕 몰려들어 공자와 소저를 에워쌌다.
“장초한(張楚寒), 장벽녕(張碧寧)! 쥐새끼처럼 잘도 달아나는구나. 우리 방주를 속이고 살아남길 바랐더냐? 인정머리라곤 쥐뿔도 없는 연놈 같으니. 자기 일족이야 어찌 되든, 물건만 챙겨 내빼기만 급급해!”
그러자 장초한이라 불린 공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우리 장씨 가문을 어떻게 했소?”
“몰라서 묻느냐? 한심한 놈. 우리 천랑방(天狼幇)을 속인 대가가 어떤 걸지를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냔 말이다.”
우두머리 격인 무사의 ‘천랑방’이라는 말에 객잔 내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천랑방은 동제 임성군(臨城郡)에 소재한 대형 방파다. 현지에서 강한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사실은 굶주린 승냥이 떼를 방불케 하는 광폭한 손속으로 더 유명했다. 일단 그들과 척을 졌다가는 어느 종문을 막론하고,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물어뜯길 각오를 해야 했다. 그 때문에 천랑방보다 세력이 강한 종문들조차 섣불리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똥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