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나를 불쾌하게 만든 대가
천랑방은 굶주린 승냥이 같은 광폭한 손속 덕분에 거침없이 세력을 키워나가 오늘날 임성군 밖에까지 요란한 명성을 떨치기에 이른 것이다. 좌중의 사람들도 당연히 천랑방에 대해 잘 알기에, 장씨 남매를 바라보는 눈에 동정의 눈빛이 어렸다.
천랑방에게 단단히 찍혔다면, 그다음 순서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조금 전 장초한의 태도가 재수 없긴 했지만, 이제 곧 죽을 사람한테 그런 걸 따져 뭣 하겠는가. 일단 천랑방 우두머리의 실력은 외강경으로 보였고, 나머지는 선천경과 내강경이 섞여 있었다. 실력으로 보나 머릿수로 보나, 이건 이미 끝난 승부나 다름없었다.
그때 장초한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하더니, 머리를 숙여 장벽녕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장벽녕을 옆에 앉아있던 초휴 쪽으로 와락 밀치더니, 자신은 객잔 뒷문을 향해 냅다 달아나는 게 아닌가.
이 막장과도 같은 광경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호 생활을 하면서 별의별 파렴치한들을 다 봤지만, 저런 놈은 난생처음이다. 여인을 칼받이로 내세우고 자기만 도망갈 작정을 하다니!
객잔 사람들의 대다수가 밑바닥 출신의 말단 무사들이지만, 이런 상황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삽시간에 배신당하고 버림받은 장벽녕은 오죽했을까. 본의 아니게 초휴에게 몸을 기대게 된 여인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두 눈이 벌게져서 진주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가련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초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소리 없이 흐느꼈다. 대놓고 구해달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누가 그녀의 뜻을 모르겠는가.
그녀의 용모는 어디에 내어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선녀처럼 아리따운 여인이 절체절명의 위험에 빠져 애원하다시피 하는데, 사내라면 마음이 흔들리고 보호 본능이 싹트고도 남을 터였다. 하지만 초휴는 그녀를 유령 취급하며 묵묵히 식사만 할 뿐이었다.
이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 건 천랑방 우두머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결국 실소를 터뜨리며 욕을 퍼부었다.
“미친놈! 감히 우리 앞에서 잔꾀를 부려? 같잖지도 않은 놈이 지랄도 풍년일세.”
장초한이 도망치긴 했으나 천랑방은 개의치 않았다. 제까짓 놈이 뛰어봤자 벼룩이니까. 그래도 당장 성가시게 된 건 사실이라 우두머리는 화풀이라도 하듯, 손님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구경거리라도 났어? 뭘 쳐다봐! 다들 우리와 한번 해보겠다는 거야 뭐야? 그만 처먹고 꺼지지 못해!”
객잔 내 무사들은 차마 가련한 여인을 그냥 두고, 발길을 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없던 의협심이 생겨날 판이라, 미인을 구하는 영웅 행세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천랑방이 연신 눈을 부릅뜨고 째려보자, 그 마음도 식어버렸다.
강호 밑바닥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선천경도 하나 없이, 악명 자자한 천랑방에 무슨 수로 맞서겠는가. 가진 거라곤 달랑 목숨 하나뿐인데, 괜히 끼어들었다가 그마저 날려버리면 그 손해는 영영 되돌릴 수 없지 않은가.
사람이 살다 보면 피가 끓어올라서 광분해야 할 때도 있는 법!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분노를 누른 채 순순히 양쪽으로 물러나더니, 썰물처럼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계산대 아래 숨어있던 객잔의 주인은 울고 싶은 표정이 되었다.
그 많은 사람이 전부 다 밥값을 안 내고 가버렸지 않은가!
물론 끝까지 꿋꿋이 남아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긴 했다. 객잔이 텅텅 비고 나니, 그 먹성 좋은 모습은 눈에 두드러졌다. 그리고 그 모습은 천랑방 우두머리가 시비를 걸기에도 딱 좋았다.
“애송아! 너도 그만 처먹고 꺼지지 그러냐? 남의 일에 낄 생각은 말고.”
기세를 갈무리한 초휴는, 실력 약한 무사들의 눈에는 평범한 무사로 보였다.
하지만 외강경인 우두머리는 초휴의 외강경급 기세를 얼핏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초휴의 존재를 껄끄럽게 여기진 않았다. 자기편이 열 명도 넘는데, 외강경 하나야 인해전술로 밀어붙여도 충분할 터였다.
그들은 늘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외강경 아니라 삼화취정이라 해도, 겁낼 그들이 아니었다. 하긴 이처럼 앞뒤 안 가리고 죽자 살자 달려드는 극단적인 기질과 똥배짱이 있으니, 그 짧은 시간에 악명이 자자한 방파로 성장할 수 있었다.
초휴가 술잔에 담긴 황주 한 모금을 마시며 담담히 말했다.
“나는 원래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오.”
“하하하! 그거 잘 되었군.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 천랑방의 일에 끼어들면 좋은 꼴을 볼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초휴의 그다음 말이 예상 밖으로 엉뚱했다.
“내가 남의 일에 상관 않는 주의이긴 한데, 먹고 마실 때 방해받는 건 딱 질색이거든. 그리고 네놈들은 이미 날 방해했단 말이지. 그래서 지금 내 기분이 매우 불쾌하군그래.”
그 말에 우두머리의 낯빛이 싹 변하더니 침을 내뱉었다.
“잘 나가다가 지랄이군. 지금 저 여자를 위해 나서주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쓰레기 같은 오라비도 버리고 간 년을, 우리와 대적하면서까지 지켜주겠다는 거지? 죽어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두머리가 초휴를 향해 사정없이 일도를 내질렀다. 승냥이 이빨처럼 삐죽삐죽 날이 선 칼끝에서 적홍색 혈망이 터져 나왔는데, 그 기세가 실로 범상치 않았다. 천랑방이 임성군의 맹주로 자리매김한 것은 죽음도 불사하는 광기만으로 가능했던 게 아니었다. 천랑방 방주의 호탕하고 대범한 방파 운영 방식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대개의 방파들은 일반 종문에 비해 귀한 것을 독점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마련이다. 해서 강력한 무공은 소수의 인원만이 장악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유독 천랑방 방주만은 그렇지가 않아서, 자신의 핵심 무공을 서슴없이 방파의 모든 구성원과 공유했다. 따라서 천랑방 무사들은 하나같이 동일한 병기를 사용했고, 이로 인한 응집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천랑방 우두머리의 가공할 일도가 날아오자, 장벽녕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초휴의 등 뒤로 숨었다. 그러나 초휴는 일어나지도 않고, 그저 한 손을 내뻗어서 막강한 강기를 터뜨려냈다. 이 강기에 극대화된 혼원의 힘이 실렸음은 물론이다. 현재의 초휴에게 대적할 수 있는 상대는 두 부류뿐이다. 적어도 삼화취정의 고수이거나 용호방 준걸이거나.
천랑방 우두머리가 외강경이긴 하나, 안타깝게도 위의 두 가지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대혼원공을 익힌 초휴의 웅혼한 진기에 대항할 만한 자는 동급에서 거의 없다시피 했고, 우두머리도 예외는 아닌지라 곧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강기의 폭발음과 함께 초휴가 상대의 흉측한 칼날을 힘주어 잡아챘다. 그러자 족히 삼급에 달할 병기가 그의 손안에서 무력하게 부서졌다. 곧이어 우두머리는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초휴 쪽으로 몸이 끌려가는 걸 느꼈다. 이번엔 대기자금나수가 활약할 차례였다.
이 무공에 맞서려면 상대의 실력이 초휴를 능가해야 함은 물론, 무엇보다도 외공의 강도가 받쳐줘야 했다. 둘 다 아닌 상대에게 있어, 이 무공은 곧 사형을 선고받는 셈이었다.
천랑방 무사들은 우두머리가 초휴에게 잡아끌렸다가, 다시 내던져지는 광경만 보았다.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은 아무도 똑똑히 보지 못했다. 그런데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허공에서 우두머리의 몸이 머리와 분리가 된 채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선혈이 분수처럼 터져 나오면서 사방으로 혈우가 쏟아져 내렸다. 그제야 다들 알았다. 그 짧은 순간에 우두머리의 모가지가 초휴의 손아귀에 끊어졌음을 말이다.
너무도 허무하고 무기력한 죽음이었다. 초휴는 닭 모가지 비틀 듯, 그를 두 동강 내 버렸다. 우두머리의 몸과 수급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자, 그 소리가 자신의 명치를 내리친 것처럼 모두의 숨이 턱 막혀왔다. 얼굴은 너나없이 공포로 퍼렇게 질려있었다.
임성군의 맹주로 군림해온 천랑방이 언제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가. 안하무인의 세월이 길었던 만큼, 미친개 같이 기고만장하여 눈에 뵈는 게 없이 날뛰어온 그들이다. 그들은 생사의 경계에 서 있는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실감한 것이다.
그동안 죽음이 두렵지 않은 척 허세를 부리며 살아왔지만, 그들도 사람인데 속마음까지 그럴 리가 있을까. 어찌 보면 뭉쳐서 개차반으로 살아온 이유가, 사실은 죽음이 두려워서였을 수도 있었다. 낯선 이가 다가오면 지레 겁을 먹고 마구 짖어대는 개 말이다. 미친 듯 짖는 개는 정작 사람을 물지 않는다. 반면, 조용히 빈틈을 노리고 있다가 불시에 무는 개는 절대 미리 짖지 않는다.
저들 마음속에는 약속이나 한 듯, 이 말이 자리 잡았다.
‘튀자!’
한 방에 우두머리의 모가지를 날려버리는 상대에 맞서서 죽음을 불사하고 싸울 용기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나는 먹고 마시는 걸 방해받으면, 몹시 기분이 나빠진다고 말이다.”
초휴가 가볍게 한 손을 휘두르자, 열 줄기가 넘는 혈련강기가 발출되어 천랑방 무사들을 날려버렸다. ‘퍽, 퍽’하는 둔탁한 소리가 잇달아 들리며 무사들은 비명조차 못 지르고 바닥에 쓰러져갔다. 그들이 죄다 쓰러진 뒤에 구경꾼들이 보니, 이마에 예외 없이 대젓가락이 하나씩 꽂혀있었다. 그 구멍으로 뻘겋게 물든 뇌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장내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 순간 만큼은 시간도 멈춰버린 것 같았다.
강호 생활을 하면 살인을 하는 것도, 살인을 보는 것도 밥 먹듯 흔하게 겪는다. 하지만 방금 초휴의 출수는, 그들이 경험했던 수준이 아니었다. 평범한 젓가락을 강기로 싸서, 폭발적 위력을 실어 발출하는 실력이라니! 대체 강기가 얼마나 강하면 저런 출수가 가능하단 말인가.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특히나 아까 초휴에게 자리를 뺏겼다고 입이 댓 발 나왔던 무사는 자기도 모르게 위아래 이빨이 딱딱 부딪혀오기 시작했다. 저런 자의 손아귀에 죽을 뻔했다가 살아남았으니,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아까 형님의 눈치가 빨랐으니 망정이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 하고 끝까지 날뛰었으면, 지금 자신도 저 시체 더미 속에 한 자리 차지하고 누워있을 게 아닌가.
이때 초휴의 뒤에 있던 장벽녕은, 이 참담한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가 방패막이로 삼았던 자가 상대를 닭 모가지 비틀 듯, 끝장내는 가공할 실력의 고수였다니! 그녀가 천랑방의 흉악무도함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우두머리는 초휴에게 제대로 반격조차 못 하고 저 꼴이 나지 않았는가.
장벽녕이 여전히 청순가련한 표정으로 초휴에게 감사의 예를 올렸다.
“소녀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해와 같은 은혜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훗날 두고두고 갚아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