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미인은 속임수에 능하다
말을 마친 장벽녕이 수하들을 거느리고 떠나려는데, 돌연 초휴가 그 앞을 막고 섰다.
“잠깐!”
“무슨 일이신지요?”
장벽녕이 흠칫 놀라 멈춰 섰다.
“훗날까지 갈 필요가 뭐 있나. 은혜를 갚고 싶으면 지금 갚으시오.”
그녀의 얼굴에 순간 홍조가 떠올랐다.
“공자님 말씀은······, 저더러 어떻게 갚으라는 말씀이신지······?”
이런 내용의 남녀 간 대화는, 옆에서 듣는 이들의 마음에 모종의 편견을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객잔 밖에서 지켜보던 구경꾼들은 약속이나 한 듯,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저 짐승 같은 놈!’
보아하니 여인을 구한 자도 좋은 놈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다음 이어진 초휴의 말은 그들의 예상을 다소 빗나간 것이었다.
“대관절 무슨 물건을 지녔길래 천랑방에 쫓기는 것이오? 나도 흥미가 생겨서 묻는 거요. 자고로 능력 밖의 보물은 화근이 된다고 하였소. 그 물건을 지니고 다녀 봤자 계속 시달리게 될 텐데, 차라리 나에게 넘기는 게 어떻겠소? 내가 대신 보관해 드릴 테니까.”
순간 장벽녕이 멍한 표정을 짓더니, 처연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물건이 화근이 된 건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 장가가 풍비박산 났으니까요. 마음 같아선 당장 그것을 공자께 드리고 싶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아까 사라진 제 오라비 수중에 있답니다.”
“예전에 아리따운 한 여자가 말했었지. 미인은 속임수에 능하다고. 그 말이 맞는 듯하오. 그대가 이처럼 아름다우니, 거짓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거침없이 읊는구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초휴는 장벽녕에게 바짝 다가가 부드러운 뺨에 손을 갖다 댔다. 그녀는 흠칫 놀라 온몸이 경직되었다. 그 바람에 긴장한 건, 장가 호위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초휴의 기세가 위압적이니, 감히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뺨에 댔던 그의 손이 그녀의 얼굴 윤곽선을 타고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졌다. 마침내 눈같이 하얀 목덜미에까지 이르자, 다들 그 손이 계속 아래로 향하리라고 생각했다. 그게 남녀 간에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일 테니까.
하지만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일이 벌어졌다. 초휴가 손에 불끈 힘을 주더니, 우악스럽게 목을 움켜잡는 게 아닌가. 갑작스럽게 숨통이 조여오자, 그녀의 얼굴이 터질 듯이 시뻘겋게 변하고 눈동자에 극한의 공포가 서렸다.
“이래도 버틸 테냐? 이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나 보지? 계속 나오지 않으면 이 여자의 숨통을 끊을 수도 있다.”
“그녀를 놔 줘!”
어디선가 노여움에 찬 절규가 들려왔다. 진작 달아난 줄 알았던 장초한이 잔뜩 노기를 머금은 채, 객잔 뒷문에 나타나서 초휴를 노려보았다. 뜻밖의 반전에 구경꾼들은 어이가 없었다.
누이를 내던지고 도망갈 땐 언제고, 어느새 돌아와 있었던 거지?
하지만 초휴는 예상했다는 듯,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과연 장 공자의 치정이 눈물겨울 정도로군. 남들이야 그대가 파렴치하게도 누이를 내버리고 도망갔다고 생각했겠지. 사실은 그대가 천랑방 놈들을 죄다 유인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혹은 일부라도 유인하려고 했겠지. 내 말이 틀렸나? 해서 호위무사들을 누이에게 남겨 두고 간 거였어. 본인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누이만은 안전하게 빠져나가게 해 주고 싶었던 거지. 그 용기와 정신은 가상하지만, 날 이용 해먹은 건 괘씸하군. 나는 남이 나를 이용해서 갖고 노는 꼴을 용서 못 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벽녕의 목을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이에 장초한이 기겁하여 소리쳤다.
“멈춰! 제발 그녀를 다치게 하지 말아줘! 뭐든지 해달라는 대로 할 테니, 우선 그 손부터 놓고 얘기하자고!”
초휴가 스르르 손에 힘을 풀며 말했다.
“일단 물건부터 넘겨라. 그리고 대관절 무슨 일인지, 전후 사정도 모두 털어놓고.”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 제발 내 누이한테는 손대지 말라고!”
이 누이를 위해서라면 장초한은 자신의 간, 심장, 아니 그보다 더한 거라도 죄다 내어줄 기세였다. 초휴의 말마따나 지극한 치정이라고 해야 할 터였다.
이때 객잔 밖의 시선들에 부담감을 느낀 초휴가 으름장을 놓았다.
“숨어서 남 구경하는 건 좋은 습관이 못 되오. 듣지 말아야 할 내용을 들으면 흉한 꼴을 당할 수도 있고 말이지. 뒷일은 나도 책임 못 진다는 걸 말해 두겠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숨어있던 일부 무사들이 몸서리를 치며 줄행랑을 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호기심을 못 이기고,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워낙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들릴 리가 없고 보는 것도 모호할 테니, 그들은 그냥 두기로 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 물건 얘기 좀 들어봅시다. 장검산장과는 무슨 상관인 거요?”
장초한이 장벽녕을 쳐다보자, 그녀의 낯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품속에서 비전함 하나를 꺼내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놀랄 만큼 마기(魔氣)가 짙은 영패 조각이 들어있었다.
그 영패 조각을 본 순간, 초휴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일전에 귀왕종 잔당에게서 습득한 영패 조각과 외양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만든 자재와 겉면의 부적 문양 및 도안만 봐도 두 조각이 원래 같은 종류의 영패였음이 분명했다. 다만 한 영패가 둘로 쪼개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귀왕종에 출처를 둔 영패 조각에 전혀 마기가 깃들지 않은 것과는 달리, 지금 이 조각에서는 당혹할 정도로 심한 마기가 감지되었다. 그 어떤 불순물과 여타의 기운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기 말이다.
장초한이 씁쓸한 표정으로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이 내력도 알 수 없는 조각 때문에 우리 장가가 멸문지화까지 당했소. 원래 이 조각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비전함에서 내가 발견한 것이요. 워낙 마기가 짙어, 한눈에 보기에도 상서로운 물건 같아 보이진 않더이다. 물론 범상한 물건 같지도 않았고. 해서 견식이 넓은 진법사에게 이를 보이고 가르침을 청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진법사는 시간만 날리고,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오. 그러는 동안 이 조각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고,급기야 백호당의 한 타주가 찾아와서 내놓을 것을 요구했지.”
“우리 장가가 임성군에서야 한가락 하지만, 사령 중 하나인 백호당한테야 비교나 되겠소. 해서 우리는 순순히 이것을 넘겨주려 했소. 하지만 그 타주가 청룡회와 싸우다가 살해당하고 말았소. 그래서 흐지부지 없던 일로 되는 듯했지. 그러나 진법사의 입을 막지 못한 게 화근이었소. 그자가 조각에 대해 떠벌리는 바람에 천랑방도 알게 된 거요. 천랑방, 그자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놈들인지는 당신도 봐서 알 겁니다. 이 조각이 무엇에 쓰이는 건지 모르는 건, 저들도 같소이다. 다만 백호당에서 탐을 낼 정도라면, 분명 대단한 물건일 거라고 넘겨짚은 것이지. 그래서 천랑방도 이걸 내놓으라고 채근을 시작했소.”
“바깥에서는 이 물건이 한 개밖에 없는 줄 알고 있으니, 나도 천랑방에 하나만 넘겨주었소. 그런데 후에 천랑방이 어쩌다 장검산장과 줄이 닿았는지는 몰라도, 그 조각을 장검산장에 넘겼다더군. 그 대가로 장검산장에서 많은 혜택을 얻어낸 모양이오. 지금 바깥사람들이 한창 떠들어대는 신병대회에서 쓰이게 될 주요 자재가, 바로 우리 수중에서 나간 그 조각인 셈이오.”
이로써 초휴는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는 줄곧 신병대회가 어쩌다 기획된 것인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모든 게 초휴 자신과 연관되어 있지 않은가. 장초한이 언급한 백호당 타주는 일전에 자기가 속여서 끌어낸 그 자임이 분명했다. 원본 줄거리에서는 분명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해서 성공적으로 영패 조각을 확보했을 테고, 당연히 천랑방과 장검산장이 개입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주요 자재가 없는데 신병대회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러나 초휴가 게임 속으로 뛰어든 바람에 백호당 타주가 천죄 타주에게 살해당하는 큰 변화가 생겼고, 거기에서부터 소소한 변화들이 파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 일련의 사건들은 초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초휴의 심경은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원본 줄거리에 연쇄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다는 강점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그의 실력이 증강될수록 접촉하는 이들도 많아질 테고, 자신으로 인한 변화도 점점 더 늘어날 텐데.
하지만 우울함은 잠시 눌러둔 초휴가 웃을 듯 말 듯, 장초한을 바라보며 확인에 들어갔다.
“내 짐작대로라면 당신도 장검산장이 신병대회를 기획하는 것을 들었을 테고, 자기 수중의 물건이 진귀한 보물임도 알았을 테지. 해서 천랑방이 했던 것처럼 남은 하나를 장검산장에 넘기는 대가로 다른 이익을 취하려 했겠지. 그러다가 이 계획이 밖으로 새어 나갔고. 처음부터 두 개를 다 넘기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천랑방이 열받아서 일을 벌인 거겠지. 내 이야기가 맞소?”
장초한은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초휴의 짐작이 얼추 맞은 셈이다. 장검산장에 조각을 넘겨준 대가를 천랑방이 톡톡히 받아내자, 장가는 뒤늦게나마 배가 몹시 아팠다. 오대검파 중 하나인 장검산장 입장에서야, 그 대가가 새 발의 피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장가에 있어서는 자신들이 수백년간 쌓아온 재산보다도 많은 액수였다. 그러니 남 좋은 일만 시킬 수는 없었다. 같은 물건으로 천랑방이 했던 일을 장가라고 해서 못할 이유가 있을까.
초휴에게 저 조각을 뺏긴다고 생각하니, 장초한의 가슴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이 물건 때문에 가문이 풍비박산이 났건만, 정작 물건도 날아가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초휴를 이용해 천랑방을 제거할 때만 해도, 신의 한 수라며 자신의 기지에 흐뭇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승냥이, 아니 맹호를 끌어들인 셈이 되어버렸다. 억울한 마음에 장초한이 뭐라고 한마디 하려 들자, 장벽녕이 그의 손을 꾹 눌러 제지했다.
장벽녕의 시선이 초휴에게 잠시 머무는가 싶더니, 순간적으로 눈빛에 변화가 일었다. 그녀는 장초한을 잡아 일으키며 여전히 청순가련한 얼굴로 초휴에게 말했다.
“공자님, 물건을 드렸으니, 저희는 가봐도 되겠지요?”
초휴가 번쩍 고개를 들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답했다.
“아까도 내가 말했지. 미인일수록 속임수에 능하다고. 애석하게도 그대의 연기력은 별로 좋지가 못하구려. 방금 그대가 다 본 듯한데, 내 짐작이 틀렸소?”
뜬금없는 초휴의 말에 그녀는 멈칫하더니, 의혹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공자님, 무슨 말씀이신지요? 제가 무얼 봤다는 건가요?”
초휴는 미소를 머금으며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관중형당의 도검 표식이 있었다. 웬만한 사람은 거기 있는 줄도 모를 작은 표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