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기세
규모가 큰 문파나 세가의 제자들은 기본기를 가장 중시한다. 하지만 초휴의 기본기도 그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선천공으로 미비했던 자신의 수련을 보충했던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대혼원공을 습득하여 일신의 내력을 강력함과 웅혼함의 최고조인 태초의 혼원 상태로 만들어 놓기까지 한 상태였다.
초휴는 그저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이지만 평범한 사람이 느끼기엔 그 기세가 하늘도 땅도 뒤엎을 만한 가공할 힘이 느껴졌다. 그 모습은 본 중인들은 마치 상고시대 마신이 나타나기라도 한 양 극강의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 한 걸음에는 대혼원공을 십분 쏟은 힘이 실려있었다.
초휴가 온몸에서 뿜어낸 강기는 형태도 실체도 없지만, 육안으로도 보일 파동이 동반된 것이었다.
초휴가 또 한 걸음 내딛자 사층에 있던 사람들 전체가 건물이 뒤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내딛는 걸음마다 마치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개개인의 가슴을 짓밟은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이건 멀찍이 떨어져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일 뿐이었다.
초휴와 마주 보고 선 사괴는 쇠망치로 가슴을 가격당하는 듯한 고통에 식은땀이 흘러나기 시작했다.
초휴가 세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걸음은 뒤로 갈수록 기세와 압박감을 더해가고 있었다. 초휴는 드디어 사괴의 바로 앞에 이르렀다. 이에 사괴의 얼굴은 시뻘겋게 변했으며, 그는 연신 식은땀을 흘려댔다.
바로 그때, 갑자기 봄바람이 불기라도 한 양 초휴의 기세가 순식간에 사그라들더니 급기야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콰당!’
사괴 수중에 들려있던 검이 바닥에 떨어진 데 이어서 동제 억양의 쉰 목소리가 가까스로 흘러나왔다.
“내가 졌소.”
이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종업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괴 대인, 무슨 일입니까?”
사괴는 종업원의 질문에는 대꾸도 안 하고 곧장 초휴를 향해 낯선 예법을 갖춰 보인 후 공손히 말했다.
“과연 제가 탄복할 만한 고수이십니다. 오층으로 올라갈 자격이 충분하십니다.”
그는 이미 시커먼 구름이 성채를 뒤덮은 듯한 공포감을 충분히 맛본 뒤였다. 하늘이 내려앉고 땅도 갈라질 그 가공할 기세를 더는 체험할 용기가 없었다.
칼이 아직 칼집에 머문 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때가 가장 두려운 법이다.
초휴가 내보인 건 불과 세 걸음에 불과함에도 이럴진대, 그가 제대로 실력 발휘에 들어간다면 어찌 될지 상상하기도 두려웠다.
그리고 더욱 두려운 건 극한으로 치솟았던 기세가 마지막 순간에 거짓말처럼 갈무리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강기에 대한 본인의 장악력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준 셈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를 절망에 빠뜨리고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괴력을 타고난 사괴는 외강경 무사도 오롯이 자신의 힘만으로 대적해왔다. 하지만 초휴 앞에서는 검을 뽑을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아직 경지가 낮은 종업원으로서는 이 단순한 세 걸음만으로 승부가 결정난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웬만해서는 패배를 자인하고도 아까 보였던 거창한 예를 갖춘 적이 드물었던 사괴가 초휴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으니, 그 행동으로써 모든 게 설명된 셈이었다.
“공자님, 그럼 오층으로 올라가시지요. 그곳에 가시면 다른 이가 영접하러 나와 있을 겁니다. 소인은 오층으로 올라갈 자격이 없어서요.”
종업원의 말을 뒤로 한 채 초휴가 오층으로 올라가자 뒤에 남은 사층 사람들은 일시에 솥 안의 기름처럼 펄펄 들끓기 시작했다. 대체 저자가 누구냐며 다들 난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취룡각에 나름 익숙한 손님들이었다. 동제 현지 무사나 타지 출신을 막론하고 사괴의 관문을 뚫은 자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법석을 떨 만도 했다.
일단 사괴와 열 합을 버텨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데다, 그를 격퇴시키는 경우는 더더욱 손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 초식도 제대로 내지르지 않은 상황에서 기세만으로 압박하여 사괴를 굴복시키다니, 과연 저자는 누구란 말인가?
용호방의 젊은 준걸들 얼굴은 대부분 그들도 익히 알고 있었다. 더욱이 정말로 이름난 청년 준걸이라면 한 층 한 층 올라갈 필요도 없이 곧장 오층으로 안내되어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초휴는 얼굴이 생소했다. 가공할 신예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라도 한 걸까.
아래층에서 호떡집에 불이 났거나 말거나 초휴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오층으로 들어선 순간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층의 장식이 황금빛과 푸른빛으로 휘황찬란함을 과시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과는 달리, 오층은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게 단아하기 그지없었다.
초휴가 모습을 드러내자 오층에 있던 무사들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그에게 향했다. 생면부지의 젊은 얼굴임을 알게 되자 다들 그의 정체를 간파하는 데 바쁜 눈치들이었다. 오층을 채운 이들의 대부분이 동제의 젊은 준걸 및 현지에서 비교적 명망 높은 무림 중견인으로서 서로 잘 아는 사이들이다. 물론 신병대회가 공고되면서 외지인들이 몰려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종업원 복색의 선천경 무사가 다가와 초휴의 차림새를 보더니 놀란 기색을 띠며 물었다.
“공자께선 혹시 관중형당 출신이 아니십니까?”
사층 담당 종업원들이야 주로 평범한 무사들과 부유한 거상들을 상대로 하는 데다, 실력도 응혈경에 불과하니 초휴의 신분을 간파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오층 담당은 과연 뭐가 달라도 달랐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안락왕 강문원의 문객들로서, 실력도 받쳐주고 식견도 넓었으며 기지도 남달랐다. 해서 보자마자 한눈에 초휴의 신분을 알아챈 것이다.
다만 최근 수십년간 관중형당이 사건 조사 외에는 거의 대외적인 활동을 접다시피 한 상태였다. 각종 대회 참가를 건너뛴 건 말 할 나위도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그나마 외부인의 뇌리에 남아있는 관중형당 사람들의 인상이란 연륜 있고 진중하며 근엄해 보이는 중년인의 외양을 한 강호 포두라고나 할까. 초휴처럼 젊디젊은 연배는 처음 보다시피 하는지라 종업원으로서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동제행은 관중형당을 대표하여 신병대회에 참가하러 온 것이니만큼, 초휴 역시 속이지 않고 말했다.
“바로 보았소. 나는 관중형당 휘하의 관서 지역 순찰사인 초휴라고 하오.”
초휴의 대답에 종업원은 심히 놀란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는 그나마 관중형당에 대해 아는 바가 있었다. 하여 순찰사가 관중형당 내에서 절대적인 중견세력에 속하는 실권자임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애 띤 얼굴을 하고 있는 눈앞의 청년이 순찰사라니. 그것도 관중형당을 대표해 신병대회에 참가하러 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무래도 관중형당이 종전과는 달리 뭔가 기지개를 크게 켤 모양인 듯하니, 이와 같은 중대사는 왕야께도 보고드릴 필요가 있었다.
바깥사람들에게는 취룡각이 강호의 준걸, 고수들이 흥청망청 즐기며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는 장소 정도로 각인되어 있을지 몰라도 실상은 이와 달랐다. 강문원은 취룡각을 강호의 인재들과 교분을 쌓고 이로써 정보도 탐색하는 장소로 활용해온 것이었다.
그런데 종업원은 초휴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다지 생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어서였다.
“초 공자님, 오층 위로도 계속 올라가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오층과 칠층 중 어느 층의 대접이 더 좋소?”
“그야 칠층이 더 좋지요. 오층부터는 층마다 각기 다른 술과 안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대외개방은 하지 않는 마지막 두 개 층을 제외하면 칠층이 제일 좋은 셈이지요.”
“그럼 계속 올라가 보겠소.”
종업원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그를 육층 입구로 데려갔다. 그곳에도 지키는 자가 있었는데 얼굴에 흉측한 칼집이 나 있는 중년 무사였다.
오층 사람들도 아까 사층 사람들이 그랬듯이 연신 그를 훑어보았다. 오층에 올라올 정도라면 아무리 약해도 내강경이고 내강경 중에서도 상급 축에 든다. 평범한 내강경은 사괴의 검을 몇 차례 막아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오층 사람들은 그나마 아래층보다는 견식이 있는 편이어서 그저 상대를 용모로만 평가하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오층에 올라올 정도라면 적어도 범속(凡俗)한 부류는 아닌 셈이니까.
“이분은 왕야의 문객으로, 파산검파의 ‘혈우한광검(血雨寒光劍)’ 소정(蕭挺) 대인이십니다. 초 공자께서 이분의 검을 잠시라도 막아낸다면 육층으로 올라가실 수 있습니다.”
‘파산검파’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초휴는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다시 보게 되었다.
파산검파와 무슨 인연이 이리도 끈질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일찍이 북연에서도 파산검파 제자인 장백도를 죽인 바 있고, 천죄 타주에게 알랑대던 그 밉살맞은 ‘청전검’ 진교도 파산검파 출신이 아니었던가.
이쯤 해서 초휴는 파산검파의 제자 교육과 단속에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툭하면 문중 제자를 내치고 나 몰라라 하여 그들이 밖을 떠돌도록 방치하는 상황이 벌어진단 말인가.
소정이 버려진 제자라는 언급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눈치 하나 없을까. 칠종팔파 일원인 파산검파의 당당한 제자가 뭐하러 이처럼 서초에서 멀리 떨어진 동제까지 와서는 실권 없는 왕야의 문객 노릇이나 하고 있겠느냔 말이다.
한 가지 더! 보면 볼수록 강문원의 행태에서 죽음을 자초할 만한 혐의점이 한두 가지만 엿보이는 게 아니었다. 취룡각의 각 층을 맡아 있는 종업원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은 데다, 지금껏 본 문객들만도 동급 가운데 군계일학 수준임을 알겠다. 종업원과 문객의 실력만도 이럴진대, 안락왕 측 전체의 실력은 얼마나 막강하겠는가.
실권 없는 일개 왕야가 이처럼 고강한 무력을 사적으로 양성해냈다는 것이 죽음을 자초하는 게 아니라면 무엇일까. 안락왕의 도 넘은 짓거리가 현 정권이 바랐던 ‘안락함’과 거리가 멀어졌음을 확인한 순간, 그들이 누려온 안락함도 끝장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이때 종업원이 소정에게 낮은 목소리로 귀띔했다.
“이분은 관중형당을 대표해 오신 초 공자입니다.”
취룡각에 손님 받는 규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조건 상대와 낯을 붉히자는 게 아니다. 그저 진정한 청년 준걸과 물을 흐려 놓는 미꾸라지를 분별하기 위함인 만큼, 소정의 역할도 옥석을 가리는 데 불과했다.
만에 하나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상이라도 입히는 날엔 소정 또한 난감함을 면치 못할 터였다. 해서 초휴의 신분에 대해 미리 언질을 줌으로써 각별히 주의해 줄 것을 종업원이 상기시킨 것이다.
소정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초휴를 향해 말했다.
“초 공자, 부디 조심하시오. 내 검이 보통 빠른 게 아니라서 말이지.”
“제 칼도 빠르기로 칠 것 같으면 만만치 않습니다.”
초휴가 비꼬듯 받아치자 소정이 무표정한 얼굴로 칼끝에 검붉은 기운이 감도는 장검을 뽑아 들었다. 이처럼 오래도록 육층 출입문을 지켜오면서 온갖 유형의 청년 준걸들을 겪어온 그였다.
한창 패기만만한 나이대인 만큼, 이처럼 자신감과 자만심, 심지어 자부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실력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일 터.
그러나 애석하게도 소위 준걸이라는 젊은이들이 마음과는 다르게 너무도 빨리 그의 검 앞에서 무너지곤 했다. 소정이 수련 속도에서는 주요 세력 출신들보다 못 할지 몰라도, 혈우가 퍼붓는 가운데 살기가 몰아치는 검법에 있어 만큼은 단연코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