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1)
초휴가 본가에 들어서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들것에 누운 초상은 연신 고통으로 울부짖었고, 셋째 부인은 초상 옆에 엎드려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초개와 큰부인은 내심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눈치였고, 초생과 둘째 부인은 짐짓 슬픈 척 어설픈 위로를 하고는 있었는데, 연기력이 어찌나 형편없는지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었다. 상석에 앉아있는 초종광은 누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분노가 활화산처럼 폭발할 기세였다.
초씨 가문의 여러 장로들은 평소에도 존재감이 없던 사람들인지라, 이번처럼 가주의 친아들이 죽느니 만도 못한 꼴이 된데 대해서는 더더욱 뭐라 입을 열 입장이 못 되었다. 전임 상단총관인 유유성이 한가운데에 무릎 꿇고 앉아 이 일의 전말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보고가 진행될수록 듣고 있던 초종광의 안색도 점점 침통함을 더해갔다. 이때 의원 하나가 들어오더니 초상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주님, 아드님은 이미 사지가 파열되었습니다. 제때 손을 써서 이어 붙였더라면 그나마 걸어 다니는 건 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나 벌써 며칠이 지나버려 팔다리를 되살릴 방도가 없습니다. 이대로 평생 침상 신세를 져야할 겁니다.”
그 말에 셋째 부인은 더욱 더 비통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이 난장판을 지켜만 보던 초휴는 한옆에 가 앉더니 천천히 찻잔을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초휴가 이처럼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자, 초생이 이때다 싶어 언성을 높혔다.
“둘째 형님, 상아가 이런 꼴로 돌아왔는데 지금 차를 마실 기분이 납니까? 설마 상아가 불구가 된 게 기쁘기라도 한 건가요!”
이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좌중의 시선이 초휴에게로 향했다. 심지어 초종광도 못마땅한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았다. 가뜩이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초중광이었다.
자칫 초휴가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는 날엔 그 분노가 죄다 초휴에게로 쏟아질지도 몰랐다. 초휴가 코웃음을 치더니 찻잔을 무겁게 내려놓으며 냉랭히 대답했다.
“내가 기쁘냐고? 정반대로 울고 싶어 미칠 것 같다. 그러나 상아의 몸이 이미 저리 되어버렸는데, 내가 너처럼 몇 번 운다고 달라질 게 무엇이냐? 떠나기 전에 내가 분명 상아에게 조심하라고 단단히 일렀건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고 말았다. 아무 경험도 없는 상아를 그 밑의 총관들이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단 말이다! 이번에 놈들이 살아 돌아왔었더라도 내 손에 죽었을 것이다.”
말을 마친 초휴는 침통한 얼굴로 걸어 나오더니 초종광에게 예를 갖춘 후 조리 있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님, 지금 슬퍼만 할 때가 아닙니다. 이 일을 자칫 어설프게 처리했다가는 막내뿐만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가 위험해집니다. 도적놈들이 막내를 폐인으로 만들고 우리 화물까지 약탈했으니, 저들과 우리는 철천지원수지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싸워야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싸우기로 한다면 먼저 놈들의 산채 위치와 가진 힘을 면밀히 파악해야 합니다. 어쨌거나 놈들의 우두머리는 임대협을 간단하게 죽일 정도로 엄청난 실력자니까요. 그런데 만약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 상단이 다음번에 상망산을 지날 때, 또 공격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 일의 잘잘못을 굳이 따지고 싶지 않으니 길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여하튼 당장 저들과 싸워서 결판을 보지 않으려면, 상망산을 피해 대로로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지는 아버님께서 결정하십시오.”
초휴가 침착하고 의연하게 기선을 제압하자, 좌중의 사람들 모두 그의 말에 압도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초생마저도 울고 싶은 표정을 지어보일 정도였다.
이번 일이 초씨 가문에게 있어 중대 사건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싸우기로 할 경우, 과연 이들에게 끝장을 볼 능력이 있을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저 지경이 되었으니 초종광은 당연히 분노했다. 하지만 그나마 목숨은 건졌으니, 눈이 뒤집혀 물불도 못 가릴 정도로 이성을 잃은 건 아니었다.
지난 이십년간 초종광은 집안일에 너무도 무심했다. 그 결과, 이 집안에 본인 말고는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고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지금 당장 수천수백에 이르는 도적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는 말이었다.
더욱이 도적 두목의 가공할만한 실력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유유성 등이 본 바에 의하면 임겸을 죽인 우두머리가 응혈경인지 선천경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두머리가 출수한 결과를 들어보면 그가 선천경에 이른 고수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럼에도 싸움을 강행할 경우, 초종광은 필승을 장담할 수 없었다. 초개와 초생, 그리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여러 장로들의 생각도 초종광과 같았다. 초씨 가문은 비단 초종광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의 것이기도 했다.
그저 초상 한 명의 복수를 위해 가문 전체의 명운을 걸고 도적들과 생사결단을 하는 건 아무도 원치 않았다. 초휴는 한옆으로 물러나 비웃음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기껏 이 정도 그릇밖에 안 되는 초씨 가문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도 신기할 정도였다. 다들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할 뿐, 그 누구도 가문 전체를 위한 대국적 견지에서 심사숙고하려 들지 않았다.
초휴의 눈에 비친 저 아비란 작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주자신도 가문이야 어찌되든 간에 본인의 편리와 이득에만 치중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때 초개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아버님, 이 일은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도적들이 수 년 째 상망산을 차지하고 있었어도 관병들은 뾰족한 수가 없고, 통주부에서 제일 강하다는 심씨 가문조차 그들의 존재를 묵인하고 있습니다. 이런 판국에 우리가 먼저 놈들을 치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자 초생도 옆에서 거들었다.
“큰형님 생각이 옳습니다. 이 일은 반드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이번 일은 막내가 무모한 탓도 있었습니다. 도적들이 욕심을 부렸다고는 하나 그래봤자 이백 냥에 불과했습니다. 까짓것 그냥 줘버렸으면 끝났을 일을 이렇게까지 키우고 응혈경 고수마저 잃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두 형제가 말을 마치자 여러 장로들도 그들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며 초종광에게 냉정해질 것을 권했다. 고령의 장로들이야 앞으로 살날이 많지 않았지만 그들의 자손이 이 집안에서 총관직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초종광의 아들들끼리 치고 박는 거야 그들 문제고 자신들이 알 바 아니지만, 집안 전체 이익과 연관된 중대사가 터진 이상, 그들도 좌시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 초상을 껴안고 있던 셋째 부인은 사람들의 중론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초종광을 향해 울부짖었다.
“대인, 상아의 복수를 해주셔야죠!”
그러나 초종광은 이미 화가 단단히 나있었다.
“시끄러워! 나는 뭐 상아를 위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줄 알아? 그렇지만 상아 하나를 위해 집안 전체의 명운을 걸 수는 없잖아? 상아놈도 그렇지. 떠나기 전에 조심하라고 내가 그리도 신신당부했는데, 이렇게 똥오줌도 못 가리고 사고를 쳐? 그것도 상단행 초장부터 말야!”
초종광에게 호된 질책을 들은 그녀는 주눅이 들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초상이 저리 되었으니 이제 그녀는 이 집안에서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셈이었다. 자칫 초종광의 심기를 건드려 완전히 눈밖에라도 나는 날엔, 이 집안에서 쫓겨날 지도 모르니 몸을 사려야만 했다. 이때 어느 장로가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가주, 이런 때에 상망산 도적에게 복수를 하는 건 현명치 못하네. 자고로 처마 아래서는 머리를 숙이라는 말도 있잖는가. 우리 상단이 앞으로도 계속 상망산을 가로질러 장사를 다니려면 어쨌거나 마무리를 지어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또 공격을 당해 엄청난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니까.”
이 말을 한 사람은 초휴의 큰숙조부이자 장로들 가운데 최고연장자로, 이미 여든이 넘은 고령이었다. 평소에는 좀처럼 집안일에 관여하지 않았으나, 오늘은 사안이 워낙 큰데다 초종광이 충동적으로 나올까봐 걱정이 되어 한 마디 한 것이었다.
초종광의 속내도 비슷했던지라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일단은 놈들을 봐줬다가, 언제고 기회가 생기면 한꺼번에 해결을 봐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앞으로 상단을 누가 맡으면 좋을까요?”
그 말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도적들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초상을 폐인으로 만든 걸 보면 처음부터 초씨 가문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는 얘기인데, 누가 감히 자기 목숨을 걸고 상단을 맡을 수 있겠는가? 이때 큰숙조부가 온화한 얼굴로 넌지시 초휴에게 눈길을 던졌다.
“휴아야, 너는 형제들 가운데 가장 대담하고 생각도 깊더구나. 지난번 상단을 이끌 때 정말 잘 처신했었지. 우리 집안의 체면도 살리고 상단의 수익도 크게 올렸지 않았느냐. 그러니 이번에도 네가 다녀오면 정말 좋겠구나.”
초개를 비롯한 집안사람들은 복잡한 심경이 되어 초휴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누가 가장 중요한 인물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다들 제일 먼저 찾는 사람이 바로 이 집안에서 존재감이 가장 큰 인물인 것이다.
지금 자그마치 대숙조부가 초휴를 지명했다는 것은 초휴의 능력이 그 누구보다도 출중함을 대놓고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물론 이번만큼은 아무도 초휴가 인정받는 것을 시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처럼 위험한 일은 거저 줘도 절대 거절할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초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내심 비웃고 있었다.
얼씨구, 저 능구렁이 같은 늙은이가 위험한 임무 앞에서 졸지에 나를 소년영웅으로 만들어 버리네? 초휴는 지난번 집안회의에서 여러 장로들 가운데 그 누구도 자신에게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던 사실을 아직도 생생이 기억하고 있었다. 초종광도 헛기침을 하더니 한 마디 거들었다.
“휴아야, 백부님께서도 저리 말씀하시니 네가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초휴가 침묵을 지키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떼었다.
“감히 아버님께 여쭙겠습니다. 우리 집안에도 규칙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지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초종광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한 말을 뭐하러 하느냐. 세상에 규칙 없는 집안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규칙이 있다면 일처리를 이렇게 하실 수는 없습니다. 상단은 애초에 제가 꾸렸고 수익도 제가 배나 올렸지만 아버님께서 상아를 단련시킬 목적으로 양보하라고 하셔서, 두 말 않고 상단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찌되었습니까? 사고는 상아가 쳐놓고 수습은 저더러 하라는 말씀이신데, 도대체 책임을 져야할 자가 누구란 말입니까? 그리고 이 상단은 결국 누구의 것입니까? 이처럼 일을 흐리멍덩하게 처리하신다면 아무리 아버님의 분부라 해도 소자는 따르지 않겠습니다.”
초휴의 마지막 한 마디는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의외의 발언이었다. 초종광이 요 몇 년간 집안일을 방치하다시피 했다고는 하나, 지위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집안 내에서 그의 위신이 이토록 급작스럽게 추락했을 리가 없다.
최근 몇 년을 통틀어 집안에서 초종광의 명령에 대놓고 반기를 든 사람은 초휴가 처음이었다. 그것도 그의 친아들로서 말이다.
끝
ⓒ 봉칠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