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사소루(謝小樓)와 여봉선(呂鳳仙)
“안락왕이 당주님과 어떤 악연을 맺었건 간에, 또한 나와 무슨 일로 얼굴을 붉혔건 간에 일단 신병대회가 끝나고 나면 나는 관중으로 돌아갈 몸이오. 골치 아프게 이것저것 깊이 따지고 싶지 않소이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 참가하려는 인물들이 내가 생각했던 수준보다 훨씬 적은 듯하오. 예컨대 용호방 상위 오 위권 내의 인물들은 하나도 보지 못했으니 말이오.”
초휴의 말에 막천림이 여전히 웃으며 응수했다.
“본디 신병이라는 게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잖소. 심지어 우리 막가의 노야께서도 신병 한 자루 없으시다오, 헌데 용호방 상위 오 위권 인물들이야 그깟 신병이 대수겠소. 그들이 무도종사급 인물로만 성장한다면 종문 차원에서 재깍 신병을 마련해줄 터인데. 그러니 뭐하러 애써가며 뭔지도 모를 신병을 놓고 겨루려 들겠소?”
대형 종문세가 출신 무사들은 출발부터가 낭인 출신들보다 빠른 건 물론이요, 수련 경지가 높아짐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공받는 수련자원도 상상을 초월할 수준으로 풍족하다. 그래서 출신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태생부터가 이처럼 불공평한 것이다. 하지만 세간의 이치가 본디 이러하니, 불평해봤자 달라질 건 없었다.
초휴가 물었다.
“혹시 막 형은 그자들을 부러워하는 겁니까?”
“당연히 부러울 수밖에요. 부럽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우리 막가가 비록 구대 가문의 일원이긴 하나, 사실 그 서열이라는 게 도토리 키재기란 말입니다.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지요. ‘소천사(小天師)’ 장승정(張承禎)의 경우만 봐도 태어나자마자 모든 걸 다 가졌지 않소. 차기 천사의 지위도 떡하니 내정되어 있고, 명검보 십 위에 올라있는 용호산 삼대 신병 중 하나인 명검 ‘승사(勝邪)’도 훗날 응당 그의 몫이 될 테지요.우리 같은 고만고만한 세가 출신들이야 집안 내에서도 끊임없이 암투에 시달리고 강호에 나가서도 남과 악전고투를 벌여야만 간신히 쟁취할 수 있는 것들을 그자들은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받아먹는 게 사실이지 않소. 정말 불공평하오.”
초휴가 그에게 술잔을 건네며 담담히 말했다.
“사실 막 형은 장승정과 같은 급수의 인물한테 열등감 같은 걸 느낄 필요가 없소이다. 어쨌거나 명문세가의 제자로서 이미 많은 걸 가졌지 않습니까. 적어도 당신은 처음부터 강호의 영웅호걸들과 악전고투를 벌일 자격이라도 있었으니까요. 대부분의 말단 무사들은 그저 살아남기만도 바쁜 세상입니다. 뭘 얻기 위해 싸움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사치인 셈이지요.”
초휴의 뼈 있는 말에 막천림은 순간 흠칫했다.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 그가 또 한 번 웃어 보였다.
“초 형의 말을 듣고 나니 확실히 내가 너무 오만했던 것 같소이다. 하긴 대부분의 낭인 무사들에 비하면 우리 같은 출신들의 처지가 훨씬 나은 건 사실이지요.”
한창 두 사람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 인근 선상에서 놀란 비명소리가 한바탕 터져 나왔다. 초휴가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가 수면을 밟으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인상이 차가우면서도 준수한 회색 무사복 차림의 이십 대 청년이었다. 상투관도 없이 검은 장발을 등 너머 늘어뜨린 모습이 꽤나 자유분방해 보였다. 그리고 몸 뒤에 칼집도 없이 삼베로 감싼 장도를 멘 모습에서는 기괴함마저 느껴졌다.
청년이 수면을 밟을 때마다 발밑에서는 강기의 폭발음이 들려왔다. 강기의 힘을 빌려 그의 몸은 살짝 허공에 뜬 채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고 있었다. 이런 동작은 사실 원리가 매우 간단하다. 이론적으로는 외강경에 이르기만 하면 가능한 동작이니 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외강경은 물론이고, 천인합일에 이르기 전에는 해낼 수 있을 사람이 손꼽을 정도로 적은 게 사실이다. 자기가 목표로 한 곳까지 다다를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발밑에서 강기를 터뜨려낼 수 있으려면 무사 본인의 내력이 받쳐 줘야 하는 건 물론이고 강기에 대한 장악력도 수반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자가 다가오는 걸 보자 막천림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아는 얼굴이 또 하나 나타났군.”
그새 청년은 이미 초휴가 탄 배 앞에 이르러 있었다. 성큼 한 발을 크게 떼는가 싶더니 곧장 두 사람 앞에 우뚝 섰다.
“막천림, 이거 일년 만인가? 자네는 여전하네, 그려.”
그런데 막천림이 상투적인 인사말을 꺼내기도 전에 청년의 말이 곧장 이어졌다.
“실력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고.”
막천림은 그 바람에 방금 입술 언저리까지 올라왔던 인사말이 도로 쏙 들어가고 말았다.
“흥! 사소루(謝小樓), 네놈 입도 여전히 더럽긴 마찬가지야.”
서로 한 마디씩 막말을 내지른 뒤에야 막천림이 그를 초휴에게 소개했다.
“이 자는 ‘백리표우(百里飄羽)’ 사소루하고 하오. 서초 천하맹(天下盟) 출신이고.”
초휴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 역시 용호방 준걸이고, 심지어 서열이 막천림보다도 높은 십이 위이다. 인화육방(人和六幇) 가운데 천하맹 출신이라고 하니, 그의 출신도 범상치 않은 셈이다. 그의 사부가 바로 이름도 쟁쟁한 천하맹 맹주, ‘천리강산(千里江山)’ 진청제(陳靑帝)이다.
진청제도 취의장 섭인룡과 함께 초야 출신으로서 성공한 걸출한 인재 중 하나였다. 섭인룡이 본인의 인격적 매력에 기대어 차근차근 취의장의 근간을 다져왔다면, 진청제는 자신의 철권(鐵拳)으로 천하맹의 천리강산을 일구었다.
“아, 사 형이셨군요. 존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초휴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막천림이 그를 사소루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초 형일세. 이름은 초휴. 왕년의 청룡회 간판급 살수 ‘혈마’. 지금은 관중형당 관서 순찰사. 역시나 용호방 이십 위권 안에 든 준걸이지.”
초휴가 비록 이십 위권 안에 들긴 하나, 기본적으로 북연 연동 일대에서 활약해온 탓에 강호 전체로 보면 거의 존재감이 없다시피 했다. 심지어 용호방 순위를 보지 않고는 초휴의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정도였다.
이처럼 자세히 초휴의 신상에 대해 읊은 것은 혹시나 사소루가 초휴에 대해 알지 못해 난감한 일이 생길까 봐 우려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초휴의 이름을 듣자마자 사소루가 돌연 물었다.
“혹시 임개운 그 자식을 개 패듯 패주어 폐인으로 만들었다는 초휴? 그리고 ‘소온후’ 여봉선의 벗이기도 하고?”
“임개운이 관중형당에서 소란을 피우길래 좀 손봐 준 적은 있소이다. 개 패듯 패줬는지는 잘 모르겠고. 검왕성으로 돌아간 후 맞은 곳이 어찌 되었는지도 아는 바 없다오. 그나저나 여봉선은 확실히 나의 벗이 맞소이다. 혹시 서초에서 그를 본 것이오? 그는 어찌 지내고 있습니까?”
한옆에서 두 사람 간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막천림이 눈을 찡긋해 보이며 끼어들었다.
“초 형, 보아하니 숨은 사연이 많기도 하시오. 그런 일들은 아마 풍만루에서도 모르고 있었을 텐데 말이지.”
그러자 초휴가 마구 손을 내저었다.
“임개운을 때려눕혔다고 내 입으로 동네방네 떠들어봤자 검왕성의 표적밖에 더 되겠소? 내 무덤 파는 짓은 사양이라오.”
이에 냉랭해 보이던 사소루의 표정에 미소가 서렸다.
“그대가 떠들지 않아도 검왕성에서는 그대를 사무치게 증오하고 있을 거요. 임개운 그 자식은 일찍이 내가 손봐 주려 벼르던 놈이었소. 해서 이번에 출관하기만 하면 따끔히 혼내줄 생각이었지. 그런데 우연히 마주친 검왕성 사람이 하는 말이 임개운이 당신한테 패했다더군. 그 충격을 아직도 이기지 못한 채 하루 종일 검왕성 안에만 처박혀서는 폐인처럼 굴고 있다는 거요.”
사소루의 말대로라면 초휴는 정말 억울했다. 지난번 초휴는 정말로 그를 죽일 마음이 없었다. 그저 가벼이 혼내주고 말 생각이었고, 임개운의 부상도 치명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임개운의 수련이 생각보다 부족했고, 그만한 일로 죽네 사네 폐인처럼 군다고 하니 정신상태도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모양이다.
임개운의 실력도 정신력도 형편없는 게 초휴의 잘못도 아니건만, 결과적으로 생때같은 젊은 준걸 하나를 골로 보내버린 격이 되고 말았다. 이는 절대로 그가 의도했던 바가 아니건만, 과연 검왕성 측에서 믿어나줄까.
사소루가 말했다.
“사실 임개운의 일이 아니더라도 진작부터 그대를 알고 있었소. 일년 전쯤에 여봉선과 친교를 맺었다오. 성가신 일에 손대길 싫어하는 성정만 아니었더라도 그의 실력 정도면 용호방에 오르고도 남았을 것이외다. 심지어 내 사부님은 그를 보자마자 영입하길 원하셨지. 하지만 한 군데 매이길 싫어하는 그 성격이 어디 가겠소. 보란 듯이 거절하고 다시금 강호 유람을 떠났다오. 당시 여 형이 초 형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여 형이 그처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정도라면 범상한 인물은 절대 아닐 거라고 짐작했었지.”
여봉선의 이름을 입에 올린 순간, 사소루의 냉랭한 표정에도 훈풍이 불어왔다. 아무래도 여봉선을 존경하고 아끼는 마음이 큰 듯 보였다. 물론 초휴가 아는 여봉선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본디 친구 사귀는 재주 하나는 타고난 만큼 이용도 잘 당하는 그 성정을 초휴도 잘 알았다. 실력에 대해서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지난날에도 가공할 실력을 보였던 사람이니 지금쯤 더 훌륭해져 있을 건 뻔할 터. 사람됨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매력이 넘치는 친구이니 사소루가 그런 반응을 보일 법도 한 것이다.
이때 막천림이 사소루에게 물었다.
“아 참, 신병을 차지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신병대회에는 뭣 하러 온 게요? 운 좋게 신병을 차지한다 해도 그렇지. 공교롭게도 이번 신병이 칼이던데. 그대가 어려서부터 고이 양성하여 신(神)과 기(氣)까지 깃든 표우도(飄羽刀)는 어쩌려고?”
“그저 구경이나 하자고 온 거요. 서초에 틀어박혀 폐관 수련을 오래 했더니 답답해 죽을 것 같아 이참에 기분전환이나 하려 하오. 그 김에 혼내줄 만한 놈이라도 있는지도 한번 보고.”
사소루의 대답에 두 사람은 순간 할 말이 궁해졌다. 이유가 너무도 뚜렷한지라 딱히 해줄 말도 없었다. 그런데 초휴는 문득 흥미로운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사소루와 막천림의 성격이 저리도 천양지차이건만, 어쩌다가 막역한 친구 사이가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막천림은 성격이 소탈하면서도 의젓한 면이 돋보였다. 게다가 명문세가 출신답게 예의와 교양이 몸에 배어 있고 매사에 도를 넘지 않으려는 진중함이 엿보였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비록 첫눈에 호감을 주진 못할지라도 적어도 미움은 사지 않을 유형이다.
반면, 사소루는 그와는 상반된 성정을 가졌다. 풍기는 분위기도 냉랭하고 말본새도 거침없으며 성질머리도 괴이쩍은 것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과도 같았다. 여봉선과 같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잘해주나, 임개운과 같이 밉보인 상대에게는 얄짤없이 대하는 호불호가 분명한 유형이기도 했다.
이처럼 상반된 두 사람이 좋은 벗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물론 그저 인연이 있어서 그런 것도 한몫했겠지만, 두 집안이 심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일단 강호에 몸을 둔 이상, 더러는 본의 아니게 해야 할 일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심지어 자신의 막역지우나 연인에게도 몹쓸 짓을 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양 막가는 동제에 있고, 천하맹은 서초에 있다. 한마디로 서로 엮일 일이 없다 보니 이해관계도 없고 충돌할 일도 없었던 셈이다.
“아 참, 초 형!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막천림의 질문에 초휴가 맞은편 수운관을 가리키며 답했다.
“듣자니 수운관 현성도인의 수행 정도가 깊다던데 가서 설법이나 들어볼까 하오만.”
그러자 막천림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댔다.
“수운관 현성도인? 인근에 도가의 고인이 계시다고? 처음 듣는 소리인데?”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난 후 그는 문득 일전에 자신의 부친이 들려주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해서 다급히 말을 바꿨다.
“좋소이다. 나도 동행하겠소. 마침 좀 쉬고 싶던 참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