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절망의 몸부림
삼화취정 동료가 초휴의 단칼에 쓰러졌을 때부터 신무문 무사의 투지는 붕괴한 상태였다. 이처럼 여러 동료가 전력을 쏟아붓고도 그를 대적할 수 없는 것은 정해진 순서였을지도 모른다.
지금 홀로 초휴에게 맞서는 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모르는 바도 아니건만, 그는 도망갈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신무문과 연회남 부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자손들 역시 신무문에 몸담은 게 그가 초휴의 앞을 막아선 이유였다.
그는 연륜 있고 진중하며 강호 경험도 풍부했다. 이를 높이 평가한 연회남이 자기 딸을 보호해 달라며 신변 보호를 맡겨 여기까지 보냈다. 그런 판에 여기서 연정정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있건 간에 자신은 중벌을 면치 못할 터였다. 아니, 본인만 희생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 지금 종문에 있는 자손들에게도 피해가 생길 게 뻔했다.
해서 그는 자기가 희생을 하더라도 연정정을 안전하게 피신시켜야만 했다. 그러면 그의 공로를 기억한 연회남이 그의 자손들이라도 자상히 챙겨주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한 그는 이판사판 그야말로 끝장을 보자는 각오가 섰다. 해서 얼마 남지도 않은 체내의 선혈을 불태우며 초휴와 목숨을 건 일전에 돌입했다.
바로 그때, 초휴가 돌연 뒤로 물러나며 수인을 취하더니, 온몸을 불사르던 마기를 철저히 억눌렀다. 그러자 신무문 무사의 눈이 번뜩였다. 연륜이 있는 그는 초휴의 마공이 계속해서 저런 수준의 힘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 저 비법의 힘도 얼추 풀릴 때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억지로 마공을 구사하려 든다면 분명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고, 이때가 바로 초휴가 취약해질 시점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비도삼도의 여력을 완전히 제어한 초휴는 병색이 완연할 정도로 얼굴이 창백해져 버렸다. 두 번째 아비마도까지는 전에도 여러 차례 시전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곧장 마기를 억눌렀기 때문에, 맨 처음 시전했을 때를 빼고는 거의 부작용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마기를 누르기는커녕, 도리어 적을 공격하는 데 이를 활용했다.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배가되었을지 몰라도, 이로 인한 소모 역시 엄청났다. 엄밀히 말하면 진기나 내력이 고갈되는 것보다 정신적인 소모가 더 컸다.
초휴의 이런 상태는 신무문 무사의 눈에도 여실히 보였다.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기회를 포착한 무사의 창끝에서 찬란한 광망이 터져 나왔다. 중천에서 작열하는 태양과도 같은 찬란한 열기 속에 핏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사가 자신의 혈기를 불살라서 끌어낸 힘이었다. 창끝에서 솟구쳐오른 붉은 용이 길게 무지개를 그리며 태양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밝은 빛은 사악한 어둠을 몰아낸다. 창끝에 응축되었다가 막강한 힘과 함께 터져 나온 뜨거운 기혈에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효과도 있었다. 불가의 무공보다는 못할지 몰라도, 초휴처럼 사기가 짙은 마공을 수련한 무사를 제압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초휴가 보인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당황하기는커녕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는가 싶더니, 상대의 창이 찔러오자마자 대금강륜인을 취했다. 그러자 상대의 창이 뿜어내는 것보다 더욱 강력하고도 찬란한 불광이 그의 몸에서 발출되었다.
초휴가 마공만 할 줄 안다고 누가 그랬던가. 이 신무문 무사는 적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라곤 전혀 없이 남의 복수에 뛰어든 셈이었다. 그 결과 제 무덤을 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대금강륜인이 벼락처럼 내려꽂힌 순간, 강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급 창이 동강 나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무사의 몸도 멀찍이 튕겨 나갔다. 그의 입에선 선혈이 뿜어났고 얼굴은 핏기가 사라져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좀 전에 초휴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던 것은 일시적으로 정신적 소모가 커서였다. 하지만 지금 신무문 무사가 하얗게 질린 것은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기 때문이었다.
“소저, 빨리 달아나시오······.”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연정정의 모습에 그는 절망했다. 하지만 그녀더러 떠나라고 절규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자신의 마지막 생명력을 갈아 넣은 일격이 초휴에게 파괴되었고, 그의 대금강륜인에 중상을 입었다. 나이도 많은 그가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무사는 이 말만 가까스로 남기고는 결국 숨이 끊어졌다.
현장의 무사들은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랐다. 두 명의 삼화취정 무사와 수 명에 달하는 내강경 및 외강경 무사들이 순식간에 초휴에게 살해당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초휴의 실력은 그저 단순히 공포스럽다, 놀랍다, 압도적이다와 같은 통상적인 말로 표현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적당한 표현법을 찾지 못한 그들은 아예 말 자체를 잊은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신무문 무사들을 해치운 초휴의 다음 표적은 연정정이었다. 그는 살기 등등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다가갔다. 사실 초휴는 여인을 죽이는 걸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명색이 사내가 돼서 여인을 죽인다는 게, 모양새가 좋지 못한 일인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거기에는 그 여인이 먼저 도발하지 않고, 그의 이익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붙었다. 둘 중 하나라도 위배되어 그의 살심(殺心)을 건드린 순간, 그에게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게 된다. 단지 살릴 자와 죽일 자로 나뉠 뿐이었다.
물론 자신이 악노천을 죽였으니, 그녀가 앙심을 품은 것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 속내까지 남의 눈치를 볼 필요야 없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뼈에 사무친 원한과 증오로 이성마저 잃은 상태였다. 이는 곧 언제든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초휴를 죽이려 들 거라는 의미였다.
즉, 그녀를 살려두는 것은 앞으로도 그가 무수한 위기와 곤란을 겪을 거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초장에 화근을 제거해버리는 게 최선일 터였다.
신무문 쪽은 걱정 밖이었다. 초휴는 감히 연회남이 관중형당 관사우한테까지 찾아와 자신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지위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관중형당은 신무문보다 저만치 우위에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중형당의 일 처리 방식이 이런 생각을 하게 한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상대가 나를 해코지 하지 않는 한, 나도 상대를 건드리지 않는다. 이런 기조 아래 관중형당은 줄곧 먼저 도발하는 일을 엄히 삼가왔다. 따라서 누구한테라도 빌미를 줄 리가 없으니, 꿀릴 일도 없는 것이다. 해서 먼저 도발해온 상대에게는 이유 불문하고 가차 없이 되돌려 주는 게 관중형당의 관례인 것이다.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초휴의 모습이, 연정정의 신변을 지키고 있던 선천경 무사들 눈에는 살인귀처럼 보였다. 그들은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도망갈 의욕조차 잃어버렸다.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가까이 오지 마시오, 초휴! 미쳤소? 연 소저를 죽이는 순간, 당신은 신무문과 죽어야만 끝이 날 원한관계를 맺게 되는 거요.”
하지만 초휴는 아랑곳하지 않고 칼을 치켜들었다.
“죽어야 끝난다고? 그건 저 여인과 나도 마찬가지다. 이 여자를 죽이지 않으면 앞으로도 온갖 더러운 수작으로 나를 해치러 들 텐데, 결국 어떤 식이든 신무문과 원한관계를 맺게 되는 건 불가피할 터. 그럴 바에야 일찍 끝장을 보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러니 네놈들도 죄다 죽어줘야겠다.”
그리고 그 순간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연정정이 돌연 고개를 쳐들더니 좌중의 구경꾼들을 향해 소리높여 외쳤다.
“누구든 날 위해 저놈을 죽여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시집가겠어요!”
그 말에 중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여자가 미치기라도 했나?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연정정은 지금 진지했고 또한 냉철했다. 그녀가 쉬어 터진 목소리로 한 번 더 소리쳤다.
“신무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누구든 초휴를 죽이는 자에게 시집가겠어요. 이곳의 모든 사람이 증인이 되어 줄 겁니다.”
연정정이 신무문의 이름까지 들먹인 바람에 좌중에는 미미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그녀의 개인적인 맹세라면 급한 김에 하고 보는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무문이라면 칠종팔파의 일원이 아닌가. 그녀가 신무문 장문인의 딸로서 내건 맹세라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가 없을 터였다.
솔직히 이 말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자는 거의 없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종신대사(終身大事)를 내맡긴 대가가 얼마나 위험천만한지는 다들 알고도 남았다. 자그마치 초휴를 죽여달라는 조건이 아닌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신무문의 대소저라는 연정정의 신분은 꽤 매력적이었다. 물론 아쉬울 거라곤 없는 명문 대파 제자들은 악명이 자자한 연정정에게서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는 느끼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가진 게 없고 바라는 것은 많은 낭인 또는 군소 문파 출신 제자들한테는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동한 건 동한 거고, 실제로 나서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연정정이 내건 조건이 군침을 흘릴만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은 방금 초휴가 보여준 기세에 겁을 먹었고, 저렸던 오금이 제대로 펴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이가 많긴 했지만 명실상부한 삼화취정 경지의 실력자 둘을 단숨에 해치우지 않았는가. 신무문의 사위 노릇도 목숨이 붙어있어야 해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초휴의 기세에 눌려서 나서는 사람이 없자 연정정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무얼 두려워하는 건가요? 저자가 강하다 해도 외강경일뿐이에요. 보다시피 방금 우리 무사들과 싸우면서 내력도 많이 소모한 상태라고요. 저자의 안색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용기 있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요?”
자신의 절규에도 중인들의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그녀는 이를 악물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내 부친에게 혈육이라곤 나 하나뿐이에요. 지금 세대 중엔 장차 신무문을 물려받을 만한 인재조차도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든 나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신무문의 온갖 혜택과 지원을 한 몸에 받게 될 겁니다. 차기 종주의 자리에 오르게 될 사람에게 종문 차원에서 무엇인들 못 해주겠어요!”
그 말에 누구보다도 뜨악한 건 그녀를 보호하던 선천경 무사들이었다.
드디어 대소저가 미쳤구나! 저런 약속까지 함부로 내뱉다니, 복수심에 사로잡혀서 완전히 눈이 뒤집혔어!
무사들의 그런 생각이 무리가 아닌 까닭이, 제아무리 연회남이 신무문의 절대적인 수장이라고는 하나 신무문은 엄연히 개인의 것만이 아니었다. 모든 종문 구성원의 공동 소유로 봐야 했다. 여느 세가들처럼 수장의 자리가 항상 대물림되는 게 아니라, 차기 종주는 오롯이 실력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즉, 연회남의 독단으로 결정될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연정정이 이처럼 말 같지도 않은 허언을 내질렀다는 사실이 신무문의 귀에 들어가기라는 날엔 큰 혼란이 야기될 게 분명했다. 그 많은 제자의 대부분이 승복하지 않을 것임은 물론이요, 종문 전체가 뿌리째 흔들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무문 무사들의 짐작대로 그녀는 확실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사실 초휴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안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좋아했어도 악노천은 이미 죽은 사람이니, 새로운 연인을 찾기만 하면 금방 잊을 수 있을 거라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원수와 맞닥뜨리니, 그녀는 급속도로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가 충분히 초휴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능력 있는 수하들만 줄줄이 죽어 나갔다.
잠시나마 복수의 달콤함을 꿈꾸며 들떴던 마음은 절망으로 치달았다. 이에 원래부터 감정 기복이 심했던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미쳐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