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위험과 이익
연정정의 미치광이 같은 행동에 반응을 보인 이들도 분명 있었다. 특히 낭인이거나 군소 문파 출신의 무사들은 이게 꿈인지 생신지 헷갈릴 정도였다.
‘연정정을 아내로 맞아 신무문의 승계자가 된다고? 무려 칠종팔파에 속하는 신무문의?’
장내에는 북연 출신 무사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신무문 내의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대략이라도 알고 있었다.
작금의 신무문을 통틀어 연회남에 필적할 만한 인물은 없다. 한마디로 독보적인 일인치하(一人治下)인 것이다. 신무문은 오로지 연회남 혼자 힘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굴기했다고 봐도 좋았다. 그리고 연회남의 대를 이을 젊은 인재를 아직 발굴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신병대회도 연정정은 기분전환이나 할 겸 들린 것이고, 참가할 만한 적임자가 한 명도 없었음이 이런 사실을 증명해 준다. 따라서 연정정이 얼결에 내뱉은 허언이 전혀 가능성 없는 말은 아니었다. 이런 정보쯤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해도 좋았다.
초휴는 아직도 안색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연정정의 말에 용기를 얻은 무사들이 서서히 그를 에워싸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남다른 각오를 다진 것인지, 아까보다 부쩍 예리함이 더해진 눈빛을 한 모습들이었다.
초휴의 실력은 충분히 보았다. 이처럼 두려운 상대에 맞서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초휴는 관중형당이라는 뒷배를 가진 인물이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관중형당의 보복을 당할 위험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회남의 사위이면서 동시에 신무문의 계승자가 될 수 있다는 유혹 때문인지, 그런 위기감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희석된지 오래였다.
사실 연정정이 신무문 승계를 들먹이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평생 꿈도 못 꿀 횡재가 눈앞에 나타나자, 감히 목숨을 건 도박에 뛰어들 배짱이 생긴 것이다.
물론 사소루처럼 초휴의 실력을 정확히 간파한 인물들은 예외였다. 사소루의 지적대로 초휴는 그저 술렁술렁 삼화취정 무사를 참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선제적으로 상대의 기를 눌렀고, 공격마다 전력을 다해 치명타를 퍼부었다.
용호산의 ‘소천사’ 장승정도 외강경 시절에는 초휴같은 가공할 실력을 보이지는 못했었다. 그러니 조금 전 초휴의 출수는 절대로 가벼이 볼 게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는 무리를 바라보는 초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본의 아니게 여인의 심기를 건드리니 골치 아픈 일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강호에는 섣불리 건드려서 좋을 게 없는 존재가 세 부류 있다. 아이, 노인, 그리고 여인.
일단 강호를 활보하고 다니는 아이의 경우, 그의 정체와 관련된 가능성은 두 가지다. 엄청난 비법을 터득해서 회춘하다 못해 아이를 방불케 할 모습을 가진 늙은 괴물이 그중 하나요, 배후에 엄청난 인물이 있는 게 다른 하나다.
노인의 경우는 기혈이 쇠퇴하고 전투력이 저하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겉보기에도 매우 허약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수명이 다해가는 그들로서는 이제 크게 잃을 것이 없으니 싸울 때도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 반면, 상대적으로 젊은 상대는 남은 세월이 창창하기에 똑같이 목숨을 걸어봤자 자기만 손해이기에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여인의 경우는 설명할 필요 없다. 여자라는 것 자체가 무기인 셈으로, 지금과 같은 사달을 일으킬 수가 있다는 말이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 초휴가 냉소를 머금었다.
“욕심에 눈이 멀어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게로군. 다들 연회남의 사위가 되고 싶다는 건가? 한마디만 충고해 주지. 너희들은 연회남의 사위는 고사하고 염라대왕 사위의 종놈 노릇이나 하게 될 거다.”
하지만 초휴의 경고에 멈출 그들이었다면 애당초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초휴의 말에 그를 둘러싼 무리 중 남색 장삼 차림에 쥘 부채를 든, 대갓집 공자 같은 모습의 사내가 코웃음으로 응수했다.
“개소리 집어치워라. 연 소저와 같은 연약한 여인을 죽이겠다 협박하는 네놈을 어찌 지켜만 보겠느냐? 머리가 잘못되어 미쳐 날뛰는 건 바로 네놈이다. 게다가 나 축무화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연회남 종주시다. 연 소저를 건드리려거든 나부터 뛰어넘어야 할 것이야!”
사내는 바로 동제의 작은 일족인 축가의 장자, 축무화(祝武和)였다. 그는 실력이 쓸 만해서 젊은 나이에 이미 외강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의 부친인 축가 가주 역시 외강경인 게 문제였다. 작디작은 가문에 외강경이 둘씩이나 있으니, 가문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수련자원이 턱없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축무화가 신병대회에 온 것은 신병(神兵)에 환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대형 문파의 제자들과 교분이나 맺어볼까 하는 심산에서였다. 그런 자들과 가까이 지내면 콩고물이라도 생길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이런 기회와 맞닥뜨렸으니, 그로서는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축무화는 자존감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높았다. 심지어 자기가 축가가 아니라 구대 세가에서 태어났더라면, 지금 자신의 성취가 용호방 준걸들 못지않았을 거라는 확신까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초휴를 죽이고 연회남의 사위가 되어 신무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자신의 앞날에 탄탄대로가 펼쳐질 거라는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다른 무사들 눈에는 그가 고깝게 보였다. 출수하려거든 그냥 출수하면 되지 무슨 놈의 서론이 그리도 장황하단 말인가. 동제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는 주제에 연회남을 언제부터 존경했다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가 비단 축무화뿐인 건 아니었다.
두 번째로 나선 자는 추한 외모에다 키가 무려 일 장에 달하는, 거대한 도끼를 든 거한이었다. 그는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내 마음에 드는 여인이 없더니만 신무문의 사위가 될 기회가 생겼군. 나도 한번 끼어보겠소.”
그 거한까지 숟가락을 디밀고 나서자 다들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장림군 일대에서 나름 유명세를 떨치는 낭인 무사로, ‘악호(惡虎)’ 팽죄(彭罪)라는 이름의 사내였다.
그는 소싯적에 도적 노릇을 했고 작은 산채까지 세웠으나 관병에 토벌되고 말았다. 후에 도적질은 그만두었어도 못된 버릇 남 못 주더니만, 결국 문객으로 있던 집안을 배신하는 악명까지 추가하고 말았다. 그 큰 덩치에다 칙칙하고 추한 외모로 가냘픈 연정정 옆에 서니, 세상에 이렇게 안 어울리는 한 쌍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팽죄, 당신의 더러운 이력으로는 신무문에 가더라도 당장 쫓겨날 것이다. 거울이나 좀 보고 나서지그래. 정말로 자신이 연 소저를 취할 주제가 된다고 생각하나?”
세 번째로 나선 자는 몸에 달라붙는 무사복 차림의 운치 있고 호방한 분위기의 사내였다. 얼굴에 오만한 기색이 가득한 그는 등에 쌍검을 메고 있었다.
“저자는 ‘적음쌍검(赤陰雙劍)’ 공손류(公孫流)가 아닌가! 용호방 삼십이 위에 올라있는 인물인데.”
그의 등장에 좌중이 술렁였다.
초휴의 적수로 용호방 순위에 올라있는 무사의 등장은 처음이었다. 이에 군중의 무리 끝에 있던 막천림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용호방 물이나 흐려 놓는 미꾸라지가 여긴 또 왜 나타난 거지?”
사소루 역시 눈을 찌푸렸다.
사실 공손류가 용호방에 오른 몸이긴 하나, 행실에 문제가 있었다. 용호방은 원래 명성과 실력에 준거해 순위를 매긴다. 공손류의 경우, 실력은 있을지 몰라도 소속 문파가 없다 보니 명성에서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해서 본인의 능력만으로는 상위 오십 위권 진입도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해서 그는 묘수 하나를 생각해냈다. 무공이 자기만 못하나 명성은 높은 자들만 골라 도발했다. 대개 용호방 순위가 자기보다 앞서는 낭인 무사들이 이 조건에 해당했다. 그는 도발하기 전 상대에 대한 자료를 충분히 수집하여 십할에 가까운 승률을 장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싸움을 걸곤 했다.
강호에서 용호방에 오를 정도의 인재들이라면, 대개 자기보다 강한 상대에게 도전장을 내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손류는 순전히 용호방에 오르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
먼저 실력과 명성을 인정받고, 그에 따르는 명예로 용호방 순위를 얻는 대부분 무사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해서 자기보다 순위가 높아도 실력은 하수인 상대만 골라 공략해서 순위를 빼앗곤 했다.
그는 용호방 순위만 올릴 수 있다면 꺼릴 것이 없었다. 이런 후안무치한 행동이 용호방의 숭고한 취지를 어지럽힌다 해서 ‘미꾸라지’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용호방에 이름이 오른 것 자체로 존경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막천림 등이 보기에 공손류는 근본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자였다. 백로 무리에 끼어든 까마귀라고나 할까. 그리고 공손류는 외양은 젊어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서른을 넘긴 나이였다. 말인즉슨, 몇 년 후면 용호방 나이 제한에 걸려 무조건 순위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뜻이다. 해서 이번 신병대회도 화끈하게 마지막 명성을 얻어볼 심산으로 참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호재와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이번에 정말로 초휴를 죽이기만 한다면 외모나 용호방 순위 둘 다 꿀릴 게 없는 자기가 연회남의 사위가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어쨌든 이로써 연정정의 제안에 호응한 사람은 총 세 명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동제에서 나름 이름난 무사들이 나서자, 구경만 하던 백 명에 달하는 무사들도 덩달아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물론 이들은 내강경 및 외강경이었고, 내강경보다 못한 실력을 가진 자들은 감히 끼어들 엄두도 못 내었다.
내강경 무사들은 얼결에라도 횡재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심리라도 있었다. 하지만 선천경 무사들은 이런 기대심리를 품을 배짱마저 없었다. 자칫하면 목이 날아갈 싸움에 운명을 맡기는 게 얼마나 무모한 건지는 본능적으로 알 터였다. 이처럼 백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기세를 모으자, 아까 초휴가 보였던 기선제압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적잖이 희석되고 말았다.
사람은 군중심리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본성이 있다. 혼자서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백 명에 달하는 동료가 함께하면 그 두려움은 백 명한테로 쪼개지니, 종내에는 크게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없던 용기도 솟아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무리가 갖는 힘이었다. 군중 뒤에 서 있던 막천림이 사소루에게 속삭였다.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그는 자네 절친의 절친이 아닌가.”
“절친의 절친이지만 나의 절친인 건 아니지. 저자와는 안면을 튼 지 몇 시진밖에 안 되었으니, 목숨까지 걸어가며 도울 정도의 사이는 아직 아냐. 게다가 상대는 백 명에 육박해. 자칫 저들의 공적이 되었다가는 우리도 위험해질 수가 있네. 그렇다고 해서 여형이 몇 차례나 언급했던 인물이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 걸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곤란하지. 이렇게 함세. 저자가 정말 버틸 수 없는 위급한 지경까지 몰리면 목숨만은 구해주자고.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내 생각도 자네와 같네.”
막천림이 씨익 웃어 보였다.
강호에는 실속 없이 의리만 따지는 사람도 많지만, 현실적인 사람도 이에 못지않게 많다. 사소루나 막천림같은 유형은 이도 저도 아닌 경우였다.
사소루는 여봉선과의 친분을 계기로 초휴와 벗이 되었고, 막천림은 순전히 호기심에서 그리되었다. 물론 막천림 본인의 타고난 천성이 워낙 정이 많고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초휴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초휴를 위해 죽기 살기로 나선다는 것 자체가 도리어 비상식적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