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ic Lord'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간담이 서늘해지다
이번에 시전한 지권인은 유리금사고의 막강한 지원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 결과, 선두에서 달려들었던 열 명 남짓한 무사들이 초휴의 칼날 아래 사정없이 도륙되었다.
하지만 초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는 듯이 다가가 축무화를 덮쳤다. 이제 걸리적거릴 건 아무것도 없는 초휴가 살기등등한 기세로 축무화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아까 초휴가 내상을 입고 피를 토한 모습은 이곳 모두가 지켜보았다. 누가 봐도 초휴는 가진 재간(才幹)을 다 써버리고 숨이 끊어질 일만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다시금 폭발적인 위력을 뽐내며 열 명도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이제 그들은 막연하게나마 가졌던 자신감마저 잃어버렸다.
‘도대체 초휴의 바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내력 소모가 극심할 텐데, 어떻게 저런 폭발력을 계속 발휘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공손류는 다시 한번 사람들을 집결시켜 초휴를 막아보려 했다. 하지만 잇따른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호응하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초휴가 거침없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축무화는 다친 부위를 감싼 채, 겁에 질려 부르짖었다.
“그만! 난 포기하겠소! 제발 살려만 주시오.”
그는 문중에서 유일하게 상급 무사가 될 자격을 갖춘, 축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설령 연정정을 취하지 못해도 다른 방법으로 동제에서 명성을 얻지 못하란 법도 없다.
그런데 굳이 목숨을 건 도박을 계속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이 일에 끼어든 것에 대한 후회가 뒤늦게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러나 초휴는 그에게 후회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핏빛 도영이 번쩍하고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열 명도 넘는 목숨을 앗아간 칼날이지만 표면에서는 한 점의 피 얼룩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도신에 베인 피비린내는 너무도 짙어서 사람들을 섬찟하게 만들었다.
축무화는 자신의 상세(傷勢)는 아랑곳없이 노호(怒號)를 터트리며 온몸의 강기를 터트려 이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가 제대로 목숨을 걸어보기도 전에 초휴의 그림자가 빛의 속도로 그를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축무화의 머리통이 자로 잰 듯 깨끗하게 떨어져 나가버렸다.
가쁜 숨을 고른 것도 잠시. 초휴는 이내 공손류를 가리키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세 번째는 네놈이다!”
하지만 무덤덤하기만 했던 지난 어조와는 달리, 그의 눈빛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공손류는 심장 한쪽에서 싸한 한기가 올라와 정수리까지 치솟는 걸 느끼며 몸서리를 쳤다.
자기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까처럼 사기가 올라있는 무사들은 한 명도 없었다. 초휴를 죽일 의지는 고사하고 엄두조차도 못 내는 분위기였다. 연정정을 아내로 맞아 신무문을 계승하여 화려한 인생의 반전을 꾀하기는 개뿔! 그들의 눈빛에는 끝 모를 두려움만 가득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의 나약함을 탓할 수만도 없었다. 어쩌면 그들이 살인을 하거나 직접 보았던 횟수가, 초휴보다 더 많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가벼운 손짓으로 저렇게 가공할 살상력을 토해내는 장면은 난생처음 겪었다.
초휴에게 찍힌 자에게는 사신(死神)을 영접하는 절차만이 있을 뿐이다. 이를 두 번씩이나 확인한 그들이 어떻게 초휴에게 대항할 수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면 공손류 다음 차례는 누가 될까. 자신이 될 수도, 혹은 다른 누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내 차례가 될 확률이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해도 초휴한테 찍힌 순간 죽을 확률은 십할이란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들은 앞으로 나서기는커녕, 도리어 슬금슬금 무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연정정이라는 미인도 충분히 유혹적이고, 신무문 계승자가 되는 건 더욱 탐나는 일인 게 사실이다. 부귀영화를 쟁취하는 길은 험난한 것이고, 험난한 와중에 기회가 온다는 이치를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상대가 엔간해야 통용될 이치고 감히 품어볼 욕심이다.
간담이 오그라든 일부 무사들은 급기야 도주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본능적 군중심리가 여기서 또 한 번 발동했다. 한 명이 도망치는 것을 신호탄으로 다른 이들도 반사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한 명이 순식간에 열댓 명, 아니 수십 명을 몰고 빠져나간 것이다.
이처럼 대오가 지리멸렬하는 가운데, 초휴는 한 발 한 발 공손류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공손류는 이미 머릿속이 하얗게 된 상태였다. 본인의 깜냥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혼자 남아 무슨 수로 감히 이 괴물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갈등은 오래 걸렸으나 행동에 옮기는 건 빨랐다. 공손류는 결단을 내리자 다른 누구보다도 빠른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공손류를 바라보는 초휴의 눈에는 냉기가 흘렀다.
사실 지금 초휴의 상태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대거 살육을 벌인 데다, 두 차례나 마기에 잠식당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지권인을 완전히 터득하지도 않은 채로 시전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이로 인해 야기된 부작용과 내력 소모가 만만치 않았다. 유리금사고가 비상 체제를 가동하여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초휴의 이성은 아직 극도의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공손류를 다음 표적으로 찍은 이상, 기필코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순간적으로 내박인을 출수한 그는 공기를 가르며 빛의 속도로 튀어 나갔다.
내박인은 폭발적인 속도로 단거리를 이동하는 데 최적화된 인법이다. 공손류는 멀리 가보지도 못한 채, 등 뒤에서 포효를 동반한 광풍이 덮쳐오는 걸 느꼈다. 동시에 핏빛 살기를 잔뜩 머금은 막강한 강기가 그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공손류가 외마디 기합과 함께 쌍검을 휘두르자, 적홍색 장검에서 타는 듯한 염류(炎流)가 휘돌기 시작했다. 사악한 음기가 흐르는 다른 장검에서도 마기까지는 아니라도 부식성이 담긴 강기가 터져 나와 염류 속으로 흘러들었다. 이는 성난 불구덩이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었다. 순식간에 강맹한 검세에서 작열하는 화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 초휴를 덮쳤다.
이 명라화검(冥羅火劍)은 공손류가 독학으로 연마한 검법으로, 두 종류의 완전히 다른 검세를 합쳐서 폭발적으로 위력을 배가시키는 원리였다. 그처럼 소속된 문파가 없는 무사들은 강력한 단일 무공을 전승받을 방법이 없으니, 이런 식으로 특별한 방법을 꾀하여 자신의 위력을 증강하곤 했다. 명라화검의 강기가 평범한 일면이 있을진 몰라도, 거기에 실린 극강의 부식성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초휴의 혈련신강에 말끔하게 소멸되고 말았다.
그리고 공손류가 후속 대책을 마련하기도 전에 눈앞에서 금색 불광이 터지면서 천하의 모든 사기를 쓸어버렸다. 대금강륜인의 일격에 공손류의 수중에 있던 장검이 튕겨 나간 건 물론이요, 검을 쥐었던 손아귀까지 찢어져 사정없이 피가 흘러내렸다.
모든 장애물을 쓸어내고 바짝 다가선 초휴의 모습에 공손류는 겁먹을 겨를도 없이 품 속에서 뭔가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이 품 속에 닿기도 전에 초휴가 또 다른 수인을 취하자 손가락 사이에서 뇌진탕이 일 듯한 격렬한 뇌성이 터져 나왔다.
대광명사의 비전절기인 구변사자후보다도 더 강맹한 외사자인의 굉음이 연신 귓전을 때렸다. 공손류는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두통과 현기증이 일어난 데 이어서 신체에 있는 일곱 구멍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공손류가 얼추 정신을 차렸을 무렵, 바로 목전에서 또 한 번 금빛 불광이 터져 나와 그의 시력을 앗아갔다.
‘펑!’
초휴의 사방에서 한바탕 혈무가 피어올랐다. 허망하게도 어느샌가 머리가 떨어져 나간 공손류의 시신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숨이 멎을 듯한 적막이 흐르는가 싶더니, 초휴가 깊이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일전에 참여하지 않은 무사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시종일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당백이라는 이 말 같지도 않은 싸움을 보란 듯이 압도적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 눈앞에 우뚝 서 있지 않은가.
아직 신병대회가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그들 모두 한 가지 확신만은 암묵적으로 공유한 상태였다. 신병대회 후 초휴의 용호방 순위가 대폭 올라가리라는 확신 말이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상위 십오 위 정도 아니라 십 위권 진입도 너끈할 터였다.
숨죽인 채 뒤에서 지켜만 보던 막천림이 결국 의미 모를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곁에 있던 사소루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아까 뭐라고 했지? 이런 일을 해낼 자는 강자와 미치광이뿐이라고 했던가? 자네가 미치광이라고 말했던 자가 지금 모두의 눈에는 강자로 보일 테지.”
사소루도 복잡한 심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늘 기고만장했던 그는 웬만해서는 동급 무사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에 그나마 유일하게 인정한 상대가 ‘소온후’ 여봉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초휴의 실력을 보니 과연 여봉선의 사람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것 같았다. 여봉선에게조차 추앙을 받을 정도라면 결코 범상한 인물이 아닐 터였다.
만약 지금 상황이 이 둘에게 주어졌다면, 그들은 혈투를 벌여 탈출로를 확보하는 데 급급했을 것이다. 꽁지 빠진 닭처럼 처참한 몰골로 내뺀다 해도, 목숨만 부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초휴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도리어 폭풍과도 같은 광기를 일으키며 선제적으로 대응했고, 모든 적수가 대항할 의지를 잃을 때까지 거침없이 때려 부수고 파괴해버렸다. 이제야 비로소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겉모습만 보고 그에게 싸울 힘이 바닥났다고 장담할 자가 누가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초휴의 실력의 끝이 대체 어디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가 지친 것 같긴 하니, 한 번 자신의 운을 시험해 봄직도 했다. 선택은 자유니까. 하지만 그 운을 시험하려면 자신의 목숨부터 걸어야 할 터였다!
이로써 일당백의 싸움은 마무리가 된 셈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백무기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번뜩였다. 다른 무사들은 심적으로 초휴에게 압도당한 상태였다.
그를 죽이면 연정정과 신무문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누가 모를까. 하지만 문제는 그럴 엄두를 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이처럼 주변의 경쟁자들이 떨어져 나가고 사기가 바닥을 칠 때까지 관망만 하던 백무기는, 자신이 등장할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사실 백무기는 연정정의 제안에 큰 흥미를 못 느꼈다. 신무문의 내부 상황에 익숙한 북연 출신 무사로서, 연정정이 지금 벌이는 짓거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백무기처럼 거칠고 강한 기질의 사내에게 연정정과 같이 제멋대로인 여인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리도 없었다.
지금 그의 눈에 비친 연정정은 미쳤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자신의 인륜대사와 신무문의 미래를 초휴의 목숨과 맞바꾸는 거래를 시도했다? 이 사실을 연회남이 알았다가는 불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게 이상할 테니까.
더욱이 그는 극북표설성의 젊은 연배 가운데서도 가장 출중하다고 인정받는 제자다. 신무문의 계승자가 되는 게 양에 찰 리가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극북표설성의 세력에 비하면 신무문은 정말 보잘것없는 종문에 불과했으니까.
이런 까닭에 그는 연정정이 제시한 조건보다는 초휴와의 명리 다툼 자체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명리라는 건 사람마다 그 무게감을 달리 인식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별 게 아니라고 치부하는 자도 있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로 인식하는 자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백무기가 바로 그 후자에 해당했다.